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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ㅡ하이델베르그(Heidelberg) 성령교회 / 예수성당

by 삼수갑산 2021. 11. 30.

하이델베르그(Heidelberg)ㅡ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 / 예수성당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왼쪽이 예수성당, 오른쪽이 성령교회(개신교회)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도시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으로 약 75km 떨어진 대학도시이다.하이델베르크는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독일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 역학을 담당해 왔다.

 

짙은 녹색의 숲을 배경으로 한 고풍스러운 옛 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도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무대이기도 하다.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오덴발트 구릉지대에서 운하화된 네카어 강이 빠져나와 라인 평야로 흘러드는

지점에 있다.

 

1196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 이 도시는 1720년까지 라인팔츠의 중심지로서 선제후인 팔츠 백작가의 거주지였다. 30년전쟁(1632) 때 폐허가 되었고, 1689, 1693년에는 프랑스인의 침략으로 거의 파괴되어 지금 남아 있는 주요건물들은 대부분 중세의 고딕 양식이 아닌 바로크 건축 양식(18세기 후반까지 유행함)으로 되어 있다.

 

이 도시는 1802년 바덴에 양도되었고, 20세기에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1693년에 파괴되지 않고 남은 건물은 성령교회(1400~36)· 마르슈탈(1590, 옛날의 왕실 마구간)· 기사회관(1592)뿐이었다.

 

그밖에 중요한 건축물로는 알테 다리(1786~88, 재건 1945 이후)와 시청(1701~03), 예수회 교회(1712)가 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흥미롭고 인상 깊은 건물은 하이델베르크 성이다. 이 성은 1689, 1693년에 프랑스인들에게 파괴되었고 1764년에는 벼락을 맞았지만, 강에서 100m 높이에 웅장하게 서 있는 붉은 사암 건물은 아직도 시가지를 압도하고 있다.

 

또한 이 성은 13세기에 짓기 시작했지만 가장 유명한 부분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고, 성의 익면(중심 건물에서 옆으로 날개처럼 뻗은 부분)에는 오토-하인리히 관과 프리드리히 관이 있다. 프리드리히 관의 지하실에는 용량이 18만 5,500ℓ나 되는 거대한 포도주 통인 하이델베르크 술통(1751)이 있다. 시내에서 쾨니히스슈툴 산(단층 지괴) 꼭대기까지 왕복 운행하는 케이블 철도를 이용하면 이 성에 닿을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내려다본 하이델베르크 전경 

 

▲하이델베르크 성, 코른 마르크트(Kornmarkt)

 

마르크트 광장 인근에 있는 광장으로, 옛날 곡물시장이 열리던 자리였다. 중앙에 성모 마리아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 뒷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올라가는 케이블 열차(후니쿨라)를 타는 역이 있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내려다본 성령교회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바실리카가 있던 자리에 1400~1401년 사이에 지어진 대학 부속 교회로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바로크 양식의 돔이 특징인 성령 교회는 하이델베르크성에서 내려다 보는 하이델베르크 경관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마르크트광장, 성령교회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성령 교회는 1398년 착공되어 1441년 본당이 완공되었고 첨탑은 1544년 완공되었다.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교회는 붉은색 사암으로 지어져서 더욱 아름다운데, 우뚝 솟아오른 탑은 하이델베르크의 상징과도 같다.

 

교회 내부는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져 있어 남부 독일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부 건축으로 유명하다.

 

이 교회는 대대로 선제후의 묘가 안치되어 온 곳이며, 원래는 가톨릭 성당이었지만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회가 되었다. 교회 맞은편에는 르네상스식의 갈색 건물인 ‘기사의 집’이 있는데, 1592년에 지어진 것이다. 기사의 집은 지금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르크트광장, 성령교회

 

성령교회는 30년 종교전쟁 후 수차례 예수회와 개신교의 소유권이 바뀌다가 1706년에는 교회 내 장벽을

설치하여 신 구교가 별도로 예배를 드리다가 1936년 장벽을 허물고 현재는 개신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마르크트광장, 헤라클레스 동상

 

▲마르크트광장, 헤라클레스 동상

 

▲성령교회 (Heiliggeistkeriche) 내부 프리드리히 가문 선제후의 묘

 

선제후 55명의 묘가 있었으나 1693년 루프레히트 2세의 비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괴 되어

현재 있는것은 루프레히트 2세(1352-1410)의 비문만 남아있다.

 

▲'물리학의 창'

 

일본인들은 이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기 위해 찾아온다. 바로 이 스테인드 글라스가 히로시마 원폭후 그곳에서 나온 잔재를 가지고 만든, 히로시마 원폭사태를 위로하고 기억하고자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교회는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분쟁 때문에 1705년에는 교회 내부 성단 사이에 벽을 쌓아 서로 따로 예배를 보면서 대립하였다고도 한다.

 

이 벽이 철거된 것은 대학 창립 500주년을 맞이한 1886년. 1936년에는 개신교가 가톨릭으로부터 권리 등을 사들여 지금은 개신교 교회가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교회 내부에 들어가면 양 쪽 벽으로 아름다운 스탠드 글라스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 중에서 오른 쪽 입구 끝에 있는 스탠드 글라스가 나 같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좀 별나다. 이 스탠드 글라스는 내가 보기에 네 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위쪽에는 알파벳 구 고딕 모필체로 성서구절이, 그 다음에는 E=mc², 그리고 깨진 지구 사이로 벌겋게 퍼져 나오는 불꽃, 가장 아래쪽 귀퉁이에는 6. 8 .1945. 이미 눈치 챈 분들도 있을 것이다. <6. 8 .1945>는 1945년 8월 6일. 즉 히로시마에 인명살상 목적으로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된 날이다.

 

그 원자폭탄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뜻을 담아 벌겋게 타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담았을 것이다. 그리고 E=mc²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아이슈타인도 이곳 하이델베르크에 머문 적이 있다고 한다.

 

가장 위에 있는 성서구절은 나중에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단다.“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베드로후서 3-10).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이사야 54-10). 성서에 대해선 비전문가인 내가 이런 저런 해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지만, 네 가지를 이어 생각하면, 과학문명의 발전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

 

이 스탠드 글라스가 설치된 것은 1984년. 제작자는 요하네스 슈라이터(Johannes Schreiter). 제목은 ‘물리학의 창(窓)’(Physik-Fenster). 원래는 ‘의학의 창’, ‘생물학의 창’, ‘음악의 창’, ‘철학과 문학의 창’, ‘축복과 주의 기도의 창’에

이은 6번째 시리즈였다.

 

1984년 이 슈라이터의 스탠드 글래스가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많은 논쟁이 있었고 결국 ‘물리학의 창’이라는 스탠드 글래스만 설치되었다.

 

요하네스 슈라이터라는 사람은 위키피디어에도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유명한 사람인 듯한데, 독일어와 네덜란드어로 쓰여져 있으니 현재로선 알 방법이 없다

 

. 다만 스코틀랜드 미술관에 이 사람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또 작품집도 나와 있는 듯하다. 이 사람이 어떤 연유로 혹은 어떤 뜻을 담아 ‘물리학의 창’을 제작했는지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슈나이스 목사님 말씀에 따르면, 당시 보수적인 장로들은 ‘물리학의 창’이 지나치게 어둡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내가 한 없이 ‘물리학의 창’을 쳐다보고 있자,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몸이 빠른 목사님이 교회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가셔서 ‘물리학의 창’이 그려져 있는 엽서를 손수 사주셨다.

 

그런데 기념품 가게에 있는 70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하신 말씀, “이 스탠드 글래스는 너무 어두워서 교회 분위기를 망치고 있어요”. 슈나이스 목사님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셨다.

 

한 가지 더, 일본 측 자료를 보니,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점, 그리고 이 ‘물리학의 창’에 대한 해설은 있지만, 일본의 평화단체나 혹은 히로시마 쪽에서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슈라이터가 히로시마와 관련을 가지고 이 스탠드 글래스를 만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히로시마는 일본의 히로시마가 아니라, 인류멸망을 상징하는 메타포인 듯하다. 상대성 이론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성당- 성령성당이 교회가 된 후 새롭게 세운 성당

 

▲하이델베르크 예수성당, 예수회 성당 

1712-1723년에 1차 건축을, 1749년 2차 건축을 1866-1872 종탑을 00년대에 지어진 예수 성당은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성령교회를 개신교에게 넘긴 후 하이델베르크 가톨릭의 중심 성당이 되었다

 

▲하이델베르크 예수성당, 예수회 성당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