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설국 내려앉기 전 붉게 타오르는 단풍…스쳐가는 ‘가을의 전설’

▲소운쿄에서 구로다케(黑岳) 로프웨이를 타고 1500m 지점까지 오른 뒤, 거기서 다시

갈아타고 7분 능선인 1700m까지 올라가는 리프트에서 본 단풍이 든 다이세쓰잔 풍경.

초록의 신우대와 활엽수 단풍, 침엽수림이 어우러졌다. 이 일대는 일본에서

단풍이 가장 먼저 드는 곳이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는 눈(雪)의 땅이다. 겨울엔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세상을 보러 가고,

여름엔 서늘한 바람을 쐬러 간다. 그런데 한동안 해마다 가을에 홋카이도로 갔다.

 

단풍을 보러. 올해가 다섯 번째, 내리 4년째다. 해마다 같은 곳에 가서, 같은 일정으로, 같

은 호텔에 묵었다. 날짜도 늘 10월 첫째 주 아니면 둘째 주였다.

 

첫 주에 가면 단풍이 덜 들어 아쉬웠고, 둘째 주에 가면 늦은 것 같아 아쉬웠다. 단풍 시기

만 따질 수 없었던 건 10월 초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휴 때문이었다.

 

다 같이 움직이는 연휴가 끼면, 항공료부터 모든 비용이 껑충 뛰니 피해야 한다. 시간도

없지만, 돈은 더 없으니까.

 

연례행사처럼 다녀오던 그 가을 여행이 올해로 마지막이 될 것 같다. 현지 사정이 달라진

것도 있고, 마음이 변한 것도 조금 있다.

 

누구에게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떠오르는 여행지가 하나쯤 있지 않은가. 자주 가지는 못

해도 마음 한쪽에 담아 둔 곳. 지금부터는 몇 해 동안 마음을 빼앗겼던 그곳,

소운쿄(層雲峽)의 가을 이야기다.

▲자그마한 온천마을 소운쿄의 전경. 건물들이 서구풍이라 유럽의 산중 같은 느낌이다.

 

먼저 작년 가을 경험했던 소운쿄 여행 얘기부터. 작년엔 예년보다 1주일쯤 늦은 10월

중순쯤소운쿄에 갔다. 기록적으로 길었던 연휴를 피하느라 그랬다.

 

절정의 단풍은 일찌감치 포기한 상황. 설상가상으로 기온은 뚝 떨어지고 비 예보까지

내려진 터였다. 출발 전부터 이번 단풍 여행은 망쳤다고 체념했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가을비에 젖은 단풍이 그렇게 아름다울 줄 미처 몰랐다.

 

비에 젖은 협곡은 빛깔이 한층 깊었다. 물기를 머금은 단풍은 마른 단풍보다 색이 짙

었고, 젖은 바위는 더 검었다. 산허리에 걸린 구름이 협곡을 들락거렸다.

 

비가 잠깐 그친 사이에 계곡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선명한 무지개까지 걸렸다. 그것도

쌍무지개였다. 일찌감치 접어 둔 기대 때문이었을까.

 

그날 본 단풍의 인상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았을 만큼 깊고 진했다.이튿날 아침 풍경

은더 근사했다. 산 아래를 적신 비가 산 위에서는 밤새 눈으로 바뀌었다.

 

협곡에는 아궁이에 장작을 넣은 듯 단풍이 활활 타오르는데, 산정은 하얀 눈을 이고

있었다. 뜨거운 단풍과 차가운 눈이 맞닿은 경계쯤에서 ‘치익~’ 하는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눈과 단풍이 만나 그려낸 풍경은 말 그대로 선경(仙境)이었다.

 

해마다 이런 식이었다. 그해의 눈부신 가을 풍경에 대한 감동이, 이듬해 똑같은 코스의

가을 여행을 이끌었다.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내년 가을 여행 일정을 정하고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그렇게 네 번의 여행이 이어졌다.

▲다이세쓰잔에서 오히비로쪽으로 내려서는 미쿠니고개에서 바라본 전경.

‘숲의 바다’라 부를만 하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드는 산

 

소운쿄는 다이세쓰잔(大雪山) 북쪽 자락에 있다. 가오리연처럼 생긴 홋카이도 지도를

펼쳐놓고 정중앙을 찍으면 거기가 바로 다이세쓰잔이다. 1934년 일본 국립공원

으로 지정된 다이세쓰잔은 일본의 국립공원 중 가장 면적이 넓다.

 

다이세쓰잔은 봉우리 하나의 이름이 아니다. 최고봉 아사히다케(旭岳·2291m)를중심

으로 2000m급 고봉들이 줄지어 늘어선 산군(山群)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이런 식의 작명은 우리도 익숙하다. 설악산이며 지리산이란 산 이름이 특정한 산봉우리

하나가 아니라 대청봉 혹은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주변 산을 통칭해 부르는 이름인

경우와 똑같으니까.

 

‘홋카이도의 지붕’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다이세쓰잔은 높고 깊다. 산 이름 ‘다이

세쓰’를 한자로 읽으면 ‘대설(大雪)’이다.

 

눈 많기로 이름난 홋카이도에서 대체 얼마나 눈이 많이 내리길래, 이런 이름을 얻었을까.

소운쿄가는 길에 하루 묵어갔던 소도시 아사히카와(旭川)의 호텔 직원은 “겨우내 다이

세쓰잔에는 눈이 3m 넘게 쌓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10월 중순도 되기 전인데, 벌써 산정에는 희끗희끗 눈이 보였다.다이세

쓰잔을 대표하는 건 무리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사히다케다.

 

하지만 단풍으로 겨룬다면 구로다케(黑岳·1984m)가 맨 앞이다. 일본 전역을 통틀어

가장 먼저 단풍이 든다는 다이세쓰잔에서도, 가장 이르게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이

구로다케다. 9월 초순이면 정상부터 붉어지기 시작한다.

 

구로다케 단풍이 빠르기만 한 게 아니다. 활화산 특유의 황량한 기운이 감도는 아사히

다케와 달리, 구로다케는 빽빽한 자작나무 숲이 가을이면 풍성한 단풍의 바다를

이룬다.

▲소운쿄 협곡 곳곳에 있는 폭포 중 가장 유명한 류세이(流星) 폭포. 바로 옆에

깅가(銀河) 폭포도 있다.

 

소운쿄란 지명의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으면 층운협(層雲峽)이다. ‘구름이 겹겹이

쌓인 골짜기’란 뜻이다. 이름처럼 소운쿄는 거친 협곡 안쪽에 있다.

 

다이세쓰잔 북쪽을 흐르는 이시카리강을 따라 높이 100~200m의 깎아지른 절벽이

20㎞ 넘게 이어진다. 이 협곡이 통째로 단풍으로 물들었을 때의 장관을 감히 표현할

재주는 없다.

 

탄성이 한숨처럼 터지는 광경 앞에서 그저 속수무책일 따름이다.그런데도 소운쿄는,

홋카이도의 다른 이름난 관광지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홋카이도 여행자의 대부분은 삿포로를 기점으로 아사히카와 남쪽의 비에이와 후라노

를 둘러본다.

 

비현실적인 푸른 물빛의 ‘청(靑)의 호수’와 ‘흰수염 폭포’, 숲속 요정의 집을 닮은 ‘닝구

루 테라스 라벤더가 진 뒤에도 꽃밭이 구릉을 넘실대는 ‘팜 도미타’가 그쪽에 몰려 있다.

 

소운쿄에 가려면 그 유혹을 다 뿌리치고 방향을 틀어야 한다. 게다가 삿포로에서 렌터

카로 앞만 보고 달린다 해도 3시간쯤. 대중교통편이라면 꼬박 4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소운쿄까지 오는 여행자들이 적을밖에….

 

소운쿄에서 온천이 처음 발견된 건1900년이다. 처음엔 발견자 시오타니(鹽谷) 부자의

이름을 따 ‘시오타니 온천’이라 불렸다.

 

물이 좋긴 했지만, 그때는 길조차 변변히 없는 험한 산속이었으니 거기까지 온천을 하러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물고기 등지느러미같은 협곡의 암봉 아래로 단풍이 타오르고 있다.

 

이 골짜기와 온천을 세상에 알린 건 시인이자 여행가 오마치 게이게쓰(大町桂月)였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써내려간 그의 여행기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다이세쓰잔의 한 봉우리를 그의 이름을 따 ‘게이게쓰다케(桂月岳)’라 부르는 것만 봐도,

그의 기행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921년 빌린 천막과 쌀을 짊어지고 홋카이도 각지를 여행하던 시인은, 이곳에 이르러

‘구름이 층층이 쌓인 협곡’이란 뜻의 소운쿄란 지명을 붙여줬다.

 

105년 전 여행기에서 그는 소운쿄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천하의 절승(絶勝)’이라고

적었다.

 

놀라움과 찬탄이 여행기 문장마다 뚝뚝 묻어난다. “‘기이하다’고 해도 다 할 수 없고, 영

묘하다’고 해도 다 할 수 없다. 오직 귀신이 천상에 누각을 지을 수 있을까 생각할 뿐이다.

 

” 또 이런 대목도 있다. “이만큼 신비로운 암봉(岩峰)을 본 적이 없다. 경탄하며 돌에

무릎을 꿇어도 부족함을 느껴 술 한잔을 기울이며 산의 영혼에 사과한다.”

 

산 앞에 무릎을 꿇고도 모자라 술잔을 기울여 사과하는 시인이라니…. 이런 탄성에

누군들 혹하지 않았을까.

 

여행기가 나온 지 불과 4년 만에 소운쿄는 오사카마이니치신문과 도쿄니치니치신문이

주최하고 철도성이 후원해 뽑은 ‘일본 100경(景)’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시카리강을 따라 20㎞ 넘게 이어지는 소운쿄 협곡의 한쪽 벽이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흰 건물은 소운가쿠다.

 

소운쿄 관광의 중심은 구로다케 로프웨이다. 이 로프웨이의 케이블은 본디 화물용이었다.

1954년 홋카이도를 강타한 기록적인 태풍 ‘마리’가 구로다케의 아름드리나무 뿌리를 뽑고,

줄줄이 쓰러뜨렸다. 그 나무들을 산 아래로 실어 내리려고 놓은 게 화물용 케이블이었다.

 

그걸 1967년 관광용으로 바꾼 게 지금의 로프웨이다. 태풍이 쓰러뜨린 나무를 나르던

줄이, 이제는 단풍 구경 온 관광객을 실어나른다.

 

로프웨이는 관광객을 단번에 구로다케 5분 능선까지 올려놓는다. 올라가는 내내 소운쿄

협곡이 발아래 펼쳐진다. 협곡의 스케일도, 그 협곡을 물들인 단풍도 감격스럽다.

 

고개를 돌리는 데마다 울긋불긋하다. 가장 압도적인 건 3분 능선쯤에 펼쳐진 자작나무

숲이다. 끝 간데없는 자작나무가 ‘수해(樹海)’, 곧 숲의 바다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올해는 좀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구로다케의 자작나무는 이미 잎을 다 떨궜다. 그래도

끝난 건아니었다.

 

다른 활엽수의 붉고 노란 단풍이 바탕색이 되고, 그 위로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 둥치

와 가지가 선을 그었다. 단풍색 캔버스에 펜으로 그린 추상화 같았다.

 

로프웨이 상부 정류장에서 숲길을 잠깐 걸으면 2인승 리프트로 갈아탈 수 있다. 리프

트는 해발 1500m, 구로다케 7분 능선까지 오른다.

 

스키장에서 흔히 보는 의자만 달린 간이 리프트다. 안전 바도 없이 앙상하지만 개방감

만큼은 대단하다. 온몸으로 산을 느끼는 듯하다.

 

리프트는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압권이다. 산정을 등지고 허공에 떠서 내려다

보면, 거대한 산을 품에 안은 것 같다.

 

로프웨이 요금은 3000엔, 리프트까지 타려면 900엔을더 내야 한다. 장담컨대 본전

생각은 절대 안 난다. 적어도 단풍철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소운가쿠(層雲閣) 그랜드호텔 로비. 모닥불이 피워져 있다.

 

산장과 호텔이 들어선 소운쿄 마을은 확연한 유럽풍이다. 1980년대 후반 거품경제 시절에

전성기를 누렸던 곳답게 일본인들이 동경하는 알프스 어디쯤의 산악마을을 빼닮았다.

 

매해 소운쿄에 갈 때마다 숙박한 곳이 ‘소운가쿠(層雲閣) 그랜드호텔’이다. 이 호텔의 가장

큰 매력은 로비 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운다는 것이다.

 

말이 모닥불이지 현대식 설비로 피우는 것이라 그을음도, 냄새도 거의 없다.모닥불 주위로

의자가 둥글게 놓였다.

 

온천욕을 막 마친 유카타 차림의 손님들이 하나둘 모닥불 앞에 모여서 말없이 불을 바라

본다. 깊은 숲속의 산장에 들어앉은 기분이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면서

‘이곳에 숨으면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호텔 로비 한쪽에는 우유와 음료, 아이스크림, 과자가 놓여 있다. 맥주 대여섯 종류에 와인,

위스키, 사케, 칵테일 등을 가벼운 스낵류 안주와 함께 마음껏 가져다 먹고 마실 수 있다.

 

소운가쿠는 소박하나마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다. 모닥불 곁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낯선 손님끼리도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모닥불의 온기와 함께 휴양지 특유의 기분 좋은

흥겨움이 슬그머니 번진다.

 

올인클루시브를 표방하지만 소운가쿠는 고급 숙소와는 거리가 멀다. 166개 객실을 가

진이른바 대중 호텔이다. 흠을 잡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국적을 불문하고 단체

관광객손님이 많다.

 

단체 몇 팀이 한꺼번에 밀려들 때면 로비와 식당은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중국 단체

관광객의 존재감은 여기서도 대단하다.

 

조망을 누리는 능선 위에 자리 잡은 다른 호텔과 달리계곡 길가에 바짝 붙어 있어 좀

답답하다는 것도 단점이다. 리뉴얼을 했다지만 1973년 지은 본관의 객실과 온천에는

어쩔 수 없는 낡은 티가 난다.

 

이런 단점을 일정 부분 상쇄하는 건 ‘가성비’다. 대게와 신선한 회를 포함해 알차게 차려

낸 저녁 뷔페 식사와 조식을 포함한 1박 2식 요금이 2인 기준 30만 원대 중반쯤이다.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니까 저녁 식사 때도 다양한 주류와 음료가 무제한 제공된다.

▲단풍물든 구로다케로 올라가는 로프웨이.

 

해마다 이 호텔을 다시 찾았던 건 모닥불이나 가성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운가쿠가

문을연 게 1923년이니 올해로 103년째다.

 

호텔을 연 아라이 하쓰이치(荒井初一)는 스무 살에 도야마(富山)에서 홋카이도로 건너

와 쌀장사와 토목업 등으로 돈을 번 사람이다.

 

그는 그 돈으로 시오타니 온천을 사들여 호텔을 열었다. 돈벌이만 한 게 아니었다. 사재를

털어‘다이세쓰잔 조사회’를 꾸려 학자들에게 고산식물 연구를 맡겼고, 소운쿄로 들어오는

도로를 닦는 데도 돈을 댔다.

 

낡은 호텔의 로비에 피워 놓은 모닥불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던 건, 어쩌면 그 오래된

내력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호텔에서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드물지만 있을 법한 실수였고, 구조적인

문제도아니었으니 구체적인 사연까지 이야기할 건 없겠다. 그래도 서운했다.

 

오래 마음에 두고 있던 곳이라 더 섭섭하게 느껴졌던 듯하다. ‘변심한 애인’을 바라볼 때의

느낌과비슷했다고나 할까. 해마다 다녀오던 이곳으로의 여행을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 일 때문이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이 여행을 끝내기 위해 찾은 핑계였을지도 모르겠다.홋카이도의

가을은 짧다. 다이세쓰잔에 첫눈이 내렸으니 소운쿄 협곡의 단풍도 이제 열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머지않아 협곡은 폭설로 뒤덮이리라.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썼다. 그런데 작년

그 아침이 자꾸 떠오른다.

 

비에 젖어 활활 타던 협곡과 그 위로 하얀 눈을 이고 있던 산정. 모닥불 앞에 둥글게 놓인

의자….

 

작년만큼은 아니었지만, 올가을의 단풍도 황홀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좀

아껴 둬야겠다.

◆별빛 물든 호수 옆 후스이 료칸

 

다이세쓰잔 남쪽 끝자락에 ‘시카리베쓰코(然別湖)’가 있다. 해발 800m 남짓한 산속, 홋카이도

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다. 물빛이 깊고 푸르다.

 

가을 색으로 물든 둘레의 산봉우리들이 그 푸른 물에 거꾸로 잠긴다. 호반에 오래된 료칸식 호텔

‘후스이(風水)’가 있다.

 

객실 창을 열면 호수가 발아래로 펼쳐졌다. 저녁상에 오르던 산천어구이는 별미였다. 한밤중

호숫가에 나가면 불빛 하나 없는 호수 위로 별이 쏟아졌다.

 

 

영국 에리리국립공원ㅡ아서 왕 전설 깃든 웨일스인의 자존심

▲ 산악 기차. 1896년부터 운행하고 있는 단 한 칸의 기차로, 랑베리스 마을에서 정상

바로 밑까지 7.5km를 오르내린다. 바라보이는 경관은 목가적이기도 하고

다소 황량하기도 하다. 

 

영국 웨일스 지역의 스노도니아(Snowdonia)국립공원의 공식 명칭이 ‘에리리(Eryri)

국립공원’으로 바뀌었다. 영어로 ‘눈 덮인 산’이라는 뜻인 스노도니아에서, 웨일스어

로 ‘고지대 산, 독수리 땅’이라는 의미로 바뀐 것이다.

 

웨일스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의 차이만큼이나 판이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

(England)는 웨일스어로 ‘클로이그르(Lloegr)’이다.

 

웨일스 사람들이 쓰는 영어 역시 잉글랜드식 영어와는 달라 알아듣기 어렵다.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 ‘지역국’을 합친 국가다.

 

그래서 ‘연합왕국 유케이(UK United  Kingdom)’라는 약칭을 쓴다. 정치·외교적으론

한 국가이지만, 사회·문화적으론 매우 이질적이어서 사이가 좋지 않다.

 

영국에서 가장 격렬한 축구 경기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시합이고,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종종 영국 정부와 갈등을 빚는다. 

웨일스도 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영어보다는 웨일스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2022년에 스노도니아국립공원 명칭을 웨일스어인 ‘에리리’로 바꾸고, 정상도 스노우돈

(Snowdon)에서 ‘이르 위드바(Yr Wyddfa)’로 바꾸었다.

 

웨일스 전설에 나오는 ‘거인의 돌무더기 무덤’이라는 뜻이다. 

▲웨일스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에리리국립공원. 에리리국립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아래는 흰 구름에 녹색 초원,

위로 갈수록 검은 구름에 갈색 황무지. 대부분의 영국 산은 고지대까지 벌목하고 양을

방목해서 나무가 거의 없다.

 

‘양이 만든 풍경(sheep landscape), 또는 양을 위한 풍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과

구릉이 초지로 변했다.

해발 1,085m인 이르 위드바는 웨일스와 잉글랜드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매년 60만 명이

정상을 밟는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아일랜드 섬까지 조망할 수 있다.

 

이르 위드바로 가는 탐방로는 6개 노선이 있는데, 가장 대중적인 루트는 랑베리스 패스

(Llanberis Pass)다. 에리리국립공원의 거점 타운인 랑베리스의 외곽에서 정상 까지

약 7.3km, 왕복 5~7시간 거리다. 

길의 대부분은 기찻길 옆으로 간다. 중간에 하프웨이 하우스(Halfway House)라는 카페

가 있어 쉬어 가기 좋다.

 

경사가 완만하고 정비가 잘되어 있어서 초보자가 가장 많이 찾는 코스다. 그러나 에리리

국립공원의 홈페이지에는 6개 노선 모두가 ‘어렵고, 힘든 코스(hard  and  strenuous)

라고 쓰여 있다.

다음으로 인기 있는 노선은 마이너스 트랙(Miner’s Track)이다. 해발 359m인 페니패스

(Pen y Pass) 고개에서 출발해서 3개의 호수를 통과한 후 마지막 힘을 짜내어 정상에

오르는 코스다. 6.5km 거리에 왕복 5~6시간이 걸린다. 

▲산악 기차와 함께 가는 랑베리스 패스. 위는 기차길, 아래는 등산로. 랑베리스

마을의 외곽에서 정상까지 7.3km, 왕복 5~7시간 걸린다. 정상으로 가는

가장 완만한 코스다. 

페니패스에서 출발해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피그 트랙(Pyg Track)도 유명하다.

경사가 급한 바위투성이 길에서 칼바위 능선 500m를 통과해야 하는, 난이도가

높은 코스다.

 

두 코스의 기점인 페니패스 주차장은 만차일 경우가 많으므로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정상의 바위산 꼭대기에는 사방의 지명과 거리가 새겨진 황금빛 동판이 있고,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꽤 많은데, 그곳에는 전설적인 아서 왕의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서 왕이 이곳에서 악명 높던 거인을 물리치고 그의 시신 위에 돌을 덮어 거대한

돌무더기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돌들은 슬레이트, 즉 얇게 쪼개지는 점판암이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궁전과 성당, 공공건물의 지붕 재료로 쓰여, 웨일스의 돌이 세계를 덮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관광 꼬마 기차 안 풍경. 기차를 탄 영국인들은 한국인과 닮았다. 표정들이 근엄하다.

멋진 풍경을 보면서도 좀처럼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상까지 어느 코스로 오르든, 챙 넓은 모자와 선크림, 식수가 필수적이다. 햇빛을

피할 나무 한 그루 없기 때문이다. 기상이 급변하는 경우가 많아 비옷과 방풍복을

가져가는것이 좋다.

 

오르고 올라, 산 정상에 서면 노동의 대가를 충분하게 보상받는다.정상에서 365도

돌아가며 사방팔방의 경관이 시야에 확 들어온다.

 

나무가 없어 속이 훤히 드러난 근육질 산체와 시퍼런 빙하호수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안개와 바람이 휘몰아치고 구름이 가득 끼더라도, 그런 사나운 풍경이 오히려 오랜

추억으로 남는다. 정상 바로 아래에 기차역을 겸하는 탐방안내소가 있다.

 

코끝이 찡하도록 차가운 바람을 뚫고 들어가, 두 손 모아 마셨던 뜨거운 핫초코와

따뜻한 파이 맛을 잊을 수 없다. 

▲랑베리스마을 에리리국립공원의 거점 타운이다. 예전 모습의 ‘색깔 있는’ 건물들

이나란히 늘어선 중심가가 인상적이다. 마을의 외곽에 예쁘게 지은 교회, 주택,

민박집이 많고, 드넓은 호수가 있다.

 

민박집(B&B)에서 내준 아침 식사는 너무 풍성하고 맛있어서 하루 시작을 행복

하게 해준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같은 풍경

정상에 가장 쉽게, 빨리 도착하는 방법은 산악열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가파른 경사

에서 기차가 밀리지 않도록 선로 가운데에 톱니궤도를 설치한 톱니열차다.

 

랑베리스역에서 정상 바로 밑까지 약 7.5km, 편도 1시간 걸린다. 1896년에 개통할

때와 같은 증기기관차는 지정된 날에만 운행하고, 보통 디젤 기차를 운행한다.

 

왕복 가격은 어른 기준 증기기관차가 13만 원, 디젤은 9만 원이다. 날씨가 나쁠 경우

정상에서 2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클로그윈Clogwyn역까지만 운행한다.

 

여기서부터 다소 가파른 길을 1시간 이상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겨울에는 선로가 얼

기 때문에 5월에서 10월까지만 운행한다. 

기차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은 신의 정원 같다. 카펫이 깔린 것 같은 연두색 구릉에 하얀

양들이 점점이, 또는 떼를 지어 풀을 뜯는 목가적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기차의 커다란 창틀은 액자가 되고, 풍경은 그 안에 담겨 그림이 된다. 그런 부드러운

풍경은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언덕의 굴곡이 깊어지면서 황량한 풍경으로 바뀐다.

 

풀밭이 벗겨진 험준한 산악의 맨살과 힘줄이 거칠고 투박하게 다가온다. 바람과 안개가

휘몰아치면, 이곳이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최고봉이고, ‘폭풍의 언덕’과 같은 거친 환경

의 소설이 탄생한 영국의 산임을 실감하게 된다. 

▲시골 저택 펜션.  에리리국립공원 남쪽 지역에 있는 외딴 건물. 17세기에

지은 시골풍 저택으로 공공 에너지 없이(off-grid) 전기와 물을 자급한다.

 

내셔널트러스트가 소유하고 있으며, 4인에 개 1마리를 동행하는 조건으로 1박에

약 55만 원이다.

에리리국립공원(2,142㎢)은 펑퍼짐한 구릉과 언덕으로 이루어진 지형에 15개의

1,000m급 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사이로 18개의 호수와 거친 계곡,

74km의 해안선이 굽이치는 다양한 풍경을 지니고 있다.

 

공원면적의 5%에 해당하는 110㎢의 숲이 자연림이라고 자랑할 만큼, 영국에서는

본래의 자연이 많이 남아 있는 국립공원이다. 


매년 400만 명 이상의 탐방객이 공원 구석구석까지 연결된 등산로와 마을길을 통해

산과 계곡, 강과 호수, 문화유적을 방문한다.

 

공원 안에서 2만6,000명에 이르는 주민이 농업, 목축업, 상업 등의 다양한 경제활동

을 하며 살고 있다.

 

영국의 15개 모든 국립공원이 그렇듯이, 공원구역 안에 들어가도 공원 바깥과 잘

구분되지 않는다. 


광대한 면적에 야생적인 경관이 있는 미국·캐나다·호주의 국립공원과 달리,이미

원시적인 자연이 사라진 영국에서는 ‘가장 영국적인 경관으로 남아있는 농촌

·산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따라서 영국 국립공원은 모두 자연의 바탕 위에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어우러진

‘문화경관’이다. 살아 있는 ‘삶의 터전 ‘일터의 현장’이 영국 국립공원의

정체성이다. 

▲에리리국립공원의 보석 스노돈 릴리.  에리리국립공원의 상징 마크에 새겨진

스노돈 릴리(Snowdon Lily 백합)와 오른쪽의 실물.

 

영국에서는 오직 에리리국립공원의 고지대 절벽에서만 자라는 희귀종이다.

공원구역 대부분이 사유지이고, 공원을 탐방하려면 사유지를 출입해야 한다. 따라서

땅 주인들에게 부탁해 통로를 열고, 그들과 지역사회에도 혜택을 주는 일이 국립공원

청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의회민주주의의 발상지답게, 이해관계자들끼리 대화와 타협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들처럼,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에서도 그런 이해관계가 ‘부드럽게’ 풀어졌으면 한다.

우리나라 자연의 아기자기한 풍경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외국의 거대하고 장엄한 국립

공원을 보면 다른 우주에 온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영국 국립공원의 낮은 구릉과 언덕에서 양이 풀을 뜯는 시골 풍경을 보면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평온하고 나른한 느낌을 받는다. 

영국에서도 가장 외곽이고 가장 시골인 웨일스의 북쪽 에리리국립공원에 목가적 풍경

의진수가 ‘조용하게’ 담겨 있다.

 

그러다가 기상이 급변하면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처럼 거칠고 황량한 풍경

이 된다. 따뜻한 연두색 봄과 을씨년스러운 갈색 가을이 공존하는 에리리국립공원이다. 

▲영국 국립공원의 농촌 풍경. 국립공원사무소의 환경교육센터 앞에 웨일스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잘 가꾼 정원처럼 펼쳐져 있다.

 

이런 자연과 문화와 생활의 어울림이 영국 국립공원의 정체성이다.



절집 기행ㅡ서산 간월도 간월암(看月庵)과 간월항(看月港)

▲손바닥만 한 바위섬에 암자가 들어앉았다.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됐다가 물이 차면

둥실 떠오른다. 손에 꼽는 서해안 낙조 명소지만, 해 뜨는 풍경도 그에 못지않다.

 

물이 빠지면 간월암은 육지와 연결된다. 바다 건너는 태안 안면도다. 철새 도래지

로 알려진 천수만 북쪽 끝,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자리한 간월암이다.

 

‘달을 보다(看月)’라는 이름처럼 달빛이 내린 밤 풍경도 서정적이다. 일출과 일몰,

달맞이 여행이 모두 가능하다. 이만하면 어디와 견줘도 새해 첫 여행지로 부족

함이 없겠다.건강과 행운을 기원하고 사색하는 곳으로 제격이다.

▲서산 간월도 간월암 위치도.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간월도와 간월암을 둘러봅니다

간월도는 천수만 내에 있는 작은 크기의 섬이였으나 지금은 간척공사로

육지화가 되어있는 이름만 섬입니다 

▲ 이런 간월도의 끄트머리에 아주 조그만 새끼섬이하나가 딸려 있습니다

이곳에는 간월암이란 암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에는하루 2차례의 조수간만에 차이로 바닷물이 빠져 나가면

바닷길이 열려 걸어서드나들수 있는 길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만조시에는 바다위에 떠있는것 처럼보이는 특이한 간월암입니다

조선 초기에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습니다

▲또한 이곳은 서해안의 일몰명소로 손꼽습니다 간월암의 입구쪽의 간월항은

예로부터 어족자원이 풍부한 항구로 어리굴젓이 유명합니다 

▲주위 자연경관과 옛 선조들의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고찰이 어우러져

관광객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 매년 정월 보름날 만조 시에 간월도리 어리굴젓 기념탑 앞에 서 있는데 이 행사는

부정한 행동을 하지 않은 청결한 아낙네들이 소복(흰옷)을 입고 마을 입구에서

춤을 추며 출발하여 굴탑 앞에 도착하면 제물을 차려 놓고 굴 풍년 기원제를

지내며 채취한 굴은 관광객에게 시식도 시켜준다.

▲조선 시대 억불 정책으로 폐사됐다가 1941년 만공선사가 다시 세운 사실이 전해온다.

지금은 수덕사의 말사로 많은 여행객이 찾는다.

 

만공선사는 일제강점기에 승려이자 독립운동가로, 근현대 한국 불교계에 큰 발자국

을 남겼다.

 

수덕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하기도 했다. 간월암을 세우고 독립을 기원하는 천일기도

를 드렸는데, 사흘 뒤 해방을 맞았다고 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유명한 성철스님도 만공선사의 권유로 이곳

에서 수행했다.

▲범종(梵鐘)

▲사신각(山神閣)

▲범종각(梵鐘閣)

▲간월암(看月庵)

▲간월암(看月庵)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수도 중에 ‘달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

수도를 마친 무학대사가 떠나기 전 앞마당에 떡갈나무를 꽂아 두며 ‘이 나무가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알라’고 말했다는데, 정작 그 자리에는 200년 된 사철나무

가 가지를 넓게 펴고 자리를 잡았다.

 

외부에서는 이마저도 보이지 않고, 앞마당과 뒤뜰에 자란 팽나무의 윤곽이 도

드라진다.

언제 보아도 편안한데, 해질 무렵 바다와 하늘이 붉게 물들면 섬 전체가 실루엣

처럼 신비에 싸인다. ​

로마 여행에서 하루 빼고 ‘나폴리’ 당일치기 다녀오기.

▲ 로마에서 고속열차로 약 1시간. 나폴리 중앙역에 도착해 피자로 배를 채운 뒤 스파카나

폴리와 비아 데이 트리부날리를 걷는다.

 

오래된 성당과 공방, 젤라토 가게를 지나 항구의 베수비오산까지 만나는 나폴리 당일치기

코스다.

로마에서 나폴리까지 가는 길은 걱정할 게 없다. 두 철도 회사를 합쳐 50여 회가 넘게 운행

하니 본인의 일정에 맞춰 여유롭게 이동하면 된다.

 

소요 시간은 빠른 건 단 56분 만에 나폴리에 도착하고, 평균적으로 1시간 10~20분 사이다.

해당 노선의 표 가격은 3개월 전 예약 기준으로 대략 편도 14.9유로(약 2만5,000원)

부터다.

▲이탈리아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이탈리아 기차는 빨리 예약할수록 티켓이 저렴하다. 사진은 이딸로(Italo) 내부

나폴리 중앙역에서 구시가지로 향하기 전, 가장 먼저 피자를 맛보고 싶다면 안티카

피제리아 다 미켈레(L’Antica Pizzeria da Michele)가 적당하다.

 

1870년 시작된 나폴리의 상징적인 피자집으로, 중앙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비아

체사레세르살레에 자리한다.

 

메뉴는 마리나라(6.5유로)와 마르게리타(6.5유로)를 중심으로 단출하다. 부드

럽고 얇은 도우에 토마토와 치즈, 바질을 올린 정직한 한 판이 오랜 역사를

설명한다.

 

대기 줄이 꽤 긴 상황이 많으므로 당일치기라면 조금 이른 시간에 방문하는 편이

좋다

▲오리지널 나폴리 피자

▲클래식한 피자와 셰프의 독창적인 메뉴를 함께 경험하고 싶다면 10 디에고 비탈리아노

피제리아 산타 루치아점(10 Diego Vitagliano Pizzeria Santa Lucia)을 선택하자.

 

마리나라와 마르게리타, 튀긴 도우를 활용한 몬타나라, 칼초네 같은 전통 메뉴를 기본으로

마르게리타와 마리나라의 특징을 조합한 ‘마르게리나라’, 라구를 활용한 피자 등 현대적인

변주도 선보인다. 산타 루치아 거리 안쪽에 있어 항구 산책과 연계하면 훌륭한 코스가 된다.

나폴리 중앙역에서 걸어 역사 지구로 들어서면 스파카나폴리(Spaccanapoli)와 비아 데이

트리부날리(Via dei Tribunali)가 도시를 동서로 가로지른다.

 

스파카나폴리는 하나의 정식 도로명이 아니라, 지도를 펼쳤을 때 도시를 반듯하게 쪼개는

것처럼 보이는 옛길을 부르는 이름이다.

 

산 비아조 데이 리브라이 거리 등이 이 길을 구성한다. 그 북쪽의 비아 데이 트리부날리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중심도로였던 데쿠마노 마조레(Decumano Maggiore)의

흐름을 대부분 이어간다.

▲스파카나폴리(Spaccanapoli)

두 길 사이는 프레세페 공방으로 유명한 산 그레고리오 아르메노 거리(Via S. Gregorio

Armeno)가 연결한다.

 

모든 거리는 성당과 오래된 건물, 피자집, 길거리 음식점, 공예품점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고 성인 그림과 마라도나 벽화가 한 풍경 안에 섞인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걷기보다 골목 사이로 방향을 바꾸며 나폴리의 생활을

구경하는 편이 재미있다. 다만 보행자와 스쿠터가 좁은 길을 함께 이용하므로

사진을 찍을 때도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프레세페 공방 : 예수 탄생의 구유 장면인 '프레세페(Presepe)' 장식과 정교한

테라코타 인형을 손수 제작하는 나폴리의 전통 공방

▲나폴리 대성당

 

비아 데이 트리부날리를 걷다가 비아 두오모로 방향을 틀면 나폴리 대성당이 나타난다.

산타 마리아 아순타에게 봉헌된 성당이자, 나폴리의 수호성인 산 젠나로의 유물과

피를 보관한도시 신앙의 중심이다.

 

성당 내부뿐 아니라 산타 레스티투타 대성당과 산 조반니 인 폰테 세례당도 함께 둘러

볼 만하다.

 

기본 관람은 무료이며, 약 40m 높이에서 돔과 구시가지를 보는 ‘500 Cupole’ 옥상

체험(6유로)도 경험할 수 있다.

▲더 나폴리타너-나폴리 일루스트라타(The Napolitaner-Napoli Illustrata)는 잡지

표지를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일러스트로 나폴리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프로젝트다.

 

이곳에서는 작품을 인쇄한 포스터와 엽서, 티셔츠, 가방, 퍼즐 등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다.

피자와 빨래, 베수비오산, 마라도나처럼 익숙한 나폴리의 이미지를 재치 있게 재해석해

전형적인 관광 기념품과는 다른 선물을 찾을 때 특히 유용하다.

▲구시가지의 소리와 인파를 구경하며 느긋하게 쉬고 싶다면 젠나리노 1963

(Gennarino1963)의 야외 좌석이 제격이다.

 

카페와 젤라테리아를 겸하는 캐주얼한 공간으로 에스프레소와 젤라토부터 맥주,

페이스트리와 간단한 먹거리까지 폭넓게 갖췄다.

 

거창하게 식사하기보다 시원한 맥주나 젤라토를 주문해 거리를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노천 테이블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도 나폴리 도보

여행의 일부가 된다.

▲1840년부터 이어진 가족 공방 프라텔리 카푸아노 달 1840(Fratelli Capuano dal 1840)

을 찾아보자.

 

나폴리의 크리스마스 전통인 프레세페, 즉 예수 탄생 장면을 구성하는 인형과 건축물,

생활 소품을 손으로 만들고 채색한다.

 

종교적인 인물뿐 아니라 상인과 요리사, 음악가처럼 나폴리의 일상을 닮은 작은 인형도

있어 공방 자체가 하나의 미니어처 박물관처럼 느껴진다.

▲나폴리 기념품 마그네틱.

 

기념품점에서 쉽게 보이는 붉은 고추 모양은 사실 ‘코르니첼로(Cornicello)’다. 단단

하고 구부러진 붉은 뿔 모양으로 액운을 막고 행운을 부른다고 믿는 나폴리의

부적이다.

 

검은 가면을 쓰고 도둑처럼 보이는 캐릭터는 풀치넬라(Pulcinella). 흰옷과 검은 반가면

이 특징인 나폴리 전통 희극의 주인공으로, 고단한 현실을 재치와 웃음으로 헤쳐 나가는

서민을 상징한다. 자석과 가면, 작은 인형 형태라 부담 없는 기념품으로도 좋다.

 

◆나폴리 항구에서 완성하는 당일치기

 

구시가지 산책을 마쳤다면 무니치피오역(Municipio) 방향으로 이동해 나폴리항까지

여행을 이어가면 좋겠다.

 

역 주변에는 누오보성과 유서 깊은 극장이 모여 있고, 항구에서는 푸른 나폴리만 너머

로 베수비오산을 볼 수 있다.

또 푸니쿨라(또는 지하철)를 타고 보메로 언덕의 산텔모성(Castel Sant'Elmo)까지

올라가야 한다.

 

항구와 구시가지, 베수비오산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풍경은 나폴리 당일치기의 강렬

한 마지막 장면이 되니 말이다.

 

◆나폴리 필수 스폿

 

ㆍ나폴리항 : 푸른 나폴리만과 베수비오산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바다 전망 포인트.
ㆍ무니치피오역 : 고대 항구 유적과 현대 건축이 겹쳐진 나폴리의 ‘예술 지하철역’.
ㆍ누오보성 : 다섯 개 원형 탑과 흰 대리석 개선문으로 항구를 지켜온 나폴리의 요새.
ㆍ메르카단테 극장 : 1777~1778년에 ‘테아트로 델 폰도(Teatro del Fondo)’로 태어

난 유서 깊은 국립극장.
ㆍ산텔모성 : 바다와 구시가지, 베수비오산을 360도로 굽어보는 나폴리 최고의 전망대.

이 길 소문나면 곤란한데...

신령이 노닐던 땅, 경주 낭산(狼山) ‘왕의 길’을 걷다.

​

▶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진평왕릉 7㎞

▲경주 낭산 소나무숲 너머로 선덕여왕릉이 보인다.

 

야산과 들녘, 바다와 강마다 길이 없는 곳이 없다. 바위틈에 산책로가 있고,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길도 있다. 수많은 길 가운데 걷기 좋은, 할 이야기가 많은, 그러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는 건 쉽지 않다.

​

만나는 지인마다 좋은 길을 추천받으며 후보군을 추리던 때, 경주에서 나고 자란 지인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경주에 낭산이라고 있는데.” 순간 고민했다. ‘경주 남산’을

잘못 쓴 것인가.

​

답 없는 대화창에서 마음을 읽었는지 다시 메시지가 꽂혔다. “남산 아니고 낭산.” 습관

처럼 당장 그 낯선 이름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했다. 당돌한 사이트는 제멋대로 ‘남산’

으로 고쳐 찾은 내용을 띄운다. 아직 소문이 덜 난 곳은 분명하다.

▲경주 낭산의 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진평왕릉 7㎞ 구간.

 

시작부터 갈림길이다. 입구로 되돌아가 ‘사천왕사지’를 보고 산을 오를 것이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것이냐. 큰 의미는 없다. 걷다 보면 결국 다 이어진다. 사천왕사와

선덕여왕의 관계 그대로다.

​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했단다. 불교에서 말하는 세상의 중심

인 수미산 중턱에 있는 도리천. 사천왕이 지킨다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 리 없는 신하들

의 어리둥절한 물음에 여왕은 ‘낭산의 남쪽’이라 답했다고 한다.

​

그가 죽고 30년 뒤에 낭산의 들머리, 왕릉의 아래 사천왕사가 세워졌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선덕여왕의 세 가지 선견지명 중 하나란다.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경주 낭산 입구에 있는 선덕여왕릉주차장.

​

경주 낭산은 남경주 나들목(IC)에 내려, 불국사를 지나 경주 중심가에 다다르기 전에

있다. 나지막한 낭산은 그 이름보다 정상에 자리한 선덕여왕릉이 더 유명하다.

​

7번 국도에 선덕여왕릉 표지판은 있어도 낭산은 없다. 주차장 이름도 선덕여왕릉

주차장이다. 주차장 한켠에 있는 화장실은 소박하지만 소중하다. 앞으로 1시간

동안은 보기 힘들다.

▲경주 낭산 아래 있는 사천왕사지 가운데 서탑지.

​

사천왕사지는 말 그대로 절터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지은 사찰이라

는데, 황량한 터를 지나면서 그 규모만 가늠할 뿐이다.

​

사천왕이 지키는 도리천, 그곳에 잠든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은 한겨울에도 푸르다.

앙상한 나무들이 애처롭기까지 한 주변과는 다르다. 우거진 소나무 덕이다.

▲경주 낭산 입구.

 

이곳 소나무에는 아직 재선충병이 창궐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복 받은 땅’이

다행히 지켜지나 보다.

 

실성왕 12년, 낭산에 누각처럼 생긴 구름이 일어난 것을 본 왕은 신령이 내려와 노니

는것이라 여기고, 이후로 이 산에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

“아, 그래서 여기 나무들이 좋네.” 산을 내려오다 입구에 적힌 안내문을 보던 한 중년

이 말했다. 오를 때는 보지 못했나 보다.

▲경주 낭산 선덕여왕릉으로 가는 길.

 

낭산은 산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나지막한 구릉이다. 소나무 사이로 적당히

경사진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선덕여왕릉에 이른다. 볕이 잘 드는 곳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곳만 구멍이 뻥 뚫려 있을 것 같다.

​

문득 살아서도 한 몸 편히 지낼 곳이 없는 만민이 스친다. 죽어서도 이 넓고 양지

바른땅을 차지한 왕의 핏줄이 새삼 심술스레 꽂힌다.

▲경주 낭산 정상부에 있는 선덕여왕릉.

​

문득 안쓰럽기도 하다. 최초의 여왕은 살아있는 동안 늘 그 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재위

중에 백제와의 전쟁에서 낙동강 서쪽 지역을 잃으면서 그 위기는 정점을 찍었다.

​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비담이 일으킨 반란 속에 세상을 떠난 그의 마음이

편했을 리 없다.비담. 익숙한 이름이다. 2009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선덕여왕’

에서 배우 김남길이 연기했던 인물이다.

​

주인공인 선덕여왕보다 악역인 미실이 더 눈길을 끌었던 드라마다. 이 드라마가 인기몰

이를 하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

낭산에 대한 관심도 반짝했지만, 금새 시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분 만에 도착한

선덕여왕릉에서 한참 방황했다.‘이게 다야?’

▲경주 낭산 선덕여왕릉 뒤편에 능지탑지로 가는 길 이정표가 있다.

​

앞서 도착한 이들이 되돌아가고, 뒤이어 온 이들도 발길을 돌리던 참이다. 왕릉 뒤쪽

으로 ‘능지탑지’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마른 솔잎과 흙으로 뒤덮인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

친절한 길은 아니다. 해우소도 없고, 목을 축일만 한 곳도 없다. 짧은 숲길을 따라

걷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 길이 맞나?’

​

마주 오던 이에게 물어본다. “낭산은 어디까지인가요?” 동네 마실을 나온 가벼운

옷차림새의 그는 왠지 이 일대를 훤히 꿰뚫고 있을 것 같다.

​

“여, 전부 다 산이지.” 그가 자신의 뒤쪽을 손가락으로 아무렇게 휘휘 저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답이다. “이쪽으로 쭉 가면 된다는 거죠?”

​

초행길을 거듭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확신의 끄덕임을 남기고 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 멀어졌다.

▲경주 낭산 선덕여왕릉에서 능지탑지로 가는 소나무숲길.

​

안심하고 걷다 보니 또 갈림길이다. 일단 ‘능지탑지’란 이름을 따라 왔으니 왼쪽으로

꺾었다. 본래 5층탑이었을 능지탑은 신라 문무왕을 화장한 곳으로 추정된단다.

​

문무왕은 왕릉을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라며 화장을 지시했다고 한다.

실용적인가 싶다가도 산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하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동해 용왕이 됐다는 전설의 주인공답다.

▲경주 낭산자락에 있는 능지탑지.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된다.

▲바위에 새겨진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

 

능지탑 터를 지나면 중생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사찰 안쪽 바위에서 낭산 마애

보살삼존좌상을 만날 수 있다. 가운데 지장보살이 온화하게 웃고 있고, 좌우로

무장한 수호신이 있다.

​

표면이 거칠어 삼존상을 뚜렷하게 보기는 힘들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한발

떨어져 보는 게 더 낫다.

▲경주 낭산 둘레길을 따라 진평왕릉으로 가는 길.

 

걸어온 길을 되돌아간다. 갈림길에서 이번엔 오른쪽이다. 산불에 취약한 겨울, 낭산은

더이상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보도블록으로 바닥이 잘 포장된 길을 따라 걷는다. 살짝 올라가는 길인가 싶더니

내리막이다.

​

훤히 뚫린 시야가 시원하다. 백이들과 보문들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논이다. 곧 있으면

모내기를 할 것이다. 여름이었다면 논두렁의 찰방찰방한 물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가을이었다면 보기만 해도 풍요로운 황금들판일 터였다.

▲경주 낭산 들머리를 빠져나오면 백이들과 보문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들녘이

끝나는 곳에 진평왕릉이 있다.

​

저 멀리 진평왕릉이 보인다. 들녘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시간은 평온하다. 오르락

내리락도 없다. 완만하게 굽이진 길은 기울어짐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가올 수확을

위해 쉼의 시간을 보내는 땅은 고요하다.

​

농기계 바퀴자국이 선명한 길을 따라 걸으며 옆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나무에나란히 걸터앉은 까치와 까마귀가 추임새를 넣는다. 텅 빈 논을 보며 배가

고프다고 투정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주 진평왕릉과 주차장을 잇는 작은 나무다리.

 

선덕여왕릉이 낭산 정상에 홀로 외로이 있다면, 그의 아버지 진평왕의 능은 좀 더 따뜻한

분위기다. 다른 왕릉처럼 모여있지도 않은데, 사람들과 함께하는 느낌이다.

​

길 건너 마을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과 카페도

있다. 죽은 이의 무덤이 산 사람의 공간과 어우러져 있다.

▲아름드리 나무들로 둘러싸인 경주 진평왕릉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아기

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다.

▲경주 진평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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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왕릉은 나들이하기 좋은 곳으로 이미 유명하다. 아름드리 고목이 작은 숲을

이루는 왕릉 주변에는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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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다. 봄이면 벚꽃이 예쁜 곳이다. 숨겨진 벚꽃 명소

를 소문내는 마음이 괜히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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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길을 돌아 다시 선덕여왕릉으로 간다. 오던 길과 다른 길을 걸으려니 꺾이는

길이꽤 거칠다. 왕이 될 운명인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이리도 어지러

웠을까.

​

죽어서도 아버지의 곁에 머물고 싶어 낭산을 택한 딸의 마음이 교차한다. 올 때

마음이 갈 때의 그것과 다르다.

▲진평왕릉에서 선덕여왕릉으로 돌아가는 길에 낭산과 그 아래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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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산이 다시 가까워졌다.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경주시가 사들여 더는 경작하지

않는 땅 너머로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보인다. 신라 효소왕이 아버지인 신문왕

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탑이란다.

​

길을 돌아 석탑을 가까이 보려다가 멈춘다. ‘아서라, 때론 멀리서 보는 게 좋을

때도 있다.

 

숨이 찰 리 없는 속도로 천천히, 넉넉하게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선덕여왕릉

과 진평왕릉 인근에 모두 주차장이 있다. 어느 쪽부터 걸어도 괜찮다.

▲경주 낭산의 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진평왕릉 7㎞ 구간

영국 국교 성공회 소속이 아닌 로마 가톨릭 소속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카톨릭 대성당( 파사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Westminster Cathedral)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교좌 성당이다. 1895년에 착공되어 1903년에 완공이 된 성당이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가톨릭 교회이다.

​

인근의 영국 국교 성공회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과(Westminster Abbey)는 구분

된다.

​

근처에는 빅벤과 국회의사당 그리고 영국 왕실의 결혼식 장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과는 다른 성당이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빅토리아 스트릿 근처에 있다. 런던

에서 유일하게 주황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 위치도

▲잉글랜드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웨스트민스터 카톨릭 대성당(Westminster Cathed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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