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ㅡ한국 역사상 최저질 외교 논쟁
한국은 외교로 죽고 사는 나라다그래서 역사적으로 논쟁이 잦다
나라 살린 논쟁도, 죽인 논쟁도 있다그런데 이런 저질은 정말 처음 봤다
외교 사절 김홍집에 의해 일본에서 반입된 외교지침서 ‘조선책략’을 유생들이 벌 떼처럼 공격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가슴이 떨리며 통곡했다”고 했다. 책의 핵심 내용은 “중국을 더 가까이 하고 일본, 미국과 손을 잡아 조선 스스로 강해짐으로써 러시아를 막으라”는 것이다.
1880년, 러시아의 팽창이 지금보다 더 세상을 위협하던 때였다. 중국 외교관이 중국 정부의 세계 전략에 따라 썼고 친중(親中)을 앞세웠다. 그런데 중국을 받드는 유생들이 저자를 “사문난적(斯文亂賊)의 효시”라고 비난하면서 “책을 반입한 김홍집을 벌하라”며 들고 일어났다.
▲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들인 (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일본 2차 수신사 김옥균이 일본에서 가져온 서적 '조선책략'이 조선에 파동을 일으켰다. 그 파동의 극단적 표출이 갑신정변이다. 정변의 실패가 결과적으로 조선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만인소’라고 부르는 상소문에서 그들은 “그런 글을 받아들였다가 중국이 이를 가지고 따지고 시끄럽게 떠든다면 무슨 말로 해명하겠느냐’고 했다. 오랑캐 나라에 대해 중국과 대등하게 결연과 연대를 운운하면 중국이 화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세상 모르고 한 소리였다.
조선책략은 중국 정부의 공작으로 조선에 유입된 것이다. 열강에 밀리던 중국은 외교에서 천자의 지위를 한참 전에 버렸다. 중국이 아니라는데, 괜찮다는데 먼 나라 시골 유생들이 “주공과 공자, 주자의 가르침을 밝혀야 한다”며 중국을 위해 분개하고 통곡한 것이다.
유생들을 한심하다고만 할 수 없다. 그들에게 그것이 세계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김홍집의 사행길에 동행한 박상식은 향촌 유생이었다. 그가 쓴 사행기 ‘동도일사(東渡日史)’엔 거대한 근대 문명에 압도된 조선 유생의 현기증이 서술돼 있다. 도쿄의 기차 체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날아가는 새가 연기에 엉겨있는 듯 지나가지 못하고 뒤에 처진다…귓가에는 천둥 치는 소리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니 바람을 막는 신선이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으리라.” 놀란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안식처는 도쿄의 공자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더 큰 충격을 받고 탄식한다. 공자묘가 근대식 사범학교와 도서관, 박물관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장 속에 유리로 덮어놓은 책이 천만권인데 양서(洋書)가 오히려 많으니 학생 모두가 오랑캐로 변했구나.”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들은 진지했다. 2년 후 임오군란이 일어나 조선은 중국 군관 위안스카이 치하에 놓였다. 조선의 등골을 빼먹는 데 혈안이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조선의 문신이자 접빈관 김창희는 위안스카이 등 조선에 파견된 중국 지배자들에게 조선의 살길을 끝없이 물었다.
위안스카이는 진지하게 응했다. 그는 조선의 다섯 가지 물산을 열거하고 이들을 다스리면 조선이 부유할 수 있다고 했다. 뽕나무로 강토를 개벽해 정예군 삼사천을 키울 수 있고 험한 산세를 잘 활용하면 일본의 침략 야심 정도는 억누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선의 생존 전략서를 따로 만들어 전한 중국 지식인도 있었다. 모두 ‘자강(自强)’을 부탁했지만 조선은 이루지 못했다.
한국의 지금 상황을 조선 말기에 빗대 비판하면 “그때와 국력이 다르다”고 한다. 현실에 맞지 않는 상투적인 비교라는 것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 엘리트의 지력(智力)이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에 대해선 고민해야 한다. 조선 말 외교 논쟁을 읽으면 비록 시대를 잘못 읽었지만 그들은 지적이었고 진지했고 치열했다.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근대화 성공을 쉽게 설명한 적이 있다. “일본은 패하면 유학을 보냈다”는 것이다. 미국에 지면 미국에, 영국에 지면 영국에 인재를 보냈다. 국제 정세를 익히고 세계 속에서 나라의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했다. 조선이 일본만큼 당대의 지식인을 세계에 쏟아낼 수 있었다면 중국의 자장(磁場)에서 탈출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쿄 신바시역(新橋驛)에 있는 일본 열차. 일본은 조선 외교사절이 왔을 때 도쿄~신바시 노선을 경험하게 했다.
철도는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연간 20만명이 세계로 유학 간다. 국민의 학습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만큼 엘리트가 많은 나라가 드물다. 조선 지식인이 꿈꾸던 나라다. 엘리트 중 엘리트가 정치에 몰려 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날마다 떠드는 핵심 외교 사안이 ‘이 ○○ 논쟁’이다. 세상엔 별별 엉터리가 있다. 초능력자만 모여있는지 어떤 매체는 딱 보면 광우병이거나 100만명이고, 딱 들으면 이 ○○, 바이든이다. 그냥 넘어갈 일이다. 미국도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나라가 흔들리는 듯 “외교 참사”라며 통탄한다. 반미의 선봉에 있던 사람일수록 미국 심기를 걱정하는 코미디를 벌이고 있다. 조선 유생의 반발에는 그들 나름의 철학과 세계관이 있었다. 지금은 비난을 위한 비난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한국은 외교로 죽고 사는 나라다. 요충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외교 논쟁이 잦다. 나라를 살린 논쟁도, 죽인 논쟁도 있었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이번과 같은 저질 논쟁은 처음 봤다.
정치의 지력이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나라는 돈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민도(民度)”라고 부르는 사회 구성원의 수준, 특히 엘리트의 지력이다. 이런 정치, 국회를 방치하면 남이 건드리지 않아도 나라는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글.사진출처 / chosun.com / 선우정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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