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르 그리스도 수도원(Convent of Christ in Tomar)

▲토마르 수도원

 

토마르 그리스도 수도원 또는 그리스도 수도원 이라고도 불리며포르투갈 토마르에 위치한 

옛 가톨릭 수도원입니다

 

원래 12세기 템플 기사단의 요새였으나, 14세기에 기사단이 해체되면서 포르투갈 지부는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전환되어 15세기 포르투갈의 해양 발견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토마르의 성과 그리스도 수도원은 역사적·문화적 기념물로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템풀 기사단

 

이 성은 1118년에  템플 기사단에 의해 세워졌습니다건축은 12세기 말까지 계속되었으며성의

한 모서리에 예배당이 건설되었고대장관 D. Gualdim Pais가 1160년경 완성했습니다.

 

1190년경 칼리프 아부 유수프 알-만수르의 군대에 포위되어 저항했으며그는 남쪽의 요새를 성공

으로 점령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성 입구 근처에 명판이 세워졌다.)

 

13세기 2분기 동안 토마르는 템플 기사단의 통제 하에 들어가 그 본거지가 되었습니다이 성은

템플 기사단이 젊은 기독교 왕국의 국경을 무어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구축한 방어 체계의

필수적인 일부가 되었습니다

 

당시 무어인들은 이 지역을 타구스 강 대략 수준까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템플 기사단이

해체된 후 1319년 3월 14일 포르투갈의 데니스 왕의 요청에 따라 교황 요한 22세는 그리스도

기사단을 설립했다.

 

 이전 템플 기사단의 본거지는 1357년에 이 새로운 기사단의 본거지로 전환되었습니다토마르

성의 유명한 원형 교회(로툰다)도 12세기 후반에 지어졌습니다

 

이 교회는 유럽 전역의 다른 템플기사단 교회들처럼십자군이 솔로몬 성전의 잔재로 믿었던

예루살렘의 바위 돔을 본떠 지어졌습니다예루살렘 성묘교회도 모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산타렝현 위치도.

▲포르투갈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토마르의 수도원과 성 단지의 전경 

 

토마르 성은 1160년경 전략적 위치에 지어졌으며언덕 위와 나방 강 근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외곽에는 방어벽과 내부에 성채가 있는 성채(알카초바)가 있습니다

 

주거 및 방어 기능을 겸하는 중앙 탑인 킵은 템플 기사단에 의해 포르투갈에 도입되었으며토마르

있는 탑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탑 중 하나입니다.

 

 템플 기사단이 포르투갈에 도입한 또 다른 신기한 요소(노르망디브르타뉴 등지에서의 수십 년간

경험을 바탕으로 배운 것)는 외벽에 있는 둥근 탑으로이는 사각형 탑보다 공격에 더 강합니다

마을이 세워졌을 때대부분의 주민들은 성의 외벽 안에 위치한 주거지에 거주했습니다.

▲토마르 수도원

▲토마르 수도원

▲토마르 성

▲토마르 성

▲그리스도 수도원 교회의 평면도.

 

템플 기사단 원형 교회(12세기 후반)는 빨간색으로 표시되며, 마누엘린 양식의 본당(16세기 초)은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템플 기사단이 건축한 토마르 수도원의 주 교회

▲원형교회

▲토마르 수도원

▲1510년에서 1513년 사이 디오구 데 아루다가 제작한 챕터하우스(집회장소) 창문

 

본당 서쪽 정면에 있는 성 바르바라 회랑에서 보이는 거대한 창문으로전형적인 마누엘 양식

대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기사단과 마누엘 1세의 상징그리고 밧줄산호식물 무늬의 정교한 장식이 있습니다

창문 하단의 인물은 아마도 디자이너 디오고 데 아루다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수도원의 창문은 마누엘 양식 장식의 걸작 중 하나이다위에는 작은 원형 창문과 난간이

있습니다.

 

 정면은 두 줄로 묶인 매듭 줄로 나뉘어 있습니다둥근 각형 버트레스는 거대한 가터로 장식

되어 있는데이는 영국 왕 헨리 7세가 가터 기사단으로 마누엘 1세를 수여한 것을

암시합니다

 

교회 입구는 측면 출입구를 통해 이루어지며이 문도 풍부한 마누엘 양식과 성모 아기와

구약예언자들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이 문은 약 1530년에 조앙 데 카스티류

설계했습니다.

▲르네상스 요한 3세의 회랑

▲고딕 양식 회랑

▲묘지 회랑

▲원형 교회 내부▼

▲성물실

 

화려한 고대 로마 식민도시 명소인 에페수스 유적지.

▲매표소를 통과하여 첫번째로 보이는 신전터.

 

터키 서부의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이즈미르주의 카이스트로스강 어귀에 있던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 유적으로, 기독교 성서에서는 에페소 또는 에베소로 언급된다.

 

에페수스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로 건설되어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요충지로

번성하였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일시 쇠퇴하였다가 기원전 4세기에 알렉

산드로스에게 정복된 뒤 새로운 에페수스가 건설되면서 헬레니즘 도시로 부흥하였다.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아시아 속주의 수도로서 지중해 동부 교역의 중심

지가 되어 전성기를누렸으며,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로서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야술루크 언덕의 대표적 유적은 아르테미스 이다. 원래의 신전은 기원전 7세기에 파괴되었고,

기원전 550년경에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재건한 두 번째 신전도 방화로 파괴되었으며,

기원전3세기 중엽에 세 번째 신전이 세워졌다.

 

재건축을 거치면서 신전은 길이 137m, 너비 69m에 높이 18m의 기둥 127개를 세운 웅장한

규모로 확장되었다.

 

신전의 규모와 화려한 장식, 고품질의 건축 재료, 불안정하고 습지로 이루어진 하층토 문제를

해결한당시 건축가들의 탁월한 예술적 자질과 기술 등의 요인으로 인하여 이 건축물은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이밖에 비잔틴-셀주크시대의 성채로 둘러싸인 중세의 주거 유적, 비잔틴시대에 가설된 송수로

유적, 사도 요한을 기려 6세기에 세운 성 요한 바실리카(St. John Basilica), 1375년에 완성

된 이사 베이 모스크(Isa Bey Mosque), 여러 개의 하맘(hamam;공중 목욕탕)과

무덤 유적 등이 남아 있다.

▲22,500명이 수용 가능한 원형극장 /이곳에서 사도바울과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으며
후일 바울이 에베소인들(성도들)에게 씌여진 편지가 에베소서로 남게됨.

▲로마교황이 다녀간것을 기념해서 세운 교황의 신전.

▲본래 에페소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겼으며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신전보다 약 100여미터

위에서 발굴되어 발굴된 위치에 전시되어 있음.

▲醫神의 지팡이 카드케우스

▲여러 신전을 지나고나서 도서관이 있는 도시의 중앙으로 내려가는길.

▲에페소 메인 거리 멀리 셀수스 도서관 건물 기둥이 보인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 전성기 시절의 5현제 -네르바-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티우스- 중의 하나로 훌륭한 통치자였다한다

▲아치앞중앙엔 운명의 여신 테티스 부조가 있고

▲창녀촌 입구. 저 발 싸이즈 보다 작은 사람 출입금지! 즉 미성년자 !

▲창녀촌이 있던 거리

▲로마황제가 다녀간 것을 기념해서 세운 분수대라고 합니다.

▲목욕탕 터 /고온탕,온탕,냉탕 등으로 지어졌다고 함.

▲목욕탕의 입구?

▲수세식 공중화장실.

(대리석 구멍에 볼일을 보면 위 목욕탕 폐수가 그 아래로 흘러서 자동적으로 수세식?으로 처리되는 구조)

▲이 도로 바닥을 보라 모자이크 타일로 도로를 깔았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화려했을까

▲에페소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컷(외국인에게 부탁)

▲터키의 초등학생들이 수학여행와서 사진을 촬영중 입니다.

▲에페소의 당시 인구가 5~7만으로 추정되는데 이곳 원형극장은 25,000명 수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에페소에서 항구로 통하는 길(본래 이곳에서 1키로 털어진 곳이 항구 이었으나 그동안 지진등

으로구조가 변해서 현재는 약6키로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음. 지진과 함께항구가 멀어진 것이

도시멸망의 원인 이라고 합니다.

▲초기(박해를 받던시기)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암호표시.??

혹은 로마병사들의 놀이 표시??

▲에페소 발굴 도시에서 약 1키로 떨어진 곳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성채.

데니즐리(Denizli)ㅡ고대 도시 유적. 히에라폴리스( Hierapolis) & 파묵칼레

히에라 폴리스에는 1,000여 개의 석관묘가 늘어서 있다.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Hierapolis-Pamukkale)는 자연 현상을 통해 멋진 경관이 형성된 유적이다.

샘들에서 광물화된 온천수가 넘쳐흘러 형성된 못과 계단 형태 지형의 멋진 자연 경관 속에 훌륭한

그리스-로마식 온천 시설을 갖춘 히에라폴리스가 조성되어 있다. 히에라폴리스의 기독교 기념물

들은 초기 기독교 건축물 단지의 우수한 사례이다.

 

히에라폴리스는 B.C. 2세기경 버가모의 왕 엔메네스(Enmenes Ⅱ)에 의해서도시로 세워졌다.그러나

도시가 세워지기 전부터 이곳은 온천이 있었기 때문에 온천물이 솟는 동굴은 제의적인 장소로 

여겨졌고 따라서 일찍부터 이곳에는 성소(Sanctury)가 있었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라는 이름도 그 뜻은 본래"성소가 있는 도시"였으며후에는 거룩한 도시라는

뜻으로 변하였다. 로마 시대의 공중목욕탕의 유적이 남아있고 로마 야외 극장터도 남아있다.

 

히에라폴리스 유적 중 가장 유명한 것은큰 공동묘지(necropolis)이다. 이곳에는 약 1,200개 이상의 

석관이 발견 되었으며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네크로폴리스 중의 하나이다.

▲튀르키예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히에라폴리스의 역사는 소아시아 반도의 다른 많은 헬레니즘 도시들과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기원전 129년에 로마인들에게 점령당한 히에라폴리스는 새로운 통치자들 아래에서 번영했다.

 

이곳은 아나톨리아인, 마케도니아인, 로마인, 유대인들이 뒤섞여 지내는 ‘국제 도시’였다. 수많은 사람

들이이곳 온천으로 와서 물을 가져갔는데, 이 물은 양모를 씻고 염색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온천수의 치유력은 거대한 온천수 분지와 수영장 등 다양한 온천 시설을 통해 활용되었다. 물을

이용한 치료법이 지역 신앙의 맥락에서 발달한 종교 관습과 더불어 생기기도 했다.

 

유해한 증기가 발생하는 단층 위에는 아폴로 신전이 세워져 있다. 세베루스(Severus) 시대에

만들어진 극장은 에페소스(Ephesos)의 아르테미스(Artemis)에게 바치는 의식과 희생 제물을

묘사한 멋진 프리즈(frieze)로 장식되어 있다.

 

대형 공동 묘지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장례 풍습을 파노라마처럼 보여 주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히에라폴리스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사도 빌립보(Philip)가 87년경에

도미티아누스황제에 의해 이곳에서 십자가형을 당했다고 한다.

 

고대 프리기아 파카티아나의 주요 두 도시 가운데 하나이자 주교구였던 히에라 폴리스의 기독교

건축물로는 대성당, 세례당, 교회 등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건축물은 순교자 성 빌립보 기념 성당(martyrium of St Philip)이다. 웅장한 계단

위에는 공간 구성이 독창적이고 평면이 팔각형인 훌륭한 건물이 있으며, 절벽에 세워진 요새는

히에라폴리스 역사의 마지막을 보여 주고 있다.

▲파묵칼레 국립공원은 히에로폴리스의 자연적 가치들이 수렴하는 곳으로, 온천 침전물을 통해서

형성된 높다란 단구들과 높이 20m의 절벽과 폭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국립공원은 코켈레스 산맥(Cokelez Mountains)의 언저리를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쿠루크수

 평원 위로 솟아 있는 높이 200m의 단구는 파묵칼레와 카라하이트 사이로 약 6㎞가량 뻗어

있으며, 반원 형태의 못(pool)들이 계단 같은 형태로 비탈의 위쪽 ⅓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못의 표면을 뒤덮은 신선한 탄산칼슘 퇴적물들이 하얗게 반짝이고 있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유적 ▼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데니즐리(Denizli) 주 위치한 파묵칼레

▲언덕 위 온천 수영장에서는 고대 로마 유적 사이를 헤엄치는 독특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목화의 성’. 파묵(목화), 칼레(성)에 담긴 의미다. 하얀 온천지대 하나만으로도 독특한 풍경이다.

터키 현지인들이 아름다움을 비유할 때도 파묵칼레(파무칼레, Pamukkale)가 종종 등장한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생긴 모습은 흡사 계단식 다랭이논을 닮았다.

 

소금가루를 겹겹이 쌓아놓은 듯 하얀 석회층이 절벽 한 면을 빼곡히 채운다. 돌무쉬(미니버스)를

타고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빙산이나 설산 같다. 석회를 머금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그 성분들이

층을 이뤘고 층마다 푸른 물을 머금고 있다. 맑은 날이면 석회층은 물과 함께 청아하게 빛난다.

▲터키의 에게해 에서 동지중해 방향 아나톨리아에 있는 온천 마을이다. 데니즐리(Denizli) 주에

속한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며, 문자 그대로는 목화의 성이라는 흔한 의미이며, 터키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데니즐리 일대에 작용한 동서 방향의 장력이 이 지역에 정단층을 발달시켰다.

 

이때 일련의 고각의 정단층을 따라 따뜻하고 탄산칼슘이 과포화된 지하수가 흘러나오면서

석회 성분을 퇴적시켰다. 수천 년간 산의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려갔던 35~36도의 지하수에

포함되어있던 소금과 미네랄 성분이 지표면을 부드러운 회색 석회질로 덮었다.

▲튀르키예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이 석회층들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색이 변한다. 푸르던 물은 희게 변색되며 해 질 녘에 띠는

색깔은 붉은빛이다. 그렇기에 두세 시간 석회층과 인근 유적만 둘러보고 훌쩍 떠나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대중 온천에서 발을 담그며 현지인들과 미소도 나눠 보고. 겉은 딱딱

하고 속은 말랑말랑한 터키빵 에크멕도 인근 시장 골목에서 제대로 맛봐야 한다. 그렇게 노닥

노닥 보낸 뒤 파묵칼레가 시간에 따라 빚어내는 색의 마술을 감상하면 좋다.

▲이 석회층들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색이 변한다. 푸르던 물은 희게 변색되며 해 질 녘에

띠는 색깔은 붉은빛이다.

 

그렇기에 두세 시간 석회층과 인근 유적만 둘러보고 훌쩍 떠나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대중 온천에서 발을 담그며 현지인들과 미소도 나눠 보고.

겉은 딱딱하고 속은 말랑말랑한 터키빵 에크멕도 인근 시장 골목에서 제대로 맛봐야

한다.

 

그렇게 노닥노닥 보낸 뒤 파묵칼레가 시간에 따라 빚어내는 색의 마술을 감상하면 좋다.

▲예전에는 석회층에서 직접 몸을 담그며 목욕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뒤에는

목욕은 금지됐고 입구에서도 신발을 벗어야 일부 구간에 들어설 수 있다.

 

원천수의 온도는 대략 섭씨 35도. 생긴 것은 빙산처럼 보여도 발끝에 젖어드는 감촉은 따사롭다.

온천 분위기 내려고 수영복 차림으로 오가는 청춘들도 있고 석회층에 걸터앉아 멍하니 사색에

잠기는 여행자들도 있다.

가는 길
파묵칼레는 터키 남서부 데니즐리 주에 위치했다.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직항편이 오간다.

이스탄불에서 데니즐리까지 항공으로는 1시간 10분 소요된다.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는

10시간가량 걸린다.

 

데니즐리 터미널에서 파묵칼레행 미니버스가 운행 된다.작은 호텔이나 숙소는 파묵칼레 마을

들어서 있으며 리조트, 호텔 등은 카라하우트 쪽이 많은 편이다.

 

파묵칼레 인근에는 또 다른 온천 명승지도 자리 잡았다. 제2의 파묵칼레로 불리는 카클르크

(카크리크) 동굴은 최근에 발견된 종유동굴로 동굴 안에서 광천수가 뿜어져 나온다.

 

카라하우트(karahayit)로 불리는 휴양지 역시 온천 숙소들이 밀집돼 있다.최근에는 파묵칼레

의 훼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온천 호텔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온천수는 고갈되고 푸르고 흰 석회층은 누렇게 변색

되고 있다.쇠락의 길을 걸었던 고대 로마의 잔상은 파묵칼레에도 투영되는

애잔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중국 아름다운 삼청산(三淸山)의 멋진 雪景

▲산칭산(三清山)은 장시성 싱라오 시 위산 현과 더싱 시의 경계에 위치하며, 위산현의

중심으로부터약 50 km, 상라오 시로부터 약 78 km 떨어져 있다.

 

회옥산맥 갈래의 도교의 명산이며, 풍경이 수려하다. 산칭산의 이름은 삼봉(옥경, 옥화)

의 모습이 높고 험해 마치 삼청이 정상에 앉아 있는 것 같다(三峰峻抜、如三清列坐

其巓)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삼봉 가운데 옥경봉(玉京峰)이 가장 높고, 해발 1819.9m이다.2008변 7월 8일 캐나다의

퀘백주에서 개최된 제32회 세계유산 대회에서, 등록을 승인하였다.

 

산칭산은 중국에서 7번째의 세계자연유산이며, 강서성에서는 현재 유일한 세계자연유산

이다.

장시성(江西省) 상라오(上饒) 싼칭산 위치도

장시성(江西省) 상라오(上饒)시 위치도.

▲중국. 강서성(江西省) 위치도

▲주봉으로 옥경(玉京), 옥허(玉虚), 옥화(玉華)의 세 봉우리가 빼어나며 이 중 위징봉(玉京峰)이

가장 높은 해발 1,816.9m로 장시성(江西省)에서 다섯 번째로 높으며 신강(信江)의 발원지이다.

▲풍경구는 서화대(西華台), 삼청궁(三清宫), 위징봉(玉京峰, 옥경봉), 삼동구(三洞口), 티취령(梯去岭,

제거령), 옥령관(玉靈觀), 쓰가오령(石鼓岭, 석고령) 등 7개의 경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은

약 765.6㎢로 경내에는 기봉괴석, 샘과 동굴, 종유동굴, 제4기 빙천 유적 등으로 구성된 풍부한

자연경관으로 인해 황산(黃山)의 자매산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주요 경관으로 거망출산(巨蟒出山), 동방여신(東方女神) 및 관음상곡(觀音賞曲)은 3대 기경

(奇景)으로 불리고 있다.

 

산칭산(三清山)은 또한 도교의 명산으로 경내 삼청궁도관(三清宮道觀) 내 고건축과 석각 220여

개소가 있다. 1988년 8월 제2차 국가급풍경명승구, 2005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국가

4A급여유경구이다 

▲눈덮힌 잔도에도  보이는  사람도 없네...

바르샤바(Warszawa)ㅡ쇼팽의 심장이 묻힌 성십자가성당.

▲바르샤바 (Warszawa)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는 폴란드 최대의 도시이며 역사가 오래된 아름다운 도시이며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다. 중세이후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약 2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바르샤바의 80%가 파괴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복원되었다. 그로 인해

Unesco로부터 상도 받았다.

▲성 십자가 성당 (Świętego Kržyza)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남쪽 크라쿠프 교외 3번지에 있는 성 십자가성당은 1655년 스웨덴의

침공으로 파괴된 것1679~1696년에 다시 지었다.

 

정면에 우뚝 솟은 2개의 쌍둥이 첨탑은 그보다 훨씬 뒤인 1760년에 완성된 것이다. 금과

은을 많이사용해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이 지역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쇼팽의 심장이 묻혀 더 유명해진 곳으로, 심장은

본당 중앙의왼쪽 돌기둥 아래 묻혀 있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쇼팽은 20세때 폴란드를 떠나 여러

나라에 거처 하다가 39세에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파리의 페르라세즈 묘지에 묻히고, 쇼팽의 여동생이 파리를 방문

 겨우심장만을 가지고 돌아와 이 교회에 묻혔다고 한다.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의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쇼팽의 이름이 씌여진 커다란

기둥을 볼 수 있는데, 그 기둥 아래에 묻혀있다.

 

지금도 심장이 묻힌 돌기둥은 언제나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교회가 있는 크라쿠프 교외는 바르샤바에서 가장 고전적인 예술의 거리로,

 17~18세기 지어진 많은 건축물들이 있다.

 

교회에서 조금 더 가면 쇼팽이 고향 젤라조바 볼라를 떠나 거주하던 집터가 있는데, 

지금은 바르샤바대학교 동양학부가 자리잡고 있다. 인근에는 지동설로 유명한

코페르니쿠스의 좌상이 있다.

▲폴란드 전도 /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동유럽 폴란드 위치도.

▲성 십자가 성당 (Świętego Kržyza)

▲성 십자가 성당 (Świętego Kržyza)

▲성 십자가 성당 (Świętego Kržyza)

▲성 십자가 성당 (Świętego Kržyza)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상

 

성당의 입구에는 십자가를 메고 어딘가를 가리키는 예수의 상이 있는데 2차대전 때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상

▲성당 내부 

▲성당 내부 제대

▲성당 내부 제대

▲쇼팽의 심장이 묻힌곳

 

2차대전으로 파괴되었던 성당이 복구되면서 쇼팽의 심장도 그의 사망일인 10월17일에 맞춰

원래의 장소에 안치됐다고 한다"이 곳에 쇼팽의 심장이 쉬고 있습니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쇼팽의 심장이 묻힌곳을 알려 주는 현판

▲성당 이 기둥 밑에 쇼팽의 심장이 묻힌곳

▲쇼팽의 심장이 묻힌곳(1810년 ~ 1849년)

▲쇼팽의 심장이 묻힌곳

▲성십자가성당(좌)과  폴란드 출신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동상(우)

▲폴란드 출신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동상

 

코페르니쿠스 동상 뒤로 보이는 건물은 스타스지카 궁전으로 현재는 폴란드 과학 아카데미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동상

코페르니쿠스 동상 앞 바닥에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행성들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

▲폴란드 출신 천문 학자 코페르니쿠스 동상

▲코페르니쿠스 동상

 

지동설을 주장해서 천동설을 따르던 당시의 과학계에 혁명을 일으켰던 코페르니쿠스

신부의 동상

▲코페르니쿠스 동상

▲쇼팽의 생가

 

음악의 천재인 프레데릭 쇼핑은 1810년 3월 1일 '젤라조바 볼라'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약 54㎞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생가는 전 세계에서 많은 음악인들이

즐겨찾는 곳이기도 한다.

 

프랑스어 교사였던 프랑스인 아버지와 평범한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서

부터 음악의 천재성을 발휘하였던 쇼팽은 어린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의 나이 7살이 되던 해 바르샤바로 이사를 갔으나 가끔 이곳을 방문하여 예술가로서의 그의 감성

을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결핵이라는 병으로 인해 1849년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쇼팽의 생가는 바르샤바 도시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정도를 자동차로 가면 '젤라조바 볼라'

라는 작은마을 안의 공원에 있다.

 

공원 입구에는 1969년에 고슬라우스키가 만든 쇼팽 동상이 세워져 있고, 포플러 가로수가 줄지어

있는 한 가운데에 쇼팽의 생가가 보인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파괴되었다가 1945년 복구되면서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어 졌다. 내부에는

쇼팽의 자화상과 평소에 사용하던 악보, 악기, 가구, 가족사진 등의 여러 종류가 전시되어있다.

 

폴란드의 민족음악을 활용하여 만든 피아노곡에는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조국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생가 내부

▲생가 피아노

생가 내부

▲Chopin,1847.

▲쇼팽  1849

▲파리의 페르라세즈( Père Lachaise) 쇼팽 묘지. 

대홍수 이겨낸 ‘기적의 섬’…물탱크 위 198명 서로 지켰다.

▲국내 최장 출렁다리인 단양 ‘시루섬 기적의 다리’가 지난 19일 개장했다. 시루섬은 1972년

태풍 피해로 고립됐던 주민 약 200명이 물탱크 위로 대피해 살아남았던 역사적인 현장이다.

1985년 충주댐 완공으로 강 수위가 높아져 무인도가 됐다.

 

지난 19일 국내 최장(617m) 출렁다리가 탄생했다. 충북 단양 ‘시루섬 기적의 다리’다. 이전

까지는 충남 논산 탑정호의 출렁다리(600m)가 국내 출렁다리 250여 개 중에서 제일 길었다.

길이가 17m 더 긴 출렁다리가 생겼다는 건 사실 의미 있는 뉴스가 아니다. 전국 자치단체가

출렁다리 건설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이 기록도 조만간 깨질 터여서다.

 

국내 최장 출렁다리보다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건 이 다리가 놓인 시루섬의 역사다. 다리 주탑

이 서 있는 시루섬은 1972년 대홍수 때 주민이 합심해 대형 인명사고를 막았던 기적의 장소다. 

 

누에 치던 섬 덮친 홍수

 

시루섬은 단양읍 증도리 남한강에 떠 있는 하중도(河中島)다. 1970년대에는 면적이 23만㎡로

 여의도의 8배에 달했다. 수위가 높지 않을 때는 걸어서 뭍을 다닐 수 있는 모래섬이었다.

 

잠업(蠶業)이 활발했던 시절에는 약 50가구, 250명이 살았다. 섬 곳곳에 뽕나무밭이 있었고,

단양군이 세운 잠업연구소도 있었다.

▲1972년 8월 19일 태풍 베티가 단양을 강타했다. 강수량이 많지는 않았으나 시루섬 상류의 

상진대교가 붕괴됐다. 

 

다리가 무너지면서 삽시간에 강이 범람했다. 수위가 별안간 불어나는 바람에 시루섬이 고립

됐다. 주민은 물론이고 잠업 교육생 30명도 섬에 갇혀버렸다.

섬에 고립된 사람들은 불어나는 강물을 피해 가장 높은 지점으로 올라갔다. 6m 높이의 물탱크

다. 면적 20㎡, 그러니까 6평 남짓한 물탱크 위에 199명이 올라섰다. 이른바 ‘국평(국민 평형)

’이라 불리는 84㎡(25평) 면적 아파트 거실에 200명이 들어찬 꼴이었다. 

 

199명은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팔짱을 끼고 서로를 지켰다. 강물이 발밑까지 차올라도 

팔짱을 풀지 않았다. 물탱크에 오르지 못한 34명은 소나무 위에 얼기설기 널빤지를 깔고 

구조를 기다렸다.

섬이 고립된 지 14시간이 지나서야 수위가 낮아졌고, 구조대도 도착했다. 4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됐으나 더 큰 인명 피해를 겪지 않은 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물탱크 위에서 아들 잃은 여인.

 

물난리 이후에도 일부 주민은 섬을 떠나지 않았다. 수해가 빈번했고, 자연스레 인구가 감소했다.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시루섬은 무인도가 됐다. 현재 섬 면적은 약 6만㎡로, 1970년

대와 비교하면 4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물탱크 위에서 생후 6개월 아들을 잃은 최옥희씨 동상.

 

시루섬 기적의 다리는 단양읍 중심가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일본 강점기에 

만든 편도 1차선 터널 3개를 지나면 다리 주차장이 나온다. 

 

시루섬의 역사를 보여주는 탐방센터가 다리 입구 역할을 한다. 탐방센터 앞에 갓난

아기를 안은 채 슬픈 표정을 한 여성의 동상이 서 있다. 1972년 물탱크 위에서 

생후 6개월 된 아들을 압사(壓死)로 잃은 최옥희(88)씨 동상이다.

김사옥 단양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최씨는 참척의 고통을 당하고도 사람들이
동요

하지 않도록 내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루섬 탐방센터에 전시된 물탱크 모형.

 

다리는 ‘치유’를 뜻하는 보라색으로 만들었다. 전국에 출렁다리가 워낙 많다 보니 출렁다리 

걷는 재미가 대단하진 않다. 대신 300m를 걸으면 닿는 시루섬의 모습이 이채롭다.

 

 사람 살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잡목과 칡넝쿨이 섬을 집어삼켰다. 거대한 초록 생명체

가 꿈틀대는 것 같다. 

 

기억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물탱크라도 남겼으면 좋으련만 충주댐 공사 당시에 철거했단다. 

강 건너편에는 딱히 볼거리가 없다. 걸음을 되돌려 출발지로 돌아온다.

◆절벽길 걸으며 절경 감상 

▲절벽 중간에 설치된 이색 산책로인 단양강잔도.

 

시루섬 인근에 단양의 관광 명소가 모여 있다. 2017년 개장한 ‘만천하 스카이워크’와 ‘단양강

잔도’가 대표적이다.

 

 만학천봉(320m) 자락에 들어선 스카이워크는 단양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다. 소백산을 비롯

한 주변 산세와 남한강이 한눈에 담기는 이색 전망대다. 돌출된 유리 바닥에 서니 

잠깐 아찔했다.

주차장에서 스카이워크까지 모노레일이 다니긴 하지만, 전망대 정상까지 가려면 나선형
경사로

를 한참 걸어야 한다. 산책하듯 여유롭게 걷기에는 단양강잔도가 낫다.

 

남한강 절벽 중간에 설치한 편도 1.2㎞짜리 데크로드로, 수면 20m 높이에서 절벽을 걷는 맛이

남다르다. 데크로드를 걷다 보면 남한강 따라 펼쳐지는 단양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점기시절 일본이 만든 철로 터널을 활용한 수양개 빛터널.

 

아이와 함께라면 ‘수양개 선사유물 전시관’을 추천한다. 충주댐 건설과정에서 출토된 구석기 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다. 10월 8일까지 시루섬을 주제로 한 기획 전시도 진행한다.

 

전시관 한편에 개인이 운영하는 ‘수양개 빛터널’이 있다. 일제가 석회석 운반을 위해 지은 철로

터널에 조성한 관광지다. 조명이 화려하다. 

▲단양구경시장의 명물 마늘 아이스크림. 

 

단양구경시장에서 온갖 마늘 음식을 맛보는 것도 단양 여행의 색다른 재미다. 단양 마늘은 국내 

최고 품질로 인정받는다. 

 

큰 일교차과 석회 함량이 높은 황토 덕분이란다. 통마늘을 넣은 만두·닭강정·순대뿐 아니라 

마늘 아이스크림도 판다.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흑마늘의 궁합이 의외로 좋아 놀랐다.

▲시루섬 기적의 다리는 8월 말 현재 입장료가 없다. 10월께 유료화할 예정이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하고, 화요일은 쉰다.

 

만천하 스카이워크 입장료 어른 4000원, 단양강잔도 무료. 수양개 선사유물 전시관 어른2000원,

수양개 빛터널 어른 9000원. 전시관은 월요일, 빛터널은 화요일에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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