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카스(喀什)ㅡ향비 묘(香妃 墓)와 청진사(淸眞寺)
▲향비 묘 전경입니다.
이슬람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묘지 건물입니다. 천장을 보면 네모 난 작은 구멍들이 있는데 이는
영혼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향비 묘(香妃 墓)는 카스 시내 동북쪽에 있으며,17세기에 카슈가르를 중심으로 타림 분지 내의 주요 오아시스 도시들을 지배 했던 이슬람교 최고의 성자이자 지도자인 아바크 히자 마자르(阿巴克霍加麻扎, Apak Hi Ja mazar)와 그의 가족 묘지로 약 72기의 묘가 있었으나, 1956년의 지진으로 현재는 58개의 묘지가 있습니다.
본래는 존경 받던 꾸란의 스승이자 호자의 아버지가 이슬람 종교 학교를 세웠던 곳인데, 호자의 아버지가 죽자 이곳에 묻혔고, 그 이후에 5대에 걸쳐 이곳에 묻힘으로서 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청(淸) 나라 건륭(乾隆)황제 때 이 지역 출신인 위구르인 향비가 후궁이 되었는데,아바크 호저의 손녀인 그녀가 향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은 그녀의 몸에서 향기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향비는 황제의 사랑을 받았으나, 위구르 전통 복장을 고집하고 잠자리를 거부했고, 만일을 위해 자살을 하려고 칼까지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그러나 3년 후 의문의 죽음으로 일찍 죽었는데, 죽어서라도 꼭 고향에 가고 싶다는 그녀의 평소의 말에 따라 시신을 베이징(北京)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묻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시신을 고향인 이곳으로 옮겨 오는데 만도 3년이 걸렸다고 하며, 위구르인들이 그녀을 경모하는 뜻에서 이곳을 향비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녀의 본 묘는 하북성(河北省) 청동릉(清東陵)에 묻혔으며, 고향인 이곳으로는 입고 있던 옷과 그녀의 시신을 실었던 가마만 보내졌으며, 실제로 청동릉(靑東陵)을 발굴해 향비 묘임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설은 20년 넘게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잘 살았고, 죽어서는 건륭 황제의 여인들이 묻혀 있는 유릉비원침(裕陵妃园寝)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건륭의 여인들이었던 황후, 귀빈, 후궁, 비 등 36명이 묻혀 있는데, 용비(容妃)라고
불리었던 향비도 그 중에 한 명이라고 합니다.
(향비에 대한 정보를 모으다 보니 매체마다 기록이 다 틀려서 어떤 것이 정설인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대체로 이 정도 선에서 알고 계시면 무난하리라 생각됩니다. 확실히 아시는 분은 글 올려 주세요.)
입장료는 45위안입니다.(향비 묘 입장료만 30위안) 이 속에는 카스 역사 문물(喀什.历史.文物)을 전시 해 놓은 작은 전시실 관람 비 5위안, 향비 과원(香妃果园)을 보는 입장료 10위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향비 묘 외에 두 군데는 안 들어가도 됩니다.(입장권 살 때 복무원이 물어 보고, 보고 싶은 곳만 따로 살 수 있습니다.) 전시관은 규모도 작고 소박하나 잠시 들러서 볼 만하나, 향비 과원은 절대 비추입니다. 들어가 봐야 볼 것도 없고 식당 같은 곳입니다.
▲원본출처 / naver 지식백과
▲묘지 건물 기둥의 문양입니다. 이곳 안에는 사진은 물론 비디오 촬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건물 외관의 문양이나 찍을 수 밖에 없습니다
▲건물 벽 한 곳의 문양입니다
▲강경당(讲经堂)으로 꾸란을 읽는 곳입니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이슬람인들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곳입니다
▲기도하는 곳의 기둥과 천장 문양입니다
▲고비 사막 마라톤 대회를 오신 한국 여성분과 이곳 아가씨들을 찍을 것입니다.
향비묘 앞에서 만났는데 한국 분들이 한 10분 정도 오셨더군요. 총 250km를 10일에 걸쳐 뛰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늘도 없는 사막을 뛰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고, 그 분들은 이 먼 곳까지 혼자 여행온 제가 대단하다고 하시더군요.
사막, 안 덥냐고 물어보니, 좀 지나니까 뛰어 다니는 것이 차 타고 다니는 것보다 덜 덥다고 하시더라고요. 속으로‘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 아가씨들 사진을 찍으면 본래 5위안인데, 대회 오신 여성분과 같이 찍어서 그냥 찍었습니다.
▲청진사(淸眞寺) 앞에 마련 된 사막 마라톤 골인지점입니다.
가끔 민속춤도 추고 음악도 연주해 흥을 돋우고, 사람들이 들어 올 때마다 음악을 울리곤 합니다. 이들은 순위가 목적이 아니고 다 같이 완주했느냐 안 했느냐가 목적인 것 같았습니다.
일찍 들어오던 늦게 들어오던 골인 지점을 향해 오는 사람들을 먼저 온 사람들이 뛰어 나가 반기면서 격려하고 응원하고, 골인하고 나면 일일이 악수하고 포옹하고 하더군요.
10일 동안 같이 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입니다. 전 이곳이 최종 지점인지 모르고 제 계획대로 왔는데, 향비 묘에서 만났던 한국 분 몇 분을 이곳에서 다시 뵈었습니다.
카스에는 약 100개 정도의 이슬람 사원이 있고, 이곳 아이티가얼 칭전스(艾提尕尔清真寺)가 가장 규모가 큽니다. 동서 120m, 남북 140m로 약 20,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중국 이슬람교의 가장 큰 사원으로 이슬람의 큰 행사가 많이 열립니다.
1422년에 세워졌으며 여러 번의 확장 공사를 거쳐 1872년에 현재와 같은 규모가 되었으며, 문화 혁명기에 파손되어 다시 짓기도 하여 지금의 사원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평일에는 한가하지만 위구르인들의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으로 10-11월의 람잔(Ramzan) 축제 기간 전후에는 신장 일대는 물론 외국에서도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현재도 위구르 여인들에게는 개방하지 않으나, 외국 여성들에게는 개방 합니다. 사원 앞은 넓은 광장이고, 그 길 건너편에 야시장이 있습니다. 더운 카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들어가면 그늘도 많고 조용해서 쉬기 좋습니다. 입장료는 10위안입니다.
▲청진사 입구입니다.
카스를 소개하는 영상 매체마다 꼭 한 번은 나오는 사원 입구입니다.
▲청진사 입구 문 위에 걸려 있는 현판입니다.
태양을 상징하는 것 같은데, 무슨 뜻인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예뻐서 찍은 것입니다. 실제로 글씨를 이용하여 배나 비행기 등 여러 가지 그림같이 그려 놓은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청진사 안에 세워진 현판인데, 글씨가 꼭 그림을 그려 놓은 것 같습니다.
▲청진사 안에 있는 누각입니다.
맞은편에도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 예배나 기도 시간을 알려주거나, 공지사항을 알리기도 하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예배 보는 곳을 둘러보고 들어 갈 수도 있으나 사진은 찍지 못하기 때문에 사진이
없습니다.
출처 / cafe.daum / gochina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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