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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아시아****국가들/⊙일본*시코쿠(四國)

시코쿠(四國)ㅡ오헨로순례길ㅡ시코쿠 八十八寺 순례 41~~56

by 삼수갑산 2021. 11. 8.

오헨로(お遍路) 순례길ㅡ시코쿠 八十八寺 순례  41~~56

41. 龍光寺 (류우코우지)

稲荷山 護国院 龍光寺 (이나리잔 고코쿠인 류코우지)

愛媛縣 宇和島市 三間町, 0895-58-2186, 평지 산
본존 : 十一面観世音菩薩(홍법대사 작)
창건 : 홍법대사
종파 : 眞言宗御室派

807년 이지역을 지나던 홍법대사는 나락을 등에 진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우리들의 이 땅에 살면서 불법을 수호하고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세요]라 말하고 자취를 감췄다.

 

대사는 불법유포를 맹세하고 노인이 오곡대명신의 화신이라고 존상 십이면관세음보살과 脇士 부동명왕, 毘沙門天을 조각하고 절을 건립하고 안치하여 稲荷山 ž龍光寺로 이름을 붙이고 시코쿠 제41번 참배소로 정하였다.

 

그러나 메이지 초년의 廢佛棄釋에 따라 稲荷大明神은 석단의 위에 두고 그 아래에 새로이 건물을 지어 대사의 십일면관세음보살을 본당으로 모셨다.

 

42. 仏木寺(부쯔모쿠지)

一か山 毘盧舍那院 佛木寺(이쭈카잔 비루샤나인 부츠모쿠지)
愛媛縣 宇和島市 三間町, 0895-58-2216, 평지길가
본존 : 大日如来(홍법대사 작)
창건 : 홍법대사
종파 : 眞言宗御室派

807년 이지역을 순례 중이던 홍법대사는 소를 끌고 가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대사를 소의 등에 태웠다. 잠시 걸은즉 남(楠)나무의 큰 숲이 있고 그 가지 끝에 당에 있을 적에 던진 빛을 발하는 구슬이 걸려 있었다.

 

대사는 이곳을 불법유포의 영지라 생각하고 그 남나무로 대일여래를 조각하고 구슬을 미간에 넣어 草字心經, 화엄경을 써 넣은 절을 창건하고 일과산ž불목사라고 이름을 붙이고 시코쿠 제42번 참배소로 정하였다. 우마가축의 수호불로 알려져 있다. 아직 절 보물에는 대사 직필의 草字心經, 화엄경이 있다.

 

43. 明石寺(메이세키지)

源光山 円手院 明石寺(겐코우잔 엔쥬우인 메이세키지)
愛媛縣 西豫市 宇和町, 0894-62-0032, 평지 야산, 본당(대웅전) 수리중
본존 : 千手観世音菩薩
창건 : 正澄上人
종파 : 天台宗寺門派

킴메이(欽明)천황의 천황의 칙명에 의해 圓手院正澄라고 하는 불자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734년 수행자 小角에서 헤아려 5대째의 壽元행자가 12건물을 건축하여 수행도장의 중심이 되었다.

 

또 822년 이 절에 머물었던 홍법대사가 金紙金泥의 법화 넣어 하룻밤에 절을 짓고 여러 건물을 재건하여 시코쿠 제43번 참배소로 정하였다. 그 후 1194년 무장 源賴朝가 새로운 건물을 짓고 종래의 현광산을 源光山으로 변경하였다.

 

44. 大宝寺(타이호우지)

菅生山 大覚院 大宝寺(스고우잔 다이카쿠인 다이호우지)
愛媛縣 上浮穴郡, 0892-21-0044, 산속
본존 : 十一面観世音菩薩
창건 : 明神右京ž隼人


종파 : 진언종풍산파

문무천황의 칙령소이다. 오랜 옛날 明神右京ž隼人이라고 하는 형제 수렵인이 이 산에서 십일면관세음보살의 존상을 발견하고 소매에 싸서 가지고와 안치하였다는 것이 시작이다. 그 후문무천황의 칙령에 의해 그당시의 년호를 따서 대보사라고 이름을 붙여 창건하였다.

 

창건 후의 홍인년간 적에 머물던 홍법대사가 密敎三密의 수법을 수행하고 이 절을 시코쿠 제44번 참례소로 정하였다. 그 후1156~1158년에는 고시라카와천황이 병이 낫기를 기원하여 완쾌 후 소실한 한 건물을 재건하여 여동생을 주지로서 내려 보냈다.

 

그 후 병화와 메이지 7년의 화재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재건하는 역사를 되풀이 했다. 또 이곳은 번주 마쓰히라(松平)가의 기원소였다. 仁王門은 백년에 한번 바꾸는 大草履(억새지붕)、청색銅板의 지붕의 본당은 1964년 재건하였다.

 

45. 岩屋寺(이와야지)

愛媛縣 上浮穴郡 久万高原町, 0892-57-0417, 산속 바위절벽 아래 깊은 산속 절벽아래 주차장에서 30분 등산
본존 : 不動明王 (홍법대사 작)
창건 : 홍법대사
종파 : 眞言宗 豊山派

옛날 6500만년 전에 해저에서 융기된 지역으로 海岸山 岩屋寺라고 한다. 815년 홍법대사가 일찍이 수도의 영지를 찾아서 전념하고 있을 즈음 明王鈴의 소리에 이 산을 올랐다. 당시에 산속에 살고 있던 法華仙人은 대사의 불법에 귀의하여 산을 주었다. 그래서 대사는 스스로 부동명왕을 조각하고 절을 세우고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본존은 목상과 석상 두체가 있고 모두 대사 제작으로 목상은 본당에, 석상은 비불로서 안쪽 院의 암굴에 안치하고 있다. 이 절은 언제인가부터 제44번의 奧의 院으로 되어 있었으나 메이지 7년에 독립하여 45번 참배소로 되었다. 독립 후 약간의 사적을 남긴채 전소하였으나 다이쇼 9년에 재건 대사의 읊은 시구절에 따라 海岸山라고 이름 붙였다 한다

본당의 우측의 산을 金剛界峰, 좌측의 종루문에 면한 것을 台藏界峰이라 하고 그 외에도 선인굴 등이 있어 1944년에 나라의 명승지로 지정되었다. 시코쿠 참배소에는 어디든 본당과 대사당이 있다.

 

그런데 이절만은 본당이 대사당 아래 3~4단 아래에 있으며 대사당보다 작다. 그것은 본존인 부동명왕이 두 체있어 목상은 안치되어 있으나 석상은 산에 넣어져 있다. 결국 산 전체가 본당이 되므로 이것이 본당이 작은 이유이다. 주차장에서 약 30분 정도 올라가므로 88절중 어려운 곳이라 한다.

 

46. 淨瑠璃寺(죠우루리지)

医王山 養珠院 浄瑠璃寺(이오우잔 요우슈인 죠우르리지)

愛媛縣 松山市 浄瑠璃町, 089-963-0279, 평지
본존 : 薬師如来 (행기보살 작)
창건 :행기보살
종파 : 眞言宗 豊山派

708년 행기보살이 奈良의 大佛개안에 앞서 불교포교를 위해 이요국에 와서 여기에 머물었다. 행기보살은 이 곳이 불법유포의 최적지라고 생각하여 절을 건립하고 스스로 약사여래(医王佛)을 조각하고 본존으로 하고 또 일광, 월광의 여러 보살을 조각하여 모시고 약사여래가 사는 浄瑠璃淨土의 이름을 따서 절 이름으로 하였다.

 

또 807년 홍법대사가 머물면서 절을 증축 재흥하면서 시코쿠 제46번 참례소로 정했다. 이 후 전국시데에는 황폐 중흥을 거듭하면서 170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사회사업가이기도 한 曉音이 본당을 재건하였다.

 

현재의 본당은 1785년에 재건된 것이다. 경내에 수령1000年이라하는 이브키비야쿠신의 나무가 본당 뒤에 있고 마쓰야마시의 특별천연기념물이다.

 

47. 八坂寺(야사카지)

熊野山 妙見院 八坂寺(구마노잔 묘우켄인 야사카지)

愛媛縣 松山市 淨琉璃町, 089-963-0271, 평지
본존 : 阿弥陀如来 (惠心僧都 작)
창건 : 役行者小角
종파 : 眞言宗 醍醐派

701년 문무천황의 칙령에 의해서 伊豫守玉興공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창건시에 가람을 건립하는데 8개소의 길을 끊었다는데 연유하여 八坂寺라고 이름 붙였다. 본존은 좌상 3척의 아미타여래이다.

 

그 후 紀州의 熊野大權現이 권청되어 十二社權現가 모시지ㅕ 수련도장의 근본도장으로 현재의 熊野山 八坂寺가 되었다. 따라서 대를 지나 815년 시코쿠를 순방중인 홍법대사가 머물면서 절을 정비하고 재건하여 시코쿠 제47번 참배소가 되었다. 長曾阿部의 병화에 소실되었으나 다시 재건되었다.

八坂寺근처에는 文殊院得盛寺가 있고 이곳은 遍路의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衛門三郎의 집터라고 전해진다. 5男3女의 여덟 무덤이 논 가운데 나란히 있다.

 

48. 西林寺(사이린지)

淸瀑山 安養院 西林寺(키요타키잔 안요우인 사이린지)

愛媛縣 松山市 高井町, 089-975-9319, 평지
본존 : 十一面観世音菩薩(행기보살작)
창건 : 행기보살
종파 : 眞言宗 豊山派

742년 시코쿠를 행각중이던 행기보살이 여기에 머물러 이요의 국사인 越智宿称玉純과 만나 절을 짓고 십일면관세음보살을 조각하여 본존으로 한 것이 시작이다.

 

그 후 60수년이 지나 807년 시코쿠를 순례중인 홍법대사가 이 절에 머물면서 국사와 이야기하여 절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시코쿠 제48번 참례소로 하고 국가안태를 기원하는 도장으로 하였다. 그 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재건하고 증축을 하였다. 西林寺의 서남 150m에 대사유적의 奧의 院이 있다.

 

49. 淨土寺(죠우도지)

西林山 三藏院 浄土寺 (사이린잔 산죠우인 죠우도지)

愛媛縣 松山市 089-975-1730, 평지
본존 : 釈迦如来 (행기보살 작)
창건 : 惠明上人
종파 : 眞言宗 豊山派

729~748에 惠明上人에 의해 창건된 절이며 본존의 석가여래는 행기보살의 작이다. 또 普賢菩薩이 脇仏로 있는 곳은 88참배소 중에 이곳뿐이다. 오랜 옛날 孝謙천황의 기원소였을 때 절면적은 8정4방에 이르렀고 66곳의 말사도 있었으나 경응 4년의 병화로 소실되고 이후 절운은 쇄퇴 황폐하였다가 영주 河野 가에 의해 재흥되었다.

현재의 본당은 그때 (文明161484)年)의 것으로 당나라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 이 절에는 정토종의 개조, 원광대사, 이세 성광상인, 삼세 양충상인의 자작상이 있고 그것이 三藏院의 院이름으로 되어있다.

 

그 외에 민중의 성인으로서 부근 사람의 추모를 받는 空也上人의 상이 있다. 이것은 天德의 경에 上人이 삼년간 이 절에 머물었던 때의 자기가 조각한 것이라 한다. 덧붙여 말하면 空也上人은 醍醐천황의 제2 황자였다.

 

50. 繁多寺(한타지)

東山 琉璃光院 繁多寺(히가시야마 루리고우인 한타지)

愛媛縣 松山市 畑寺町, 089-975-0910, 평지 산 중턱
본존 : 薬師如来 (좌상 3척, 행기보살 작)
창건 : 행기보살
종파 : 眞言宗 豊山派

天平勝宝年間 孝謙천황의 칙령에 의해 행기보살이 좌상 3척의 약사여래상을 조각하고 그것을 본존으로 하여 창건하였다. 후에 홍인년간 홍법대사가 머물러 수도하고 현재의 산 이름, 절 이름을 명명하고 시코쿠 제50번 참배소로 하였다. 그 이후 절은 쇄퇴하였으나 源賴義가 재흥하고 御宇多천황의 칙령(몽고래습의 격퇴기도)를 받들어 聞月上人이 이 절에서 그 기도를 행하였다.

또 天和의 경에 龍湖라고 하는 명승이 나와 토쿠가와가의 귀의를 받아 4대장군의 歓喜天을 부탁받아 위패를 聖天堂에 모시고 있다. 그 동안 역대 황가의 존경을 받아 그 증표로 16잎의 국화문장기와가 남아 있다. 또 時宗의 一遍上人도 머물면서 수도하였다. 지금도 액퇴치, 사업번영, 합격기원으로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

 

51. 石手寺(이시테지)

熊野山 虛空藏院 石手寺(쿠마노잔, 코쿠조우인 이시테지)

愛媛縣 松山市 石手2丁目, 089-977-0870, 평지
본존 : 薬師如来 (행기보살작)
창건 : 행기보살
종파 : 眞言宗 豊山派

728년 쇼무천황의 칙령을 받은 이요국의 越智玉澄이 호극의 도장으로서 가람을 건립하고 안양사라고 명명한 것이 시작으로 그 이듬해 729년 행기보살이 와서 약사여래상을 조각하고 그것을 본존으로 하여 창건한 절로써 원래는 法相宗이었다.

그후 813년 당시 머물렀던 홍법대사가 수도하는 동안 진언종으로 바꾸고 시코쿠 제51번 참배소로 정하였다. 河野가에 탄생한 아들이 衛門三朗의 재탄생의 증거로써 三朗가 임종할 때 홍법대사로부터 받은 1촌8분의 작은 돌을 왼손에 쥐고 있었던 연유로 石手寺사로 개명하였다.

 

그 후 절은 크게 번성하였으나 長曾阿部의 병화에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본당, 인왕문, 삼층탑, 범종은 국보 및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52. 太山寺(타이산지)

龍雲山 護持院 太山寺(류우운잔, 고지인 다이산지)
愛媛縣 松山市 太山寺町, 089-978-0329
본존 : 十一面観世音菩薩
창건 : 眞野長者
종파 : 眞言宗 智山派

큐슈 붕고(豊後, 大分縣)국의 眞野長者가 다카하마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관음경을 읊고 기도하니 龍雲山방향에서 비쳐 나온 빛의 덕에 도움을 받았다. 불가사의 하게 생각하고 산에 오른 長者는 작은 초가집 안에 십일면관세음보살의 존영을 배알하였다. 長者는 도움 받은데 대한 예의로 본국에서 나무로 조합된 재료를 여기까지 운반하여 하룻밤에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쇼무천황의 칙령에 의해 온 행기보살이 십일면관세음보살상을 조각하고 안치하였다. 또한 천황자신도 산이름, 절이름을 하사하였다, 후에 머물었던 홍법대사는 수도를 하고 시코쿠 제52번 참배소로 정하였다.

 

절에는 6인의 조정의 칙원에 의해 높이 1.5m의 십일면관세음보살 여섯 분이 안치되어 있으며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대사당 왼편 안쪽에 있는 長者가 건립한 절은 十間四面貫으로 못을 사용하지 않은 공법이므로 특별보호건조물의 지정을 받고 있다.

 

53. 圓明寺(엔묘우지)

須賀山 正智院 円明寺 (스가산 쇼우치인 엔묘우지)

愛媛縣 松山市 和氣町, 089-978-1129, 평지, 마쓰야마 변두리, 작은 절
본존 : 阿弥陀如来(입상 3척5촌, 행기보살 작)
종파 : 眞言宗 智山派

쇼무천황의 칙원사이다. 칙령을 받고 온 행기보살이 3척의 입상 아미타여래상을 조각하고 본존으로 안치한 가람을 和氣의 해안에 창건하고 海岸山 円明密寺로 명명한 것이 시작이다. 그러나 그 이후 계속되는 병화에 절은 소실되고 황폐하여 장기간이 지났다.

 

재건한 것은 和氣의 호족 須賀重久가 현재지에 이전하고 가람을 재흥하였다. 그 후 쿄토의 覺深法親王의 지시에 의해 인화사의 말사가 되었고 그 때 須賀山의 산이름을 하사 받고 正智院 円明寺로 되었다. 또 본당 내에 있는 4m여의 용 조각물은 左甚五郞의 작으로 전해진다.

 

54. 延命寺 (엔메이지)

近見山 宝鐘院 延命寺(치카미잔 호우쇼우인 엔메이지)
愛媛縣 今治市, 0898-22-5696, 평지, 이마바리 중심부 주변, 54~59 이마바리
본존 : 不動明王 (행기보살 작)
종파 : 眞言宗 豊山派

天平년간 행기보살이 부동명왕을 조각하고 본존으로 하여 해발 244m의 近見山頂에 7당가람을 창건하였다. 그 후 嵯峨천황의 칙원을 받고 온 홍법대사가 이 절에와서 수행하고 황폐한 건물을 재흥하고 近見山ž不動院ž円明寺로 부르고 신앙과 학문의 중심도량으로 하였다.

 

그러나 그 후 빈번한 병화로 그때까지 융성한 가람은 소실하고 형보12년이 되어 현재지로 옮겨 재흥하였다. 절보물인 경내의 梵鐘은 宝永元年(1704)에 주지가 사재를 털어 주조하였다고 한다.

 

절 이름의 円明寺도 메이지시대에 우편제도가 시작하였 때 우편물이 53번의 円明寺와 틀여 쌍방 모두 곤란하였으므로 당국의 허락을 얻어 그때까지 속칭이었던 延命寺로 정식으로 절 이름으로 하였다.

 

55. 南光坊 (난코우보우)

別宮山 金剛院 南光坊 (벳쿠잔 콘고우인 난코우보우)
愛媛縣 今治市 別宮町, 0898-22-2916, 평지, 이마바리시내
본존 : 大通智勝如来
창건 : 행기보살
종파 : 眞言宗 醍醐派

오랜 옛날 이요의 태수 越智玉澄이 문무천황의 칙원을 받아 이마바리 바다에 떠있는 大三島(오미시마)에 大山祇明神을 청하여 法樂所로 24坊(절)를 건립하였다. 그런데 바다가 거칠 때 등 바다를 건너는 데 불편을 느껴 712년에 그 별궁을 越智郡 日吉村으로 하였을 때 24건물 중 8건물을 함께 옮겼다.

그후 長曾我部병화에 절은 불타고 또 성주 河野가의 멸망과 동시에 절 땅도 몰수되었고 그 후 번주에 의한 지속 및 메이지원년의 폐불, 1945년의 공습 등으로 대사당과 護摩堂을 남기고 다른 건물은 소실되었다. 경내에는 南光坊中興의 조상인 天野快道大僧正(1846~1923)의 묘가 있다.

 

56. 泰山寺 (타이산지)

金輸山 勅王院 泰山寺 (킨로우잔 쵸쿠오우인 다이산지)

愛媛縣 今治市 , 0898-22-5959, 평지, 작은 절
본존 : 地蔵菩薩(좌상 2척4촌, 홍법대사 작)
창건 : 홍법대사 종파 :眞言宗 醍醐派

淳和천황의 칙원사로 天長년간에 창건되었다. 홍인6년 홍법대사가 이 곳에 왔을 때 장마철이었다. 긴 장마비는 蒼社川에 모여 범람한 물 때문에 농민들은 큰 고초를 겪었다. 이 모양을 본 대사는 신속하게 강 원류에 단을 쌓고 土砂加持의 비법을 엄수하여 마지막 날에 延命지장보살의 존상을 보고 대사는 治水기원이 성취된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대사는 그에 대한 예의로 지장보살을 86cm의 크기로 조각하여 절을 창건하고 본존으로 안치하여 延命地藏經 16願의 제 1 [女人安産]에서 절 이름을 따서 泰山寺로 이름 붙였다. 또 대사는 修法의 땅을 기념하여 소나무를 심었고 [不忘松]이라 하였으나 1982년 고사하였다.

 

출처 / 글 / 사진 / 손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