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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아시아****국가들/⊙일본*시코쿠(四國)

시코쿠ㅡ오헨로순례길ㅡ시코쿠 八十八寺 순례 57~~64

by 삼수갑산 2021. 11. 8.

오헨로(お遍路) 순례길ㅡ시코쿠 八十八寺 순례 57-64 

▲57. 榮福寺 (에이후쿠지)

愛媛縣 今治市 玉川町, 0898-55-2432, 산 중턱

본존 : 阿弥陀如来
창건 : 홍법대사
종파 : 眞言宗 高野派

嵯峨천황의 칙원사이다. 시코쿠를 순례 중인 홍법대사가 이 곳에 왔을 때 해난사고가 다발하는 것을 들었다. 대사는 그 재난을 없애려고 府頭山 산정에서 해신공양의 護摩供을 엄숙히 수행하고 그 마지막 날에 해상을 제압하는 靈光의 가운데 서있는 아미타여래의 존영을 보았다. 대사는 아미타여래의 가호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기원의 성취를 알고 그 기념으로서 절을 창건한 것이 시작이다.

그 후 858년 大安寺의 行敎上人이 큐슈의 宇佐八幡을 山城의 男山으로 청원하려고 가는 도중 폭풍우를 만나서 이 지역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이 지역의 산모양이 남산과 매우 닮았으므로 경내에 신사를 조영하여 八幡宮을 창건하였다.

 

옛날부터 破邪討逆, 해륙안전, 福壽增長의 기원사로서 알려져 온 榮福寺는 메이지 초년의 廢佛棄釋令으로 산정의 신사에서 분리하여 현재지로 이전하여 독립하였다.

 

▲58. 仙遊寺 (센유지)

作礼山 千光院 仙遊寺 (사레이잔 센코우인 센유지) 이마바리 변두리 산속

愛媛縣 越智郡 玉川町, 0898-55-2141
본당 : 千手観世菩薩
창건 : 越智守興

텐지천황의 칙원에 의해 이요(伊豫)의 태수 越智守興이 해발 300m의 作礼山 위에 절을 창건하고 천황의 수호불인 천수관세음보살을 조각하고 본존으로 안치한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산 이름은 천황의 一刀三礼로 조각한 연유에 의해 作礼山이라 부르고 절 이름은 養老년간 이 산에서 40년간을 독경삼매로 살아온 阿坊仙人이 뭣인가의 이유로 어느날 돌연히 구름과 같이 사라졌다는 전설에 연유하여 仙遊寺로 되었다. 또 전설로는 용궁의 궁녀들이 밤이면 밤마다 龍燈川을 올라와 경내의 燈明樓에 灯明을 헌상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이 곳에 머물은 홍법대사가 7채 가람을 짓고 시코쿠 제 58 참배소로 정하였다. 1947년 산불로 소실되었지만 1953년에 본당을 1958년에 대사당을 재건하였다. 절에서 시마나미 가도를 보면 절경이다. 차로 올라갈 때 차도비 Y400이 필요하다.

 

▲59. 國分寺 (코쿠분지)

金光山 最勝院 国分寺(콘코우잔 사이쇼우인 코쿠분지)
愛媛縣 今治市, 0898-48-0533, 평지
본존 : 薬師瑠璃光如来 (행기보살작)
창건 : 행기보살
종파 : 眞言律宗

741년 쇼무(聖武)천황의 칙원에 의해 행기보살이 각국에 창건하였을 때의 이요(伊豫)의 国分寺이다. 그때부터 시대가 지나 智法대사가 3대째의 주지를 하고 있을 당시 방문한 홍법대사는 잠시 머물면서 五大尊의 그림을 그려 남기고 대사의 제자 眞如대사도 머물면서 법화경 一部를 染筆하는 등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후는 여러 수난이 되풀이 되었다. 그러다 43대째의 주지 惠光上人이 1789년에 금당을 재건 이후 수차례 절과 탑을 증축하였다. 戰火에 의해 종파가 바뀌는 일이 많았으나 이 절은 4번의 전화에 의한 정치권력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종파가 변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유지되어 왔다. 산문을 올라가 바로 오른손에 악수하고 기원하는 대사상이 홍법대사이다.

 

▲60. 橫峰寺 (요코미네지)

石鎚山 福院智 横峰寺 (이시즈찌산 후쿠치인 요코미네지)

愛媛縣 西條市 小松町, 0897-59-0142.
본존 : 大日如来(좌상 3척3촌, 홍법대사작)
창건 : 役行者
종파 : 眞言宗御室派

깊은 산속 높은 곳에 있어 유료도로와 등산길이 있으며 등산길로 올라가면 가파른 등산로로 1시간30분가량 올라가야하며 뻭빽한 숲이 경치가 절경이 다. 유료도로로 갔으면 수월하게 올라갈 것을 가파른 이 길을 택했다가 고 생을 하였다.

 

651년 役行者가 수행 중 石鎚山 산정에 藏王權現이 출현하였으므로 그 존상을 石楠木에 조각하고 창건하였다. 그 후 대동6년 이 곳을 방문한 홍법대사가 머물면서 42세의 액을 물리치는 星供의 법을 수행하고 있는 중에 감득한 대사는 이 곳이 靈地라고 대일여래를 조각하여 본존으로 모시고 시코쿠 제60번 참배소로 정하였다.

절의 본당은 양부신도시대에 신도 부처도 고마운 것은 같은 것이다 라고 설법한 대사의 가르침대로 본당내부에 모셔져 있고 건축양식은 權現식으로 되어 있다.

 

메이지 들어와 廢佛棄釋令로 폐지된 절은 1871년부터 1909년까지 걸쳐 石鎚신사의 西遙참배소 横峰寺로 되어 있었으나 신자들의 도움에 의해 1909년에 横峰寺로 재흥하였다.

 

옛날부터 산악불교의 靈場으로서 번영한 横峰寺는 桓武천황의 칙원사로도 있었고 역대조정의 존경심도 깊었고 또한 무장들에게서도 믿음을 받았다.

 

61. 香園寺 (코우온지)

栴檀山 敎王院 香園寺(센단잔 교오우인 코우온지) 평지, 현대식 빌딩 절같지 않음
栴檀(전단) 단향나무, 박달나무
愛媛縣 西條市 小松町, 0898-72-3861
본존 : 大日如来
창건 : 쇼토쿠태자
종파 : 眞言宗御室派

用命천황의 병 쾌유를 기원하여 쇼토쿠(聖德)태자가 창건하였을 때 金衣백발의 노인이 출현하여 본존 대일여래를 안치하였으며 그러한 연유에 의해 敎王院의 이름을 하사 받았다.

 

天平년간(708~781)에는 행기보살이 머물면서 수행하였고 大同년간에 머물은 홍법대사는 난산으로 고통을 받는 부인을 보고 구하려고 당나라에서 갖고 온 金像 1촌8분(약5.6cm)의 대일여래를 본존의 뱃속에 넣고 당나라 나무 栴檀(전단, 단향나무, 박달나무)의 향을 태워서 栴檀의 향을 본존에 씌워 護摩修法을 한 것이 산 이름으로 되었다. 그래서 안산, 육아, 대역, 여인성불의 네 가지의 誓願과 비법이 남아 있다.

그 후 長曾我部의 병화에 의해 7채 가람이 소실하였다. 이 후 우여곡절을 거쳐 1913년에 재건하였고 그 때 앞의 네 가지 서원에 더하여 몸건강, 가정원만, 사어발전, 소원성취의 기도 절로써 기초를 다져 현재는 전국에 많은 신자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1976년에 본당을 성당으로 철근콘크리트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콘크리트건물로 지었고 2층에는 827개의 고정식 좌석이 있는 장대한절이 되었다.

 

그러나 1층 참배소에는 병풍 앞에 조그만 불상이 있을 뿐이고 건물이 사각의 성당 같아 절 같지 아니하다. 2층ㅇ[는 대일여래와 우측에 홍법대사가 있고 또 본존의 모양은 大日如来와 子安大師의 2体로 되어 있다.

 

▲62. 宝壽寺(호우쥬지)

天양(羊+良)山 觀音院 宝寿寺 (텐요우잔 칸논인 호우쥬우지) 평지, 작은 절
愛媛縣 西條市 小松町, 0898-72-2210
본존 : 十一面観世音菩薩(홍법대사 작)
창건 : 홍법대사
종파 : 眞言宗高野派

天平년간(708~781) 大己貴尊의 신탁에 의해 쇼무천황이 각 나라에 하나의 신사를 짓게한 일이 있다. 이 절은 그때 이요일국의 하나의 신사 法樂所로서 창건되었다. 그 후 여러 번의 홍수로 절이 피해를 입어 황폐하였으나 天養2년(1144)에 재건되어 그 때의 연호를 따서 天養山으로 고쳤다.

그 후 머물었든 홍법대사가 광명황후의 얼굴로 십일면관세음보살을 조각하고 본존으로 하여 시코쿠 제 62번 참배소로 정하였다. 그때부터 시대가 흘러 1585년 병화에 의해 절이 소실되었으며 수십년간에 걸쳐 절은 황폐한 상태로 된 절을 1642년 宥伝상인이 재흥하였다.

 

또 메이지초기의 廢佛棄釋令으로 폐사되었다가 1882년에 독립하였으며 1921년 豫讚線 개통 때문에 현재지로 이전하였다. 弘法大師가 이 절에 왔을 때 난산으로 고토을 받는 国司의 越智公夫人을 도운일에서 安産의 観音참례소로 信仰地의 대상지로 되었다.

▲63. 吉祥寺(킷쇼우지)

密敎山 胎藏院 吉祥寺(밋쿄우잔 타이조우인 깃쇼우지)

愛媛縣 西條市, 0897-57-8868, 평지
본존 : 毘沙門天 (홍법대사 작)
창건 : 홍법대사
종파 : 眞言宗東寺派

홍인년간 홍법대사가 이 지역을 순례 중 빛을 발하는 檜(노송나무)나무를 보고 이것이야 말로 靈木이라 생각하고 즉시에 毘沙門天(시코쿠 참배소 중 유일함) 吉祥天善尼師童子의 삼상을 조각하고 坂元山의 산 허리에 절을 짓고 毘沙門天을 본존으로하고 그 외에 두 불상를 옆 불상으로 안치하였다.

그 후 1585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 小早川隆影과 토사의 長曾我部와의 전쟁에 휘말려 전산이 소실되었으나 1659년이 되어 말사인 檜木寺와 합병하여 현재지에 재흥하였다. 시코쿠 유일의 본존 毘沙門天은 七難卽滅, 七福卽生의 영험이 있다고 존중되고 있다.

 

▲64. 前神寺(마에카미지)

石鎚山 金色院 前神寺(이시즈치잔 콘지키인 마에가미지) 평지 산 중턱 큰절

愛媛縣 西條市, 0897-56-6995 평지 산 중턱 큰절, 石鎚派의 총본산
본존 : 阿弥陀如来 (役의 行者小角 작)
창건 : 役行者小角
종파 : 眞言宗石鐵派

텐무천황의 대신으로 石鎚山에서 수행한 役行者小角이 창건한 절이며 石鎚大権現을 제사지내고 있다. 그 후 칸무천황의 병의 쾌유를 기원하여 영험이 있다고 하여 7채 가람을 짓고 칙원사로 정함과 함께 金色院의 칭호를 하사하였다.

石鎚山은 고대부터 수행의 영지로서 홍법대사는 2번 石鎚山에 올랐다. 대사는 그 후 또 시코쿠 靈場개창의 때에 와서 이 절에서 護摩供의 비법을 수행하고 시코쿠영장 제64번 참배소로 정하였다. 前神寺에는 문덕천황의 시작으로 역대 조정의 천황으로부터 불상 등 보물이 있다.

 

출처 / 글 / 사진 / 손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