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도시 세종시 여행ㅡ밤이 되면 별자리처럼 반짝인다…

▲독창적인 디자인의 금강보행교. 세종시의 이른바 ‘랜드마크’다. 둥근 고리형 도시구조를 형상화한

ㅇ자 모양이라 ‘이응다리’로 더 많이 불린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1446년을 기념해 다리

둘레를 1446m로 정했다. 다리는 복층으로 상부층은 보행전용, 하부층은 자전거 전용이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따져보자. 풍경도 음식도 쇼핑도 이유가 되겠지만, 결국은 ‘다른 도시’

를 보고 싶어서다.

 

날마다 오가는 지루하고 익숙한 도시를 벗어나 낯선 도시의 거리를 걷는 것. 어떤 나라에서는 우리

가 이미 지나온 어제를 보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본다. 여행의 흥분은 대개

그 시간의 낙차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비행기를 타지 않고 ‘내일’을 보러 가는 여행은 어떨까. 세종으로 간다. 정부청사와 아파트

뿐인 공무원의 도시쯤으로 여겼다면, 한번 가보시라. 생각이 달라진다.

 

도시를 짓는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해왔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끝도 없이 늘어섰던 노원·

상계, 그 뒤에 들어선 일산·분당의 표정이 다르다.

 

그리고 세종에 이르러서는 경이로울 지경이다. 녹지는 넉넉하고, 공연장과 도서관, 미술관이 동네

마다 들어섰다. 동선은 매끄럽고 건축은 저마다 미감을 뽐낸다.

 

행복도시 건설에 2030년까지 들어가는 돈이 22조5000억 원. 목표 인구 50만 명으로 나누면 한 사람

앞에 4500만 원꼴이다. 민간투자 빼고 공적 투자금액만 그렇다. 공원만 270곳을 계획했고, 벌써

204곳을 지었다.

 

한 도시에다 돈을 이렇게 써도 되나 걱정될 만큼 도시 생활의 여가를 위한 인프라를 촘촘하게 깔았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어지는 도시다.

 

 ◆49층에서 내려다본 미래

 

근사한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가 어디일까. 답은 싱겁다. 그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

이다. 세종 나성동에 그런 자리가 셋이나 있다. 49층의 카페 ‘플레져’, 45층의 ‘카페45’, 그리고 해가

지면 문을 여는 라운지 바 ‘라운지46’이다.

 

플레져의 창가에 서면 세종이 통째로 들어온다. 호수공원의 물빛과 중앙공원의 너른 초지가 펼쳐지고,

그 둘레로 아파트 단지들이 둥글게 도시를 감싼다. 도시가 설계도처럼 선명하다. 자로 잰 듯 반듯

한데도딱딱하지 않다. 초록이 넉넉해서다.

 

압권은 밤이다. 라운지46에서 본 야경은 태국 방콕의 이름난 루프톱 바에 견줘도 손색이 없다. 불 켜진

아파트 창들이 별자리처럼 흩어지고, 금강 위 둥근 다리에 빛이 돈다.

 

칵테일 한 잔을 앞에 두고 있으면 여기가 충청의 신도시라는 사실을 잠깐 잊게 된다. 그러니까 세종은,

미래 도시로 떠나는 ‘유사 해외여행’의 목적지로 손색이 없다.

 

아, 그런데 이 얘기는 해야겠다. 사람들로 붐비는 49층 카페가 입주한 주상복합 건물의 저층 상가는

처참할 정도로 비어 있었다.

 

불 꺼진 유리창마다 ‘임대’ 안내문이 붙었고, 텅 빈 복도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꼭대기 층은 줄을

서는데 1층은 불이 꺼진 건물. 그 풍경이 어쩐지 기괴해 보였다. 미래 도시에도 그늘은 있다.

▲전의면의 시멘트 장승. 여러 번 색이 칠해지는 동안 여장승의 뜬 눈이 감겼고 족두리가 없어졌다.

 

◆도시락 한 개가 남긴 기록

 

미래는 넘치는데, 이 도시에 모자란 게 있다. 없는 건 ‘어제’다. 2012년 출범했으니 올해 겨우 열네 살.

오래된 골목도, 수백 년 묵은 명승도 없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역사가 모자라니 오히려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손톱만 한 사연에도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게 뜻밖에 재미있다. 결핍이 오히려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런 재미를 보여주는 곳이 연동면의 ‘연동문화발전소’다. 1984년 지어져 35년 동안 면사무소로 쓰이다

2019년에 면사무소가 새 청사로 옮겨가면서 빈 건물이다.

 

지금은 한쪽은 젊은 화가들이 머무는 레지던시 겸 미술관이고, 다른 한쪽에는 마을기록문화관 ‘다담

(多談)’이 있다. 호적과 토지대장을 떼어주던 면사무소에, 이제는 주민들이 기억을 적은 기록이 모인다.

 

여기서 마을기록가가 찾아낸 흥미진진한 사건 하나를 만났다. 1970년 10월, 연기군 남면의 두 국민학교

6학년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다.

 

여관 근처 식당에서 산 도시락을 창경원에서 점심으로 먹었는데, 오후 용산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아이

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집단 식중독이었다. 아이들을 보살핀 건 경찰이었다. 용산경찰서장이

직접 호송차를 지휘해 아이들을 병원으로 실어 날랐다.

 

고향에서는 난리가 났다. 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다행히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 교장은 용산경찰서에 전보

를 쳤다. “넘치는 친절과 호의로 전원 무사 도착.” 학교는 용산경찰서와 자매결연을 맺고, 용산서는 앞으로

이 학교 아이들의 서울 수학여행을 안내하기로 했다.

 

마을기록관에 전시된 흑백사진이 걸작이다. 사건 뒤 학교를 찾은 서장의 목에 꽃목걸이가 겹겹이 걸렸다.

서장은 쑥스러운 듯 모자챙을 매만지며 웃고, 한복 차림의 할머니들이 허리를 굽혀 반기고 있다. 길가에

줄지어 선 아이들은 손뼉을 친다.

 

◆왕처럼 다섯 끼를 먹자고?

 

도시락 얘기가 나온 김에 먹는 얘기를 좀 해보자. 요즘 세종이 앞세우는 여행 테마가 ‘미식’이다. 세종시

문화관광재단은 ‘세종을 찾은 외지인이 내비게이션에 찍은 목적지의 60%가 음식점이었다’는 자료를

근거로 든다.

 

‘세종사랑맛집’을 100곳까지 늘리고 있고, 조선 왕실이 하루 다섯 번 상을 올렸다는 데서 이름을 딴 1박

2일짜리 여행상품 ‘세종오식(五食)’도 내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세종의 음식은 그저 그랬다. ‘밥 먹으러 세종에 가자’고 권할 정도까진 아니었다. 내비

게이션얘기도 곱씹어볼 만하다. 식당은 누구나 주소를 찍고 가는 곳이다. 출장 온 공무원도 하루 세끼

는 먹는다. 사람들은 밥 먹으러 세종에 가는 게 아니라, 세종에 간 김에 밥을 먹는다.

 

그래도 재미있는 한 끼가 있긴 했다. 세종오식의 마지막 프로그램. 조치원 시장에서 참가자들이 제각

각 장을 봐 와서 한 상에 모아놓고 나눠 먹었다. 음식이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흥정하고 덤을 얻고, 서로 사 온 걸 나눠 먹는 그 방식이 즐거웠다.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을 먹었느냐’

보다 ‘어떻게 먹었느냐’였다.

 

왕의 밥상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정작 세종은 유난한 고기 마니아였다. 아버지 태종이 “주상은

어려서부터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였다”고 걱정했을 정도다. 몸 쓰는 걸 즐기지 않았고, 밤늦

도록 책을 붙들었다.

 

그러니 탈이 날 수밖에. 세종은 오늘날 당뇨로 짐작되는 소갈증에 시달렸고, 눈병도 심했다. “안질을

얻은 지 10년”이 됐고, 어두운 곳에서는 지팡이 없이 걷기 어렵다고 스스로 털어놓기도 했다. 고기를

너무 좋아했던 임금이 결국 찾은 건 ‘물’이었다.

▲국립세종도서관. 경쾌한 곡선의 미감이 인상적이다. 유럽기반의 디자인 웹진 ‘디자인 붐’이 세계

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톱10에 선정하기도 했다.

 

◆임금은 오지 않았다

 

세종시의 북쪽 끝, 천안과 맞닿은 전의면 관정리. 공장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느닷없이 잘 깎인

잔디밭이 나온다. 한가운데 둥근 초록 펜스가 섰고, 그 안에 몇 그루 나무가 섬처럼 작은 숲을 이뤘다.

 

파란 조끼를 입은 마을 노인들이 펜스 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층층이 쌓은 돌담 아래 깊숙한 곳에서 물이

솟는다. 노인들은 ‘이 물은 못 먹는다’고 했지만, 돌 위에는 분홍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가 놓여 있다.

 

이 물이 ‘왕의 물’, 전의초수(椒水)다. 전의면에서 나는 초수란 뜻인데, 초수는 톡 쏘는 맛이 후추(椒) 같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세종 26년, 그러니까 1444년 정월에 청주와 목천, 전의에 후추 맛 나는 물이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세종

은반색했다. 그런데 무턱대고 매달리진 않았다.

 

초수로 효험을 봤다는 사람도 있고 한 달을 마셔도소용없었다는 사람도 있으니, 누가 낫고 누가 안 나았는

지 자세히 조사하라고 명했다. 병든 몸으로도 ‘치유 사례’부터 모으는 임금. 과연 세종이다.

 

그해 7월, 조정은 이 물을 서울로 나르는 규칙을 만들었다. 날마다 해 질 녘 옹기에 물을 담아 ‘무령설기(毋令

泄氣)’, 기운이 새지 않게 단단히 봉하고 뜬 시각을 적어 역마(驛馬)에 실었다.

 

물은 하룻밤 사이에 서울에 닿아야 했다. 늦으면 역을 맡은 관리가 벌을 받았다. 해 질 녘에 뜬 물 한 동이가 밤

새 역참을 갈아타며 북으로 달리는 모습을 떠올려 보시라. 조선판 ‘새벽 배송’이다.

 

이듬해 충청감사 김조가 ‘차라리 직접 오시라’고 세종에 청했다. 이유가 그럴듯하다. ‘물은 근원을 떠나면 본성

을 잃는다(水離源則失性)’는 것. 밤새 달려온 물은 이미 그 물이 아니라는 얘기. 세종의 답은 짧았다.

“다시 말하지 말라.” 그 뒤로 실록에 전의초수는 나오지 않는다. 임금은 끝내 전의에 오지 않았다.

 

펜스 앞 안내판은 1년 넘게 이 물을 받은 임금의 “병이 다 나았다고 한다”고 적었다. 실록은 끝내 나았다는 말

을 남기지 않았다. 효험을 줄줄이 적은 안내판 뒤에는 아무도 마실 수 없는 물이 있다.

 

마시지 말라는 물을 순전히 궁금해서 맛을 봤다. 톡 쏘는 맛은 거의 없었다. 580여 년 전에는 기운이 샐까 봉해

서 달렸던 물이, 근원을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지금 오히려 기운이 빠져 있었다.

▲수학여행 중 집단 식중독에 걸린 학생들을 보살핀 보답으로 초청받아 학교를 방문한 서울 용산경찰서장.

 

◆에비앙을 꿈꾼 100m 관정

 

약수터에서 몇 걸음 떨어진 뒤쪽에 초록 천막을 두른 가건물이 있다. 간판에는 ‘전의 탄산수’라 적었다.

약수를 파는 곳이다. 요즘 세상에 약수를 돈 주고 사 먹는 손님이 있을 턱이 있나. 가게 안에 김주원(84)

·김점임(73) 부부가 무료하게 앉아 있다.

 

40여 년 전 얘기부터 해야겠다. 서울에서 건설업으로 제법 돈을 번 김 씨는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을 끝

내 돌려받지 못했다. 빚진 이는 돈 대신 이 땅을 내놓으며 말했단다. “머잖아 물을 돈 주고 사 먹는

시대가 온다.

 

여기서 물만 나오면 떼부자가 된다.” 프랑스 에비앙 얘기까지 꺼냈다. 그때만 해도 생수를 국내에서 마음

대로 팔 수 없던 시절. 생수 판매가 합법이 된 건 1990년대 중반이었으니 빚진 이는 아직 열리지도 않은

시장에 베팅했던 셈이다.

 

김 씨는 그 말을 믿고 땅을 팠다. 100m 깊이까지 땅을 파서 세 번 만에 물을 얻었다고 했다. 예언은 반만

맞았다. 물을 사 먹는 시대는 정말 왔다. 다만 떼부자는 되지 못했다.

 

약수는 누구나 떠 가게 두고 ‘관정약수식당’을 차려 칼국수와 닭백숙을 팔았다. 서울의 손꼽히는 냉면집이

‘육수용 물을 대 달라’고 찾아온 적도 있었지만, 허가 절차가 까다로워 포기했다. 누구나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냉면집 상호를 김 씨가 말했지만, 무산된 일이니 그건 쓰지 않기로 한다.

 

손님이 줄어 식당은 문을 닫았다. 지금은 물만 판다. 큰 말통이 3000원, 중간 것은 2000원, 작은 생수병은

300원이다.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탄산은 거의 없고 철분의 쇠 맛도 없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혀끝에 단맛이 느껴진다. 물이 좋으면 ‘물맛이 달다’고 하지만, 그게 ‘진짜로 달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이 물은 달았다.

▲폐쇄된 왕의 물 ‘전의초수’. 물은 이제 먹을 수 없다지만,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고 바가지도 놓여 있다.

 

다실에서 우동을 파는 이유

 

세종의 동쪽 끝, 청주와 맞닿은 부강면으로 간다. 부강면 소재지 주택가에 ‘가네코후미코 다실’이 있다.

다실(茶室)이라지만 우동을 판다. 찾아간 날, 가게에는 일본에서 온 여행자들이 앉아 있었다.

 

중년 여성도 있었고, 머리를 물들이고 팔에 문신을 새긴 젊은 여성도 있었다. 가네코 후미코의 자취를

찾아 부강까지 오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고 했다. 나이도 차림새도 제각각인 이들을 이 작은 면 소재지

까지 불러들이는, 가네코 후미코는 누구일까.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태어날 때부터 호적

없는‘무적자(無籍者)’였다. 학교에 다녀도 학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국가도 가족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1912년, 아홉 살 후미코는 조선에 사는 고모 집에 양녀로 왔다. 고모 집이 여기 부강에 있었다. 당시 부강은

금강 뱃길이 열차와 이어져 하루 수천 명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철길 위쪽 고지대에는 일본인 부자들이,

아래쪽에는 조선인들이 살았다. 고모 집은 윗마을에 있었다.

 

그 집에서 후미코는 하녀나 다름없었다. 할머니의 폭언과 매질을 견디며 집안일을 떠맡았다. 헌병 파견소

마당에서는 옷이 벗겨진 조선인이 채찍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서 쫓겨나면 아이는 아랫마을 조선인

들의공동 우물가로 내려갔다.

 

거기서 한 조선인 아낙이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했다. 일본인 눈에 조선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였지만,

윗마을에서 쫓겨난 이 아이에게는 아랫마을이 보였다.

 

1919년 봄, 열여섯 살 후미코는 부강에서 만세 소리를 들었다. 훗날 법정에서 그는 그때 “남의 일이라

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감격”이 가슴에 솟았다고 했다. 그해 일본으로 돌아간 후미코는 도쿄에서

신문팔이와 식모살이로 고학하다가, 조선 청년 박열의 시를 읽고 단숨에 매료됐다.

 

둘은 함께 아나키스트 단체를 꾸렸고,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일왕 암살을 꾀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선고받았다. 그리고 1926년 7월, 스물셋의 나이로 옥중에서 숨졌다.

 

2018년 한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일본인으로는 두 번째다. 일본에도 조선에도

속하지 못했고, 국가라는 틀 자체를 거부했던 사람. 올해가 후미코가 세상을 뜬 지 꼭 100년 되는 해다.

▲가네코후미코 다실’ 벽에 걸어놓은 후미코의 생전 사진. 우동을 먹으러 온 젊은이들이 여기서 후미코를

알고 간다.

 

닷새 동안 넘긴 토지대장

 

우동집에서 이규상(68) 가네코후미코 선양사업회장을 만났다. 그가 후미코를 알게 된 건 40대 초반 공무원

시절, 우연히 손에 든 책 한 권 때문이었다. “내 고향 얘기가 나오니까 관심이 갔는데,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인물이었어요.” 불쌍해서가 아니라 매력적이어서…. 그 말이 오래 귀에 남았다.

 

2008년 부강면장(당시 청원군 부용면장)으로 부임한 그는 곧바로 후미코 학술대회를 열었다. “우리에게

이런 공간이 있고, 이런 인물이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그는 후미코의 자취를 찾았다. 군청 지적과에서 1920년대 토지대장을 뒤진 지 닷새 만에 후미코가 얹혀

살던 고모부 집 주소를 찾아냈다. 그걸 지금의 지도와 대조해 집터를 알 수 있었다. 부강역 뒤쪽 150m쯤.

정원 딸린 집의 대문과 언저리가 후미코가 살던 자리다. 팻말 하나 없다.

 

이 회장은 기념관을 짓고 싶었다고 했다. “기념관이나 뭐 그런 걸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아들이 만든 공간

에 자리를 잡았어요

 

 아들 형제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땅에 5층짜리 연립주택을 올렸고, 1층에다 협동조합 이름으로가게

를 내고 아버지가 20년 넘게 붙들고 있는 후미코를 기억하는 다실을 만든 것이다. 다실에서는 일본에서

6개월 동안 우동을 배워 온 작은아들 혁진(34) 씨가 우동을 팔고 있다.

 

아들의 우동은 서울까지 소문이 났다. 젊은이들은 우동을 먹으러 왔다가 벽에 걸린 사진을 보고 후미코라

는 이름을 처음 알고 간다. 후미코를 아는 이들은, 부강에 이런 곳이라도 있어 고맙다며 일부러 찾아온다.

 

의무감이 앞선 기념관은 관심이 식으면 잊히고, 여행상품은 지원금이 끊기면 없어진다. 이 우동집은 제힘

으로 너끈히 굴러가며 한 사람의 기억을 떠받친다. 한 사람의 삶을 기념하는 이른바 ‘지속 가능한

방식’이다.

 

세종에서 만난 건 이런 것들이었다. 창경원에서 먹은 수학여행 도시락, 펜스 안 돌 위에 놓인 분홍 바가지,

팻말 하나 없는 대문. 누가 붙들지 않았다면 진작 흩어졌을 것들이다.

 

그걸 붙든 건 옛 신문을 뒤져 수학여행 사연을 찾아낸 마을기록가, 왕의 물 곁에서 늙어가는 노부부, 닷새

동안 토지대장을 넘긴 면장, 그리고 아버지가 20년 넘게 붙든 이름을 간판에 내건 아들이다.

 

미래는 넘치는데 어제가 모자란 도시. 도시의 내일을 보러 간 세종에서 정작 오래 발길을 붙든 건 어제였다.

 ◆신식 장승’의 정체

 

세종 전의면 읍내리 북암천 변의 전의성당 옆에는 시멘트로 만든 ‘신식’ 장승이 있다. 알록달록 색까지

칠해 무속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1970년 무렵 아들 낳기를 원하던 부부가 시멘트 10포대를 사서 기술자에게 부탁해 만들어 본디 목장승

이 있던 자리에 세웠다.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고 방치된 장승을, 이번에는 부동산업을 하던 이가 큰돈을 들여 채색했단다.

그것도 색이 다 바랜 뒤에 서울 대학생의 마을 담벼락 그리기 자원봉사 과정에서 새로 그렸다.

“광화문 가을 하늘 수놓은 공연”…120m 상공 외줄 묘기에 ‘탄성’

▲1일 에스토니아 출신 레드불 슬랙라인 선수 얀 루스가 서울 광화문 사거리 약 120m 상공에서

‘레드불 서울 줄타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슬랙라인은 두 지점 사이를 이어 팽팽하게 설치한 폭 2.5~5cm 안팎의 줄 위에서 균형을 잡아

걷거나 점프, 회전 등의 기술을 선보이는 스포츠로, 이날 얀 루스는 코리아나호텔을 출발해

동아미디어센터를 반환점으로 돌아오는 편도 160m 구간의 고공 왕복 횡단에 도전했다.

 

“와, 진짜 높네요. 3주간 한국을 여행 중인데 이 외줄타기 퍼포먼스가 하이라이트입니다.”

라트비아에서 온 여행객 리에네 자쿨레 씨(30)는 1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앞 120m

상공에서 펼쳐진 슬랙라인 공연을 보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슬랙라인은 두 지점 사이를 이어 팽팽하게 설치한 폭 2.5~5cm의 줄 위에서 균형을 잡아 걷거나

점프, 회전 등의 기술을 선보이는 스포츠다.

 

자쿨레 씨는 “한국에 사는 호주 친구에게 공연 소식을 듣고 일부러 시간을 맞춰 왔다”며 “이렇게

높은곳에서 펼쳐진 공연은 평생 처음 봤다”고 말했다.


 ◆40층 높이에 160m 외줄 걸어 왕복

▲얀 루스 선수가 1일 광화문 상공에서 고공 줄타기(슬랙라인)를 하고 있다. 스포츠 음료 업체 레드불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사람이 아파트 40층 높이(120m)에 설치된 외줄 위를 걸으며 묘기를 부린다.

한국 도심에서 슬랙라인 행사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광화문에서는 서울시가 후원하고 레드불 코리아가 주최한 슬랙라인 공연이 오후 1시와 4시 두 차례

펼쳐졌다.

 

에스토니아 출신으로 슬랙라인 세계챔피언을 3차례 차지한 얀 루스 선수(34)가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와

코리아나호텔 사이 상공 120m에 설치된 줄을 걸어 왕복했다. 아파트 약 40층 높이로, 국내에서 고공

슬랙라인 공연이 펼쳐진 것은 처음이다.

루스는 첫 편도 160m 구간을 출발하기 전 줄을 손으로 흔들어 점검하고 몸에 안전장치를 연결했다. 긴장

한 표정으로 양팔을 벌려 균형을 잡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공연을 시작하자 긴장한 모습이 점차 사라진 그는 줄 위에 눕거나, 동작을 바꿔 가랑이 사이에 줄을 끼우기

도 했다.

 

약 15분 만에 동아미디어센터에 도착해 손을 흔들자 청계광장과 세종대로 사거리 일대를 메운 관중은 박수

갈채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반환점에서 다시 160m 구간을 되돌아가는 길에서 더 속도를 낸 루스는외줄 위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발가락을 줄에 건 뒤 마치 박취처럼 몸을 거꾸로 늘어트리는 등 한층 과감한 동작을 선보여 관중의 탄성

을 자아냈다. 공연은 27분 동안 진행됐다.

 

 ◆“처음 보는 광경” 광화문의 시선이 한곳에

▲1일 서울 광화문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에스토니아 출신 슬랙라인 선수 얀 루스가 코리아나호텔과

동아미디어센터 사이에 설치된 슬랙라인을 건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오후 1시와 4시 세종대로 사거리 일대를 메운 시민들의 시선은 일제히 하늘을 향했다. 120m 상공의

루스는 지상에서 올려다보면 작게 보였지만 동아미디어센터에 마련된 국내 최대 규모의 미디어 사이니지

‘룩스(LUUX)’에는 그의 표정과 동작이 실시간으로 송출됐다.

 

루스가 줄 위에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시민들은 “어떻게 해” “바람이 부는데 괜찮나”라며 탄성을 지르거나

박수를 보냈다. 아찔한 공연을 펼치는 선수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기도 했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행사가 펼쳐진 오후 1시와 4시에는 광화문광장 인근에만 1만~1만

2000여영의 인파가 몰렸다.

서울시청 인근에서 슬랙라인 공연을 본 강동완 씨(59)는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너무 신기

한 공연을 하길래 사진은 물론 동영상까지 찍었다”며 “이런 공연은 처음이라 너무 신선했고 이런 행사가

또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양하영 씨(30)는 “엄청 높은 상공에서 공연이 펼쳐진다는 예고 기사를 보고선 ‘위험하지 않은가’

라며 걱정했는데 안전장치를 한 것을 보니 안심됐다”며 “입장료 없이 광화문 곳곳에서 자유롭게 공연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직장인 서아름 씨(45)는 “광화문과 청와대가 한 눈에 보이는 장소에서 이색적인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니 눈이 즐겁다”고 말했다.

▲1일 에스토니아 출신 레드불 슬랙라인 선수 얀 루스가 서울 광화문 사거리 약 120m 상공에서 ‘레드불

서울 줄타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슬랙라인은 두 지점 사이를 이어 팽팽하게 설치한 폭 2.5~5cm 안팎의 줄 위에서 균형을 잡아 걷거나 점프,

회전 등의 기술을 선보이는 스포츠로, 이날 얀 루스는 코리아나호텔을 출발해 동아미디어센터를 반환점

으로 돌아오는 편도 160m 구간의 고공 왕복 횡단에 도전했다. 

 

서울시와 레드불은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불 경우 선수의 안전을 고려해 행사를 연기하려 했지만 이날 날씨가

맑아 예정대로 공연을 진행했다. 서울시는 인파에 대비해 경찰 등과 함께 안전관리 인력 약 290명을

현장에 배치했다.

 

 

가고시마현(鹿兒島縣)ㅡ바다는 거대한 庭園...화산을 수반위에 얹고 있네.

▲일본 가고시마시 사쿠라지마의 온타케산 아래 유노히라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가고시마만의 모습.

햇빛을 받아 금박지처럼 반짝이는 오키코지마 주위의 바다 위로 페리호가 지나고 있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일본 땅 규슈(九州). 규슈 지방의 남쪽 끝에 가고시마(鹿兒島)가 있습

니다. 한겨울에도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 남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그리고 연기를

내뿜는 활화산 하나가 섬이 돼서 바다에 떠 있는 이국적인 여행 목적지입니다.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국내 저비용 항공사의 일본 중소도시 취항이

크게 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의 국적기만 드나들었던 가고시마에도 드디어

저비용 항공사의 비행편이 닿았습니다.

 

번잡스러운 대도시 여행도 좋지만, 일본의 지방 중소도시 여행도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도시는 고즈넉하고물가는 저렴하며 주민들은 더 친절합니다. 항공료도, 숙박비도 대도시

보다 싼 건 따로 말할 필요도없지요.

 

그러나 이런 비용 대비 편익 따위로는 잴 수 없는 매력이 일본 중소도시에는 있습니다. 그

매력을 찾아 가고시마로 떠났습니다.

▲가고시마현의 남쪽 끝 이부스키 해변의 야마카와 제염공장 유적지. 온천 열을 이용해서 소금을

만들던 곳이다.1944년부터 1964년까지 소금을 생산했다.

 

제염공장 유적지를 가운데 두고 한쪽에는 검은 모래 찜질을 즐길 수 있는 해변이, 다른 쪽에는

바닷가 노천온천이 있다.

▲사쿠라지마(Sakurajima) 행 카페리를 탄다

 

◆땅에 뿜어낸 熱에 몸을 담그고. 탁트인 바다에 눈을 맡기다

 

▶기리시마(霧島)를 지나칠 수 없는 이유

▲ 가고시마를 다스리던 영주의 별장 센간엔에서 본 사쿠라지마

 

가고시마 공항은 가고시마시가 아니라 기리시마시에 있다. 공항에서 가고시마 시내 중심

까지는 40㎞에 달하지만, 기리시마까지는 10㎞가 조금 넘는다.

 

기리시마는 그래서 가고시마로 들고 날 때 들르면 좋다. 가고시마에 앞서서 기리시마 얘기

를 꺼내는 건 그래서다.

두 곳 모두 가고시마현에 속하지만, 가고시마와 기리시마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가고

시마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 중심의 여행지라면 가고시마현의 중앙에 있는 기리시마

는 첩첩한 산과 계곡, 그리고 수많은 온천을 거느린 자연 중심의 여행지다

.

제주 올레가 수출한 ‘규슈 올레’의 가고시마 도보 코스도 기리시마에 있다. 가고시마와 기리

시마가 다르다는건 저마다 갖고있는 매력으로 서로를 채워줄 수 있다는 얘기다.

 

가고시마 여행에서 기리시마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 더 귀띔하자면, 일본의

다른 도시에비해 가고시마가 물가가 싼 편인데, 기리시마는 그런 가고시마보다 더 물가가

저렴하다.


기리시마를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기리시마 신궁이다. 일본에서는 신을 모신 곳을 신사라고 하는

데 그중에서 왕실의 선조이거나 왕족과 인연이 있는 신사만을 따로 ‘신궁’이라고 부른다.

 

기리시마 신궁은 일본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신을 모시고 있다. 1500년 전

창건됐다는데, 당시의 신궁은 화산 폭발로 불에 탔고 지금의 건물은 1715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신궁에서 인상적인 건 경내 곳곳에 심어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삼나무다. 수령 700년이 넘는 삼나

무들의 거대한 위용 앞에서는 탄성이 절로 터진다이름난 온천지구가 여럿 있다는 점도 기리시마

의 매력이다.

 

크고 작은 9개 온천이 모여 있는 기리시마 온천마을도 있고, 신궁 주변에서 운치 있는 여관부터

대형 호텔까지 다양한 종류의 온천을 갖춘 기리시마 신궁 온천마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신혼여행 때 묵은 온천 등 오래된 여관들이 늘어선 신카와(新川) 계곡

온천마을,강을 끼고 스무 채의 여관이 들어선 히나타야마(日當山) 온천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배로 약 15분 정도 걸린다.

 

 ◆기리시마 신궁. 수령 700년이 넘는 삼나무들로 꽉 차 있다

◆ 바다 위의 화산섬, 사쿠라지마(櫻島)

가고시마의 아이콘이라면 단연 ‘사쿠라지마’다. 가고시마 시내 어디에서나 바다 건너로 보이는

사쿠라지마는 화산 폭발로이뤄진 섬의 지명이다.

 

1914년과 1946년 대분화 당시 흘러내린 용암으로 지금은 육지와 붙은 땅이 됐지만, 완도보다

조금 작은(80㎢) 면적에 4000여 명이 거주하는 사쿠라지마는 여전히 ‘섬(島)’으로 불린다.

 

사쿠라지마는 땅 전체가 살아 있는 화산이다. 섬 중앙에 검은 흙이 드러난 해발 1117m 온타케

(御岳) 산정 일대의 황량한 모습도 그렇고, 미나미타케(南岳) 분화구에서 김이 펄펄 나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가고시마 쪽에서 바라보면 진청색 바다 위에 연기를 뿜으며 떠 있는 화산은 압도적이다. 사쿠라

지마는 그것 그대로 가고시마의 상징이다.

 

그러니 사쿠라지마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가 곧 가고시마의 명소가 되는 건 당연한 일.

가고시마의 가장 이름난 관광지이자, 사쿠라지마를 조망하는 최고의 명소가 바쿠후(幕府)

시대 사쓰마번(薩摩藩·지금의 가고시마현) 영주였던 가문의 별장인‘센간엔(仙巖園)’이다.

 

센간엔은 수년 전 방송된 일본의 인기 대하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이라, 이곳을 찾은 일본인 관광

객들은 자못 감회가 깊은 모양이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곳은 그저 풍경으로 소비할 따름

이다.

 

일본의 정원은 자연 경치를 빌려서 정원의 일부처럼 활용한다는데, 과연 이곳 센간엔도 푸른

바다와 사쿠라지마를 마치 정원의 연못과 동산처럼 배치해 놓고 있다.

 

바다를 거대한 정원으로, 거친 화산을 수반 위에 얹은 기이한 수석으로 삼고있는 저택이라니….

 

사쿠라지마를 바라보는 가고시마의 두 번째 명소는 시로야마(城山) 전망대다. 언덕 아래 주차장

에 차를 세우고 10쯤 걸으면 해발 107m의 전망대에 닿는다.

 

센간엔 정원이 바다에 바짝 붙어서 사쿠라지마의 위용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면, 여기 시로야마 

전망대는 뒤로 물러나서 도시의 시가지와 그 너머의 바다, 사쿠라지마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같은 곳을 보는데도 거리와 높이에 따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 가고시마의 명물은 흑초. 수만 개의 흑초 발효항아리를 둔 생산공장도 있다.

 

◆ 화산의 발치에서 불의 산을 보다

사쿠라지마는 섬은 아니지만 가고시마에서 육로로 가려면 가고시마만을 빙 둘러서 가야 한다.

이렇게 가려면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육로로 사쿠라지마로 들어가는 길 곳곳에는 흑초

공장이 있다.

 

가고시마의 특산물 중의 하나가 흑초다. 흑초란 현미를 자연 발효해 빚은 검은색 식초를 말하

는데, 주로 물에타서 먹는 건강식품으로 소비된다.

 

흑초는 일본 전역에서 빚지만 에도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제조방식으로 만드는 가고

시마산의 품질이 월등하다.

 

긴코(錦江)만의 가장 깊숙한 지역에 모여 있는 흑초 공장들은 제품 시음 등을 할 수 있는 전시장

등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데, 흑초의 새큼하고 깊은 맛도 맛이지만,

 

그보다 놀라웠던 건 수만 개가 넘는 발효 항아리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늘어선 모습이었다. 줄을

맞춰 놓은 항아리들이 해안의 구릉을 가득 메운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사쿠라지마는 대부분 가고시마항에서 페리호를 타고 건너간다. 육로로 가면 2시간 30분이나 걸리

는데 배를타면 불과 15분 만에 사쿠라지마로 건너갈 수 있다. 사쿠라지마에는 곳곳에 전망대가

있다.

 

섬 안의 화산을 바라보는 전망대도 있고, 건너편 가고시마를 바라보는 전망대도 있으며, 화산 분출

로 이뤄진 기이한 바위의 형상을 보는 전망대도 있다.

 

그중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화산의 분화구에서 가장 가까운 해발 373m 높이에 있는 유노히라(湯之平)

전망대다.여기서보면 두 개의 산이 겹쳐져 보이는데, 앞쪽의 산자락은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진 기괴

한 모습이다.

 

분화구의 연기는 뒤쪽의 산에서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구 깊숙한 곳에

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숨소리가 느껴지는 듯하다.

 

사쿠라지마 남쪽의 아미무리(有村) 용암전망대에서는 용암이 흘러 굳어진 바위와 연기를 뿜어내는

‘불의 산’인 미나미다케(南岳)를 정면에서 볼 수 있다.


화산을 등 뒤로 놓고 돌아서면 긴코만의 바다 건너편으로 가고시마의 도시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바다 쪽 전망대 안내판에는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해안가 지형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걸 실제 지형과 비교해가며 읽다가 하나의 들판도, 하나의 구릉도 이유 없이 만들어지는 건 없다는

데생각이 닿는다. 자연도, 사람도 그럴 것이었다. 오후 나절의 볕을 받아 금박지처럼 반짝이는 바다

위로 유유하게 배가 지나갔다.

 

◆ 모래찜질과 바다 온천…이부스키(指宿)

가고시마에서는 모래찜질(스나무시·砂むし)로 이름난 이부스키도 유명한 관광명소다. 가고시마 시내

에서이부스키 까지는차로 1시간 30분 남짓. 가고시마에서 이부스키까지는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해안

도로와 내륙의 산자락을 타고 넘는 유료도로가 있다.

 

해안도로는 앞을 막는 저속 차량 때문에 답답하지만, 유료 도로는 구불구불 곡선구간이어찌나 많은지

핸들을 붙잡고도 멀미가 날 지경이다. 굳이 통행료를 따로 내고 유료 도로를 택할 이유는 없겠다.

▲ 사쿠라지마의 유노히라 전망대에서 본 온타케의 위용

▲유노히라(湯之平) 전망대.

▲ 가고시마만을 돌아 육로로 가는 길가의 공원에서 본 사쿠라지마 모습.

 

이부스키의 명물 모래찜질은 바다 쪽을 흐르는 온천수가 덥혀 놓은 뜨거운 모래로 해변에서 찜질

하는 것을 말한다. 이부스키역에서 가까운 사라쿠(砂樂) 등 몇 곳의 모래찜질 명소가 있지만,

최근 인기를 누리는 곳이 사유리(砂湯里) 모래찜질 시설과 다마테바코(たまて箱) 온천이다.

 

모래찜질 해변과 온천은 1944년부터 1964년까지 온천 열로 소금을 생산하던 제염소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있다.


사유리 모래찜질 시설과 다마테바코 온천에서는 각각의 입장권도 팔지만, 모래찜질과 온천욕을

다 할 수 있는 통합권도 판매한다. 통합권 가격은 1130엔(약 1만700원)이고, 온천만 한다면

510엔(4800원)이다.

 

모래찜질과 온천욕은 순서가 있다. 해안가의 검은 모래에서 모래찜질하는 게 먼저고 온천욕이 나

중이다 이부스키에서 이름난 건 모래찜질이라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래찜질보다는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다마테바코 온천에서의 온천욕의 감동이 몇 배나 컸다.


해안가 모래사장에서의 모래찜질은 손님이 누우면 삽을 든 직원들이 적당한 깊이에서 파낸 적당한

온도의 모래를 덮어주는 노련함이 필수. 하필 여중생쯤 돼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모래를 덮어줬

는데, 몸의 반쪽은 뜨겁고 다른 반쪽은 차가워서 견딜 수 없었다.

 

모래찜질의 만족도는 삽을 든 이의 솜씨에 전적으로 좌우했다. 모래찜질이 기대 이하였다면 모래찜

질 후에 들어간 다마테바코 온천은 별다른 시설 없이 노천탕 딱 하나만 있었을 뿐이었는데도 운치

가 각별했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온천욕의 운치라니…. 아니나 다를까. 다마테바코

온천은 인터넷 기반의 여행사 트립어드바이저 일본 법인이 고객 평판으로 선정한‘당일치기 온천

및 스파 부문’에서 4년 연속 1위를 한 곳이란다.

▲다시 순환버스를 타고 사쿠라지마 Visitor Center로 간다.

▲이 곳에는 약 100m애 달 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족욕탕이 있다.

▲ 사쿠라지마 미나미다케산(南岳)

▶가고시마 가는 길 = 지난 6일부터 제주항공이 가고시마에 인천발 노선을 주 3회 운항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이스타항공이 가고시마 정기편을 운항해 오고 있다.

 

날짜별로 다르지만 저비용 항공의 경우 특가운임을 적용받으면 20만 원 안쪽에 왕복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기리시마에서는 주택가에 있는 회전초밥집 메츠케몬 고쿠부점

(國分店·0995-47-2008)을 추천한다. 회전초밥집인데도, 원하는 메뉴를 일본어로 적어서

주문해야 하는 게 번거롭지만 놀랄 만큼 재료가 신선하다.

 

흑초를 만드는 공장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가쿠이다(0995-55-3231)는 흑초를 넣어 만든

음식을 내는데 자타가 공인하는 기리시마 최고의 맛집이다.

가고시마는 흑돼지 요리로 유명한데, 흑돼지 샤부샤부와 돈가스가 대표 메뉴다. 가고시마 중앙

역의 상가 아뮤 플라자의 이치니산(099-252-2123)은 가고시마에서 가장 유명한 샤부샤부

체인점이다.

 

덴몬칸의 아지모리(099-224-7634)도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는 식당이다. 가고시마의 흑돼지

돈가스는 부드러운 비계가 많은 고기를 튀겨내 취향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구마모토현(熊本縣)ㅡ규슈의 작은 보석 ‘구마모토’ 자유여행

▲구마모토를 좀 더 들여다보면 이 도시가 품은 매력의 층위가 훨씬 두텁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귀여운 까만 곰 ‘구마몬’의 고향으로 먼저 각인돼 있지만, 구마모토를 좀 더

들여다보면 이 도시가 품은 매력의 층위가 훨씬 두텁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마찰음을 내며 아날로그적 낭만을 선사하는 노면전차에 몸을 실으면 도시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다.

▲마찰음을 내며 아날로그적 낭만을 선사하는 노면전차에 몸을 실으면 도시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다

 

창밖으로는 여러 풍경이 흘러가는데, 한쪽에는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거대한 성곽이

버티고 섰고 다른 한쪽에는 아케이드가 끝없이 이어진다. 여기에 개성 있는 로컬 미식,

푸른 숨결이 깃든 정원 등이 어우러져 색다른 일본 여행을 완성한다. 

▲구마모토 여행의 기점은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으로 꼽히는 구마모토성이다

구마모토 여행의 기점은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으로 꼽히는 구마모토성이다.

1607년 축조된 성은 2016년 지진 피해로 천수각을 잃었다. 부단한 노력 끝에 2021년

천수각이 다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며, 성은 부활과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가토 신사에서 색다른 각도로 구마모토성을 바라볼 수 있으니 꼭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검은 판자를 덧댄 특유의 외관은 굳건하고 기품이 넘친다. 새롭게 단장한 천수각 내부는

층마다 성의 역사와 축성 과정을 세련된 전시로 풀어내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성을 제대로 사진에 담고 싶다면 혼마루 바로 옆에 자리한 가토 신사로 향해야 한다.

천수각을가장 가까이서, 어떤 장애물도 없이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조망 명소다.

셔터를누르기만 해도 장엄한 검은빛 성과 성곽이 주는 묵직한 느낌이 그대로

기록된다.

▲에도 시대의 성하 마을을 재현해 놓은 관광지,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

구마모토성 곁에 자리한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은 에도 시대의 성하 마을을 재현해 놓은 관광지다.

기와지붕과 옛 상점가 골목을 거닐다 보면 마치 시대극 세트장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먼저 역사 문화 체험 시설 ‘와쿠와쿠자’에서 가상현실(VR)과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구마모토의

역사를 몰입감 있게 즐기면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높아진다. 

▲게다가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에서는 구마모토의 명물들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카라시 렌콘(겨자 연근)을 튀겨낸 꼬치, 달콤 쌉싸름한 말차 아이스

크림, 진한 풍미의 성게알 고로케 등 길거리 간식이 여행자를 유혹한다. 

▲17세기 구마모토의 영주였던 호소카와 가문이 무려 3대에 걸쳐 완성한 회유식 정원, 스이젠지 조주엔

▲벚꽃으로 물든 스이젠지 조주엔

 

후지산을 상징하는 쓰키야마와 에도와 교토를 잇는 옛 도로인 ‘도카이도 53차’의 명승지들을

모티브로 삼아 정원을 꾸몄다. 잔잔한 연못, 정갈하게 다듬어진 소나무가 조화를 이룬 풍경은

그 자체로 화려해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된다.

 

그러다가 연못가의 고풍스러운 찻집 고킨덴주노마에 앉아 말차와 화과자를 음미하면 계절의

흐름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풍경과 동화된다.

▲구마모토의 가장 트렌디한 모습은 사쿠라마치 구마모토에서 확인할 수 있다

▲5층에 자리한 거대한 구마몬 조형물

▲버스 터미널과 바로 연결돼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

▲시모토리에서 찾은 파르페 맛집, 카페 나나세키

▲깔끔한 오니기리 정식을 즐길 수 있는 히비코우지야

▲마블링이 돋보이는 바사시(말고기회)

▲말고기 뱃살 부위(하라미)를 살짝 겉만 익힌 메뉴도 있다

 

바사시(말고기회)는 구마모토 미식의 상징이다. 벚꽃처럼 붉은빛 덕에 현지에서는 ‘사쿠라니쿠

(벚꽃 고기)’라 부른다. 신선도가 보장돼 잡내가 없고, 담백한 풍미가 매력이다.

 

현지인들이 퇴근 후 즐겨 찾는 향토 요리 전문점 고로하치(Gorohachi)에서는 마블링이 뛰어난

부위부터 쫄깃한 특수 부위까지, 수준급의 바사시를 부위별로 음미할 수 있다. 달짝지근한

규슈 간장에 간 생강과 마늘을 얹어 먹으면 깊은 고소함이 입안을 맴돈다.

▲구마모토 라멘 맛집, 고무라사키

후쿠오카에 하카타 라멘이 있다면, 이곳엔 구마모토 라멘이 있다. 진한 돼지 뼈(돈코츠) 육수에

닭 뼈를 섞어 한결 부드럽고 덜 느끼한 것이 특징이다.

 

한 끗이 다른 건 튀긴 마늘 칩과 마늘을 태우듯 볶아 만든 검은 기름 ‘마유’다. 진득한 육수에

마유가 섞이며 증폭되는 감칠맛은 한국인이라면 만족할 수밖에 없는 맛이다.

▲육향의 진수, 아카규 & 아카규동

 

아소산의 광활한 초원에서 방목해 키운 붉은 소 아카규는 소고기 본연의 육향이 꽉 차 있다. 퀄리티

높은 원육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철판 직화구이를, 밥과 함께 가벼운 점심 식사로 원한다면

아카규동이 제격이다.

 

요카요카 철판 그릴(Yokayoka Teppan Grill)이나 프리미엄 야키니쿠를 즐길 수 있는 스미카

(Sumika)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밥 위에 미디엄 레어로 구운 아카규를 수북이 쌓고 온천

달걀을 톡 터뜨려 먹는 아카규동은 비주얼만큼이나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준다.

▲현재 대한항공과 트리니티항공이 인천에서 매일 1회 운항 중이고, 이스타항공은 부산과

구마모토를 매일 연결하고 있다

◆구마모토로 가는 길


한국에서 구마모토로 향하는 직항 노선이 있다. 대한항공과 트리니티항공이 인천에서 매일1회

운항 중이고, 이스타항공은 부산과 구마모토를 매일 연결하고 있어 일정을 계획하기가 수월하다.

기차를 활용하면 후쿠오카와 묶어서 여행할 수 있다.

하카타역에서 규슈 신칸센에 탑승하면 구마모토역까지 약 35~50분이면 닿는다. 당일치기도

가능하지만, 구마모토의 낮과 밤을 온전히 즐기고 싶다면 최소 2박 3일 일정의 근교 여행으로

엮는 것을 추천한다.


팔라완섬(Palawan Is)ㅡ필리핀이 마지막까지 감춰둔 비경, 지루할 틈이 없다

▲주도(主都)는 푸에르토프린세사이다. 부속 섬들과 함께 1개의 주(州)를 이룬다.

 

좁고 긴 모양의 이 섬은 길이가 460km나 되지만 가장 좁은 곳의 너비는 5km밖에 안 된다. 섬의

중앙을 높은 산지가 뻗어 있으며, 가장 높은 곳은 만탈링가잔산(2,084m)이다. 해안선은

복잡하게 후미져 있다.

 

주민은 타그바누아스·바타·팔라완·켄에이·모로족(族)으로 구성되며, 전체적으로 미개발지역

이어서 수렵·어업·화전(火田) 등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필리핀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필리핀 팔라완의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 강 국립공원. 배를 타고 컴컴한 동굴을 본다.

 

기껏 외국을 갔는데 이국적인 풍경보다 한국인이 더 많이 보이는 여행은 싫다. 그렇다고 너무

큰 용기를 요구하는 모험은 두렵다. 이런 취향이라면 팔라완이 제격이다.

​

필리핀의 마지막 개척지라는 이 섬은 여전히 천혜의 보고를 간직하고 있다. 동굴 보트 탐험,

맹그로브 숲 투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여행은 체력도 최소한만 요구했다.

▲필리핀 팔라완에 있는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 강 국립공원.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해 무동력 보트를 타고 들어가서 컴컴한 동굴을 둘러본다.

 

새들이 떼 지어 우는 소리가 동굴 천장을 울려 대는데 아기 박쥐들은 잘만 잔다. 다섯 명이

한 줄로 가운데를 맞춰 앉는 작은 배를 타고 그 아래를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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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귀엔 한국어 설명이 흘러나오는 기기를 꽂고, 눈으론 뒤에 앉은 현지인 가이드가 손전등

에 덧대 만드는 손 그림자를 바삐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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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중독자도 이 정도 미디어 멀티태스킹이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을 듯하다. 억겁의

세월이석회암을 빚어 촛불·티라노사우루스·예수를 조각한 것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필리핀 팔라완 섬, 그중에서도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 강 투어는 자연의 보금자리에

몰래 온 손님처럼 진행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란 설명이 없었어도, 땅 밑 굴에 사는 생물들이 빛이나 소리에

얼마나 취약할지 생각하면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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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녹음된 기기를 통해 이어폰으로 듣고, 내부엔 어떤 조명도 설치하지 않았다. 박쥐

나 기암괴석을 볼 수 있는 건 손전등 하나 덕인데, 이마저도 잠시 끄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칠흑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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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한 그림자 속에 파묻혀 무엇도 볼 수도 떠올릴 수도 없어 백색 소음

같은 새 소리나 들으며 동굴 밖 세상의 잡념을 까맣게 지워본다.

▲쳐진 사방해변의 해 질 무렵 모습. 지하강 국립공원과 사방 맹그로브 숲 모두 사방 해변

인근에 있다.

 

사방에 이국의 풍경보다 자국민이 더 많이 보이는 여행은 싫지만, 긴장과 용기를 소모하는

수준의 대모험은 두렵다면 팔라완이 제격이다. 뻔히 예측되는 여행은 재미가 없고, 미지만

계속되는 여행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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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완에선 양면을 누릴 수 있다. 필리핀의 마지막 개척지라는 이 섬이 여태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보고는 마치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투어는 체력도 최소한으로 요구한다. 지하 강 국립공원을

본 뒤엔 바닷물에서도 자라난다는 맹그로브 나무들이 이룬 숲속에서 줄무늬 뱀이 낮잠을

자는 모습도 볼 수도 있는데, 역시 보트를 타고 지나가며 감탄만 하면 된다

▲팔라완섬(Palawan Is) 선착장.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푸에르토 프린세사’는 생경한 자연과 세련된 현대를 넘나들며 즐길 적소다.

호텔 밖으로 조깅을 나가면 물소가 식사하고 염소가 뛰노는 풍경이 펼쳐지지만, 호텔 안에서 발코니

에 앉아 시야가 허락하는 수평선만 구경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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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에서 맨발 거리 해변으로 나가 파도에 몸을 실었다가 짜다 싶어 돌아오면 400평 넘는 수영장이

곧바로 품어준다. 풀 바, 레스토랑, 스파, 키즈 클럽 등 부대시설은 잘 갖춰져 있으나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지 않는 것이 자연을 고려한 이곳의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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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할 수 있는 불편의 수준을 낮춰 본디 캄캄하기 마련인 밤의 본질을 즐긴다면, 그 뒤에 찾아올

일출의 아름다움은 더 극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진은 호텔에서 추천한 산책 코스대로 걷다 보면 마주하는 모습이다.

▲팔라완섬(Palawan Is)의 청정 해변

▲팔라완섬(Palawan Is) 선상투어.

▲팔라완섬(Palawan Is) 스노쿨링.

▲용궁이 따로 없다

▲리조트내 딸린 수영장

▲팔라완섬(Palawan Is) 해변.

▲팔라완섬(Palawan Is) 해변.

▲썬 셋

 

◆팔라완 가는 길, 마닐라에서 즐기는 호캉스

▲마닐라 뉴포트월드 쇼핑센터 내에 있는 위스키 바인 '위스키 라이브러리'.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와 이곳만의 특제 칵테일도 맛볼 수 있다.

▲메리어트 마닐라 호텔에는 두 곳의 수영장이 있다. 사진은 메인 빌딩에 위치한 루프탑 수영장.

 

마닐라는 한국에서 팔라완을 가려면 들러야 하는 곳이나 별도로 훌륭한 여행지기도 하다. 체감

온도가 40도에 육박한다는 뉴스가 그다지 놀랍지 않은 이 도시는 더위를 견디고 즐길 방법을

여러모로 고민해 펼쳐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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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호텔과 쇼핑몰이 이어지고 내외국민을 불문하고 개방된 카지노는 밤을 모른다. 메리어트

호텔과 이어진 뉴포트월드 쇼핑센터엔 곳곳에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이를 ‘몰지엄(쇼핑몰+뮤지엄)

이라 부른다는데 확장되고 변화하는 ‘호캉스(호텔+바캉스)’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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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에서 가장 방대한 위스키 컬렉션을 갖췄다는 ‘위스키 라이브러리’에 가면 종업원이 사다리

를 타고 위스키를 꺼내오는 걸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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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의 안내 표지판마다 한국어가 있고 한국 음식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쉐라톤 호텔의

한식당 우리(Oori)에는 한국인보다 현지인과 서양인이 더 많았다.

◆ 팔라완 여행 수첩

한국에서 팔라완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인천에서 마닐라까지 비행시간은 4시간 남짓, 마닐라

에서 팔라완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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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우림 기후인 필리핀은 일 년 내내 따뜻하나 평균온도 30도 이하의 건기(11~2월), 더 더운

건기(3~5월), 우기(6월~10월)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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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카페·마사지샵 등에선 팁 문화가 있는데 미국처럼 구매금액의 일정비율이 아니라 서비스

에 대한 만족도를 기준으로  주면 될것 같다.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에서도 카드를 받지 않는

곳도 많아 환전은 필수다.

팔라완섬(Palawan Is)ㅡ팔라완 섬에 딸린 작은 마을 엘리도

▲소수의 다이버들에게만 알려졌던 군도 엘니도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엘니도는 팔라완이라는 작은 섬의 북쪽 끝에 위치한 엘니도 마을 주변과 바쿠닛 군도 

지역을 통칭하여 일컫는 지명이다.

▲팔라완 위치도.

▲필리핀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엘니도섬은 마닐라에서 남서쪽으로 420km 떨어져 있는 섬이다. 단일 섬이 아니라

꼬마 섬 45개로 이뤄진 군도(群島)다

 

스쿠버다이빙을 할 줄 알면 금상첨화다.떼 지어노니는 예쁜 열대어를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다.

▲물가에 자리잡은 방가로.

▲현지인들의 환영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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