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소문나면 곤란한데...
신령이 노닐던 땅, 경주 낭산(狼山) ‘왕의 길’을 걷다.
▶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진평왕릉 7㎞

▲경주 낭산 소나무숲 너머로 선덕여왕릉이 보인다.
야산과 들녘, 바다와 강마다 길이 없는 곳이 없다. 바위틈에 산책로가 있고,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길도 있다. 수많은 길 가운데 걷기 좋은, 할 이야기가 많은, 그러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만나는 지인마다 좋은 길을 추천받으며 후보군을 추리던 때, 경주에서 나고 자란 지인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경주에 낭산이라고 있는데.” 순간 고민했다. ‘경주 남산’을
잘못 쓴 것인가.
답 없는 대화창에서 마음을 읽었는지 다시 메시지가 꽂혔다. “남산 아니고 낭산.” 습관
처럼 당장 그 낯선 이름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했다. 당돌한 사이트는 제멋대로 ‘남산’
으로 고쳐 찾은 내용을 띄운다. 아직 소문이 덜 난 곳은 분명하다.

▲경주 낭산의 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진평왕릉 7㎞ 구간.
시작부터 갈림길이다. 입구로 되돌아가 ‘사천왕사지’를 보고 산을 오를 것이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것이냐. 큰 의미는 없다. 걷다 보면 결국 다 이어진다. 사천왕사와
선덕여왕의 관계 그대로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했단다. 불교에서 말하는 세상의 중심
인 수미산 중턱에 있는 도리천. 사천왕이 지킨다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 리 없는 신하들
의 어리둥절한 물음에 여왕은 ‘낭산의 남쪽’이라 답했다고 한다.
그가 죽고 30년 뒤에 낭산의 들머리, 왕릉의 아래 사천왕사가 세워졌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선덕여왕의 세 가지 선견지명 중 하나란다.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경주 낭산 입구에 있는 선덕여왕릉주차장.
경주 낭산은 남경주 나들목(IC)에 내려, 불국사를 지나 경주 중심가에 다다르기 전에
있다. 나지막한 낭산은 그 이름보다 정상에 자리한 선덕여왕릉이 더 유명하다.
7번 국도에 선덕여왕릉 표지판은 있어도 낭산은 없다. 주차장 이름도 선덕여왕릉
주차장이다. 주차장 한켠에 있는 화장실은 소박하지만 소중하다. 앞으로 1시간
동안은 보기 힘들다.

▲경주 낭산 아래 있는 사천왕사지 가운데 서탑지.
사천왕사지는 말 그대로 절터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지은 사찰이라
는데, 황량한 터를 지나면서 그 규모만 가늠할 뿐이다.
사천왕이 지키는 도리천, 그곳에 잠든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은 한겨울에도 푸르다.
앙상한 나무들이 애처롭기까지 한 주변과는 다르다. 우거진 소나무 덕이다.

▲경주 낭산 입구.
이곳 소나무에는 아직 재선충병이 창궐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복 받은 땅’이
다행히 지켜지나 보다.
실성왕 12년, 낭산에 누각처럼 생긴 구름이 일어난 것을 본 왕은 신령이 내려와 노니
는것이라 여기고, 이후로 이 산에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아, 그래서 여기 나무들이 좋네.” 산을 내려오다 입구에 적힌 안내문을 보던 한 중년
이 말했다. 오를 때는 보지 못했나 보다.

▲경주 낭산 선덕여왕릉으로 가는 길.
낭산은 산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나지막한 구릉이다. 소나무 사이로 적당히
경사진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선덕여왕릉에 이른다. 볕이 잘 드는 곳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곳만 구멍이 뻥 뚫려 있을 것 같다.
문득 살아서도 한 몸 편히 지낼 곳이 없는 만민이 스친다. 죽어서도 이 넓고 양지
바른땅을 차지한 왕의 핏줄이 새삼 심술스레 꽂힌다.

▲경주 낭산 정상부에 있는 선덕여왕릉.
문득 안쓰럽기도 하다. 최초의 여왕은 살아있는 동안 늘 그 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재위
중에 백제와의 전쟁에서 낙동강 서쪽 지역을 잃으면서 그 위기는 정점을 찍었다.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비담이 일으킨 반란 속에 세상을 떠난 그의 마음이
편했을 리 없다.비담. 익숙한 이름이다. 2009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선덕여왕’
에서 배우 김남길이 연기했던 인물이다.
주인공인 선덕여왕보다 악역인 미실이 더 눈길을 끌었던 드라마다. 이 드라마가 인기몰
이를 하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낭산에 대한 관심도 반짝했지만, 금새 시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분 만에 도착한
선덕여왕릉에서 한참 방황했다.‘이게 다야?’

▲경주 낭산 선덕여왕릉 뒤편에 능지탑지로 가는 길 이정표가 있다.
앞서 도착한 이들이 되돌아가고, 뒤이어 온 이들도 발길을 돌리던 참이다. 왕릉 뒤쪽
으로 ‘능지탑지’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마른 솔잎과 흙으로 뒤덮인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친절한 길은 아니다. 해우소도 없고, 목을 축일만 한 곳도 없다. 짧은 숲길을 따라
걷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 길이 맞나?’
마주 오던 이에게 물어본다. “낭산은 어디까지인가요?” 동네 마실을 나온 가벼운
옷차림새의 그는 왠지 이 일대를 훤히 꿰뚫고 있을 것 같다.
“여, 전부 다 산이지.” 그가 자신의 뒤쪽을 손가락으로 아무렇게 휘휘 저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답이다. “이쪽으로 쭉 가면 된다는 거죠?”
초행길을 거듭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확신의 끄덕임을 남기고 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 멀어졌다.

▲경주 낭산 선덕여왕릉에서 능지탑지로 가는 소나무숲길.
안심하고 걷다 보니 또 갈림길이다. 일단 ‘능지탑지’란 이름을 따라 왔으니 왼쪽으로
꺾었다. 본래 5층탑이었을 능지탑은 신라 문무왕을 화장한 곳으로 추정된단다.
문무왕은 왕릉을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라며 화장을 지시했다고 한다.
실용적인가 싶다가도 산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하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동해 용왕이 됐다는 전설의 주인공답다.

▲경주 낭산자락에 있는 능지탑지.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된다.

▲바위에 새겨진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
능지탑 터를 지나면 중생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사찰 안쪽 바위에서 낭산 마애
보살삼존좌상을 만날 수 있다. 가운데 지장보살이 온화하게 웃고 있고, 좌우로
무장한 수호신이 있다.
표면이 거칠어 삼존상을 뚜렷하게 보기는 힘들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한발
떨어져 보는 게 더 낫다.

▲경주 낭산 둘레길을 따라 진평왕릉으로 가는 길.
걸어온 길을 되돌아간다. 갈림길에서 이번엔 오른쪽이다. 산불에 취약한 겨울, 낭산은
더이상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보도블록으로 바닥이 잘 포장된 길을 따라 걷는다. 살짝 올라가는 길인가 싶더니
내리막이다.
훤히 뚫린 시야가 시원하다. 백이들과 보문들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논이다. 곧 있으면
모내기를 할 것이다. 여름이었다면 논두렁의 찰방찰방한 물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가을이었다면 보기만 해도 풍요로운 황금들판일 터였다.

▲경주 낭산 들머리를 빠져나오면 백이들과 보문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들녘이
끝나는 곳에 진평왕릉이 있다.
저 멀리 진평왕릉이 보인다. 들녘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시간은 평온하다. 오르락
내리락도 없다. 완만하게 굽이진 길은 기울어짐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가올 수확을
위해 쉼의 시간을 보내는 땅은 고요하다.
농기계 바퀴자국이 선명한 길을 따라 걸으며 옆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나무에나란히 걸터앉은 까치와 까마귀가 추임새를 넣는다. 텅 빈 논을 보며 배가
고프다고 투정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주 진평왕릉과 주차장을 잇는 작은 나무다리.
선덕여왕릉이 낭산 정상에 홀로 외로이 있다면, 그의 아버지 진평왕의 능은 좀 더 따뜻한
분위기다. 다른 왕릉처럼 모여있지도 않은데, 사람들과 함께하는 느낌이다.
길 건너 마을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과 카페도
있다. 죽은 이의 무덤이 산 사람의 공간과 어우러져 있다.

▲아름드리 나무들로 둘러싸인 경주 진평왕릉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아기
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다.

▲경주 진평왕릉.
진평왕릉은 나들이하기 좋은 곳으로 이미 유명하다. 아름드리 고목이 작은 숲을
이루는 왕릉 주변에는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다.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다. 봄이면 벚꽃이 예쁜 곳이다. 숨겨진 벚꽃 명소
를 소문내는 마음이 괜히 미안해진다.
논길을 돌아 다시 선덕여왕릉으로 간다. 오던 길과 다른 길을 걸으려니 꺾이는
길이꽤 거칠다. 왕이 될 운명인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이리도 어지러
웠을까.
죽어서도 아버지의 곁에 머물고 싶어 낭산을 택한 딸의 마음이 교차한다. 올 때
마음이 갈 때의 그것과 다르다.

▲진평왕릉에서 선덕여왕릉으로 돌아가는 길에 낭산과 그 아래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보인다.
낭산이 다시 가까워졌다.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경주시가 사들여 더는 경작하지
않는 땅 너머로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보인다. 신라 효소왕이 아버지인 신문왕
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탑이란다.
길을 돌아 석탑을 가까이 보려다가 멈춘다. ‘아서라, 때론 멀리서 보는 게 좋을
때도 있다.
숨이 찰 리 없는 속도로 천천히, 넉넉하게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선덕여왕릉
과 진평왕릉 인근에 모두 주차장이 있다. 어느 쪽부터 걸어도 괜찮다.

▲경주 낭산의 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진평왕릉 7㎞ 구간
'▣新八道(신팔도)***紀行錄 > ⊙경북 대구****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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