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올림픽국립공원ㅡ 마지막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땅에 깃든 야생.

▲허리케인 리지(Hurricane Ridge)에서 바라본 올림푸스산맥. 허리케인이란 지명처럼, 바람이 세찬
언덕에서 저 멀리 올림푸스산맥을 바라본다. 해발 2,400m가 넘는 연봉들마다 하얀 만년설이
얹혀 있다. 기후변화 때문에 날로 줄어들고 있지만.
미국 서부의 해안도시 시애틀(Seattle)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나
‘스타벅스 1호점’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인디언 추장’ 시애틀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자연을 예찬하는 최고의 문장을
남긴 인디언이다.
서부로 향하며 인디언의 땅을 정복해 나가던 미국 대통령이 그들에게 땅을 헐값에 팔고 물러가지
않으면 부족을 몰살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이에 시애틀 추장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기고 인디언보호구역으로 쫓겨난다.
“어떻게 저 하늘과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조상의 얼이 있고, 시냇물 졸졸거리는 소리가
있고, 온갖 나무들의 향내가 있는, 추억과 생명이 있는 이 땅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하여 팔라는
말인가?
그러나 우리가 쫓겨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므로, 너희 백인들은 우리가 했던 것처럼 이 땅을 존경
하고 사랑해 달라!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온 힘을 다해 이 땅을 지켜 달라.”
그러나 미국인들은 점령지에서 수많은 나무를 벌목하고 그 나무들을 운반하기 위한 항구를 건설
했는데 그곳이 바로 시애틀이다.
그리고 미국 첫 대통령의 이름을 딴 워싱턴주의 최대 도시 이름으로 ‘인디언 대통령 시애틀’을 정했
다. 시애틀 추장의 말을 조금은 들어준 것일까? 오늘의 시애틀은 ‘국립공원 거점 도시’다. 도시
인근에 레이니어국립공원, 노스캐스케이드국립공원, 올림픽국립공원이 있다.
미국의 북서쪽 구석에서 캐나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올림픽국립공원의 면적은 3,734㎢로 지리산
국립공원 면적의 8배에 달한다. ‘올림픽’은 이곳의 올림푸스(Olympus)산(2,432m)에서 따온 이름
이지만, 마치 올림픽을 하는 것처럼 수많은 종류의 풍경이 이곳에 집합해 있다.


▲서북부 워싱턴 주.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허리케인 리지의 사슴. 허리케인 리지에는 가벼운 산책로에서 장거리 등산로까지 다양한 탐방로가
있다. 오른쪽은 드넓은 초지에 서식하는 검은꼬리 사슴(black-tailed deer). 사람을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허리케인 리지의 아름다운 초지와 사슴들, 멀리 바라보는 올림푸스산맥의 봉우리마다 덮인 하얀
빙하, 댐을 헐어 본래의 야생을 회복하고 있는 엘화(Elwha)계곡, 크레슨트(Crescent)호수의 파란
물과 호젓함, 우림지역(Rain forest)의 밀림과 이끼, 태평양으로 나간 물고기들이 회귀하는 야생
의 강, 그리고 110km가 넘는 거친 해안선 등 서로 다른 풍경과 생태계가 올림픽국립공원에
모여 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생물권보전지역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국립공원 면적 중 95%
가 야생지역(Wilderness Area)으로 보존되고 있다. 야생지역은 국립공원법과는 별도로 ‘자연
그대로의 지역을 더욱 엄정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제정된 야생지역법에 의해 관리된다.
시애틀과 올림픽반도 사이에는 기다란 협만峽灣이 있어서 도로를 따라 멀리 우회하는 것보다 차량
을 페리에 태우고 짧게 건너가는 것이 좋다. 선박에서 내려 두 시간쯤 달리면 올림픽국립공원 탐방
안내소에 도착한다. 그곳에 들어가면 한쪽 벽면에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 있다. 시애틀 추장의
글이다.
‘모든 생물이 사라지면 사람의 영혼도 외로움으로 죽을 것이다. 동물에게 일어나는 불행한 일은 사람
에게도 일어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레인저의 해설. 허리케인 리지에서 레인저가 공원의 자연과 문화에 관한 해설을 하고 있다.
“모든 레인저가 당신처럼 말을 잘하느냐”고 질문하니 “그렇다, 모두 이야기꾼
(talkative, story teller, science teller)이다”라고 답했다.
◆허리케인 몰아치는 허리케인 리지
탐방안내소에서 산악도로를 구불구불 돌아가면 도로 정상에 허리케인 리지가 넓게 펼쳐진다. 이곳은
해발 1,600m 고산지대 능선이다. 차 문을 열자마자, ‘허리케인’이란 지명답게, 펄럭펄럭 소리를 내는
서늘한 바람이 몸을 흔든다.
이곳에는 탐방안내소와 식당, 기념품점이 있는 큰 건물이 있었는데, 2023년의 산불로 모두 불타서,
지금은 작은 컨테이너가 안내소와 화장실 기능을 겸하고 있다.
멀리 만년설을 왕관처럼 뒤집어쓴 올림픽산맥을 조망하고, 주변 탐방로를 거닐었다. 능선을 따라 넓게
펼쳐진 초록빛 초지에서 사슴 떼가 풀을 뜯는 모습이 평화롭다.
사슴의 까만 눈은 정말 깊다. 가끔 사람들을 쳐다보며 “내 마을에 찾아온 당신을 환영해. 그러나 오래
있지는 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곳은 그들의 집이고 사람은 방문객일 뿐이다.
허리케인 리지에서 내려와, 작은 항구도시 포트 엔젤레스를 거쳐 엘화계곡을 통과해, 크레센트호수를
향한다.엘화계곡은 댐을 철거해 경관과 생태계를 복원한 곳으로 유명하다.
1900년대 초에 2개의 댐을 건설했는데, 이후 연어와 송어 등의 어류가 대량 감소해 이들을 먹이로
하는 곰과 독수리 같은 야생동물 개체수도 줄었다.
또한 댐 하류로 토양이 유입되지 않아 제방이 무너지고, 농업에 큰 지장을 주었다. 이에 오랜 기간의
논란을 거쳐 2014년 두 개의 댐을 철거했다. 지금은 생태계가 서서히 회복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강은 흘러야 한다! 엘화계곡 댐 철거 전후 사진. 댐을 철거하자 물길과 생물들의 길이 트이고,
풍경이 트이고, 사람의 마음도 트였다. 과학자들은 완전한 생태계 회복에 10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늘에서 보면 초생달 모습인 크레슨트호수(Lake Crescent)는 빙하가 녹은 물이라 맑고 투명하다.
하늘색이 반영되어 새파랗다. 부드러운 산과 잔잔한 호수, 울창한 숲과 고즈넉한 산장들이 조용
하게 어우러져 있어 산책과 휴양으로 그만한 곳이 없다.
이곳을 더욱 기억하는 것은 교통사고 직전에 목숨을 구해서다. 호수를 빠져나오는데 갑자기 앞선
차량몇 대가 멈춘다. 차량 밖으로 나가보니 거대한 세쿼이아 나무가 쓰러져 도로에 널브러져 있다.
직경 2m, 높이 40m쯤 되는 거목이었다. 불과 5분 전의 일이었다.
긴급출동한 레인저가 동력톱으로 나무를 자르며 “you got lucky!, not me.(넌 정말 운이 좋았어!
하지만 나는 아냐)”라고 말했다. 이곳을 빠져나오며, 내가 국립공원과 인연을 맺으면서 죽을 뻔한
것이 이번이 몇 번째인지 손가락으로 세어 보았다.

▲도로에 무너져 내린 세쿼이아 나무. 고맙게도! 내가 통과하기 5분 전에 쓰러져 준 세콰이어
(미국삼나무). 50m 이상 자라는 높이에 비해 뿌리가 얕게 자라 강풍에 넘어가기 쉽다.
◆이끼의 제국 ‘호 레인 포레스트’
올림픽국립공원에서 가장 독특한 생태계는 ‘호 레인 포레스트Hoh Rain Forest’다. 이곳은 연 평균
강수량이 3,600mm에 달하는 미국의 대표적 온대우림이다.
숲에 들어가기도 전에 축축한 기분을 느끼고, 숲속은 온통 이끼와 양치식물로 뒤덮여 있다. 연두색
이끼들이 카펫처럼 나무줄기를 감싸고, 팔 벌린 나뭇가지를 뒤덮은 이끼들은 커튼처럼, 망토처럼
축축 늘어져 있다.
안개 낀 날이 많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띠면서 때로는 신비한, 때로는 기괴한 풍경이 연출된다. 그래서
이곳은 뱀파이어 영화 ‘트와일라잇(Twilight)’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탐방객들은 ‘이끼의 복도(Hall of Mosses Trail)’를 비롯한 다양한 탐방로를 따라 이끼의 제국을 감상한다.
사슴이 많이 사는 동화 속 숲이기도 하고, 어디서 금방 공룡이 튀어나올 듯한 공룡시대 숲이기도 하다.
탐방로를 걷다가 가만히 서 있으면 졸졸졸, 재잘재잘대는 시냇물 소리와 살랑살랑 바람 소리뿐 그 어떤
인공의 소리도 없는 정적에 빠진다.

▲호 우림(Hoh rain forest)의 루즈벨트 엘크. 호 우림은 미국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은 곳에 있는
울창한 숲이다. 나무의 숲이면서 이끼와 양치식물의 숲이다. 이끼는 뿌리 없이 온몸으로
습기를 빨아들인다.
◆거친 파도와 바람, 야성적인 루비 비치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최근 호 레인 포레스트를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Quietest Spot), 미국의 경이
로운 장소(Wonders of America)’로 선정했다.
그중에서도 음향생태학자인 고든 햄프턴이 ‘침묵의 1평방인치’라고 부른 지점은 자동차, 발전기,
사이렌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소음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올림픽국립공원의 이 작은 공간은 인간이 잃어버리고 있는 고요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상징적인 장소’라고 평가했다.

▲루비(Ruby) 해안. 노을빛에 붉게 물들어 루비라는 이름이다. 산에서 강을 타고 떠내려 왔거나,
거친 파도가 해안을 덮쳐 뽑혀 나간 거목의 통나무들이 해안에 쌓여 있다.
올림픽국립공원의 서쪽 끝 태평양 해안에 위치한 루비 비치에 다가선다. 붉게 물드는 노을이
아름다워 루비(Ruby)라는 이름이지만, 습한 환경 때문에 흐린 날이 많다.
태평양의 거친 파도가 해안의 바위들을 쪼개고, 남아 있는 바위섬(sea stack)들도 계속 파도
와 싸움하고 있는 야성적인 바닷가다.
파도에 떠다니다가 해안에 처박힌 통나무들(drift wood)이 일종의 방파제가 되어 파도로부터
해안을 보호하고 있는 모습도 특이하다. 이 통나무들은 바닷물의 소금기 때문에 썩지 않아,
죽어서 더 오래 사는 나무들이다.

▲카누보다 큰 고래. 거친 바다에 나가 배보다 큰 고래를 사냥했던 인디언 원주민들의 모습.
올림픽국립공원 탐방안내소 그래픽.
최근에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과 홍수, 산사태 등이 미국 전역의 국립공원에서 발생된 바 있어, 미국
국립공원을 방문하려면 각 공원의 홈페이지를 통해 출입통제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거기다가, 트럼프 정부에서 국립공원의 예산과 인력을 감축해서 현장 관리가 미흡한 곳이 많다. 따라
서 방문객들은 스스로의 안전을 잘 관리해야 한다.
올림픽국립공원을 소개하는 지도에 ‘올림픽을 탐사하라Explore Olympic!’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해설문이 적혀 있다.
‘파도가 야생의 해변을 때리며 눈 녹은 강과 마주친다. 오래된 나무숲이 야생동물의 세계를 감싸 안는
다. 울퉁불퉁한 산꼭대기들이 빙하와 고산지대의 초원을 에워싸고 있다.
해안, 숲, 산악 생태계가 어우러져 이 아름다운 야생공원을 탄생시켰다. 미래에게 주는 선물(a gift to
future), 올림픽국립공원을 탐사하라!’

▲시애틀 추장과 시애틀 도시. 시애틀 추장은 백인들에 쫓겨 물러나면서 최고의 자연 예찬 명문과
도시 이름을 남겼다. 오른쪽 사진에 시애틀의 명물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빌딩과
레이니어국립공원이 보인다.
'◆북아메리카*******국가들 > ⊙미국***북부지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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