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앤 카슨이 스웨덴에 반드시 가야 할 이유?

▲스웨덴 스톡홀름 감라스탄 풍경, 노벨박물관 앞 광장의 모습

◆문학의 별이 뜨는 도시, 스톡홀름

올가을 문단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앤 카슨(Anne Carson)’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2026년 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으로 캐나다 작가 앤 카슨을 호명했다.

 

한림원은 그녀가 구축한 세계를 ‘고전 전통과 유희적으로 대화하며 현대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업’이라 설명했다.

▲스웨덴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스칸디나비아 반도 3국 위치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스톡홀름의 전경

그녀는 낡은 클래식을 해체해 다시금 재단 후 오늘의 언어로 새롭게 매만졌다. 유희와

대담함, 그리고 독창성이란 세 단어는 앤 카슨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도 같은 자리에 선 적이 있다. 2024년, 한강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꼽은 18번째여성 수상자였고,

앤 카슨이 그 뒤를 이어 19번째 여성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앤 카슨 일러스트 초상화

▲노벨박물관 외관

올해 일흔여섯인 앤 카슨은 수상 소식 앞에서도 뜻밖에 담담했다.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차를 마시고 청소를 하려던 참이었단다.

 

그런 그녀에게 날아든 노벨 문학상의 소식에 카슨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 모든 게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다들 미친 게 아닐까요?” 평생 문학의 언어와

형식을 새롭게 빚어온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세계가 자신의 작품에 보내는 찬사 앞에서도, 그녀의 아침은 차 한 잔과 밀린 집안

일로 시작되고 있었다.

▲노벨 박물관 내부에 위치한 노벨 레스토랑. 시그니처 메뉴는 노벨상 모양의 초콜릿 디저트

▲노벨박물관 내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1786년 스웨덴 국왕인 구스타브 3세

가 세운 기관이다. 종신회원 18명으로 구성되며, 문학상 심사와 선정을 맡는다.

 

한림원은 스톡홀름 구시가지 감라스탄에 있는 옛 증권거래소 건물에 자리한다. 같은

건물에 ‘노벨박물관’이 있다.

 

노벨박물관에는 역대 수상자들이 수상 후 기증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한강 작가가 기증한 작은 찻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하던 시절, 그녀는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찻잔에 홍차를 우려 마시는

일상을 반복했다.

 

하루에도 예닐곱 번씩 들여다보던 찻잔은 어느새 집필 루틴이자 창작의 시간을 지탱

하는사물이 되었다. 한강 작가는 본인의 찻잔과 당시 생활습관을 적은 메모를 함께

기증했다. 세계적인 문학상의 영예 뒤에는 이처럼 조용하고 사적인 일상이 있었다.

 

▲노벨박물관에는 다양한 전시품중 하나이다 

▲노벨박물관에 전시중인 수상자들의 물건들.

▲노벨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한강 작가의 메모.

 

▶작은 찻잔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몇 개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1.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2. 당시 살 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3.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 잔씩만 마시기 


그렇게 하루 예닐곱 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당시 내 생활의

중심 이었다.

-노벨박물관에 기증한 한강 작가의 메모

▲스톡홀름의 올드 타운 풍경.

2026년 노벨 문학상 시상식은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은 그날 밤 어떤 표정으로 한자리에 모일까.

 

평생의연구와 집필을 인정받은 기쁨에 들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믿기지않는 얼굴일까.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시상식을 마친 이들은 스톡홀름 시청으로 향하게된다.노벨상

의 밤은 이곳에서 비로소 축제로 바뀌기 때문이다.

 

붉은 벽돌로 지은 스톡홀름 시청사 안쪽, 블루홀에서는 수상자와 왕실 가족,세계 각국

의 초청 인사 등 약 1,300명이 모여 특별한 만찬을 즐긴다

▲스톡홀름 시청의 내부 모습

▲스톡홀름 시청사

스톡홀름 시청사는 건축가 ‘라그나르 외스트베리(Ragnar Östberg)’가 설계했다.

1923년 문을 연 이곳은 스웨덴의 국가적 낭만주의 건축과 북유럽의 전통,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의 영향을 한데 녹여낸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이 시청사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이 바로 만찬 장소, 블루홀(Blue Hall)이다.

이 만찬행사는 노벨상의 상징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스톡홀름 시청사를 건축한 라그나르 외스트베리(Ragnar Östberg)

 

사실 블루홀에는 그 이름에 흥미로운 반전이 있다. 블루홀이라는 이름과 달리 내부는

푸른색이 아니라 붉은 벽돌로 가득하다.

 

처음 설계할 때 외스트베리는 벽과 공간을 파란색으로 마감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하지만 벽돌 자체가 만들어내는 색감과 질감이 아름다워 이를 그대로 드러내기로

했고, 처음 구상했던 이름은 그대로 남은 것이다.

 

이름과 실체가 다른 이 공간은 오히려 시청사를 대표하는 독특한 건축적 특징이

되었다.

▲노벨상 만찬이 열리는 스톡홀름 시청의 블루홀

외스트베리가 이 공간을 설계하며 품었던 생각은 실내에 있으면서도 야외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천장이 있지만, 안뜰에 들어선 것처럼 느껴지도록 공간을 구성했고 창과 벽,

천장의 관계를 세심하게 조율했다.

 

이 설계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궁전, 특히 베네치아의 건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사실 외스트베리는 블루홀을 이탈리아 궁전의 안뜰처럼 하늘이 열린 공간

으로 설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스웨덴의 혹독한 겨울 추위와 폭설을 고려해 결국 지붕을 씌우게 된 것

이다. 블루홀의 넓은 계단 역시 베네치아 도제 궁전의 기념비적인 계단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톡홀름 시청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

계단 맞은편 벽면 위쪽에는 12각 별 하나가 새겨져 있다. 계단을 내려오며 이 별을

바라보면 시선이 가장 자연스럽게 정돈돼 사진을 찍기 좋은 순간이 만들어

진다고 한다. 노벨상의 밤은 이 붉은 벽돌의 푸른 홀에서 절정에 이른다.


 

 

해발 3,650미터,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고산 도시. 수도 ‘라파스(La Paz)

▲해발 약 3,650미터에 위치한 볼리비아 라파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다.

 

볼리비아는 남아메리카 중부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이곳 행정수도인 라파스는 해발

약 3,650미터 고원에 자리잡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다.

 

도시지만 가파르고 복잡한 지형이 험준한 산길 못지 않은 이곳에서 하늘을 가로지르

는 케이블카는 인기 대중교통수단 중 하나다.

 

멋들어진 관광명소는 많지 않지만,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고산 도시’라는 타이틀이

라파스 여행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볼리비아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남아메리카 볼리비아 위치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중남미 국가들 중  스페인어를 자국의 공용어로 사용하는 지역들.

 

▶남미에서 스페인어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

과테말라, 니카라과, 도미니카 공화국, 멕시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우루과이, 적도기니, 칠레, 코스타리카,콜롬비아,

쿠바,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푸에르토리코.

▲쾌청한 날에는 케이블카에서 주변 설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생애 가장 높은 곳을 여행한 건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때였다. 최고 높이가 해발 4,200미터

쯤 됐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말 그대로 험준한 산길을 오르는 여행이었으니, 주변이 죄다

하늘에 닿을 듯 쭉 뻗은 거대 산맥이 배경이었다.

 

도시는 물론이고 작은 마을조차 쉬이 찾을 수 없는 매우 높고 가파른 길, 그러니 어느곳을

가더라도 해발고도가 수천 미터에 달한다고 하면 그다지 놀랄 만한 요소가 되지 못했다.

 

라파스에 닿자마자 불현듯 히말라야 트레킹의 추억이 되살아난 건 예상하다시피 이 도시

의 ‘해발고도’ 때문이다.

 

볼리비아의 행정수도인 라파스는 해발 약 3,650미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다. 때문에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고산 도시’라는 별칭이 붙는다.

▲라파스 도로나 길은 평지가 거의 없고 가파른 경사로가 대부분이다.

 

안데스 산맥의 협곡과 알티플라노 고원에 자리 잡고 있는 라파스는 가파르고 복잡한

지형이 험준한 산길 못지 않다. 반면 다른 대도시에 걸맞게 각 지역마다 촘촘히 들어

선 빌딩과 주택, 상점가 등이 얽히고설켜 수치상의 해발고도를 자칫 잊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진 않는다. 도시를 구성하는 도로나 길은 평지가 거의 없는 데다

경사가 다소 가파르다 보니 발걸음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금세 가쁜 숨이 차올라 산속

트레킹의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라파스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엘알토 지역은

해발 약 4,000미터에 달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라파스가 서울이고 엘알토가 인천쯤 된다. 이곳에 위치한 엘알토

국제공항은 세계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국제공항으로 유명하다.

 

남부 외곽 지역은 나름 ‘저지대’라 불리는데 그래 봤자(?) 해발 3,100미터를 웃돈다.

우스갯소리로‘ 라파스 중심부에 머물다 고산병에 걸리면 남부 저지대로 피신하라’

라는 말이 있다.

▲차량과 인파로 높은 혼잡함을 나타내는 라파스 중심부 거리 풍경

 

히말라야 트레킹에 맞먹는 수준의 해발고도 적응기는 라파스 여행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부분이다. 산소가 부족한 이 도시에서 ‘빨리빨리’로 통하는 한국인의 행동양식은 매우

적절치 않다. 나무늘보의 몸놀림과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어차피 라파스 중심부 어디든 혼잡하기 이를 데 없어 속도를 바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파, 경적을 울려대며 디젤 매연을 뿜어내는 차량들, 여기에 노점

상들의 행렬로 가득한 라파스 도심의 거리는 마치 맥시멀리스트의 세상 같다.

 

도시의 특성은 비단 해발고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길을 걸을 때마다 폐 속에 미세먼지

가 한가득 들어찬 것 같은 답답함이 가슴을 누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펼쳐

진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고산 도시의 모습은 실로 놀랍고 특별하다.

▲차량과 인파로 높은 혼잡함을 나타내는 라파스 중심부 거리 풍경

 

라파스에서는 대중교통수단도 특별하다. 전망대까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케이

블카가이곳에선 일상을 움직이는 대중교통시스템 중 하나다.

 

현지인에게는 매일같이 출퇴근을 돕는 이동수단이지만, 관광객에게는 최고의

액티비티가따로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세계 최고 높이의, 가장

긴 공중 케이블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케이블카 시스템으로 매일 30만 명의 승객을

수송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의 케이블카 시스템은 라파스와 엘알토를 포함하는 광역권의 과도한 교통

체증을해소하고자 건설되었다.

 

무엇보다 교통체증이 야기하는 대기 오염과 소음 공해 등의 심각한 환경 문제가

케이블카 시스템 건설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첫 노선인 레드 라인 운행이 시작된 건 2014년부터다. 이후 거의 매년마다 신규

라인이 하나씩 개통되면서 현재 총 노선은 10개로 늘었다.

▲해발 3,600~4,100미터를 오가는 세계 최고 높이의 가장 긴 공중 케이블카

 

케이블카를 타고 라파스와 엘알토를 오가는 여정은 일상적인 대중교통이라기보다 놀이공원

에서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경험을 안긴다.

 

형형색색의 케이블카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도시와 산비탈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데 생각

보다 아찔함이 상당하다. 케이블카에 탑승한 승객 가운데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현지인으로 추정된다. 케이블카가 수시로 덜컹거릴 때마다 요동

을 치는 승객은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높이의 케이블카를 타는 횟수가 늘어나면 현지인들처럼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무’의 상태에 도달하게 될 게 뻔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고산 도시 라파스의 아름다운 풍경

 

케이블카를 타고서 바라보는 고산 도시의 낮 풍경도 훌륭하지만 밤 풍경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 순간 심장이 쪼그라들 뻔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으로서 고산 도시

에서 케이블카를 타는 행위는 낮보다 밤에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그 위대한 풍경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어둠 속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를 장식한 전구가 반짝반짝 불을 밝히는 그 모습이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보는

라파스 밤의 풍경과 꼭 닮아 있다.

 

칠흑 같은 도시의 밤을 밝히는 건 수많은 주택의 조명과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진다.

▲매일 30만 명의 승객을 수송하는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케이블카 시스템 

 

한 가지 조언을 건네자면, 라파스 여행에서 케이블카 탑승 횟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떠나고 난 뒤 ‘그때 한 번 더 탈 걸’하는 후회가 남아선 절대 안 된다. 이건 실제 여행자의

경험담, 그러니까 그 후회가 아직도 내 가슴을 때린다는 뜻이다.

 

라파스 도심의 랜드마크는 산 프란시스코 광장이 대표적이다. 최대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광장 면적이 상당히 크다.

 

광장의 핵심이 되는 대성당을 중심으로 이를 둘러싼 세 개의 작은 광장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 형국이다. 이는 사가르나가 거리, 마리스칼 산타 크루즈 거리, 피게로아

거리, 란자 시장 등으로 연결된다.

▲라파스 도심의 랜드마크는 산 프란시스코 광장이 대표적이다.

 

규모가 크고 접근성이 용이하기 때문에 산 프란시스코 광장은 예로부터 정치적, 시민적

축제 행사 및 박람회, 전시회 등이 열린 장소로서 수세기 동안 주요 정치적 사건과 시위

의현장이 됐다.

 

특히 1952년 혁명을 승리로 이끈 3일간의 4월 봉기 동안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1971년

부터 1982년까지 독재 정권 이후 선출된 대통령 에르난 실레스 수아소는 망명에서 돌아

오자마자 이 광장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이며 시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기도 했다.

 

오늘날의 광장은 시민의 휴식을 위한 장소에 더 알맞다. 16세기와 18세기 사이에 지어진

산 프란시스코 대성당은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시설로 시민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라틴 십자형 평면과 아치형 지붕이 특징인 안데스 바로크 스타일의 대성당 건축 양식은

식민지시대 라파스에서 발전한 건축 기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산 프란시스코 대성당은 라파스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시설이다.

 

대성당과 이어진 사가르나가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자의 거리’라 불리는 이곳은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숙박시설부터 카페와 식당, 기념품 가게, 여행사, 환전소 등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다름 아닌 환전소다.

 

사실 환전소라기보다 ‘암시장’에 가깝다. 볼리비아 정부는 지난 6월 변동환율제를 도입

하면서15년 만에 달러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시 말해 지난 15년간은 암시장이 성행했다는 의미다.이는 볼리비아의 심각한 경제

위기를 불러온 가장 큰 원인으로 외화 부족은 물론 여기에 에너지 생산 감소까지

겹치자 볼리비아 정부가 변동환율제 도입을 선언한 바 있다.

 

이 선언이 있기 직전, 암시장이 성행할 당시에 볼리비아 여행을 했다면 사가르나가 거리

곳곳에서 달러 거래 현장을 목격하는 일이 일상이었단 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여행자의 거리’라 불리는 사가르나가 거리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가르나가 거리 곳곳에 자리한 환전소.

▲지역 무당들이 운영하는 마녀 시장

 

사가르나가 거리에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바로 ‘마녀 시장’의 존재다. ‘야티리’라고 불리는

지역 무당들이 바로 시장의 상인들이다.

 

해골과 악마의 눈을 막는 물약, 말린 개구리, 빗자루풀 같은 약용 식물, 안데스 의식에 사용

되는 동물의 태아 등을 판매한다. 그중 상점마다 가판대에 매달린 동물의 태아가 마치 인형

같아 충격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태아는 산악 지역의 추위로 죽은 어린 동물의 태아 또는 도축장에서

어미의 자궁에서 발견된 태아가 대부분이라지만, 그럼에도 마녀 시장은 동물 거래에

따른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장소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시장은 볼리비아 정부의 환경 보존 및 보호 정책에 의해 통제와

감시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사막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달의 계곡 입구 전경

 

라파스 도심에서 남쪽으로 초케야푸 강 협곡을 따라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달의

계곡’이 있다. 라파스의 번잡하고 시끌벅적한 도심에서 벗어나 피크닉 삼아 당일치기

로 여행하기 좋은 장소다.

 

광장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말라사 마을로 가는 미니밴 버스를 잡아탔다. 라파스의 대중

버스는 미니밴이 대다수인데, 대중버스라고 하기에는 정확한 버스경로나 안내도 없다.

 

승객이 하차 의사를 밝히면 그제서야 버스가 멈춘다. 그리곤 도로에 버스를 타려는 승객

이 나타나면 또 멈춘다. 셰어택시나 다름없다.

 

그러니 현재 위치를 확인하는 일은 승객의 몫이다. 달의 계곡 입구에 가까워지자 예상과

달리 버스기사가 먼저 내게 하차 의사를 묻는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장소라

버스기사가 발 빠른 행동을 보인 것이다.

▲달의 계곡이란 지명은 1969년 볼리비아를 방문했던 아폴로 우주선 선장

닐 암스트롱이 지은 것이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그가 이곳 풍경을 본 뒤 달 탐사 당시 보았던 분화구와 매우

흡사하다고 표현하며 그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계곡’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과대평가된 면이 없지 않다. 전문가들은 ‘황무지’에

가까운 곳이라 평하기 때문이다.

▲달의 계곡 곳곳에는 페드로 선인장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선인장이 자란다.

침식된 비탈면의 미로 같은 협곡과 뾰족한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달의 계곡

가장 높은 지점에 전망대가 위치해 있다.

 

어쨌든 달의 계곡은 침식 작용으로 산 정상부가 깎여 나간 장소다. 지반이 단단한 암석이

아닌 점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황무지라 일컫는 이유다.

 

수세기 동안 자연의 힘이 작용하여 침식된 비탈면의 미로 같은 협곡과 뾰족한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지형은 독특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보면 볼수록 ‘매우 특별한 거친 땅’이라는 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굴 천장을 장식한

고드름 모양의 종유석이 사막화 버전으로 눈앞에 펼쳐진 것 같은 풍경이다.A와 B코스로

구성된 두 개의 산책코스가 제법 잘 조성되어 있다.

▲두 개의 코스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A코스는 30분, B코스는 1시간가량 소요된다.

 

그 코스를 걸으며 바라보는 풍광은 색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산의 광물 함량이 산마다

다르기 때문에 산 면의 색깔이 다양하여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것. 연한 살색부터 갈색,

붉은색, 짙은 보라색까지 색의 미세한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를 안긴다.

 

최근 들어 도시 개발로 인해 달의 계곡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실로 안타까운

소식이다. 수세기 동안 켜켜이 쌓여온 자연의 힘은 관광명소 이상의 의미를 만들고

있는건 자명한 사실이다. 아무쪼록 달의 계곡이 영원하길 빈다.

▲달의 계곡 너머로 보이는 말라가 마을, 안타깝게도 개발로 인해 달의 계곡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지구서 가장 아름답다” 극찬받은 섬ㅡ요즘 핫한 허니문 여행지.

▲유럽인이 사랑하는 휴양지 스페인 마요르카는 찬란한 바다뿐 아니라 웅장한산도 품은 섬이다.

 트라문타나 산맥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트레일 '카미 드 보케르'를 걷다가 마주친 풍경.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 자연이 가진 선명함과 신비로움이

 이곳 바다와 하늘에 모두 녹아 있다.” 

1838~39년 쇼팽과 함께 스페인의 섬 마요르카(Mallorca)에서 넉 달을 지낸 
소설가 

연인 조르주 상드가 남긴 문장이다. 마요르카는 유럽인이 사랑하는 휴양지다. 

봄부터 가을까지 섬으로 몰려드는 유럽인이면 상드의 저 문장에 동의할 테다.

요즘은 한국인도 마요르카를 많이 찾는다. 바르셀로나·마드리드 같은 도시에서
문화

와 미식을 탐닉하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열심히 걷던 한국인이 스페인이 자랑하는

휴양 섬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중순, 마요르카에서 1주일을 지냈다. 정말 도처에 신비가 깃들어 있었다. 

▲스페인 마요르카 섬 전도.

▲스페인 마요르카 위치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마요르카 팔마 항구

▲마요르카 남쪽에는 멋진 해변이 많다. 가족 여행객이 많이 찾는 칼라 페티타 해변.

 

마요르카 하면 바다다. 제주도 곱절 크기의 섬이 쪽빛 찬란한 지중해 한복판에 자리

하고 있으니 얼마나 멋진 해변이 많겠나.

 

칼라도르(Cala dor).

 

팔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렌터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칼라(Cala)’ 혹은

‘칼로(Caló)’는 좁은 만(灣)과 갯마을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단애(斷崖)가 발달한 섬

남쪽에‘칼라’가 많다. 호텔에 짐을 풀고 달려간 해변 ‘칼라 페티타(Cala petita)’는

과연 눈부셨다.

 

옥빛 바다에 뛰어들어 스노클링을 즐겼다. 낮 기온이 25도였는데도 살갗이 아릴 만큼

볕이 따가웠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스페인 사진가 요시고의 작품 배경으로 유명한 칼로 델 모로. 

해안 절벽과 동굴,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이 눈부시다.

 

서쪽으로 15분쯤 차를 몰아서 ‘칼로 델 모로(Caló del moro)’를 찾아갔다. 한국

에도 팬이 많은 스페인 사진가 요시고의 작품 배경으로 유명한 해변이다. 

 

주차장에서 마을 길을 약 15분 걸은 뒤 아찔한 벼랑을 10분 더 걸으니 작품 같은 

절경이 펼쳐졌다.

U자 모양의 아담한 만과 절벽, 해식 동굴과 영롱한 빛깔의 바다, 둥둥 떠 있는 
사람

들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한국인 신혼부부가 유난히 많았다. 

 

칼로 델 모로에는 화장실, 샤워실, 카페 같은 편의시설이 없다. 수건과 물을 챙겨

가길 권한다. 불법 주차도 엄격하게 단속한다.

▲마요르카 중부 소도시 '마나코르'에 자리한 라파 나달 아카데미. 나달을 추억하고 

테니스를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바다를 원 없이 즐긴 뒤 섬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스페인의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이 그의 고향 ‘마나코르(Manacor)’에 세운 테니스 훈련장 ‘라파 나달 

아카데미’를 찾아갔다.

 

 2018년 개장한 아카데미는 박물관, 기념품 가게, 호텔도 갖췄다. 나달의 흔적을 

둘러보고, 그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도 샀다. 언젠가 이곳에서 라켓을 휘둘러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카데미는 강습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폴렌사 지역 농가 숙소의 조식 뷔페에는 다양한 종류의 햄과 치즈가 올라온다.

 

마나코르에서 북쪽으로 다시 1시간을 달려 폴렌사(Pollença)라는 소읍의 농가 숙소로

 이동해 이틀 밤을 묵었다.

 

 9유로(약 1만3500원)라는 가격이 황송한 조식부터 염소와 조랑말이 뛰노는 열대정원,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꿀잠을 선사한 300년 묵은 고택까지. 사흘이 아니라

 한 달을 머물고 싶은 낙원이었다.

폴렌사 도심에서 열리는 일요시장도 정겨웠다. 올리브유와 와인, 수제 햄 등 
지역에서 

생산한 농축산물과 수공예품이 저렴했다.

 

 마요르카가 스페인에서 가장 물가가 비싸다는 말은 여기서 통하지 않았다. 단, 줄지어

선 차를 따라서 노상에 주차했다가 40유로짜리 과태료 딱지를 

받은 건 속쓰린 기억이었다.

▲마요르카 팔마 스페인 마을.

▲칼바리오 계단에서 내려다본 폴렌사 구도심 풍경

 

365개로 이뤄진 ‘칼바리오(El Calvari) 계단’은 꼭 걸어봐야 할 마을의 명물이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선 언덕을 다 걸어 오르니 아담한 예배당이 나왔다.

여기서 굽어보는 마을 풍경이 딱 그림엽서였다. 

▲왕복 6km 거리의 트레일 '카미 드 보케르' 반환점은 칼라 보케르 해변이다.

석회암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이 근사하다. 

 

마요르카 북부에는 ‘트라문타나(Tramuntana) 산맥’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최고봉(1445m)을 오르지 않더라도 걸을 만한 트레일이 수두룩하다. 폴렌사

 인근, 왕복 6㎞ 거리의 트레일 ‘카미 드 보케르(Camí de Bóquer)’를 걸어봤다.

건조한 석회암 협곡이어서 미국 서부의 사막을 닮았는데, 반환점인
‘칼라보케르’

에 도착하니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누런 석회암 계곡과 쪽빛 바다가 기묘하게 어우러졌다. 길을 걷는 내내 야생

염소를 마주쳤다. 어떤 녀석은 간식을 내놓으라며 졸졸 따라붙었다. 

▲트레일을 걷는 내내 야생 염소를 마주쳤다.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는

염소도 많다.

 

산맥 북서쪽 자락, 쇼팽이 지냈던 마을 ‘발데모사(Valldemossa)’는 관광객이

꼭 찾는 곳이다.

 

그가 요양했던 수도원은 밖에서 봐도 멋지고, 안에서 내다보는 풍광도 근사하다.

쇼팽은 여기서 ‘빗방울 전주곡’을 비롯한 숱한 명곡을 만들었다.

 

인근 항구도시 ‘소예르(Sóller)’는 나무로 만든 트램이 다니니 함께 들러볼 만하다.

당장 쇼팽과 상드가 손잡고 트램에서 내릴 듯 고풍스럽다.

 

소예르 항구에서는 황홀한 석양도 감상했다. 이곳에서도 다정한 포즈로 기념사진

을 찍는 한국 허니무너를 자주 마주쳤다. 

▲트라문타나 산맥 북쪽에 자리한 소도시 소예르는 고풍스러운 목조 트램으로 유명하다.

도심뿐 아니라 해변까지 트램이 운행한다. 

▲소예르 항구에서 본 낭만적인 석양.

 

섬 최대 도시 ‘팔마’는 서울 명동 뺨칠 만큼 어수선했다. 고층 빌딩과 명품 숍

늘어선 거리가 하도 요란해 농가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우디가 내부를 개조했다는 ‘팔마 대성당’은 의외로 천재 건축가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진 않았다. 가우디는 훨씬 획기적인 인테리어를 계획했으나,

교회 보수파와 갈등을 빚어 현장 감독을 중도 하차했다고 한다. 

◆ 여행 수첩

마요르카의 여행 최적기는 5~6월, 9~10월이다. 7~8월은 너무 덥고 유럽 바캉스 

여행객이 들끓어서 항공, 숙소가 비싸다.

 

한국에서 마요르카를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유럽의 주요 허브 공항을 경유해 

바로 섬으로 가거나, 바르셀로나·마드리드 같은 스페인 도시에서 저비용항공을 

타거나. 이번에는 KLM 네덜란드항공을 이용했다.

 

 KLM의 자회사인 트랜스아비아가 3~10월 팔마를 취항해서 인천~암스테르담~팔마

 연결이 가능하다.


마요르카에서는 렌터카가 있어야 편하다. ‘레코드고’라는 스페인 렌터카 업체
를

이용했다.

 

할인 기간에 예약해서 쌌지만(1주일에 약 12만원) 공항 대기 줄이 무척 길었고,

추가 요금 문제로 직원과 실랑이도 벌였다.

 

허츠, 유럽카 같은 글로벌 업체가 비싸긴 해도서비스가 좋다. 무작정 렌터카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최저가 만찾지 말고, 계약 내용과 이용자 후기를 살피길 권한다.

알딸딸 드론쇼…요즘 청춘, 당진에 빠졌다…아미들은 술 마시러 오는 까닭. 

▲당진 면천읍성. 성곽 안쪽에 유적지와 이름난 콩국수집, 서점·카페·잡화점 같은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충남 당진 여행에 새 재미가 더해지면서 젊은 여행자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낮에는 

아담한 서점과 소품 가게가 자리 잡은 읍성 골목을 거닐고, 밤에는 삽교호에서 

드론 1000대가 펼치는 빛의 쇼를 본다. 

 

중간에는 ‘아미’라는 이름의 특산주도 한 잔 곁들인다. 요즘 충남 당진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들이다.

▲당진 삽교호 드론 라이트쇼가 10월 17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8시에 펼쳐진다.

사진은 드론으로 표현한 당진 장고항 등대의 모습.

 

지난달 12일 오후 8시. 삽교호 바다공원 잔디밭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지상에 흩어져 있던 1000개의 불빛이 한꺼번에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대열을 맞췄다. 

 

불빛이 밤하늘에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솔뫼성지·대관람차·장고항 등 당진 명물을

 차례로 그려냈다. 형상이 완성될 때마다 바다공원 잔디밭 곳곳에서 “와” 하는 탄성이 터졌다.

‘당진 삽교호 드론 라이트쇼’는 요즘 당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콘텐트다. 올해 상반기

여섯 차례 공연에만 약 25만명이 몰렸다.

 

2024년 8월 첫선을 보인 뒤 누적 관람객이 150만명을 넘어섰다. 올가을에는 오는 17일까지

매주 토요일(3·10·17일 오후 8시, 회당 약 12분) 드론 라이트 쇼가 이어진다. 바다공원

잔디밭 전체가 관람 명당이다.

 

드론 쇼가 있는 날이면 삽교호 일대가 축제 분위기다. 풍물과 댄스 등 각종 공연이 이어지고 

횟집·카페·어시장도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박두신 삽교호 관광지 번영회장은 “평소보다 다섯 배가량 사람이 몰린다”며 “횟집·카페·

어시장 할 것 없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당진 삽교호 놀이동산의 대관람차. 해 질 녘 기념사진을 담으려는 여행자들이 놀이동산

뒤편 논두렁으로 몰려든다.

 

바다공원 뒤편에는 삽교호 놀이동산이 있다. 세월 탄 간판과 놀이기구 덕분에 젊은 여행자

에게 ‘레트로 여행 성지’로 통하는 곳이다.

 

논두렁 끝에 대관람차가 걸리는 독특한 풍경으로 유명하다.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에서 두 주인공 변우석과 김혜윤이 회전목마를 타는 장면도 여기서 찍었다. 입장료가

없어 놀이기구를 타지 않고 사진만 찍고 나와도 된다. 

▲하늘에서 본 아미산. 해발 349m로, 당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당진은 예부터 술 이야기가 깊은 고장이다. 봄철 아미산(349m) 자락에서 딴 진달래꽃

으로 술을 빚어 백일 가까이 숙성하는 ‘면천두견주’가 지금도 명맥을 잇는다.

1986년 교동법주·문배주와 함께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전통 명주다. 

 

요즘 이 술 고장에서 새롭게 이름을 알리는 곳이 순성면 왕매실마을이다. 둑방에 심은

매실나무 1만 그루에서 수확한 열매로 매실청을 만들다가 2020년부터 ‘순성브루어리’

라는 이름으로 증류주와 막걸리에 수제맥주까지 생산하고 있다.

▲아미주는 당진 쌀과 순성면 특산물인 왕매실로 빚은 증류주다.

 

왕매실마을의 대표 상품은 아미산에서 이름을 딴 ‘아미주’다. 당진 쌀로 빚은 술에 매실 

원액을 더한 증류주로, 40도의 높은 도수에도 ‘싱그럽고 청량하다’는 평이 많다. 

마을에서 매실 따기, 매실청 담기, 술 시음 같은 체험도 운영한다.

아미주는 BTS 팬덤 ‘아미(ARMY)’와 관련이 없지만, 같은 이름 덕에 입소문을 탔다. 

백윤기 순성브루어리 대표는 “3년 전 방송에서 유재석씨가 BTS 지민에게 아미주

를 선물하자 밤새 주문 알림이 울렸다”고 회상했다.

순성면에만 카페 ‘아미루트’, 음식점 ‘아미여울’, ‘아미미술관’처럼 이름에 ‘아미’를 

단 곳이 여럿 있다. BTS 팬들이 일부러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최근에는 이들 명소를 돌아보는 ‘아미로드’ 스탬프 투어까지 생겼다.

당진시도 지난 8월 ‘아미쌀’을 출시했는데, BTS를 연상시키는 보랏빛으로 쌀 포대

를 꾸몄다.‘아미’라는 이름이 술과 쌀을 넘어 당진의 관광 브랜드로 확장되고 있다.

▲지난 8월 출시한 당진 아미쌀.

▲당진 면천읍성 군자정. 아담한 연못 한가운데 정자가 들어앉아 있다.

 

면천읍성은 당진에서도 시간이 오래 쌓인 동네다. 조선 시대에 쌓은 성곽과 향교, 

선비가 풍류를 즐기던 정자와 연못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용했던 읍성 골목에 최근 서점과 카페, 잡화점 등이 하나둘 생기면서 젊은 여행객

이 부쩍 늘었다. 옛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가게가 많아 골목 전체가 영화 

세트장 같다.

▲면천읍성의 서점 ‘오래된 미래’.

 

 면천읍성 객사 앞 서점 ‘오래된 미래’는 1952년 지은 옛 자전거포를 고쳐 2019년

 문을 열었다. 1층에는 그림책과 소설 등이 놓였고, 2층은 예약제로 빌려 책을 

읽는 공간이다.

▲오래된 미래’ 2층 공간에서 맞은편 면천읍성 객사가 한눈에 내다보인다.

▲면천읍성 객사 앞의 기념품가게 ‘진달래상회’와 서점 ‘오래된 미래’. 

 

읍성 골목의 옛 막걸리집은 지역 화가가 운영하는 기념품 가게 ‘진달래상회’가 됐고,

 옛 우체국에는 카페 ‘미인상회’가, 옛 농협 건물에는 카페 ‘면천창고’가 들어섰다.

윤미경 진달래상회 대표는 “예전엔 밥만 먹고 떠나는 동네였는데, 서점 같은 작은 

상점을 찾아 일부러 온다”며 “동네가 확실히 젊어졌다”고 말했다.

▲초원콩국수’의 서리태 콩국수. 콩물이 진하고 담백하다. 10월 중순까지만 영업한 뒤,

이듬해 봄 다시 문을 연다.

 

면천읍성은 당진에서 이름난 국수 동네이기도 하다. ‘초원콩국수’ ‘에이스식당’

 ‘김가면옥’처럼 수십 년을 이어온 콩국수집이 허다하다. 대부분 서리태를 

사용해 콩물이 진하다. 

 

초원콩국수처럼 콩국수철에만 문을 여는 집도 있다. 올해는 이달 중순까지 

콩국수를 판다.

면천읍성 안쪽에 주요 관광지와 식당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콩국수 한 그릇

먹고 느긋하게 둘러봐도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지난 5월에는 남문 앞에 당진시가 조성한 한옥 숙박시설 ‘성안마을’이 문을

열었다. 읍성 여행에 이제는 하룻밤이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

순백의 설국 내려앉기 전 붉게 타오르는 단풍…스쳐가는 ‘가을의 전설’

▲소운쿄에서 구로다케(黑岳) 로프웨이를 타고 1500m 지점까지 오른 뒤, 거기서 다시

갈아타고 7분 능선인 1700m까지 올라가는 리프트에서 본 단풍이 든 다이세쓰잔 풍경.

초록의 신우대와 활엽수 단풍, 침엽수림이 어우러졌다. 이 일대는 일본에서

단풍이 가장 먼저 드는 곳이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는 눈(雪)의 땅이다. 겨울엔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세상을 보러 가고,

여름엔 서늘한 바람을 쐬러 간다. 그런데 한동안 해마다 가을에 홋카이도로 갔다.

 

단풍을 보러. 올해가 다섯 번째, 내리 4년째다. 해마다 같은 곳에 가서, 같은 일정으로, 같

은 호텔에 묵었다. 날짜도 늘 10월 첫째 주 아니면 둘째 주였다.

 

첫 주에 가면 단풍이 덜 들어 아쉬웠고, 둘째 주에 가면 늦은 것 같아 아쉬웠다. 단풍 시기

만 따질 수 없었던 건 10월 초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휴 때문이었다.

 

다 같이 움직이는 연휴가 끼면, 항공료부터 모든 비용이 껑충 뛰니 피해야 한다. 시간도

없지만, 돈은 더 없으니까.

 

연례행사처럼 다녀오던 그 가을 여행이 올해로 마지막이 될 것 같다. 현지 사정이 달라진

것도 있고, 마음이 변한 것도 조금 있다.

 

누구에게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떠오르는 여행지가 하나쯤 있지 않은가. 자주 가지는 못

해도 마음 한쪽에 담아 둔 곳. 지금부터는 몇 해 동안 마음을 빼앗겼던 그곳,

소운쿄(層雲峽)의 가을 이야기다.

▲자그마한 온천마을 소운쿄의 전경. 건물들이 서구풍이라 유럽의 산중 같은 느낌이다.

 

먼저 작년 가을 경험했던 소운쿄 여행 얘기부터. 작년엔 예년보다 1주일쯤 늦은 10월

중순쯤소운쿄에 갔다. 기록적으로 길었던 연휴를 피하느라 그랬다.

 

절정의 단풍은 일찌감치 포기한 상황. 설상가상으로 기온은 뚝 떨어지고 비 예보까지

내려진 터였다. 출발 전부터 이번 단풍 여행은 망쳤다고 체념했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가을비에 젖은 단풍이 그렇게 아름다울 줄 미처 몰랐다.

 

비에 젖은 협곡은 빛깔이 한층 깊었다. 물기를 머금은 단풍은 마른 단풍보다 색이 짙

었고, 젖은 바위는 더 검었다. 산허리에 걸린 구름이 협곡을 들락거렸다.

 

비가 잠깐 그친 사이에 계곡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선명한 무지개까지 걸렸다. 그것도

쌍무지개였다. 일찌감치 접어 둔 기대 때문이었을까.

 

그날 본 단풍의 인상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았을 만큼 깊고 진했다.이튿날 아침 풍경

은더 근사했다. 산 아래를 적신 비가 산 위에서는 밤새 눈으로 바뀌었다.

 

협곡에는 아궁이에 장작을 넣은 듯 단풍이 활활 타오르는데, 산정은 하얀 눈을 이고

있었다. 뜨거운 단풍과 차가운 눈이 맞닿은 경계쯤에서 ‘치익~’ 하는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눈과 단풍이 만나 그려낸 풍경은 말 그대로 선경(仙境)이었다.

 

해마다 이런 식이었다. 그해의 눈부신 가을 풍경에 대한 감동이, 이듬해 똑같은 코스의

가을 여행을 이끌었다.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내년 가을 여행 일정을 정하고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그렇게 네 번의 여행이 이어졌다.

▲다이세쓰잔에서 오히비로쪽으로 내려서는 미쿠니고개에서 바라본 전경.

‘숲의 바다’라 부를만 하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드는 산

 

소운쿄는 다이세쓰잔(大雪山) 북쪽 자락에 있다. 가오리연처럼 생긴 홋카이도 지도를

펼쳐놓고 정중앙을 찍으면 거기가 바로 다이세쓰잔이다. 1934년 일본 국립공원

으로 지정된 다이세쓰잔은 일본의 국립공원 중 가장 면적이 넓다.

 

다이세쓰잔은 봉우리 하나의 이름이 아니다. 최고봉 아사히다케(旭岳·2291m)를중심

으로 2000m급 고봉들이 줄지어 늘어선 산군(山群)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이런 식의 작명은 우리도 익숙하다. 설악산이며 지리산이란 산 이름이 특정한 산봉우리

하나가 아니라 대청봉 혹은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주변 산을 통칭해 부르는 이름인

경우와 똑같으니까.

 

‘홋카이도의 지붕’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다이세쓰잔은 높고 깊다. 산 이름 ‘다이

세쓰’를 한자로 읽으면 ‘대설(大雪)’이다.

 

눈 많기로 이름난 홋카이도에서 대체 얼마나 눈이 많이 내리길래, 이런 이름을 얻었을까.

소운쿄가는 길에 하루 묵어갔던 소도시 아사히카와(旭川)의 호텔 직원은 “겨우내 다이

세쓰잔에는 눈이 3m 넘게 쌓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10월 중순도 되기 전인데, 벌써 산정에는 희끗희끗 눈이 보였다.다이세

쓰잔을 대표하는 건 무리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사히다케다.

 

하지만 단풍으로 겨룬다면 구로다케(黑岳·1984m)가 맨 앞이다. 일본 전역을 통틀어

가장 먼저 단풍이 든다는 다이세쓰잔에서도, 가장 이르게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이

구로다케다. 9월 초순이면 정상부터 붉어지기 시작한다.

 

구로다케 단풍이 빠르기만 한 게 아니다. 활화산 특유의 황량한 기운이 감도는 아사히

다케와 달리, 구로다케는 빽빽한 자작나무 숲이 가을이면 풍성한 단풍의 바다를

이룬다.

▲소운쿄 협곡 곳곳에 있는 폭포 중 가장 유명한 류세이(流星) 폭포. 바로 옆에

깅가(銀河) 폭포도 있다.

 

소운쿄란 지명의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으면 층운협(層雲峽)이다. ‘구름이 겹겹이

쌓인 골짜기’란 뜻이다. 이름처럼 소운쿄는 거친 협곡 안쪽에 있다.

 

다이세쓰잔 북쪽을 흐르는 이시카리강을 따라 높이 100~200m의 깎아지른 절벽이

20㎞ 넘게 이어진다. 이 협곡이 통째로 단풍으로 물들었을 때의 장관을 감히 표현할

재주는 없다.

 

탄성이 한숨처럼 터지는 광경 앞에서 그저 속수무책일 따름이다.그런데도 소운쿄는,

홋카이도의 다른 이름난 관광지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홋카이도 여행자의 대부분은 삿포로를 기점으로 아사히카와 남쪽의 비에이와 후라노

를 둘러본다.

 

비현실적인 푸른 물빛의 ‘청(靑)의 호수’와 ‘흰수염 폭포’, 숲속 요정의 집을 닮은 ‘닝구

루 테라스 라벤더가 진 뒤에도 꽃밭이 구릉을 넘실대는 ‘팜 도미타’가 그쪽에 몰려 있다.

 

소운쿄에 가려면 그 유혹을 다 뿌리치고 방향을 틀어야 한다. 게다가 삿포로에서 렌터

카로 앞만 보고 달린다 해도 3시간쯤. 대중교통편이라면 꼬박 4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소운쿄까지 오는 여행자들이 적을밖에….

 

소운쿄에서 온천이 처음 발견된 건1900년이다. 처음엔 발견자 시오타니(鹽谷) 부자의

이름을 따 ‘시오타니 온천’이라 불렸다.

 

물이 좋긴 했지만, 그때는 길조차 변변히 없는 험한 산속이었으니 거기까지 온천을 하러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물고기 등지느러미같은 협곡의 암봉 아래로 단풍이 타오르고 있다.

 

이 골짜기와 온천을 세상에 알린 건 시인이자 여행가 오마치 게이게쓰(大町桂月)였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써내려간 그의 여행기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다이세쓰잔의 한 봉우리를 그의 이름을 따 ‘게이게쓰다케(桂月岳)’라 부르는 것만 봐도,

그의 기행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921년 빌린 천막과 쌀을 짊어지고 홋카이도 각지를 여행하던 시인은, 이곳에 이르러

‘구름이 층층이 쌓인 협곡’이란 뜻의 소운쿄란 지명을 붙여줬다.

 

105년 전 여행기에서 그는 소운쿄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천하의 절승(絶勝)’이라고

적었다.

 

놀라움과 찬탄이 여행기 문장마다 뚝뚝 묻어난다. “‘기이하다’고 해도 다 할 수 없고, 영

묘하다’고 해도 다 할 수 없다. 오직 귀신이 천상에 누각을 지을 수 있을까 생각할 뿐이다.

 

” 또 이런 대목도 있다. “이만큼 신비로운 암봉(岩峰)을 본 적이 없다. 경탄하며 돌에

무릎을 꿇어도 부족함을 느껴 술 한잔을 기울이며 산의 영혼에 사과한다.”

 

산 앞에 무릎을 꿇고도 모자라 술잔을 기울여 사과하는 시인이라니…. 이런 탄성에

누군들 혹하지 않았을까.

 

여행기가 나온 지 불과 4년 만에 소운쿄는 오사카마이니치신문과 도쿄니치니치신문이

주최하고 철도성이 후원해 뽑은 ‘일본 100경(景)’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시카리강을 따라 20㎞ 넘게 이어지는 소운쿄 협곡의 한쪽 벽이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흰 건물은 소운가쿠다.

 

소운쿄 관광의 중심은 구로다케 로프웨이다. 이 로프웨이의 케이블은 본디 화물용이었다.

1954년 홋카이도를 강타한 기록적인 태풍 ‘마리’가 구로다케의 아름드리나무 뿌리를 뽑고,

줄줄이 쓰러뜨렸다. 그 나무들을 산 아래로 실어 내리려고 놓은 게 화물용 케이블이었다.

 

그걸 1967년 관광용으로 바꾼 게 지금의 로프웨이다. 태풍이 쓰러뜨린 나무를 나르던

줄이, 이제는 단풍 구경 온 관광객을 실어나른다.

 

로프웨이는 관광객을 단번에 구로다케 5분 능선까지 올려놓는다. 올라가는 내내 소운쿄

협곡이 발아래 펼쳐진다. 협곡의 스케일도, 그 협곡을 물들인 단풍도 감격스럽다.

 

고개를 돌리는 데마다 울긋불긋하다. 가장 압도적인 건 3분 능선쯤에 펼쳐진 자작나무

숲이다. 끝 간데없는 자작나무가 ‘수해(樹海)’, 곧 숲의 바다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올해는 좀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구로다케의 자작나무는 이미 잎을 다 떨궜다. 그래도

끝난 건아니었다.

 

다른 활엽수의 붉고 노란 단풍이 바탕색이 되고, 그 위로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 둥치

와 가지가 선을 그었다. 단풍색 캔버스에 펜으로 그린 추상화 같았다.

 

로프웨이 상부 정류장에서 숲길을 잠깐 걸으면 2인승 리프트로 갈아탈 수 있다. 리프

트는 해발 1500m, 구로다케 7분 능선까지 오른다.

 

스키장에서 흔히 보는 의자만 달린 간이 리프트다. 안전 바도 없이 앙상하지만 개방감

만큼은 대단하다. 온몸으로 산을 느끼는 듯하다.

 

리프트는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압권이다. 산정을 등지고 허공에 떠서 내려다

보면, 거대한 산을 품에 안은 것 같다.

 

로프웨이 요금은 3000엔, 리프트까지 타려면 900엔을더 내야 한다. 장담컨대 본전

생각은 절대 안 난다. 적어도 단풍철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소운가쿠(層雲閣) 그랜드호텔 로비. 모닥불이 피워져 있다.

 

산장과 호텔이 들어선 소운쿄 마을은 확연한 유럽풍이다. 1980년대 후반 거품경제 시절에

전성기를 누렸던 곳답게 일본인들이 동경하는 알프스 어디쯤의 산악마을을 빼닮았다.

 

매해 소운쿄에 갈 때마다 숙박한 곳이 ‘소운가쿠(層雲閣) 그랜드호텔’이다. 이 호텔의 가장

큰 매력은 로비 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운다는 것이다.

 

말이 모닥불이지 현대식 설비로 피우는 것이라 그을음도, 냄새도 거의 없다.모닥불 주위로

의자가 둥글게 놓였다.

 

온천욕을 막 마친 유카타 차림의 손님들이 하나둘 모닥불 앞에 모여서 말없이 불을 바라

본다. 깊은 숲속의 산장에 들어앉은 기분이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면서

‘이곳에 숨으면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호텔 로비 한쪽에는 우유와 음료, 아이스크림, 과자가 놓여 있다. 맥주 대여섯 종류에 와인,

위스키, 사케, 칵테일 등을 가벼운 스낵류 안주와 함께 마음껏 가져다 먹고 마실 수 있다.

 

소운가쿠는 소박하나마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다. 모닥불 곁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낯선 손님끼리도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모닥불의 온기와 함께 휴양지 특유의 기분 좋은

흥겨움이 슬그머니 번진다.

 

올인클루시브를 표방하지만 소운가쿠는 고급 숙소와는 거리가 멀다. 166개 객실을 가

진이른바 대중 호텔이다. 흠을 잡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국적을 불문하고 단체

관광객손님이 많다.

 

단체 몇 팀이 한꺼번에 밀려들 때면 로비와 식당은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중국 단체

관광객의 존재감은 여기서도 대단하다.

 

조망을 누리는 능선 위에 자리 잡은 다른 호텔과 달리계곡 길가에 바짝 붙어 있어 좀

답답하다는 것도 단점이다. 리뉴얼을 했다지만 1973년 지은 본관의 객실과 온천에는

어쩔 수 없는 낡은 티가 난다.

 

이런 단점을 일정 부분 상쇄하는 건 ‘가성비’다. 대게와 신선한 회를 포함해 알차게 차려

낸 저녁 뷔페 식사와 조식을 포함한 1박 2식 요금이 2인 기준 30만 원대 중반쯤이다.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니까 저녁 식사 때도 다양한 주류와 음료가 무제한 제공된다.

▲단풍물든 구로다케로 올라가는 로프웨이.

 

해마다 이 호텔을 다시 찾았던 건 모닥불이나 가성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운가쿠가

문을연 게 1923년이니 올해로 103년째다.

 

호텔을 연 아라이 하쓰이치(荒井初一)는 스무 살에 도야마(富山)에서 홋카이도로 건너

와 쌀장사와 토목업 등으로 돈을 번 사람이다.

 

그는 그 돈으로 시오타니 온천을 사들여 호텔을 열었다. 돈벌이만 한 게 아니었다. 사재를

털어‘다이세쓰잔 조사회’를 꾸려 학자들에게 고산식물 연구를 맡겼고, 소운쿄로 들어오는

도로를 닦는 데도 돈을 댔다.

 

낡은 호텔의 로비에 피워 놓은 모닥불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던 건, 어쩌면 그 오래된

내력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호텔에서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드물지만 있을 법한 실수였고, 구조적인

문제도아니었으니 구체적인 사연까지 이야기할 건 없겠다. 그래도 서운했다.

 

오래 마음에 두고 있던 곳이라 더 섭섭하게 느껴졌던 듯하다. ‘변심한 애인’을 바라볼 때의

느낌과비슷했다고나 할까. 해마다 다녀오던 이곳으로의 여행을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 일 때문이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이 여행을 끝내기 위해 찾은 핑계였을지도 모르겠다.홋카이도의

가을은 짧다. 다이세쓰잔에 첫눈이 내렸으니 소운쿄 협곡의 단풍도 이제 열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머지않아 협곡은 폭설로 뒤덮이리라.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썼다. 그런데 작년

그 아침이 자꾸 떠오른다.

 

비에 젖어 활활 타던 협곡과 그 위로 하얀 눈을 이고 있던 산정. 모닥불 앞에 둥글게 놓인

의자….

 

작년만큼은 아니었지만, 올가을의 단풍도 황홀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좀

아껴 둬야겠다.

◆별빛 물든 호수 옆 후스이 료칸

 

다이세쓰잔 남쪽 끝자락에 ‘시카리베쓰코(然別湖)’가 있다. 해발 800m 남짓한 산속, 홋카이도

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다. 물빛이 깊고 푸르다.

 

가을 색으로 물든 둘레의 산봉우리들이 그 푸른 물에 거꾸로 잠긴다. 호반에 오래된 료칸식 호텔

‘후스이(風水)’가 있다.

 

객실 창을 열면 호수가 발아래로 펼쳐졌다. 저녁상에 오르던 산천어구이는 별미였다. 한밤중

호숫가에 나가면 불빛 하나 없는 호수 위로 별이 쏟아졌다.

 

 

영국 에리리국립공원ㅡ아서 왕 전설 깃든 웨일스인의 자존심

▲ 산악 기차. 1896년부터 운행하고 있는 단 한 칸의 기차로, 랑베리스 마을에서 정상

바로 밑까지 7.5km를 오르내린다. 바라보이는 경관은 목가적이기도 하고

다소 황량하기도 하다. 

 

영국 웨일스 지역의 스노도니아(Snowdonia)국립공원의 공식 명칭이 ‘에리리(Eryri)

국립공원’으로 바뀌었다. 영어로 ‘눈 덮인 산’이라는 뜻인 스노도니아에서, 웨일스어

로 ‘고지대 산, 독수리 땅’이라는 의미로 바뀐 것이다.

 

웨일스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의 차이만큼이나 판이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

(England)는 웨일스어로 ‘클로이그르(Lloegr)’이다.

 

웨일스 사람들이 쓰는 영어 역시 잉글랜드식 영어와는 달라 알아듣기 어렵다.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 ‘지역국’을 합친 국가다.

 

그래서 ‘연합왕국 유케이(UK United  Kingdom)’라는 약칭을 쓴다. 정치·외교적으론

한 국가이지만, 사회·문화적으론 매우 이질적이어서 사이가 좋지 않다.

 

영국에서 가장 격렬한 축구 경기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시합이고,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종종 영국 정부와 갈등을 빚는다. 

웨일스도 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영어보다는 웨일스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2022년에 스노도니아국립공원 명칭을 웨일스어인 ‘에리리’로 바꾸고, 정상도 스노우돈

(Snowdon)에서 ‘이르 위드바(Yr Wyddfa)’로 바꾸었다.

 

웨일스 전설에 나오는 ‘거인의 돌무더기 무덤’이라는 뜻이다. 

▲웨일스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에리리국립공원. 에리리국립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아래는 흰 구름에 녹색 초원,

위로 갈수록 검은 구름에 갈색 황무지. 대부분의 영국 산은 고지대까지 벌목하고 양을

방목해서 나무가 거의 없다.

 

‘양이 만든 풍경(sheep landscape), 또는 양을 위한 풍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과

구릉이 초지로 변했다.

해발 1,085m인 이르 위드바는 웨일스와 잉글랜드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매년 60만 명이

정상을 밟는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아일랜드 섬까지 조망할 수 있다.

 

이르 위드바로 가는 탐방로는 6개 노선이 있는데, 가장 대중적인 루트는 랑베리스 패스

(Llanberis Pass)다. 에리리국립공원의 거점 타운인 랑베리스의 외곽에서 정상 까지

약 7.3km, 왕복 5~7시간 거리다. 

길의 대부분은 기찻길 옆으로 간다. 중간에 하프웨이 하우스(Halfway House)라는 카페

가 있어 쉬어 가기 좋다.

 

경사가 완만하고 정비가 잘되어 있어서 초보자가 가장 많이 찾는 코스다. 그러나 에리리

국립공원의 홈페이지에는 6개 노선 모두가 ‘어렵고, 힘든 코스(hard  and  strenuous)

라고 쓰여 있다.

다음으로 인기 있는 노선은 마이너스 트랙(Miner’s Track)이다. 해발 359m인 페니패스

(Pen y Pass) 고개에서 출발해서 3개의 호수를 통과한 후 마지막 힘을 짜내어 정상에

오르는 코스다. 6.5km 거리에 왕복 5~6시간이 걸린다. 

▲산악 기차와 함께 가는 랑베리스 패스. 위는 기차길, 아래는 등산로. 랑베리스

마을의 외곽에서 정상까지 7.3km, 왕복 5~7시간 걸린다. 정상으로 가는

가장 완만한 코스다. 

페니패스에서 출발해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피그 트랙(Pyg Track)도 유명하다.

경사가 급한 바위투성이 길에서 칼바위 능선 500m를 통과해야 하는, 난이도가

높은 코스다.

 

두 코스의 기점인 페니패스 주차장은 만차일 경우가 많으므로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정상의 바위산 꼭대기에는 사방의 지명과 거리가 새겨진 황금빛 동판이 있고,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꽤 많은데, 그곳에는 전설적인 아서 왕의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서 왕이 이곳에서 악명 높던 거인을 물리치고 그의 시신 위에 돌을 덮어 거대한

돌무더기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돌들은 슬레이트, 즉 얇게 쪼개지는 점판암이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궁전과 성당, 공공건물의 지붕 재료로 쓰여, 웨일스의 돌이 세계를 덮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관광 꼬마 기차 안 풍경. 기차를 탄 영국인들은 한국인과 닮았다. 표정들이 근엄하다.

멋진 풍경을 보면서도 좀처럼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상까지 어느 코스로 오르든, 챙 넓은 모자와 선크림, 식수가 필수적이다. 햇빛을

피할 나무 한 그루 없기 때문이다. 기상이 급변하는 경우가 많아 비옷과 방풍복을

가져가는것이 좋다.

 

오르고 올라, 산 정상에 서면 노동의 대가를 충분하게 보상받는다.정상에서 365도

돌아가며 사방팔방의 경관이 시야에 확 들어온다.

 

나무가 없어 속이 훤히 드러난 근육질 산체와 시퍼런 빙하호수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안개와 바람이 휘몰아치고 구름이 가득 끼더라도, 그런 사나운 풍경이 오히려 오랜

추억으로 남는다. 정상 바로 아래에 기차역을 겸하는 탐방안내소가 있다.

 

코끝이 찡하도록 차가운 바람을 뚫고 들어가, 두 손 모아 마셨던 뜨거운 핫초코와

따뜻한 파이 맛을 잊을 수 없다. 

▲랑베리스마을 에리리국립공원의 거점 타운이다. 예전 모습의 ‘색깔 있는’ 건물들

이나란히 늘어선 중심가가 인상적이다. 마을의 외곽에 예쁘게 지은 교회, 주택,

민박집이 많고, 드넓은 호수가 있다.

 

민박집(B&B)에서 내준 아침 식사는 너무 풍성하고 맛있어서 하루 시작을 행복

하게 해준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같은 풍경

정상에 가장 쉽게, 빨리 도착하는 방법은 산악열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가파른 경사

에서 기차가 밀리지 않도록 선로 가운데에 톱니궤도를 설치한 톱니열차다.

 

랑베리스역에서 정상 바로 밑까지 약 7.5km, 편도 1시간 걸린다. 1896년에 개통할

때와 같은 증기기관차는 지정된 날에만 운행하고, 보통 디젤 기차를 운행한다.

 

왕복 가격은 어른 기준 증기기관차가 13만 원, 디젤은 9만 원이다. 날씨가 나쁠 경우

정상에서 2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클로그윈Clogwyn역까지만 운행한다.

 

여기서부터 다소 가파른 길을 1시간 이상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겨울에는 선로가 얼

기 때문에 5월에서 10월까지만 운행한다. 

기차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은 신의 정원 같다. 카펫이 깔린 것 같은 연두색 구릉에 하얀

양들이 점점이, 또는 떼를 지어 풀을 뜯는 목가적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기차의 커다란 창틀은 액자가 되고, 풍경은 그 안에 담겨 그림이 된다. 그런 부드러운

풍경은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언덕의 굴곡이 깊어지면서 황량한 풍경으로 바뀐다.

 

풀밭이 벗겨진 험준한 산악의 맨살과 힘줄이 거칠고 투박하게 다가온다. 바람과 안개가

휘몰아치면, 이곳이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최고봉이고, ‘폭풍의 언덕’과 같은 거친 환경

의 소설이 탄생한 영국의 산임을 실감하게 된다. 

▲시골 저택 펜션.  에리리국립공원 남쪽 지역에 있는 외딴 건물. 17세기에

지은 시골풍 저택으로 공공 에너지 없이(off-grid) 전기와 물을 자급한다.

 

내셔널트러스트가 소유하고 있으며, 4인에 개 1마리를 동행하는 조건으로 1박에

약 55만 원이다.

에리리국립공원(2,142㎢)은 펑퍼짐한 구릉과 언덕으로 이루어진 지형에 15개의

1,000m급 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사이로 18개의 호수와 거친 계곡,

74km의 해안선이 굽이치는 다양한 풍경을 지니고 있다.

 

공원면적의 5%에 해당하는 110㎢의 숲이 자연림이라고 자랑할 만큼, 영국에서는

본래의 자연이 많이 남아 있는 국립공원이다. 


매년 400만 명 이상의 탐방객이 공원 구석구석까지 연결된 등산로와 마을길을 통해

산과 계곡, 강과 호수, 문화유적을 방문한다.

 

공원 안에서 2만6,000명에 이르는 주민이 농업, 목축업, 상업 등의 다양한 경제활동

을 하며 살고 있다.

 

영국의 15개 모든 국립공원이 그렇듯이, 공원구역 안에 들어가도 공원 바깥과 잘

구분되지 않는다. 


광대한 면적에 야생적인 경관이 있는 미국·캐나다·호주의 국립공원과 달리,이미

원시적인 자연이 사라진 영국에서는 ‘가장 영국적인 경관으로 남아있는 농촌

·산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따라서 영국 국립공원은 모두 자연의 바탕 위에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어우러진

‘문화경관’이다. 살아 있는 ‘삶의 터전 ‘일터의 현장’이 영국 국립공원의

정체성이다. 

▲에리리국립공원의 보석 스노돈 릴리.  에리리국립공원의 상징 마크에 새겨진

스노돈 릴리(Snowdon Lily 백합)와 오른쪽의 실물.

 

영국에서는 오직 에리리국립공원의 고지대 절벽에서만 자라는 희귀종이다.

공원구역 대부분이 사유지이고, 공원을 탐방하려면 사유지를 출입해야 한다. 따라서

땅 주인들에게 부탁해 통로를 열고, 그들과 지역사회에도 혜택을 주는 일이 국립공원

청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의회민주주의의 발상지답게, 이해관계자들끼리 대화와 타협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들처럼,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에서도 그런 이해관계가 ‘부드럽게’ 풀어졌으면 한다.

우리나라 자연의 아기자기한 풍경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외국의 거대하고 장엄한 국립

공원을 보면 다른 우주에 온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영국 국립공원의 낮은 구릉과 언덕에서 양이 풀을 뜯는 시골 풍경을 보면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평온하고 나른한 느낌을 받는다. 

영국에서도 가장 외곽이고 가장 시골인 웨일스의 북쪽 에리리국립공원에 목가적 풍경

의진수가 ‘조용하게’ 담겨 있다.

 

그러다가 기상이 급변하면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처럼 거칠고 황량한 풍경

이 된다. 따뜻한 연두색 봄과 을씨년스러운 갈색 가을이 공존하는 에리리국립공원이다. 

▲영국 국립공원의 농촌 풍경. 국립공원사무소의 환경교육센터 앞에 웨일스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잘 가꾼 정원처럼 펼쳐져 있다.

 

이런 자연과 문화와 생활의 어울림이 영국 국립공원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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