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탕ㅡ네팔 무스탕 왕국의 티지(Teeji) 축제
무스탕은 3면이 중국령 티베트 영토에 둘러싸여 있으며, 14세기 무렵부터 로(Lo) 왕국이 통치해왔다.로왕국은 17세기 이후 네팔로부터 왕족계급과 농토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아 네팔 안의 왕국으로 존속해왔으며, 1992년에야 외부세계에 알려졌다. 언어는 로바어를 사용하고 종교는 대부분 티베트불교를 믿는다.
기후조건은 바람이 강하고 강수량이 적어 건조하며 일교차가 심하다. 농사일은 여자들이 많이 하며 주로 보리, 메밀, 여러 가지 채소 등을 재배한다.
가축으로는 야크를 비롯한 여러 짐승들을 길러 유제품, 고기, 가죽 등을 얻고 마른 똥은 땔감으로 사용한다. 겨울에는 춥고 눈이 많이 내리므로 다른 지역으로 가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옥은 돌벽을 세우고 얄팍한 돌로 지붕을 만든다. 창문은 내지 않으며 강한 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벽에 작은 구멍을낸다. 봉건제도가 남아 있어, 영주는 3층집을 짓고 평민과 하층민은 단층집을 짓는 등 계층에 따라 집의 층수가 달라진다.사회적인 존경과 명예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결혼은 전통적으로 일처다부제를 따른다.
▲둑체마을에서 촬영한 안나푸르나산군의 일몰.
네팔은 2007년 239년간 이어온 왕정을 종식시키고 공화정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네팔의 서부 지역에 자리 잡은 무스탕 왕국은 6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영토와 권력은 모두 잃었지만 상징적인 존재로서의 왕과 왕궁이 있고, 혈통에 따라 그 지위를 계승하고 있다.무엇보다 현지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역시 권위는 스스로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세워 줘야 빛나는 법이다.
무스탕 왕국의 수도인 로만탕은 1992년에야 외부세계에 공개됐다. 오지이기도 했지만 달라이라마를 추종하는 대중국 무장 저항군이 부근에 주둔했던 까닭도 있다.
티베트와 매우 가깝고, 티베트계 주민들이 다수 살고 있어 종교, 문화, 생활양식이 티베트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밭농사와 목축이 주업이고, 티베트와의 소규모 국경무역이 활발하다. 도로가 뚫리면서 찾아오는 외국 트레커가 늘어나 호텔과 로지 등의 서비스업이 증가하는 추세다.
아직은 전통문화에 기초한 생활양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에 눈을 뜨면서 특유의 순수성과 신비로움이 반감된 것이 사실이다.
▲묵티나트사원에서 목욕을 하는 인도사람들.
로만탕에는 유명한 축제가 있다. 바로 티지(Teeji)축제다. 축제는 본래 축일(祝日)과 제일(祭日)이 결합된 것으로 축하하여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요즘의 축제는 상업적이거나 즐기는 측면이 강하다.티지축제는 형식과 내용이 축제 본연의 의미에 가깝고, 의상이나 프로그램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종교,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티지축제는 티베트력으로 세 번째 달인 다와숨바(Dawa Sumba)의 27~29일까지 3일간 로만탕에 있는 무스탕 왕의 궁전 앞 광장에서 열린다. 양력으로 따지면 매년 날짜가 틀려진다. 올해는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열렸다.
티지축제 참관 소요 비용은 10일간의 어퍼무스탕(로만탕) 트레킹 허가에 1인당 500달러를 내야 하고, 하루를 초과할 때마다 1인당 50달러를 더 내야 한다. 그리고 패키지처럼 따라붙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허가와 또 다른 허가에 55달러가 다시 추가되어 1인당 555달러를 우선 지불해야 하고, 여행보험도 들어야 한다.
참고로 날짜는 카그베니를 통과한 날부터 계산한다.티지축제의 입장료는 따로 지불해야 한다. 하루에 1인당 10달러, 촬영을 하려면 1인당 10달러가 또 추가된다. 축제가 3일간 진행되므로 1인당 60달러가 추가되는 셈이다.
카트만두에서 로만탕으로 가자면 좀솜까지 비행기를 이용하고, 좀솜에서 다시 차를 대절해서 가는 것이 가장 빠르지만 우리는 카트만두에서 지프차를 대절해 로만탕까지 가기로 했다.
차편을 이용해도 카트만두에서 로만탕까지 4일, 돌아오는 데 3일, 머무는 기간 3일, 합해서 10일간의 일정이기에 큰 무리가 없다. 지프차의 이용료는 한 대당 하루에 250달러 내외.
▲둑체마을 인근에서 만난 어린이의 해맑은 모습.
이번에 함께 간 일행은 5명이고, 스태프는 가이드와 쿡을 포함해 6명, 지프차는 3대를 빌렸다. 스태프들의 고용비용, 한국에서 네팔까지의 왕복 항공료, 식비, 숙박비까지 추가하면 부담스러운 경비다.
5월 28일 세 대의 지프차에 나누어 타고 카트만두를 출발했다. 포카라-베니-마파-좀솜을 거쳐 카그베니-추상-가미-차량을 지나 나흘 만인 5월 31일에야 비로소 로만탕에 도착했다.
차량을 이용했는데도 나흘이나 걸리는 이유는 네팔의 도로 사정 때문이다. 네팔은 산이 많다 보니 산허리를 절개하고 개설해 놓은 도로가 대부분이다. 도로는 좁고 굽어 있는데다 옆은 까마득한 절벽이다.
그 흔한 가드레일조차 없다. 빨리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고, 처음 타는 사람은 차창 밖을 내다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간담이 서늘해지고 심장은 오글거린다.
▲둑체마을 인근에서 만난 어린이의 해맑은 모습.
카트만두에서 베니까지는 포장도로지만 도로의 폭이 좁고 바닥이 패인 곳이 많아 역시 위험하다. 베니부터 경사와 굴곡, 요철이 심한 비포장도로가 계속된다. 공사가 진행 중인 구간에서는 위험성이 한층 높아진다.나는 20여 년간 네팔의 오지를 드나들면서 이런 상황에는 단련이 되어 있는 편이다. 초창기에는 등에서 식은땀이 마를 새가 없었는데 ‘허리서리남’을 체득하고부터는 심신이 평안해짐을 느낀다.
‘허리서리남’은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라는 의미의 네팔어다. 엄혹한 자연환경에서 갖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지내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비록 인간의 의지는 강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신에게 자비를 구하게 된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면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평정심이 생겨난다.
로만탕은 지리적으로 볼 때 작은 왕국이 들어설 만한 훌륭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간 오지에서는 보기드물게 넓은 평원인데다 그 평원을 크고 작은 물줄기가 휘감고 있다. 농사와 목축이 용이하므로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새벽에 불경을 외고 있는 마파콤파의 어린 라마승.
게다가 평원을 드나드는 출입지역을 빼고는 높고 낮은 산들이 사방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무스탕 지역 특유의 강한 바람을 피할 수 있고,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기도 쉽다. 한마디로 히말이 겹겹이 감싸 안아 보호하고 있어 아늑함과 신비로움마저 느끼게 하는 천혜의 길지다.
구전에 의하면 무스탕 왕국의 초대 왕인 암팔이 염소 떼를 풀어놓고 그들이 정착한 지역을 찾아내 수도를 세웠는데, 그곳이 바로 로만탕이라 한다. 암팔이 황금 공을 던져서 떨어진 곳이 로만탕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동양의 풍수에서도 명당을 찾을 때 동물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동물은 인간에 비해 감각이 예민해 살기가 없는편안한 자리를 잘 찾아내는데 그 자리가 바로 명당이라는 주장이다.
로만탕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말을 빌려 타고, 부근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초세르마을은 케이브(동굴)로 유명하다.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높은 절벽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출입구와 창문들이다.
이 동굴들은 다층구조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당히 공을 들여 건설해 놓았다. 오래 전에 사람이 취사를 하면서 살았던 흔적이 완연하다.
▲가미마을 노인.
팅가르마을에는 퇴락한 왕궁 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벽체는 상당히 두꺼우며 커다란 흙벽돌을 쌓아올린 구조다. 벽체의 높이는 10m 정도이고, 길이는 수십m에 달해 과거의 위용을 짐작케 한다.
이 지역의 건축물은 흙과 돌로 지어져 비에 취약하고, 지진으로 무너지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복구하거나 보존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냥 대책 없이 방치해 사라질 운명에 처한 유적이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무스탕 왕국은 6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상징적인 국가이다. 티베트계 현지인들은 종교적인 신심이 깊다. 이들의 축제는 과연 어떠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을까.
▲로만탕의 오후 풍경.
▲가미마을을 지나 닥마르마을과 차량마을이 갈라지는 지점의 초리덴들.
티지축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사실상 무스탕 왕국 차원의 행사라고 봐야 한다.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종교행사이기도 하다. 종교행사이기에 프로그램이나 의상 등이 원형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신성시되는 종교 행사의 전부나 일부를 후대의 누군가가 임의로 바꾸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런 시도는 과거 축제를 주관했던 선대 모두의 권위를 부정하는 엄청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티지축제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원형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추론이다.
이런 저런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마음이 더욱 바빠진다. 그래서 로만탕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점심을 먹고 티지축제가 열리는 행사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티지축제의 중앙무대 긴 나팔이 이채롭다.
네팔 로만탕의 티지축제는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기원’을 표방한다. 처음에 이런 사실을 전해 듣고 작은 왕국의 축제 슬로건이 너무 거창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직접 축제를 관람하고 나니 이해가 간다.
티지축제는 사카Shakya 분파의 수도원인 초드 곰파Chyodi Gompa에 의해 조직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티베트 승려들에 의해서 진행되고 또 마무리된다. 티베트 불교의 종교행사라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티베트 불교는 개인의 해탈을 수행의 완성으로 보지 않고, 일체 중생의 해탈을 지향하는 대승불교다. 티베트 불교의 관점에서는 무스탕 왕국의 평화보다 세계의 평화에 방점을 찍는 것이 자연스럽다. 티지축제의 ‘세계 평화 기원’은 이러한 종교적인 토양에서 나왔다고 판단한다.
▲북을 들고 민속춤을 추는 라마승들
티지축제는 스토리가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첫째 날에는 혼돈의 세상에 부처님의 환생인 도르제 손누가 나타나고, 둘째 날에는 도르제 손누가 인간을 잡아먹는 악마를 제거하며, 셋째 날에는 세상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티지축제는 3일간 이어지는데 오전과 오후가 좀 다르다. 오전은 라마승들이 기도와 제물을 올리는 정적인 프로그램, 오후는 춤과 음악, 가면의 퍼포먼스까지 펼쳐지는 동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외국 관람객들이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은 바로 오후 프로그램이다.
첫째 날 오후 프로그램은 무스탕 왕궁 앞 광장의 남쪽 벽면에 대형 탱화가 내걸리면서 시작된다. 이 탱화는 매우 커서 가로 5m, 세로 10m쯤 된다. 중앙에는 구루린포체가, 상하좌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보살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티베트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구루린포체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지역마다 중점적으로 신앙하는 대상이 조금씩 다르다.
이 탱화는 400년 전에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일반 탱화와는 다르게 물감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일일이 자수를 놓아 만들었다. 섬세하면서도 매우 생동감 넘쳐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비범한 솜씨와 정성을 짐작케 한다.
탱화 아래쪽에는 이 지역에서 살다가 열반에 든 라마승의 사진액자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사진과 닮아 보이는 젊은 라마승이 앉아 있다. 현지인들에 의하면 그 젊은 라마승은 열반에 든 라마승의 환생임이 검증되었다고 한다.
▲티지축제 마지막날 라마승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중생들은 전생의 기억을 잃고 윤회를 거듭하지만 달라이라마나 득도한 라마승들은 전생의 기억을 지닌 채 계속 환생해 중생들을 제도한다고 현지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환생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되는 그날까지다.
300평 남짓한 광장은 500명을 훌쩍 넘는 외국인들과 비슷한 숫자의 현지인들로 빼곡해서 움직이기도 어렵다. 카메라를 하나씩 든 외국인들은 대부분 서양인들이고 동양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인산인해를 뚫고 용을 새긴 모자를 쓴 도르제 손누Dorjee Sonnu와 황금색 모자를 쓴 라마승들이 등장하면서 카메라 셔터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도르제 손누는 부처님의 환생으로 간주되며 이 축제를 이끄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그는 우아한 동작으로 춤을 추면서 느린 회전을 계속하는데 미묘하게 서로 다른 그의 춤사위는 52가지나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춤을 추면서 때때로 불경도 암송한다.
황금색 모자를 쓴 라마승들은 도르제 손누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춘다. 이들은 도르제 손누를 보호하는 신령한 존재, 혹은 황금색 모자로 미루어볼 때 부처님의 광배를 표현한다고 추측된다.
▲첨중마을 근처에서 양떼를 몰고가는 현지인
갖가지 짐승과 흉측한 괴물, 예컨대 호랑이, 사슴, 야크. 까마귀, 말 형상의 탈을 쓴 무용수들도 등장한다. 이들은 혼돈의 세상과 인간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여겨진다. 이 가면들은 진흙으로 만들어지며, 그 위에 여러 겹의 천을 덧댄 다음, 갖가지 색으로 동물의 특징을 잘 표현해서 생동감이 넘친다.
무용수들의 의상은 대부분 실크로 만들어졌는데 문양은 복잡하고도 섬세하며 다양한 색상을 사용했다. 주로 삿된 기운을 쫓아내는 용이 많이 표현되었고, 불교 특유의 상징과 문양들이 많은데, 그 의미를 상세하게 알 수는 없다. 근래에 만든 새 의상도 있고, 아주 오래되어 변색되거나 천이 해어져 너덜거리는 의상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상징을 대변하는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동안 투구뿔새의 벼슬처럼 생긴 커다란 붉은 모자를 쓴 라마승들은 구리로 만들어진 긴 나팔과 북, 커다란 나팔고동, 심벌즈를 연주하면서 춤사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퍼포먼스는 매일 3시간 남짓 공연되며 3일간 계속되는데,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춤의 동작은 현란하지 않고, 음악의 리듬은 화려하지 않지만 은연중 뿜어져 나오는 강렬하고도 신비로운 기운이 광장을 가득 채우며 모두의 영혼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이들의 춤동작은 다양한 스텝과 우아하고 느린 동작, 계속되는 회전이 특징이다. 이 동작들은 무용수들이 제멋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에 만들어진 이후, 대를 이어 비밀스럽게 전수해 왔다고 한다. 음악을 포함한 티지축제의 모든 프로그램 역시 그렇다고 봐야 한다.
▲야외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마지막 기도를 하고 있다.
나는 이들의 춤과 음악이 또 다른 형태의 기도라고 판단하고 있다. 춤과 음악을 통해서 구루린포체를 비롯한 고대의 스승들과 교감하고 또 일치를 이룬다고 본다.
기독교의 주기도문과 티베트 불교의 육자진언은 다르다. 신앙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기도, 즉 일치를 위한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기도문이나 육자진언을 후대의 누군가 임의로 바꾸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티지축제의 춤과 음악은 일종의 기도이므로 바꿀 수 없다고 본다.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형태를 그대로 재현해야 신과 교감할 수 있다. 춤의 동작과 음악의 템포, 불경을 외우는 고저장단 등이 정확해야 구루린포체와 교감하고, 가호를 받을 수 있다. 피나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도는 행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 범부가 기도하는 것보다는 수행을 많이 하고, 심력이 큰 사람이 기도해야 신이 응답하고, 소원을 들어줄 확률이 높다.
▲1 티지축제에서 북을 치는 라마승. 2 로만탕에서 만난 현지 여인들. 3 사진은 로만탕의 죽은 고승이고 옆의 젊은 라마승은 그의 환생이다. 4,5,6,7,8,9 가면춤을 추고 있는 라마승들. 10 보리가루와 야크버터로 만든 떡을 들고 기도를 하는 주무라마승. 11 로만탕에서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하는 노인. 12 무스탕 왕이 왕족과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관람하고 있다.
둘째 날의 오후에도 벽면에 비슷한 크기의 탱화가 내걸리는데, 첫째 날의 탱화와 달리 구루린포체 한 분만 묘사되어 있다. 구루린포체의 가호를 중점적으로 염원하는 의미라고 본다. 이 탱화는 비교적 최근에 제작한 것 같다. 이제 무용수들의 동작은 전날에 비해 더 활발하고 공격적인 형태를 띤다. 악마의 발호와 살인을 상징하는 다양한 춤이 펼쳐지고, 마지막에는 악마로 상징되는 짚인형을 공중에 던져버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셋째 날에는 벽면에 아무런 탱화가 내걸리지 않는다. 이제 평화가 찾아왔음을 암시한다. 동물 가면을 쓴 승려들이 춤을 추고, 단검으로 인형을 척살하며, 인형의 머리는 잘라버린다. 그 머리는 궁전의 출입구에 묻는다고 하는데 혼잡한 통에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축제가 끝나면 참여했던 승려들은 모두 궁 밖으로 향하고, 그 뒤를 왕과 현지 주민들이 뒤따른다. 그리고 화승총을 쏘면서 악에 대항해 정의가 승리했음을 선포하고 또 자축한다.
무스탕 왕국의 티지축제가 지향하는 평화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악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둘 때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다. 개인이나 국가, 세계 모두 치열하게 악과 싸워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선언이다. ‘
마음에서 일어나는 요마의 항복을 받아야 해탈에 이른다’는 불교의 교리와 상통한다. 평화를 누리려면 악과 싸워야 한다. 천지간에 공짜는 절대로 없음을 알아야 한다
출처 / 월간 山 / 글.사진 조진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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