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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ㅡ아미앵(Amiens)ㅡ프랑스 최대의 고딕 성당인 아미앵 대성당

by 삼수갑산 2021. 12. 12.

아미앵(Amiens)ㅡ프랑스 최대의 고딕 성당인 아미앵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파사드

 

프랑스 최대의 고딕 성당인 아미엥 대성당은 그 풍부한 장식, 특히 서쪽 정면의 '돌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조각군이 깊은 인상을 준다. 성당은 1,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으며, 내진에는 신랑과 측랑, 그리고 앰뷸러토리를 갖추었다.

 

처음의 대성당이 화재로 불타 버린 뒤, 이만한 규모의 건물을 비교적 단시간의 공사로 완성시킨 것은 각 부분의 건축 자재를 규격화해 컨베이어 시스템식으로 대량 생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미엥 대성당은 너비 32m(익랑부까지 65.5m), 안길이 145m, 궁륭 높이 42.3m, 넓이 7,700m2의 프랑스 최대의 고딕 건축물이다. 1220년에 신랑을 지으면서 시작된 건축 공사는 1288년에 주요 부분의 작업을 완료했다. 이 대건축의 공사 기간이 비교적 짧았던 것은 새로운 공법 덕분이었다.

 

석재는 현장이 아닌 별도의 장소, 즉 난방시설을 갖춘 옥내 작업장에서 가공했다. 그 덕분에 날씨와 관계없이 작업이 착착 진행되었고, 가공이 끝난 석재는 계속 건설현장으로 운반해 사용했다.

 

건축가들은 작업 능률을 높이는 일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는 방법들도 궁리해 냈다. 신랑 마룻바닥에 흰 돌과 검은 돌로 팔각형 미궁을 만들고, 그 미로를 따라가면 나타나는 중심부에 자신들의 초상과 이름을 새겨 놓았다.

 

고대 그리스 건축에서 나왔다는 미궁은 샤르트르 대성당 같이 13세기에 프랑스에 세워진 많은 고딕 대성당에서 볼 수 있다. 아미엥 대성당의 미궁은 1828년경에 부서졌는데, 19세기 말에 대리석을 사용해 원래대로 복구했다.

 

처음의 대성당이 1218년에 화재로 소실된 뒤, 1220년에는 삼랑식으로 된 새 대성당을 건설하는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지름 14m의 미궁 중심에 새겨 넣은 글을 통해, 공사 책임자가 처음에는 로베르 드 뤼자르슈, 다음에는 토마 드 코르몽에 이어 그의 아들인 르뇨 드 코르몽이었음을 알 수 있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서쪽 정면에 있는 2기의 탑은 신랑의 지붕보다 약간 높다. 높이가 65m인 남쪽 탑은 1366년에, 66m인 북쪽 탑은 15세기에 완성되었다.

 

익랑과 교차하는 지점에 솟아 있는 112m 높이의 탑은 1529년에 완성되었다. 서쪽 정면 입구에서 넓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궁륭이 기둥 위에 떠 있는 느낌이 든다. 내부 공간의 인상으로 볼 때, 아미엥 대성당은 전성기 고딕 대성당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독일쾰른을 비롯한 다른 대성당의 본보기가 되었던 것 같다.

 

신랑에는 아미엥 대성당 건설의 공로자인 에브라르 드 푸아유 대주교와 그 후임인 조프루아 대주교의 무덤이 있다. 프랑스 혁명 때 불어닥친 성당 파괴의 회오리 속에서도 이 무덤과 대성당이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중앙 신랑 및 측랑 부분과 내진 사이에는 철책을 쳐놓았다. 내진 의자에 깊게 새겨 놓은 돋을새김에는 색을 칠해 놓았고, 부분적으로는 금박을 입혀 놓았다.

 

이 돋을새김에 새겨져 있는 성페르맹은 대성당의 초대 대주교로 피카르디 지방의 수호 성인이다. 대성당의 익랑에는 세례자 성요한의 성유물로 보이는 것이 안치되어 있다. 1292~1375년에는 양쪽 측랑에 예배실이 여러 개 만들어졌다. 이 곳에는 이미 플랑부아양 양식이 첫 선을 보이고 있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서쪽 정면의 장미창은 지름이 11m로, 트레이서리에 불꽃 무늬를 사용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는 후기 고딕 시대에 프랑스에서 성행하던 플랑부아양 양식의 걸작이다. 문을 뒤덮은 '돌 백과사전' - 서쪽 정면에 있는 '왕들의 갤러리'에는 왕관을 쓴 조각상 22점이 늘어서 있다.

 

그 밑에 있는 3개의 문에 있는 조각군은 여러 가지 종교적 교양과 성인전, 천지창조 시작되는 역사 등을 나타내고 있어서 '돌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특히 인성적인 중앙 정문 가운데 기둥의 '아름다운 신'은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축복을 내리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왼쪽 정문 가운데 기둥에 있는 성페르맹 상과 함께 전성기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조각이다.

 

문 위쪽의 팀파눔에는 '최후의 심판'이, 정문 좌우에는 12사도와 4명의 예언자 상이 있다. 이들 성인상 아래에 있는 걸레받이 돌에는 네잎 모양의 틀을 2겹으로 포개 놓고, 그 안에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주는 12가지 미덕과 악덕을 적어 놓았다.

 

왼쪽 정문과 성모 마리아에게 바친 오른쪽 문의 걸레받이 돌에는 역시 2단으로 된 네잎 모양의 틀 안에 중세 달력과 함께 '매달 할 일'을 적어 놓고, 12개월의 별자리와 농민이 1년 동안 일하는 모습을 묘사해 놓았다.대성당 안팎을 꾸미는 조각은 모두 3,600여 점에 이른다.

 

건물 본체와 마찬가지로 조각군도 대부분 대량 생산되었지만 작품은 획일적이지 않다. 조각군 가운데는 대성당 건립에 공헌한 농민의 조각상도 2점 있다. 그들은 13세기에 밭을 바친 조합 농민들로, 아미엥 동쪽에 있는 논밭을 경작하던 사람들이다. 그 일대는 전체 길이55km에 달하는 수로를 통해 솜 강과 아브르 강에서 끌어온 물로 농사를 지었다.

 

오랜 옛날부터 아미엥 농민은 농사 짓는 기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조각상은 공통적으로 얼굴 모습이 둥글고 튼튼하다는 느낌을 준다. 몸매와 복장, 그리고 머리 모양에도 차분한 품위가 담겨 있어 건물의 위압감을 완화시켜 준다.

 

특히 남쪽 익랑 입구의 가운데 기둥에서 천사에 둘러싸인 채 어린 예수를 안고 서 있는 '황금의 성모'는 표현이 뛰어나다. 후세 사람들은 아미엥 대성당의 조각군에서 영감을 받았고, 또 모방을 하기도 했다.

 

▲아미엥 대성당

 

▲년도별 공사 상황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중앙문

 

▲아미엥 대성당 중앙문 

 

▲대성당 중앙문   

 

▲대성당 중앙문

 

▲대성당 중앙문

 

▲대성당 좌측문

 

▲대성당 좌측문 

 

▲우측문 조각

 

▲우측문 조각

 

▲대성당 중앙문 

 

▲외부 조각 

 

▲중앙문 야경

 

▲중앙문 야경

 

▲성당내부 중앙제대

 

▲성당내부 중앙제대

 

▲성당내부 중앙제대

 

▲중앙제대 유골   

 

▲소제대 

 

▲감실

 

▲성당내부 소제대 

 

▲성당내부

 

▲솔로몬의 재판  

 

▲내부 예수님 일대기 목각상   

 

▲성가대석

 

▲성 요한 일생 

 

▲자비의 성녀 샤펠

 

▲황금 마리아상 

 

▲내부 황금 철문  

 

▲천사상  

 

▲성 미첼  

 

▲베드로의 샤펠 

 

▲아미엥 대성당 내부            

▲아미엥 대성당 내부

 

▲아미엥 대성당 내부

 

▲유네스코 인증서

 

▲세례요한 두개골, 문 중앙  

 

▲성당 내부 장미창

 

▲성당내부 유리화  

 

▲성당내부 유리화

 

▲성당내부 유리화

 

▲성당내부 유리화

 

▲파이프 오르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