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그베니(Kagbeni)ㅡ무스탕의 관문 까그베니
오전 6시, 좀솜행 비행기가 포카라 공항을 이륙했다. 포카라 시내를 벗어난 비행기는 바로 사랑코트와 마차푸차레 사이 계곡을 통과하여 고라빠니 위의 푼힐을 스치듯 지난다.
그리고 곧 세계에서 가장 깊은 깔리 간다키 계곡으로 들어가 안나푸르나 연봉을 비롯한 계곡 좌우의 높은 산 사이를 날렵한 제비처럼 비행한다.
깔로빠니, 툭체를 지나 마르파가 보이더니 잠시 후 좀솜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은 불과 25분. 포카라에서 나야풀을 거쳐 걸어온다면 4일이 걸리는 거리다.
네팔에서 3일 밤을 묵은 후에야 들어온 설산이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졌다.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공항에서 가이드 삼툭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카트만두에 밤에 도착하여 1박, 다음날 무스탕 트레킹 허가 신청 절차를 진행하느라 1박했다. 여권과 사진과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허가서를 미리 만들 수 없다. 또 개인이 허가를 신청할 수도 없다.
▲무스탕 트레킹 루트 개념도
도착하자마자 삼툭이 우리 여권과 사진을 받아, 준비해 둔 서류와 함께 무스탕 트레킹 허가 전문여행사로 넘겨주었다. 다음날 오전 호텔 로비에서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안나푸르나 입산 허가서와 무스탕 비자를 받았다.
카트만두에서 국내선을 타고 포카라로 와서 다시 1박했다. 포카라에서 좀솜 가는 비행기는 오전만 운항하므로 카트만두에서 좀솜까지 당일에 갈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아침 일찍 포카라행 비행기를 타고 포카라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좀솜 가는 비행편으로 갈아 탈 수도 있지만, 그런 일정을 짰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카트만두에서 아침 일찍 비행기가 뜬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카트만두의 아침은 안개가 끼는 날이 많다. 우리도 11시 비행편이었지만 안개로 인한 출발 지연으로 2시간 기다려 오후 1시에야 겨우 출발했다. 그러므로 네팔 여행은 항상 여유 있는 일정을 짜는 것이 좋다.
6년 만에 다시 찾은 좀솜.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공항청사가 완공되었고 활주로도 포장되어 있다. 마을길도 판석으로 포장되었고 오토바이와 트랙터도 보인다. 롯지도 모두 깔끔해졌다. 사람들의 인심도 조금은 변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영향이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 변함없이 우뚝 서 있는 것은 동쪽의 닐리기봉(7,061m)이다. 길가 군대 막사 뒤편 절벽에 하얀 페인트로 크게 “WELCOME TO CLIMBING”이라고 쓰여 있는 글도 여전하다. 저 높은 절벽에 글씨를 쓴 기술에 감탄할 뿐이다.
공항이 있는 좀솜은 현재 무스탕 지역의 행정중심지로 번창하고 있지만, 안나푸르나가 개방되기 전인 1975년까지는
툭체가 행정 중심지였다.
1964년 이곳을 지나 로만탕으로 들어갔던 미셸 페이셀의 여행기를 보면, 당시 좀솜은 몇 명의 군인들이 무스탕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감시하는 체크포스트가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라고 한다.
좀솜(또는 조모솜)은 ‘종삼뽀Zdongsampo’라는 티베트어에서 나온 말로 ‘새로운 요새’라는 뜻이다. 옛날 이곳을 통치하던성주가 새로 이곳에 요새를 지은 데서 유래했다. 공항이 들어선 거리는 뉴 타운이고 원래의 마을은 계곡 건너편이다. 트레커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히말라야 산자락 곳곳의 길옆에 이런 뉴 타운이 들어섰다.
7시간 25분의 운행 시간은 특별할 게 없다. 트레킹을 하다보면 상황에 따라 하루 이틀 쯤은 많이 걸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러나 그것은 내리막길이거나 고소에 적응이 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고도 850m의 포카라에서 3,050m의 축상까지 하루에 오르는 것은 위험하다. 이들은 다음날도 8시간에 걸쳐 3,800m의 샴모첸까지 갔다고 한다.
이틀 만에 3,000m를 올라가는 것은 나로선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아무리 전문가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아무 탈 없이 돌아온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스탕은 비상시 헬기를 부를 수 있는 무선통신 시설이 갖춰진 마을도 몇 안 된다.
일정이 촉박하다 하더라도 무스탕을 그렇게 급하게 다닐 일은 아니다. 바쁘게 걷게 되면 목적지만 생각날 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중간에 쉬는 시간에도 마음이 급하다. 장엄한 풍광도 문화유적도 여유 있게 감상하지 못하고
몸만 빨리 피로해지고 만다.
좀솜을 벗어나 넓고 끝없는 깔리 간다키 계곡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주 교통수단은 말이다. 걷거나 말을 탄 현지인들과 묵티나트 순례자들 자주 만날 수 있다. 우리도 필요할 때는 말을 타게 될 것이다.
트레커는 걷는 것이 원칙이지만 말을 유용한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현지인들의 관습을 무시하고 걷기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좀솜에는 요즘 오토바이가 등장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오토바이는 편리함과 부의 상징이다. 물론 운행구간은 한정되어
있다. 위로는 묵티나트, 아래로는 비교적 넓은 길이 나 있는 깔로빠니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트레킹 중에 만나는 말들은 그런대로 낭만적이고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요란한 소음을 일으키며 다니는 오토바이들은
반갑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편리한 교통수단이니 외부인이 시비할 수는 없다.
9시가 되자 뒤에서 슬슬 강바람이 분다. 6년 전에는 이런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에클로바티에서 좀솜으로 내려왔다.
매일 오전 해가 뜨면서부터 부는 이 바람은 비행기의 이착륙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거세다.
그래서 포카라와 좀솜을 오가는 비행기는 오전 10시가 넘으면 운행을 중단한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깔리 간다키 계곡의 모래 바람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바람 많은 황량한 롯지 마을 에클로바티까지 2시간 걸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붉은 곰빠 건물이 인상적인 까그베니가 보였다. 현재 좀솜에서 묵티나트까지 오르는 산허리 길에는
큰 도로가 나고 있는데, 에클로바티 못미처 큰 바위 절벽이 막고 있는 곳은 개통되지 않고 있다.
올려다보니 까마득하게 높은 바위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수작업으로 바위를 깎고 있다. 저 길만 뚫리면 좀솜-묵티나트 구간은 연중무휴로 편리하게 사람과 말과 오토바이가 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업 진도를 보아하니 몇 년은 더 걸릴 것 같다.
바람이 제법 세게 불었다. 롯지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 40분만 더 가면 오늘의 목적지 까그베니다. 천천히 걸어도 12시 전에 도착이 가능하다. 그러나 오늘은 아침도 시원찮게 먹었고, 오랜만에 많이 걸어서인지 생각보다 피곤하다.
이럴 땐 쉬어야 한다. 빨리 가서 쉬려고 중간에 멈추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칫 오버페이스가 되어 낭패를
볼 수 있다. 여유를 가지고 쉬면서 기력을 회복하는 것이 좋다.
마을 사람들이 롯지 앞 양지바른 곳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마친 트레커들이 가끔씩 내려온다. 5,416m의 토롱 라를 넘었다는 자부심과 만족감이 얼굴에 쓰여 있다. 점심을 먹고 충분히 쉰 다음 출발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까그베니에 도착했다.
까그베니. ‘까그’는 ‘경계’라는 뜻이고 ‘베니’는 ‘두 강물의 합류’라는 뜻이다. 묵티나트에서 내려오는 계곡인 종 콜라Jhong Khola14)의 물이 여기서 깔리 간다키 강에 합류한다. 안나푸르나 일주를 할 때 따또빠니에서 고라빠니로 올라가지 않고
깔리 간다키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베니Beni가 나온다.
그렇다면 그곳 역시 강물이 합류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순수 티베트문화권인 무스탕 지역으로 들어가는 경계다. 이곳을 기점으로 북쪽으로는 힌두교 문화를 찾아볼 수 없다.
마을에 들어서자 거대한 초르텐chorten15)이 중앙에 떡 버티고 있다. 히말라야 산자락을 여러 번 여행했지만 이렇게 큰 초르텐은 처음이다. 전형적인 티베트 양식의 이런 초르텐이 무스탕에는 부지기수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초르텐 중앙에는 영어로 쓴 안내판이 달려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이 초르텐은 1665년에 세워졌으며 안쪽 통로에는 375년 된 만달라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또 가운데 통로는 천상으로 가는 문으로 한번 이곳을 지나면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가 없어지고 장수(長壽)와 좋은 업(業)을 얻는다고 한다. 가운데 통로에 들어가서 보니 과연 천장에 만달라가 그려져 있다.
초르텐 주변까지 집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 입구에 세운 이런 초르텐은 여행자들에게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이정표이면서, 아울러 마을에 악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벽사(辟邪)용이다.
또 마을을 떠나는 여행자들에게는 여행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기도처이기도 하다. 초르텐은 보통 마을 앞과 뒤 200~500m 정도 거리를 두고 세운다.
그래서 까그베니의 올드 빌리지는 초르텐을 지나 한참 더 가야 나온다. 그러므로 초르텐 주변에 집이 있다는 것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안나푸르나가 개방되어 외국인 트레커들이 들어오면서 생긴 롯지 마을이다. 지금은 신구(新舊) 마을이 거의 연결되어 있으며 작은 개울 하나만 중간에 경계를 이루고 있다.
스태프들이 롯지 마당에 캠프를 차릴 동안 우리들은 식당에서 차를 마셨다. 아직 짐을 풀지 않아 샤워는 할 수 없다. 말에서 짐을 내리고 텐트를 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 보통은 말이 먼저 가는 법이지만 오늘은 첫날이라 말과 같이 운행했다.
곧 텐트가 세워지고 각자의 짐이 텐트로 배달되었다. 텐트는 2인용인데 삼툭의 배려로 1인 1텐트가 준비되었다. 롯지 샤워장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땀에 젖은 옷을 빨아 널었다.
까그베니는 롯지가 있으므로 샤워시설이 있다. 다음 목적지인 축상에서도 소박한 샤워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샤워용 텐트를 치고 물을 데워 간단하게 땀을 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바람이 많이 분다. 마을 아래 강변 뒤쪽 보리밭에는 푸른 보리가 속절없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개울 건너 올드 빌리지는 깔끔한 롯지들이 즐비한 뉴 빌리지와 달리 돌과 흙으로 지은 3층 높이의 집들이 요새처럼 버티고 서 있다.
무스탕 마을들은 대부분 이런 형태다. 좁은 골목에 잿빛 일색의 황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은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곳 같다. 그러나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고 가축우리도 집에 붙어 있다.
까그베니는 옛날부터 티베트와 인도 사이의 무역에서 중요한 장소였다. 이곳은 원래 로 왕국에 속한 하나의 성이었다.
마을 위의 무너져 가는 요새지는 한때 이곳이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인도와 티베트를
왕래하는 대상(隊商)들은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묵티나트 쪽의 규 라를 통해 산을 넘어 축상으로 우회할 수도 있지만 훨씬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반나절이면 갈 길을 이틀이 걸리고 위험한 산길을 택할 이유는 없다. 까그베니는 그런 대상들에게 통행세를 받아 번영했다. 그러나 주변 세력들과의 전쟁과 인도에서 소금이 들어오면서부터 교역이 뜸해지자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하면서 무스탕에 들어가지 않고도 전형적인 티베트 스타일의 마을을 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큰 마을로는 토롱 라를 넘기 전에 마낭이 있고 작은 마을로는 묵티나트 주변 종 콜라 좌우로 서너 마을이 있다.
묵티나트 아래로 내려오면 자르코트와 킹가르, 그리고 까그베니가 있다. 묵티나트에서 산을 넘어 좀솜 가는 길에는 루브라도 있다. 이런 마을들을 그냥 통과해 버리면 묵티나트에서 내려오며 느꼈던 황량한 티베트 분위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는 셈이다.
이곳 곰빠는 무스탕의 주된 종파인 사꺄파 곰빠다.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으나 스님은 살고 있지 않다. 1998년 무스탕을
가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칼스텐의 기록에는 지진으로 무너진 곰빠를 새로 짓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곰빠에서 롯지도 운영하는지 입구에 객실이 몇 개 보인다. 인기척은 없다. 서양 남자 두 명이 곰빠를 기웃거린다. 안뜰로
들어가는 작은 나무문을 젖히고 들어가 붉은 성채 같은 곰빠 앞으로 가니 문이 잠겨 있다.
무스탕은 물론 티베트의 곰빠는 대부분 성채 같은 모양이다. 실제로 곰빠는 하나의 작은 요새 역할을 해왔으며 스님들은 여차하면 승병이 되어 적들과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그래서 곰빠의 입구는 하나뿐이고 창문도 최소한의 크기로 만들었다.
곰빠 외벽에는 무스탕 곰빠의 특징인 붉은색, 흰색, 검푸른 색의 줄무늬 문양이 있다. 이 세 가지 색은 각기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 그리고 수호신장들을 상징한다.
외벽에는 또 마니차manicha16)가 설치되어 있어 꼬라(오른돌이)를 하면서 돌릴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외국인들이 보이자 한 젊은 여자가 와서 입장료를 받고 문을 열어준다. 1인당 100루피. 무스탕의 모든 곰빠는 100루피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법당은 이층에 있다.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무스탕 순례를 원만하게 회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하고 기도 드린 후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깔리 간다키 계곡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염원의 평원 로만탕으로 들어가는 깊고 깊은 계곡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무심코 둘러보다 곰빠 지붕 네 귀퉁이에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머리통 같은 것이 하나씩 걸려 있어 깜짝 놀랐다.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벽사용으로 만든 형상이지만 바람에 휘날리는 거대한 머리를 보니 기분이 으스스하다.
저녁 먹기 전 마을 뒤 언덕으로 올라가 깔리 간다키 풍경을 감상한다. 곰빠 훨씬 높은 곳이라 전망이 더 좋다. 닐기리와 토롱피크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아 아쉽지만 다른 전망은 좋다.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몸이 날아갈 지경이다.
이제 내일이면 저 멀리 보이는 계곡 속으로,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금단의 왕국 무스탕으로 들어간다. 이 순례여행을 과연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긴장감과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출처 / blog.naver.com / 월인청강(buddha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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