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식 성당으로 빈의 상징적인 건물. 슈테판 성당

▲슈테판 성당

 

성 스테판 대성당은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 교회로빈 대교구의 모교회입니다

이곳은 빈 대주교 요제프 그뤼니들의 주교좌입니다

 

오늘날 슈테판스플라츠에서 볼 수 있는 현재의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 대성당은 주로

루돌프 4세 공작(13391365)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1147년에 봉헌된 첫 번째 교회

두 교회 유적 위에 세워졌습니다

 

빈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 건축물인 성 스테판 대성당은 합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 역사

에서 많은중요한 사건들을 목격했으며다채로운 기와 지붕으로 도시의 가장 잘 알려진

상징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위에서 아래까지 256개의 계단이 있습니다

▲슈테판 성당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식 성당으로 빈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114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하여 고딕 양식으로 완성된 슈테판 성당은 모짜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루어 진 곳이다.

 

슈테판 성당은 137m의 첨탑과 25만개의 벽돌(기와)로 만들어 진 모자이크 지붕이 특징이며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 되어 있는 성인 슈테판의 이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성당의 길이 107 미터, 천정 높이 39 미터의 슈테판 성당은 빈의 혼으로 불리우는 빈의 첫번째

상징물이다. 당초의양식은 로마네스크였으나 화재로 붕괴된 이후 현재와 같은 고딕 사원으로

재건축되었다.

 

성당 안에는 안톤 필그램(Anton Pilgram)이 조각한 아름다운 설교단과 제단이 있고,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도 볼 만하다.

 

성당 지하에는 대주교의 무덤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내장을 보관해 놓은 항아리, '흑사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유골 2,000여구를 한데 모아놓은 카타콤베가 있다.

▲오스트리아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1895년이 건물들은 슈테판스플라츠와 스톡임아이젠플라츠를 분리하던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남쪽 탑과 더 짧은 북쪽 탑, 그리고 지붕 타일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높이 136미터(446피트)에 달하며 도시 주민들 사이에서 애정 어린 별명으로 '슈테플'이라 불리는

성 스테판 대성당의 거대한 남쪽 탑은 가장 높은 지점이자 빈 스카이라인의 지배적인 특징입니다

 

건축은 1368년부터 1433년까지 65년간 진행되었습니다. 1529년 빈 공성전과 1683년 빈 전투

당시 이곳은 성벽 도시 방어를 위한 주요 관측소이자 지휘소 역할을 했으며, 1955년까지 밤에

탑을 지키고 도시에서 화재가 감지되면 종을 울리던 감시병들의 아파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탑 꼭대기에는 가슴에 합스부르크-로렌 문장이 새겨진 이중 독수리 제국 문장이 있고그 위에는

헝가리 왕들의 제국 양식인 사도 폐하를 상징하는 양팔 사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파사우 주교 대성당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성 스테판에게 봉헌되었고건축이 시작된

해와 마찬가지로 그의 축일인 12월 26일의 해돋이를 향해 배치되었습니다

 

석회암으로 지어진 이 대성당은 길이 107미터(351피트), 너비 40미터(130피트), 최고 지점 높이

 136미터(446피트)입니다

 

수세기 동안 그을음과 기타 대기 오염으로 교회는 검은색이 되었으나최근 복원 작업을 통해

일부 부분은 다시 원래의 흰색으로 복원되었다.

▲성 스테판 대성당 지붕

▲서쪽 정면의 로마네스크 탑과 거인의 문

▲성당 외벽

▲성당 내부

▲내부 벽 조각물

▲15세기 그리스도상 

▲15세기 그리스도 조각상

 

잘츠부르크(Salzburg)

풍광이 음악처럼 흐르는 곳...거기. 기가 질리게 하는 自然이 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주 호에타우에른 국립공원 북쪽의 크리믈 폭포.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폭포다.물안개로 뒤덮인 채 거세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입이 딱 벌어지게 한다.

이 폭포가 보여주는 건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자연미다.

 

여행이 지향하는 지점이란 ‘비(非)일상’입니다. 여행자는 ‘일상과 가장 먼 풍경’에 매료되기

 마련입니다. 간추려 말하자면 여행자들이 원하는 곳은 ‘낯선 곳’이란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야말로 여행자들에게 비일상의 욕망을 한껏 채워 주는 

곳입니다. 

 

‘잘츠부르크’를 도시로만 알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잘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 9개 주

 가운데 하나, 잘츠부르크주(州)를 일컫는 이름입니다. 

 

어디선가 오스트리아의 눈부신 자연풍경을 담은 사진을 봤다면, 그건 아마도 십중팔구

 잘츠부르크의 경관일 겁니다. 도시 잘츠부르크는 음표가 떠다니는 ‘음악의 도시’로 

간단하게 정의됩니다.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도 바로 그곳이기 

때문 입니다.  반면 잘츠부르크주는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의 장엄함이 있는가 하면 포효하는 짐승 같은 거대한 폭포, 비현실

적인 푸른빛 호수의 서정, 젖소와 양 떼가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매력들로 가득하니 말입니다. 

▲오스트리아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가지 않은 곳, 잘츠카머구트 이야기

우선 가지 않는 곳과 그곳에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한 얘기부터. 잘츠부르크주에서
가장 이름난

곳이‘잘츠카머구트’ 지역이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서 만든 일흔여섯 개의 호수가 있는 곳.

 

잘츠(Salz)는 ‘소금’을, 카머(Kammer)는 ‘창고’를, 그리고 구트(Gut)는 ‘좋다’는 뜻이니

‘좋은 소금창고’쯤이 되는데, 도시 잘츠부르크 외곽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가진

옛 소금광산 일대를 묶어 이렇게 부른다.

잘츠카머구트는 한때 바다였다가 융기한 땅이라 산에서 소금이 난다. 이른바 ‘암염(巖鹽)’

이다. 고대와 중세 때는보석처럼 귀했던 소금이 잘츠카머구트의 중심 이었다면 지금

이곳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는 건낭만적인 경관이다.

 

초록의 들과 호수, 구릉 위의 파스텔 톤 마을의 경관이 어찌나 이국적인지 오히려 비현실

적이다.

잘츠카머구트의 정점에는 그곳을 찍은 사진 한 장만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

마을 ‘할슈타트’와 볼프강 호수가 있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할슈타트는

그러나 이제 떠들썩한 관광지가 됐다.

 

볼프강 호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할슈타트에는 관광버스와 깃발을 든 단체관광객 들로

넘쳐난다. 단체관광객 중 열에 아홉은 중국인이다.

중국인의 할슈타트에 대한 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다. 중국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시

에 부동산 개발업체가 할슈타트의 마을을 복제한 ‘짝퉁 할슈타트’를 조성했을 정도다.

관광지가아니라 주택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전체를 통째로 모방했다.

 

중국에는 여기 말고도 파리의 에펠탑, 영국의 런던 브리지,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모방한

이른바‘짝퉁 건축물’이 있다.중국에 잘츠부르크주의 할슈타트를 모방한 마을이 있다는 건,

할슈타트가에펠탑처럼 이국적인 정서를 환기하는 강력한이미지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잘츠부르크주 관광청이 권하는 목적지 목록에는 잘츠카머구트가 지워져 있었다 관광객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이기도했고, 이곳 말고 다른 매력적인 목적지가 많다는 자신감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판단은 백번 옳았다.


잘츠카머구트 대신 그들이 ‘가봐야 할 곳’의 목록에 적어준 호에타우에른 국립공원과 첼

호수는 여행의 낭만을 채워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알프스를 가로지르는 국립공원은 절로 경외감이 들 정도로 장엄했으며, 낭만적인 호수를

끼고 있는 마을은 작지만 보석처럼 빛났다.

아 참, 중국의 할슈타트 짝퉁 마을은 어떻게 됐냐고? 짐작하다시피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마을 경관에 저작권이 있는지 여부의 논쟁과는 상관없이, 역사 없이 겉모양을 베낀다는

게 얼마나 쓸모없는 일인지를 보여줬다.

 

아이러니한 건 중국에 짝퉁 마을이 생기고 나서 ‘진짜 할슈타트’를 찾는 중국인이 폭발적

으로 늘어난 것이다

 

◆표효하는 380m 폭포 앞에서 1시간 30분간 발을 떼지 못했다 

▲여름으로 접어든 알프스 산록의 초록 구릉마다 다양한 빛깔의 야생화가 만발했다

 

 ◆오스트리아의 지붕으로 오르는 길

잘츠부르크주의 경관 중에서 맨 앞에 세워야 할 것은 알프스 산맥이 보여주는 장엄한 위용이다.

잘츠부르크주 남쪽에 알프스 산줄기가 모여 이룬 ‘오스트리아의 지붕’이 있다.

 

해발 3000m급 고봉이 늘어선 알프스의 굵은 산줄기가 파도처럼 일어선 호에타우에른 국립공원

지역이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주와 티롤주, 카린시아주에 걸쳐 있는 호에타우에른 국립공원은 제주도

전체 면적과 맞먹는 1800㎢에 달한다.오스트리아의 6개 국립공원 중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중부유럽을 통틀어서도 가장규모가 크다.

 

국립공원 안에는 오스트리아의 최고봉 그로스글로크너산(3798m)을 비롯해 해발3000m가 

넘는 산들만 줄잡아 서른 개다. 하이킹 코스의 총연장이 자그마치 1800㎞,계곡이

300개, 호수가 150개….이쯤이면 규모가 짐작이 되시는지.

알프스에서 가장 장엄한 자연풍경이 이 국립공원에 있다. 산 아래는 목초지와 야생화로 가득

구릉이, 그 위쪽으로는 도열한 가문비나무 숲이, 그리고 더 위로는 수목한계선을넘어선 

거친 지형의 산악이펼쳐지는 곳. 장대하다 못해 기가질리게 하는 거친 자연이 거기 있다.

알프스 산맥의 위용은 스위스에서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볼 수 있지만, 여기 잘츠

부르크주의 알프스가 특별한 건 그곳에 거친 산의 갈기를 오르는 아찔한 길이있기 

때문이다. 그 길의 이름이 좀 길다.

 

‘호흐알펜슈트라세’. 호흐(hoch)는 독일어로 ‘높다’는 뜻. 알펜은 ‘알프스’를 말하고,슈트라세

는 독일어로‘길’이다. 그러니 호흐알펜슈트라세를 좀 더 익숙한 영어로 바꾸면 ‘하이

알파인로드’다.


 ◆초현실의 공간을 가로지르는 길

알프스 산맥의 첩첩한 산중을 오르는 호흐알펜슈트라세는 길게 늘어뜨린 실타래 같다. 급경사

단숨에 치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 협곡과 능선을 무겁고 깊게 굽이친다. 도로 중간중간

표지판에 ‘Kehre’라는 글과 번호가 매겨져 있다.

 

독일어 사전을 뒤져 보니 ‘심하게 굽은 길’이란 뜻. 이 단어 뒤에 1번부터 36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48㎞의 도로 전체 구간 중에서 급격하게 몸을 뒤트는 구간마다 팻말을 

세워 숫자를 헤아린 것이다.

굽은 길 축에도 못 끼는 90도쯤의 커브는 빼고 U턴에 가까운 급격한 굽이만 센 게 서른여섯 

곳이란 얘기다.


국립공원은 한 해의 절반이 겨울이라 이 길은 5월부터 10월까지 딱 6개월만 열린다.야생화

 만발한 초원에서 시작한길이 아찔한 벼랑을 끼고 도무지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협곡과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수목한계선을 넘어 해발 2000m를 넘나드는 코스는 마치 초현실의 공간과도 같다.이 도로가 

지나는 가장 높은 곳의 해발고도가 2571m. 한라산 정상보다 500m쯤 더 높은 고도에 

길이 있다.


대체 누가 이리 높은 곳에다 길을 놓았을까. 길의 내력은 깊다. 중세시대에도 잘츠부르크 

인근의 암염광산에서 캔 소금이 여기를 넘어갔다.당시 소금은 목숨을 걸기에 충분할 만큼

귀한 것이었다. 이 거친 길에다 도로를 놓은게 1935년이다.

 

1차 대전 이후 몰아닥친 경제공황을 극복하고자 나라에서 시행한 대규모 토목사업 일환이

었다.지금으로 치면 ‘공공근로사업’쯤 되겠다. 3000여 명의 인부가 산속으로 들어와

먹고 자며 길을 놓았다.


혹독했던 가난이 아니었다면, 생존을 목적으로 한 노동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길이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길옆 휴게소의 작은 전시관에 있는 길을 놓던 당시의 흑백사진 앞에서 경건한 마음이 들었던

건, 자연을 극복하려 했던 인간의 힘과 의지,그리고 생존을 위한 간절한 노동의 수고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려울수록 삶은 뜨거운 법. 그 뜨거움이야말로이토록 험준하고 차가운 설산에 놓은 길의

질료였던 것이다.

▲왼쪽 뾰족한 봉우리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높은 해발 3798m의 그로스글로크너산이다.

산정을 바라다볼 수 있는 오른쪽 크리스털 보석 모양의 전망대는 오스트리아 기업인

스바로브스키에서 지은 것이다.

 

 ◆자연의 압도가 마음을 움직이다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고산 도로 곳곳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눈 덮인 알프스의

거대한 고봉이 우뚝 일어서 있고, 협곡이 발아래로 까마득하다.

 

경관의 규모가 워낙 커서 ‘압도’의 느낌도 선명하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런 거대한 경관

앞에서 느끼는 건 가늠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경이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건 존재의 하찮음에 대한 각성이다. 압도하는 자연은 이렇게 마음

을 건드린다.

이 길이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들에게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로 꼽히는 건 극적인 길의 형태도,

풍경의 빼어남도 이유가되겠지만, 무엇보다 길과 경관이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리라.

 

알프스를 늘 머리에 이고 사는 유럽인들에게도 이 길이 드라이브 코스의 로망으로 꼽히고

있음은 차량과 오토바이의 종류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른바 ‘슈퍼카’와 대형 오토바이들이 이 길로 줄지어 달린다. 이곳에서 포르쉐는 경차처럼

흔하다.적어도 페라리급 정도가 줄지어 달려야 겨우 눈길을 받을 수 있을 정도다.

 

고가의 대형 오토바이들도 거친 언덕을 오른다. 도대체 이 험준한 길을 어떻게 넘어왔는지,

자전거를 타고 이 도로를 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도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그로스글로크너산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높은 산의 턱밑

까지 도로가 이어져 있다. 그로스글로크너산 전망대에서 올려다본 산은 얼음칼로 날카롭게

깎아낸 듯 장엄했다.

 

다만 산 아래쪽 협곡의 오스트리아 최대 규모라는 빙하는 여름이라 그런지 흙이 섞여 지저분

해진 모습이었다.

그로스글로크너산 전망대 아래 도로 옆의 100년도 더 됐다는 산장에서 하루를 묵었다. 깊은

산중 인데도 오후 8시가 돼서야 해가 저물었다. 해가 산을 넘어간 뒤에도 한참 동안 일대의

하늘이 붉은빛으로, 또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깊은 어둠. 차가운 대기 속에 적막한 설산 위로 별이 총총하게 떠오르는 모습을 올려다

보다 곧 깨닫게 됐다. 그날 밤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시간’임을….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의 포효

알프스를 넘어가는 길에서 볼 수 있는 게 멀리 물러선 알프스의 경관이라면, 가까이 다가가서

실체로 만날 수 있는호에타우에른 국립공원의 산악미는 크리믈 폭포에 있다.

 

국립공원 북쪽에 있는 크리믈 폭포는 중부유럽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크다. 빙하

가 녹아서 쏟아지는 폭포의 총 높이가 자그마치 380m다.

 

이 높이에서 물이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게 아니라 세 개의 단을 이뤄 흘러내린다거나, 도로에서

10분만 걸어 들어가면폭포를 만날 수 있다는 설명에 큰 기대는 접은 참이었다.


그러나 막상 폭포와 맞닥뜨리는 순간, 물안개로 뒤덮인 채 쏟아지는 엄청난 규모의 물줄기 앞에서

말을 잊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짐승. 포효하듯 쏟아지는 폭포는 딱 그런 모습이었다.

 

오랜 시간 쏟아진 물길은 주변의 풍경을 순하게 깎아내는 법인데, 이 폭포는 가뒀던 둑이 터져

이제 막 물길을 새로 만든 것처럼 격하고 거칠었다.

 

자욱한 물안개로 뒤덮인 폭포 아래로 다가서자 엄청난 물소리가 귀를 때렸다. 그냥 거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휘청거리고 가슴은 두방망이질했다.

 

그제야 영국 BBC의 자연탐사 다큐멘터리 PD 마이클 브라이트가 펴낸 책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의 목록에 이 폭포를 올려놓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크리믈 폭포 정상까지 4㎞ 구간을 1시간 30분 남짓이면 둘러볼 수 있다고 했지만, 주어진 시간

내내 하단의 폭포 물줄기아래서 발을 뗄 수 없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폭포의 위용이란 고작 물줄

의 높이로 가늠되는 게 아니었다.

 

거친 바위 사이를 으르렁거리며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규모감이라니…. 겨울이면 폭포가 뿜어

내는 물보라가 죄다 얼어붙으면서 초현실적인 거대한 얼음조각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대체 이 거대한 산자락에는 얼마나 많은 놀라운 자연풍경들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로스글로크너산으로 이어지는 산악도로 ‘호흐알펜슈트라세’가 거대한 사면을 따라 굽이치고 있다.

전장 48㎞의 이 길에는 U턴처럼 급격한 굽이가 모두 서른여섯 곳이다.

 

세계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도로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이 ‘버킷리스트’

로 첫손에 꼽는 길이다.

 

◆평화로운 호숫가 마을 첼암제의 낭만

호흐알펜슈트라세가 시작되는 국립공원의 북쪽 카프룬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도시 첼암제가

있다. 첼 호수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잘츠부르크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거리다.

 

그리 멀지 않지만 잘츠부르크에서 첼암제를 가려면 국경을 넘어 독일로 건너갔다가 다시 오스트리아

 넘어와야 한다.

 

국경을 맞댄 유럽 국가에서는 일상이겠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는 공항에서 탄 택시가 국경을

넘는 것도 이색적인경험이다. 도로 옆의 작은 경계 표지판만 제외하면 국경을 넘는지 눈치조차

챌 수 없지만 말이다.


첼암제는 빼어난 호수를 끼고 있는, 유럽인들에게 익숙한 휴양마을이다.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로 

끓는할슈타트나 볼프강 호수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인기 있는 곳이다. 인구래야

9000 남짓의 소도시인 첼암제는 첼 호수가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인구 300명의 더 작은 이웃 도시 카프룬과 함께 첼암제가 불러들이는 관광객의 연간 숙박일수가 자그

마치 ‘260만 박(泊)’이란다. 365일로 나눠 보니 매일 평균 7123박꼴. 한 방에 두 명이 묵는다고 계산

하면 매일 두 마을 인구보다 많은1만4000여 명이 넘는 관광객이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첼암제는 이런 계산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시 전체가 한적하다. 호수를 끼고 있는 마을의

번화가는 손바닥만했지만, 어디를 가나 여유가 흘러넘쳤다. 깃발을 든 단체관광객은 단 한 팀도

만나지 못했다.

 

주민들은 ‘관광객이 한창 몰리기 시작하는 여름 성수기’라고 했지만 고니 몇 마리가 유람선, 요트와

함께 고요하게 떠 있는 호수는 평화로웠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이룬 첼 호수는 그냥 마셔도 될 정도로 깨끗하다. 첼 호수에서 이채로웠던

‘호수욕’이었다. 호수한쪽에 모래를 부어 놓고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는데,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깨끗한 백사장에 파라솔을 놓고선탠을 하거나 물놀이를 했다.

 

뭉게구름이 수면 위로 거울처럼 비치는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은 너무도 이국적이어서

‘비일상의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왔음을 수시로 상기시켰다.

해거름 무렵이면 첼 호수 한쪽에서는 지역 주민인 노부부들이 민속 의상을 차려입고 나와 흥겨운

공연을 펼쳤다. 관광객들보다 무대에 선 주민들이 더 즐기는 듯했다.

 

음악이 곁들여지는 호반의 분수 쇼도 볼 만했다. 모두 주민과 관광객들이 함께 즐기는 무료공연

이었다. 이국적인 설산과 호수의 풍경, 여행자들의 여유와 평화, 그리고 여행자를 맞는 이들의

친절. 일상의 반대편으로 떠나는 여행에서 여기에다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여행 정보

잘츠부르크 가는 길 = 인천에서 잘츠부르크까지 직항이 없어 경유 편을 타야 하는데 항공권

가격으로 보나 스케줄로 보나 터키항공이 가장 좋다.

 

스타얼라이언스 소속 항공사인 터키항공은 335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전 세계 120개국

299개 도시로 촘촘하게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잘츠부르크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빈(주 28회)과 그라츠(주 4회)에도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최근 들어 공격적인 취항지 확대에 나서고 있는데 터키 건국 100년이 되는 2023년에

맞춰 400대 이상의 항공기로 500곳 이상의 취항공항을 연결할 계획이다.


잘츠부르크까지 터키항공을 타면 경유지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까지는 매일 운항편이 있다. 화·수·목요일은 하루 1편, 금·토·일·월요일에는 하루

2편이 운항한다.

 

이스탄불에서 잘츠부르크까지는 하루 1편 주 7회 운항한다. 인천~이스탄불은 10시간 남짓,

이스탄불~잘츠부르크는 2시간 반이 걸린다.

 

경유 편을 이용해 비행기를 갈아타는 경우 이스탄불 공항 대기시간이 6시간 이상이면 무료

시티투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스탄불 시내 중심가의 블루 모스크, 그랜드 바자 등을둘러 보는데 투어 도중 수준급의

식사도제공된다.대기시간이 10시간 이상인 승객에게는무료로 호텔 숙박을 제공한다.


알프스 산악도로 호흐알펜슈트라세를 가려면 호수를 끼고 있는 소도시 첼암제를 숙소로 잡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잘츠부르크 공항에서 첼암제까지는 차로 1시간 남짓. 국립공원으로이어지는 대중교통편이

없으니 공항에서렌터카를 빌리는 것이 좋다. 렌터카 요금은 중형차24시간 기준 12만원

정도다.


잘츠부르크주 여행정보 = 여름철 최고기온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습도가 낮아 그늘은 시원

하다. 햇볕에 나서면 자외선이 강해 선크림이나 모자, 선글라스는 필수다. 잘츠부르크주의

도시나 지역마다 관광시설 등을 이용할 수있는 ‘서머 티켓’을 판매하는데, 이를 구입하면

유용하다.

 

첼암제와 카프룬의 경우 200개 가맹 호텔 중에서 한 곳을 1박 이상 예약하면 투숙 인원 모두

에게 서머 티켓을 무료로 준다. 이 티켓이 있으면 각종 관광시설과 유람선, 곤돌라 탑승 등이

무료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이용 혜택으로 아끼는 금액이 숙박비와 맞먹을 정도니

꼭 챙기자.

찰츠부르크

모차르트 부터 사운드 오브 뮤직까지...음표의 도시...쉼표를 찾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카푸치너 수도원 언덕에서 구도심 쪽을 바라본 모습.우뚝 선

호엔잘츠부르크성 아래로 바로크 양식의 중세 건축물들이 펼쳐져 있다.

 

빼어난 조망이 펼쳐지는 자리마다 포옹하는 연인들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도시가 가진 낭만적인 분위기 때문인 듯했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좁게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고, 넓게는 하나의 주(州)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잘츠부르크에서 ‘잘츠(Salz)’는 소금이고, ‘부르크(Burg)’는 성(城)

입니다.

 

잘츠부르크는 오랜 세월 동안 ‘소금으로 지은 성’이었습니다. 도시 잘츠부르크 언덕

위에 올라서 도시를 굽어보고 있는 호엔잘츠부르크성도, 구도심의 우아한 성당과

수도원도, 광장과 분수도 모두 이 도시가 이룬 ‘소금의 부(富)’를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잘츠부르크를 든든하게 세운 기둥이 소금이라면, 이 도시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하는

건 바로 ‘음표’입니다.

 

이 도시에서 모차르트가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만으로도 잘츠부르크는 기념비적인

도시가 됐습니다.

 

불멸의 이름 모차르트는 초콜릿에도, 빵에도, 심지어 소시지에도 새겨졌으며, 도시

안에서는 1년 내내 그를 기리는 음악회가 열립니다.

 

그게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관광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잘츠부르크

사람 3명 중 2명이 어떤 식으로든지 모차르트와 관계있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잘츠부르크에는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경쾌한 음표도 떠다닙니다. 개봉된

지 50년이 넘은 이 영화의 주인공 줄리 앤드루스는 이제 팔순의 노인이 됐고,

 

폰트랩가(家)의막내였던여섯 살 막내 킴 캐러스는 어느덧 쉰일곱의 중년 여성이 됐음에도,

영화 속의잘츠부르크의 풍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 참, 잘츠부르크를 찾은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의 인기가 뜨거웠

지만,정작 잘츠부르크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건 의외였습니다.


바로크 양식의 우아함 위에 로코코 양식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새겨진 도시의 건축 위로

잘자흐 강물과 함께 모차르트음악의 음표가 흘러넘치니 이 도시가 어찌 ‘연인들의

것’이 아닐 수 있을까요.

 

호엔잘츠부르크 성 뒤쪽으로 해가 넘어갈 무렵 도시 곳곳에서는 연인들의 포옹이 자연

스러웠던 건 이 때문이었습니다.


도시 잘츠부르크가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라면,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잘츠부르게란트’라

고 부르는 ‘잘츠부르크주’ 곳곳에서 만난 경관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습니다.

 

일흔여섯 개의 호수를 품고 있다는 ‘잘츠감머구트’ 지역의 경관이 액자 속의 그림을 만들

어내고 있다면, 알프스의 고산 준봉이 흘러내린 가슈타인 계곡에서는 두려움이 느껴질

만큼 웅장한 설산의 풍경이 남아 있었습니다.

도시 잘츠부르크와 잘츠부르크주. 어디서부터 그림을 펼쳐 보여야 할지 고심하다가

‘잘 알려지지 않은 곳’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다녀온 여정의 순서와는 상관없이 잘츠부르크주에서 시작해 도시 외곽의 잘츠감머구트,

그리고도시 잘츠부르크로한 발짝씩 다가가며 거기서 만났던 매혹의 시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압도적인 자연의 겨울 풍광부터 섬세한 호수와 목초지의 경관, 그리고 역사와 낭만의 도시

까지….우리가 여행에서 매료되는 거의 모든 순간이 그 길 위에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대자연의 황홀한 연주

 

▶ 겨울과 봄의 공존…가슈타인 계곡

▲ 오스트리아 중부 알프스 자락의 휴양지 바트 가슈타인의 도심을 흘러내리는 폭포. 알프스의

눈이 녹아 가슈타인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서 크고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다.

설산 아래 초록의 초지 위에 들어선 가슈타인 계곡의 마을은 파스텔 색감의 건물들로

동화적인 분위기를 빚어낸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남쪽으로 1시간쯤 차로 달리면 알프스 산지 사이에 협곡을

이룬‘가슈타인 계곡’이 있다.

 

오스트리아 9개 주 중의 하나인 잘츠부르크주에 속한 땅. 한국 사람들에게는 낯선 곳이지만,

이곳 가슈타인 계곡은 잘츠부르크주에서, 아니 오스트리아를 통틀어 최고의 휴양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가슈타인 계곡에는 지금 겨울과 봄, 두 계절이 공존하고 있다. 계곡 아랫마을에는 초록 호밀밭

사이로 개나리며 벚꽃이 만개했지만, 마을을 포위하듯 우뚝 솟은 알프스의 산록은 눈이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겨울의 설산이다.

 

계곡 아래 초록의 화사한 시간과 순백의 설산이 그려내는 장엄한 시간이 동시에 머물고 있다.

이곳 가슈타인 계곡은 겨울에는 스키로, 여름철에는 트레킹과 다양한 레포츠로, 또 사계절

즐길 수 있는 라듐 성분의 온천으로 이름이 났다.

 

계곡에서 올려다보면 곳곳에 스키 슬로프와 트레킹 코스인데, 그 규모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어림짐작이라도 해볼까 싶어 관광청 직원에게 슬로프와 트레킹 코스 숫자를 물었는데,

돌아온 답은 ‘모른다’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 여기서는 슬로프와 트레킹 코스는 ‘개수’가 아닌 ‘길이의 합’으로 재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키 슬로프와 트레킹 코스가 산정에서부터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데다,

저마다 정해진 길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며 질주했다.

 

그러니 슬로프의 숫자를 묻는 질문은 곧, 한 도시의 모든 길의 수를 헤아리는 것만큼이나

불분명하고 부질없는 일이었다.

 

질문을 숫자에서 길이로 고쳐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스키 슬로프의 총연장은

250㎞이고, 트레킹 코스는 350㎞ 정도인데, 이 숫자도 정확한 건 아니다.”

 

스키 슬로프가 자그마치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거리이고, 트레킹 코스는 서울에서 대구

까지의 거리라는 얘기였다.

 

긴 거리만큼 놀라웠던 건 거의 모든 슬로프와 트레킹 코스가 탄성이 한숨처럼 나오는 알프스

의 경관 사이를 지난다는 것이었다. 이런 길이라면 몸보다 마음이 한발 앞서서 이끌고 갈 것

같았다.


▶ 빼어난 경관이 느긋한 시간을 충만하게 채워주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가슈타인 계곡 아래 세 개의 마을이 들어서 있다. 가장 큰 마을이

바트 가슈타인이었다.

 

가슈타인 앞에 붙은 독일어 ‘바트’는 영어의 ‘배드(Bad)’와 철자가 같아 무심코 ‘배드 가슈타인’

이라고 읽게 되지만, 독일어 ‘바트’는 영어의 ‘배스(Bath:목욕이나 목욕탕)’와 뜻이 같다.

 

지명 뒤에 붙는 ‘가슈타인(Gastein)’은 광물을 의미하니 붙여서 읽으면 ‘광물 목욕탕’, 즉 광천

온천탕을 이르는 말이 된다.

바트 가슈타인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온천이 있는데, 여기서 46도의 온천수가

하루 5만ℓ씩 솟아난다.

 

류머티즘 질환이나 알레르기, 호흡기 질환에 치유효능이 좋다는 라듐이 함유된 온천수다.

 

바트 가슈타인의 명성은 600년 전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가 휴양차 이곳을

들르면서 시작됐다.

 

그 뒤에 온천이 솟는 곳마다 스파와 호텔이 들어섰고, 훗날 스키장이며 트레킹 코스까지

개발돼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휴양의 명소가 된 것이다.

가슈타인 계곡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두 곳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곤돌라를 타고 오른

크레우즈 코겔 산 정상에서의 경관이었고, 다른 하나가 중세 때의 금광을 개조해 만든

라돈 테라피 시설 ‘슈테이너 헤일스톨렌’이었다.

 

스키 곤돌라를 바꿔 타고 해발 2686m의 크레우즈 코겔 산정에 오르자 3000m를 오르

내리는 설산의 능선이 그려낸 장쾌한 풍경이 펼쳐졌다.

 

알프스의 장엄한 벼랑에 아슬아슬 발을 딛고 선 기분은, 마치 무한의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넋을놓고 서 있는 내내 머릿속에는 아무런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광산을 개조해 만든 테라피 시설인 슈테이너 헤일스톨렌은 우리의 찜질방 같은 곳이었는데,

광산의 갱도를 따라 열차를 타고 들어가서 40도가 넘는 자연 지열과 높은 습도 속에서

찜질을 하고 나오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어두운 갱도의 지열과 습도 그리고 라돈 성분이 건강에 좋다고 했지만, 그곳에서 줄곧 떠올

린 것은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 속에서 중세 때 금을 캤을 사람들이었다.

가슈타인 계곡에서 이틀 동안 머물며 녹은 눈이 협곡으로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았고,

진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뾰족하게 깎은 연필 모양의 성당 첨탑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호밀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게으른 속도로 굴러가는 관광용 마차를

타보기도 했다.

 

해는 늦게 떴고 또 일찍 졌지만, 그곳에서는 누구도 바쁘지 않았고,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더딘 시간 속에서 짧은 일정의 여행자가 갖는 조바심이 발동하지 않았던 건, 주위의 빼어난

경관들이 빈 시간을 충만하게 채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바트 가슈타인 계곡의 가장 깊은 쪽에서 스키 곤돌라를 타면 해발 2686m의크레우즈 코겔

정상에 닿는다.여기에 서면 해발 3000m를 오르내리는 알프스 설산의 준봉 사이로 구름이

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숨이 턱 막히는 장관이다.

 

◆ 잘츠감머구트가 그려낸 낭만의 풍경

가슈타인 계곡에서 잘츠부르크로 한 발 더 다가선다. 잘츠부르크 외곽에는 ‘잘츠감머구트’가 있다.

알프스의 빙하가녹아 만들어진 일흔여섯 개의 호수가 있는 곳.

 

잘츠(Salz)는 ‘소금’을, 감머(Kammer)는 ‘창고’를, 그리고 구트(Gut)는 ‘좋다’는 걸 뜻하니 풀이

하면‘좋은 소금 창고’쯤이되는데, 도시 잘츠부르크 외곽의 빼어난 자연 경관을 가진 옛 소금광산

일대를 묶어 이렇게 부른다.


잘츠부르크 인근은 한때 바다였다가 융기한 땅이라 산에서 소금이 난다. 이른바 ‘암염(岩鹽)’이다.

고대와 중세를 거쳐 소금은 보석처럼 귀한 것이었으니, 여기야말로 소금을 처음 캐냈던 철기시대

부터 귀하고 소중한 땅이었으리라.

 

소금이야 흔전만전인 지금 잘츠감머구트 일대를 보석처럼 빛나게 하는 건 호수를 끼고 있는 마을의

낭만적인 경관이다.

 

초록의 호밀밭과 맑은 물빛의 호수, 파스텔 톤의 우아한 고성과 성당의 첨탑이 어우러지는

잘츠감머구트 일대는 너무 이국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잘츠감머구트의 중심은 일찌감치 오스트리아 황제의 여름별장이 들어선 바트 이슐이지만, 그보다

더 이름난 곳이 자그마한 호반 마을 할슈타트다.

 

마을 전체가 마치 경관만을 고려해 세워진 세트장처럼 느껴지는 곳. ‘이발소 그림’ 같은 이상향의

풍경이 할슈타트에 있다.


할슈타트와 맞붙어서 조금도 밀리지 않는 곳이 볼프강 호수 일대와 샤프베르그 산이다. 샤프베르그

산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몬드 호수와 아터 호수를 비롯해 잘츠감머구트 일대의 산군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 서서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유럽을 호령하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왜 이곳 잘츠감머구트

까지 들어와 여름별장을 지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샤프베르그 산이 풍경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보는 즐거움을 준다면, 볼프강 호수를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인 장크트 길겐이나 장크트 볼프강 같은 마을을 소요하는 건 이국적인 그림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보는 경험이다.

 

잠깐 걸음을 멈춰 차가운 호수에 손을 담그거나 들판에 피어난 봄꽃의 향기를 맡아보았던 건,

이곳이 상상이 아니라 실재의 공간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어서였다.

▲잘츠감머구트에서 가장 유명한 호반 마을인 할슈타트. 작은 마을이지만 빼어난 경관으로

늘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잘츠부르크, 소금으로 쌓은 도시

이제 도시 잘츠부르크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압도적인 것은

호엔잘츠부르크성이다. 가파른 절벽 위에 요새로 서 있는 성은 도시 어디에서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잘츠부르크의 상징과도 같은 호엔잘츠부르크성이야말로 도시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소금의 채굴로 도시가 번성하자,중세시대 로마는 잘츠부르크를 식민지로 삼아 주교

를 파견해다스리도록 했다. 대주교의 파견은 소금무역의 전권을갖기 위한 것이었다.

 

잘츠부르크에 부임한 대주교는 종교적 지도자이자, 신성로마제국 제후의 신분을 받아

‘제후 겸 대주교’라는 파격적인지위를 누렸다.

 

황제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대신, 잘츠부르크에서 소금무역을 독점하며 성(聖)과 속(俗)을

아우르는 절대자로 군림했던 것이다.


그 결과 대주교는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 돈으로 곳곳에 교회와 궁전을 세웠다. 지금 잘츠

부르크구도심에 남아있는 교회와 궁전 대부분이 당시 대주교의 부로 쌓아올린 것이었다.

 

호엔잘츠부르크성도 그렇고 성 아래 구도심의 대성당과 성페터 성당, 레지덴츠궁도 대주교

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지어진 것이었고, 강 건너 헬브룬 궁전과 미라벨 궁전과 정원

역시 대주교의 호화로운 저택이었다.


대주교 중에서도 특히 교황청이 가장 타락했을 당시 잘츠부르크를 지배했던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 재임 시 이 도시에가장 호화로운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없는 신분임에도 연인과 열다섯의 아들을 두었던 그는 잘츠부르크를

‘북쪽의 로마’로 만들고자 미라벨 궁전 등 호화로운 건축물을 세웠다.

 

결국 그는 소금무역에 대한 분쟁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잘츠부르크성에 감금돼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만든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은 여태 남아 중세와 바로크 양식의 조화

로운 통일감을 이루며 도시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잘츠부르크 시내의 건축물과 광장이 크고 웅장하며 길이 잘 정돈돼 있는 것에서도 바로

이런 ‘권력의 건축’의 모습이 엿보인다.

이쯤에서 잘츠부르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대 히트 상품인 모차르트 얘기, 자그마치 54억

유로의 경제적 가치를 지녔다는 모차르트의 자취는 이 도시 곳곳에 있다.

 

일단 모차르트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모차르트 쿠겔’이란 초콜릿을 구입하는 것까지가

기본 중의 기본. 모차르트의 체취를 더 느끼고 싶다면 디너 콘서트가 답이 된다.

 

모차르트 광장의 콘서트 홀과 호엔잘츠부르크성 등에서 조금씩 다른 디너 콘서트가 열리지만,

가장 유명한 것이 모차르트 광장의 디너 콘서트 가 있다.

 

여기다가 잘츠부르크에서 올로케이션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됐던 미라벨 궁전

과 헬브룬 궁전을 찾아가는 투어를 함께 보탠다면 중세의 잘츠부르크와 그 도시 속 음표를

찾아가는 여정은 완성된다.

◆가는 길 & 여행 정보

 

잘츠부르크=까지 가는 직항편이 없어 경유편을 이용해야 하는데, 운항편의 편리함으로

보나 항공권 가격으로 보나 터키항공을 가장 추천할 만하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입지의 국가답게 터키는 이스탄불을 ‘유럽의 허브’로 육성하기

위해 국영항공의 취항편 확대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인천∼이스탄불까지는 11시간 남짓. 이스탄불∼잘츠부르크는 2시간 30분쯤 걸린다.

바트 가슈타인까지는 잘츠부르크 역에서 열차편으로 1시간쯤 소요된다. 바트 가슈타인에

서는 다양한 크기의 관광 택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잘츠부르크 시내에서는 관광지, 박물관 입장권과 대중교통은 물론 케이블카, 푸니쿨라 등

교통수단 요금 등을 모두 해결 할 수 있는 ‘잘츠부르크 카드’가 유용하다. 관광지나 박물관

등은 각각기간 내 1번만 입장이 허용된다.

 

 

시베니크(Sibenik)ㅡ시베니크 대성당(Šibenik Cathedral)

▲시베니크 대성당

 

성 야고보 대성당(크로아티아어: Katedrala sv. 야코바또는 간단히 시베니크 대성당은 크로아티아

시베니크에 위치한 세 개의 아프스와 내부 높이 32m의 돔을 가진 삼중 신랑 가톨릭 대성당입니다

이곳은 시베니크 교구의 주교좌입니다

 

 이 교회는 성 야고보 대제에게 헌정되었습니다. 1431년부터 1536년 사이에 전부 석재로 지어졌으며,

 여러 저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했으며특히 유라이 달마티낙과 니콜라 피렌티낙이 혁신적인 건축

기법으로 독특한 외관을 형성했습니다

 

 이 대성당은 기념비적인 석조 돔화려하게 장식된 출입구그리고 당시 달마티아 출신 인물들의

초상화로 여겨지는 아프스를 둘러싼 인형 머리 조각 프리즈로 유명합니다

 

이 건물은 전국에서 르네상스 건축물로 가장 중요한 기념물이며아드리아 해안에서 고 딕 및

르네상스 건축의 가장 뛰어난 예 중 하나입니다

 

탁월한 문화적역사적예술적 중요성 덕분세인트 제임스 대성당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크로아티아의 대부분 주요 해안 도시들과 달리시베니크는 고대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거의

천 년 후에 등장했습니다. 13세기는 도시 역사에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시베니크는 빌라(정착지)에서 시비타스(civitas)로 승격하기 위해 싸웠는데이는

인접 도시들이 이미 누리고 있던 정치적 독립과 자유를 완전히 인정받는 도시를 의미합니다

 

대성당으로 사용되던 기존 성 야고보 교회는 너무 작아져 성장하는 공동체의 필요에 부적

해졌습니다보그단 풀시치 주교의 주도로, 1402년 4월 10일 지역 시민 회의가 "더 넓고

더 높고더 웅장한새 대성당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성당 건립은 시베니크가 수세기 동안 트로기르 교구에서 분리하여 자체 대성당 교회를

통해 더 큰 시민적·종교적 독립을 이루려던 야망의 상징적 정점을 의미했습니다. 

 

 이 교회는 도시의 주요 중세 광장 남쪽옛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야고보 교회 자리에 세워

졌습니다.

 

 첫 10년 동안 베네치아 고딕 건축가들은 지역 석공인 안드리야 부치치와 부디샤 스타치치와

협력했다그 시기에 북쪽과 남쪽 벽정면의 하부 고딕 부분그리고 두 교회 입구가 완성

되었습니다

▲프란츠 라포레스트약 1880년

▲야콥 알트, "세베니코 돔 교회 광장의 그란데 광장", 1841년

▲시베니크 대성당

▲현재의 시베니크 대성당의 모습은 주로 유라이 달마티낙의 비전 결과입니다그는 재설계된

설계를 통해 당시 유럽의 대성당과 기독교 교회 중에서도 독특한 대성당을 만드는 일련의

혁신적인 건축적 해결책을 도입했다.

▲시베니크 대성당은 3개의 통로가 있는 대성당으로높이는 38× 14미터이며돔 꼭대기의 최대

높이는 38미터입니다이 교회는 전적으로 석재로 지어졌으며대부분의 다른 석조 교회들은

전통적으로 모르타르를 사용해 나무 지붕에 기와를 덮거나 때로는 납판으로 지었습니다

 

대성당을 위해 유라이는 브라치 섬의 석회암과 함께 섬 북부 베셀예 지역에서 채석된 다른

크로아티아섬의 석회암을 사용했습니다.

▲측면 모습

▲대성당 돔과 조각상

▲성 미카엘   돔 위 니콜로 디 조반니 피오렌티노의 조각

▲대성당 돔 위의 성 야고보 상과 지붕 등불

▲르네상스 시대의 푸티 두 개

▲후진을 둘러싼 72개의 인간 머리 

▲시베니크 대성당은 상징학 혁신으로도 중요한데특히 세 개의 아프스의 처마를 따라 배치된 

74개의 조각 머리 연속이 유명합니다새로운 인본주의 철학의 렌즈를 통해 인간성을 바라본

유라이 달마티낙은 전통적인 교회 상징보다 인간을 우선시하며순수한 종교적 상징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했다

 

이 머리 연속은 유럽에서 신성한 건물에 세속 조각의 공공 기념물로 전시된 가장 크고 고품질의

초상화 갤러리로초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일종의 승리를 나타냅니다

 

흥미롭게도 머리에는 계급이름직업의 문장이 없어기부자귀족순교자성인평범한 행인을

묘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당시 달마티아의 다양한 인물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외부의 머리 장식에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대성당 건축가 유라이 달마티낙의 조각상이 정문 앞에 있습니다.

 

▲보니노 다 밀라노가 예수와 열두 사도를 장식한 입구

▲정문 열두제자들

 

▲라이온 게이트 위에 아담과 이브 

▲라이온 게이트 위의 아담 동상

▲라이온 게이트 위의 이브 동상 

▲ 라이온 게이트

▲성당 내부

▲제 대

▲성 모자

▲성당 내부 모습

토마르 그리스도 수도원(Convent of Christ in Tomar) & 템플기사단

▲토마르 수도원

 

토마르 그리스도 수도원 또는 그리스도 수도원 이라고도 불리며포르투갈 토마르에 위치한 

옛 가톨릭 수도원입니다

 

원래 12세기 템플 기사단의 요새였으나, 14세기에 기사단이 해체되면서 포르투갈 지부는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전환되어 15세기 포르투갈의 해양 발견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토마르의 성과 그리스도 수도원은 역사적·문화적 기념물로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템풀 기사단

 

이 성은 1118년에  템플 기사단에 의해 세워졌습니다건축은 12세기 말까지 계속되었으며성의

한 모서리에 예배당이 건설되었고대장관 D. Gualdim Pais가 1160년경 완성했습니다.

 

1190년경 칼리프 아부 유수프 알-만수르의 군대에 포위되어 저항했으며그는 남쪽의 요새를 성공

으로 점령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성 입구 근처에 명판이 세워졌다.)

 

13세기 2분기 동안 토마르는 템플 기사단의 통제 하에 들어가 그 본거지가 되었습니다이 성은

템플 기사단이 젊은 기독교 왕국의 국경을 무어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구축한 방어 체계의

필수적인 일부가 되었습니다

 

당시 무어인들은 이 지역을 타구스 강 대략 수준까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템플 기사단이

해체된 후 1319년 3월 14일 포르투갈의 데니스 왕의 요청에 따라 교황 요한 22세는 그리스도

기사단을 설립했다.

 

 이전 템플 기사단의 본거지는 1357년에 이 새로운 기사단의 본거지로 전환되었습니다토마르

성의 유명한 원형 교회(로툰다)도 12세기 후반에 지어졌습니다

 

이 교회는 유럽 전역의 다른 템플기사단 교회들처럼십자군이 솔로몬 성전의 잔재로 믿었던

예루살렘의 바위 돔을 본떠 지어졌습니다예루살렘 성묘교회도 모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산타렝현 위치도.

▲포르투갈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토마르의 수도원과 성 단지의 전경 

 

토마르 성은 1160년경 전략적 위치에 지어졌으며언덕 위와 나방 강 근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외곽에는 방어벽과 내부에 성채가 있는 성채(알카초바)가 있습니다

 

주거 및 방어 기능을 겸하는 중앙 탑인 킵은 템플 기사단에 의해 포르투갈에 도입되었으며토마르

있는 탑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탑 중 하나입니다.

 

 템플 기사단이 포르투갈에 도입한 또 다른 신기한 요소(노르망디브르타뉴 등지에서의 수십 년간

경험을 바탕으로 배운 것)는 외벽에 있는 둥근 탑으로이는 사각형 탑보다 공격에 더 강합니다

마을이 세워졌을 때대부분의 주민들은 성의 외벽 안에 위치한 주거지에 거주했습니다.

▲토마르 수도원

▲토마르 수도원

▲토마르 성

▲토마르 성

▲그리스도 수도원 교회의 평면도.

 

템플 기사단 원형 교회(12세기 후반)는 빨간색으로 표시되며, 마누엘린 양식의 본당(16세기 초)은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템플 기사단이 건축한 토마르 수도원의 주 교회

▲원형교회

▲토마르 수도원

▲1510년에서 1513년 사이 디오구 데 아루다가 제작한 챕터하우스(집회장소) 창문

 

본당 서쪽 정면에 있는 성 바르바라 회랑에서 보이는 거대한 창문으로전형적인 마누엘 양식

대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기사단과 마누엘 1세의 상징그리고 밧줄산호식물 무늬의 정교한 장식이 있습니다

창문 하단의 인물은 아마도 디자이너 디오고 데 아루다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수도원의 창문은 마누엘 양식 장식의 걸작 중 하나이다위에는 작은 원형 창문과 난간이

있습니다.

 

 정면은 두 줄로 묶인 매듭 줄로 나뉘어 있습니다둥근 각형 버트레스는 거대한 가터로 장식

되어 있는데이는 영국 왕 헨리 7세가 가터 기사단으로 마누엘 1세를 수여한 것을

암시합니다

 

교회 입구는 측면 출입구를 통해 이루어지며이 문도 풍부한 마누엘 양식과 성모 아기와

구약예언자들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이 문은 약 1530년에 조앙 데 카스티류

설계했습니다.

▲르네상스 요한 3세의 회랑

▲고딕 양식 회랑

▲묘지 회랑

▲원형 교회 내부▼

▲성물실

 

화려한 고대 로마 식민도시 명소인 에페수스 유적지.

▲매표소를 통과하여 첫번째로 보이는 신전터.

 

터키 서부의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이즈미르주의 카이스트로스강 어귀에 있던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 유적으로, 기독교 성서에서는 에페소 또는 에베소로 언급된다.

 

에페수스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로 건설되어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요충지로

번성하였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일시 쇠퇴하였다가 기원전 4세기에 알렉

산드로스에게 정복된 뒤 새로운 에페수스가 건설되면서 헬레니즘 도시로 부흥하였다.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아시아 속주의 수도로서 지중해 동부 교역의 중심

지가 되어 전성기를누렸으며,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로서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야술루크 언덕의 대표적 유적은 아르테미스 이다. 원래의 신전은 기원전 7세기에 파괴되었고,

기원전 550년경에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재건한 두 번째 신전도 방화로 파괴되었으며,

기원전3세기 중엽에 세 번째 신전이 세워졌다.

 

재건축을 거치면서 신전은 길이 137m, 너비 69m에 높이 18m의 기둥 127개를 세운 웅장한

규모로 확장되었다.

 

신전의 규모와 화려한 장식, 고품질의 건축 재료, 불안정하고 습지로 이루어진 하층토 문제를

해결한당시 건축가들의 탁월한 예술적 자질과 기술 등의 요인으로 인하여 이 건축물은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이밖에 비잔틴-셀주크시대의 성채로 둘러싸인 중세의 주거 유적, 비잔틴시대에 가설된 송수로

유적, 사도 요한을 기려 6세기에 세운 성 요한 바실리카(St. John Basilica), 1375년에 완성

된 이사 베이 모스크(Isa Bey Mosque), 여러 개의 하맘(hamam;공중 목욕탕)과

무덤 유적 등이 남아 있다.

▲22,500명이 수용 가능한 원형극장 /이곳에서 사도바울과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으며
후일 바울이 에베소인들(성도들)에게 씌여진 편지가 에베소서로 남게됨.

▲로마교황이 다녀간것을 기념해서 세운 교황의 신전.

▲본래 에페소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겼으며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신전보다 약 100여미터

위에서 발굴되어 발굴된 위치에 전시되어 있음.

▲醫神의 지팡이 카드케우스

▲여러 신전을 지나고나서 도서관이 있는 도시의 중앙으로 내려가는길.

▲에페소 메인 거리 멀리 셀수스 도서관 건물 기둥이 보인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 전성기 시절의 5현제 -네르바-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티우스- 중의 하나로 훌륭한 통치자였다한다

▲아치앞중앙엔 운명의 여신 테티스 부조가 있고

▲창녀촌 입구. 저 발 싸이즈 보다 작은 사람 출입금지! 즉 미성년자 !

▲창녀촌이 있던 거리

▲로마황제가 다녀간 것을 기념해서 세운 분수대라고 합니다.

▲목욕탕 터 /고온탕,온탕,냉탕 등으로 지어졌다고 함.

▲목욕탕의 입구?

▲수세식 공중화장실.

(대리석 구멍에 볼일을 보면 위 목욕탕 폐수가 그 아래로 흘러서 자동적으로 수세식?으로 처리되는 구조)

▲이 도로 바닥을 보라 모자이크 타일로 도로를 깔았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화려했을까

▲에페소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컷(외국인에게 부탁)

▲터키의 초등학생들이 수학여행와서 사진을 촬영중 입니다.

▲에페소의 당시 인구가 5~7만으로 추정되는데 이곳 원형극장은 25,000명 수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에페소에서 항구로 통하는 길(본래 이곳에서 1키로 털어진 곳이 항구 이었으나 그동안 지진등

으로구조가 변해서 현재는 약6키로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음. 지진과 함께항구가 멀어진 것이

도시멸망의 원인 이라고 합니다.

▲초기(박해를 받던시기)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암호표시.??

혹은 로마병사들의 놀이 표시??

▲에페소 발굴 도시에서 약 1키로 떨어진 곳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성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