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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ㅡ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16세 정비 "마리앙뚜나네뜨"

by 삼수갑산 2021. 7. 13.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16세 정비 "마리앙뚜나네뜨"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들 중에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분 중에 한 명이다.마리 앙투아네트,

루이 16세의 정비다.어쩌면 마리 앙투아네트와 명성왕후는닮아 있는 듯한 생각마저 든다.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1793)

 

마리 앙투아네트 단두대 처형은진실과 다른 판결 내용이 많이 알려져 있으나사실 프랑스 국민들의 분풀이 희생양이었다.그러나 단두대 처형을 앞두고도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지막 모습이었다.마리 앙투아네트는 끝까지 위엄으로써 오욕에도 잘 견디고 품위 있는 태도를 보였다.

 

▲단두대에 오른 마지막 '절대군주'프랑스 루이 16세 국왕의 왕비입니다.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매력적인 외모로 '작은 요정'으로 불렸다.
1770년 15세에 루이 16세와 결혼한다.정치적인 정략적인 결혼이었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과거 한국과 일본을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적대국이었다.결혼 동맹이었던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로알려져 있고 심지어 '적자부인'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루이 16세가 즉위했을 때프랑스 국고는 이미 탕진되어 있었다.그리고 이들 부부는 왕실 예산 중 겨우1/10만 사용했을 정도로 검소한 편이었다.'목걸이 사건 스캔들'도 후에는거짓으로 판명되었고, '빵이 없으면 과자를먹으세요'라는 말도거리에서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저 불쌍한 아이들에게 브리오 슈를 주세요'라는 말을 했음에도
혁명군은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 밝혀졌다.

 

▲실제 궁에서 그녀는 시골처럼 꾸며놓고전원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루이 16세가 실수로 쏜 화살이 농민이 맞자직접 치료를 해 준 따뜻한 사람이었다.

프랑스 왕비로는 이례적으로빈민 구제와 농경생활에 관심을 가졌다.천상 소녀 같은 따뜻한 맘을가진 여왕이었다는

것이 그녀의 모습이다.

 

▲그녀가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것은혁명군의 명분 찾기였을 것이다.
그녀가 가진 조건은 너무나 완벽했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와 견원지간이고 두 나라의 전쟁으로 프랑스는 아들, 형제, 남편을 잃어 적대감이 깊었다.

 

▲프랑스 혁명군에게 적국 출신의 왕비는너무나도 좋은 명분이었다.

민족주의에 깊이 물든 혁명기의 프랑스인에게마리 앙투아네트는 다른 무엇보다도오스트리아 여자였고 반역자였던 것이다.부분적으로 사실인 내용도 있겠지만사치, 향락 및 정치에 관여했다는 대부분은왜곡된 진실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단두대 처형

 

1793년 10초 공개재판을 받지만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형식적인 재판에 불과한 것이었다.1793년 10월 15일 혁명재판에서사형 판결을 받고, 그다음 날인 16일콩코드 광장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졌다.그녀는 재판장과 사형장에서품위를 중시했던 왕가의 여인으로서조사받는 동안 의연하고 담대한 모습이었다.마지막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다.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