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부 뮌헨ㅡ도심속 파도타기..모래찜질...일상마저 여유롭다
▲독일 뮌헨의 도심 속 공원 ‘잉글리시 가든’의 자전거 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격랑과 만나게 된다.
기계장치 없이 경사와 간단한 구조물로 만들어진 험한 파도 위에서 서퍼(surfer)들은
물살을 가르며 스릴을 즐긴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불투명하게 두꺼웠다. 공기는 물기에 가득 차 있었고 무겁고 척척했다.”60여 년 전 뮌헨에 발을 디딘 전혜린(1934∼1965)에게 독일의 첫인상은 잿빛이었습니다. 독자들께는 전혜린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낯설 수도 있겠습니다.
31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남긴 작품이래야 고작 번역책 몇 권과 유고집으로 수필 두 편만을 남긴 작가이기 때문이죠.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요절한 그는 뮌헨대에서 4년간 독일문학을 공부하며 독일에 대한 인상을 기록했습니다.
비범한 사람 특유의 날카로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린 굴곡진 인생 탓인지 그가 바라본 독일은 무채색이었습니다. 전혜린에게 뮌헨은 아름답거나 낭만적인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을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상대국인 미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던 암울한 과거를 가진 도시였습니다. 그의 눈을 통해 들어온 독일 풍경은 실제로는 실존의 무게에 늘 힘겨워했던 투영된 자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실제로 바라본 독일은 전혜린의 기록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눈이 시릴 만큼 천연색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무겁기보다는 가볍고, 맑고 투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네들의 자연을 닮아서일까요. 뮌헨, 슈투트가르트, 루스트와 같은 독일 남부 지역에서 만나고 스친 독일 사람들은 맑았습니다. 표정에서는 꾸밈이 없는 감정이 풍겨져 나왔습니다. 독일병정, 공업국, 게르만족이라는 말이 은유하는 무뚝뚝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생동감이 넘쳐 흘렀습니다.
낯선 이방인에 대해서도 열려 있었습니다. 독일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여유가 흐르는 곳’입니다. 독일 사람들은 태양 아래서는 온몸으로 볕을 맞이하는 기쁨을 알고, 달 아래서는 좋아하는 이들과 맥주를 마시며 시름을 내려놓을 줄 압니다.
요즘 독일의 강소(强小)기업, 협력적 사회시스템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만 우리가 실제로 본받아야 할 것은 잠시 쉬어가는 여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의 중심가에 위치한 백화점 ‘갈레리아 카우프호프’ 옥상에 가면 해변이 펼쳐져 있다.
편안한 해변 의자에 앉아 선글라스를 끼고 강렬한 태양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해방감이 느껴진다
# 잉글리시 가든, 역동성과 쉼이 공존하는 공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적막함마저 느껴지는,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공원 한편에서 서핑보드를 즐기고 있었다. 잉글리시 가든(English Garden·독어 Englischer Garten·영국 정원)에서였다.
뮌헨 중심부인 마리엔 플라츠(광장) 북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잉글리시 가든은 뮌헨을 동서로 가르는 이자르강을 끼고 있어 풍광이 좋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센트럴 파크보다 잉글리시 가든이 약간 크다.
센트럴 파크가 341㏊(약 103만 평), 잉글리시 가든이 373㏊(약 113만 평)이다. 잉글리시 가든 내에 시내가 흐르는데 한 지점에 인공적 구조물을 설치해 급류가 발생한다. 여기가 바로 서핑보드를 탈 수 있는 곳이다.
도심 공원 한가운데서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서핑보드를 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해방감이 느껴질 정도다. 한 사람이 10∼30초 정도 타는데 시내 양쪽에 대기자들이 늘어서 있다가 차례대로 물살에 몸을 맡긴다. 격류를 거스르는 역동적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서핑보드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잉글리시 가든에서는 자전거 투어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때로는 강변을, 때로는 터널을, 때로는 숲 속을 지나는 구불구불한 코스는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내내 즐거움을 선사한다. 나무가 우거진 곳이어서 해가 들지 않는 지점이 많아 한여름에도 시원하게 사이클링을 즐길 수 있다. 약간의 경사가 있어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자전거는 뮌헨을 비롯해 독일 도심에서 어디서든 쉽게 빌릴 수 있다. 독일철도공사가 설립한 자회사를 비롯해 다양한 회사들이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잉글리시 가든은 서핑보드나 자전거처럼 동적인 활동과 쉼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다. 잉글리시 가든은 끝없이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수백 년 된 침엽수림으로 이뤄져 있다. 볕을 좋아하는 독일 사람들은 공원 곳곳의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즐긴다. 풀밭에 보자기나 돗자리를 깔고 편안하게 누워 있거나 연인·친구·가족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은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그 자체다.
잉글리시 가든에는 뮌헨을 상징하는 이색 건축물이 있다. 1789년에 세워진 중국풍의 5층탑이다. 영국 런던 교외 큐 가든의 중국 탑을 본떠 세워진 이 탑은 계몽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계몽주의자들은 서구문화의 대안을 동양문화에서 찾았다.
같은 중국 건축물을 받아들였지만 영국과 독일의 수용 방식은 전혀 달랐다. 영국인들은 탑을 정원 풍경의 일부로 차용, 멀리서 관조하며 이국정서를 충족했다. 이에 비해 독일인들은 탑을 실용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뮌헨의 지도자들은 탑 주변에 7000석 규모의 야외 맥주 바를 설치하고 탑의 2층에는 브라스밴드 연주석을 마련,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도록 했다. 이국적인 건축물이 독일의 맥주 문화와 어우러지는 유쾌한 삶의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도심에 있는 피시(Fish) 마켓은 점심이 되면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이곳에는 생선 튀김·조림 요리는 물론이고 회까지 있다.
# 세계 최고의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는 말 그대로 10월에 열리는 축제라는 의미다.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일본의 삿포로(札幌) 눈 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힌다.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 정오에 뮌헨시장이 첫 번째 맥주통을 따면서 “O’zapft is(뚜껑이 열렸다)”라고 외치면서 시작되는 축제는 10월 첫째 일요일까지 계속된다. 흔히 추수감사축제로 알고 있지만, 옥토버페스트의 기원은 국왕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였다.
1810년 10월 17일 바이에른의 국왕 빌헬름 1세가 작센공주인 테레제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결혼식에서 주민들이 왕의 천막을 세우고 충성과 존경을 표하자, 이에 대한 답례로 빌헬름 1세가 주민축제를 성대하게 열어줬다. 당초 이 축제는 한 번으로 끝내려 했으나, 농민단체가 이어 받아 농민축제로 계속 열리게 된 것이 오늘의 옥토버페스트의 시초다.
옥토버페스트는 지금도 처음 축제가 열렸던 풀밭에서 열리지만, 축제의 의미는 많이 달라졌다. 당초 결혼을 축하하는 축제였던 것이 차츰 맥주축제로 변모해가면서 축제기간 중에만 6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는 초대형 행사가 됐다. 축제기간 중 관광객과 주민들이 마시는 맥주만 500만ℓ가 넘고 소시지도 40만 개가 넘게 소비된다.
축제가 시작되면 뮌헨의 맥주회사들이 맥주통을 가득 실은 마차를 앞세운 채 고유의상을 입은 주민들이 행렬을 펼친다. 맥주회사들은 수천 명을 수용하는 초대형 맥주텐트 10여 개를 지어 손님을 모으고, 관광객들과 주민들은 경쾌한 독일 민속음악과 잔을 부딪치는 건배소리가 끊이질 않는 이 텐트 속에서 떠들썩하게 먹고 마신다.
옥토버페스트는 어른들만 즐기는 축제는 아니다. 매년 축제가 열리는 잔디밭에는 롤러코스터 같은 갖가지 탈것들이 설치되고 놀이부스가 만들어져 어린아이들까지도 몰려 나와 축제를 즐긴다.
▲20세기 초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뮌헨의 신(新) 시청사.
시청이 위치한 마리엔 광장 주변에는 프라우엔 성당을 비롯해 유려한 건축물들이 밀집돼 있다.
독일인들은 맥주를 술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이 식사 때 와인을 곁들이는 것 이상으로 맥주를 물이나 차처럼 마시며 가까이한다. 맥주의 나라 독일에는 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1200여 개나 있다. 그 중 절반이 뮌헨이 주도인 바바리아에 있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뮌헨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맥줏집 호프브로이하우스가 있다. 좌석 수만 3600개에 달하는 맥줏집이다. 옥토버페스트의 축소판이 매일 이곳에서 열린다.
오전 10시부터 맥주를 팔기 시작하는 이곳에선 다채로운 민속공연으로 흥겨움이 지속된다. 야외에서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독일 사람들은 추운 날에도 담요를 두르고 맥주를 들이켜기도 한다. 뮌헨의 길거리나 공원에는 야외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비어 가든’이 수두룩하다.
슈투트가르트의 ‘칸슈타터 민속축제’도 옥토버페스트 다음으로 큰 맥주 축제다. 매년 9월에 바젠이라는 넓은 공터에서 약 2주 동안 진행되며 500여 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넓은 텐트가 여러 개 설치된다.
독일에 맥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슈투트가르트를 비롯해 독일에는 수준급 와인을 생산하는 산지가 여럿 있다. 슈투트가르트의 와인 재배 역사는 길고 와인축제 또한 명성이 자자하다. 와인 재배지에는 포도밭 사이사이를 지나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와인 포도 길’이 있어 방문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 스포츠와의 만남-바이에른 뮌헨, 뮌헨 올림픽파크
▲뮌헨 올림픽 파크 호숫가에서 바라본 올림픽 타워의 모습.
뮌헨에서 394㎞ 떨어져 있고 차량으로 약 4시간 거리다. 도중에 슈투트가르트 부근을 지나고 바덴바덴도 거친다. 바덴바덴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결정된 곳으로 한국에는 역사적인 장소다.
유로파 파크는 100개가 넘는 쇼와 11개의 롤러코스터 그리고 14가지의 유럽에 대한 주제로 이루어진 테마파크다. 롤러코스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볼 만한 곳이다. 나무로 짜여진 우드 롤러코스터, 자기(磁氣)를 이용해 출발부터 최고속도로 질주하는 롤러코스터, 거의 90도로 수직 강하하는 롤러코스터 등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독일·프랑스의 접경지인 루스트에 위치해 있다. 테마파크는 16가지의 다른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지역마다 유럽 나라 이름이 붙어 있다.
엑스포처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 스웨덴 등 국가별로 구역이 나뉘어 있을 뿐 아니라 해당 국가의 특성에 맞는 기구가 설치돼 있다. 이런 국제적 성격 때문에 유럽 각국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유로파 파크는 파리에 위치한 디즈니랜드를 제외하고,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곳이다. 2012년만 해도 독일관광청에서 선정하는 관광명소 50위에도 끼지 못했지만 올해 순위에서는 2위로 급상승했다.
# 슈투트가르트의 한 백화점 옥상에서 만난 백사장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부근에는 쇼핑 중심가가 있다. 백화점을 비롯해 각종 숍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쇼핑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이다. 서울의 명동쯤에 해당하겠다. 이곳에 있는 쇼핑 센터 중 하나인 ‘갈레리아 카우프호프’ 옥상에 가면 상상하지 못한 별천지가 펼쳐져 있다. 2004년 이곳에 스카이 비치가 조성됐다.
중부 유럽의 내륙인 슈투트가르트 사람들이 바다를 보려면 서쪽의 프랑스·스페인을 찾거나 남부의 이탈리아·스페인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로존 내부라고는 해도 국경을 넘어 여행을 가려면 휴가를 따로 내거나 주말을 이용해야 한다. 이런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일상에서 ‘해변’을 느낄 수 있게 백화점 옥상에 백사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발하다.
이곳에는 바닷물만 빼고는 해변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있다. 모래, 파라솔, 테이블 역할을 하는 나무 박스, 심지어 원두막 같은 쉼터까지 있다. 스카이 비치 주변에 있는 건물 숲만 제외한다면 완벽한 해변이다. 평상복 차림으로 있는 사람부터 수영복이나 반나체 차림의 사람들도 있다.
체격이 좋은 독일 사람들답게 ‘모델급’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이곳에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엄격하게 규제된다. 입장료가 없는 대신 스카이 비치에서 판매하는 스낵과 음료만을 이용해야 한다. 브런치류의 간단한 식사도 제공된다.
뮌헨 가는 길 =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에서 인천∼독일 뮌헨 구간 직항편을 주 6회(월·화·수·목·금·일요일)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인천에서 뮌헨으로 갈 때는 약 11시간40분이 걸리고, 뮌헨에서 인천으로 올 때는 14시간이 소요된다.
직항이 아니라면 핀에어를 이용하여 헬싱키를 거쳐 뮌헨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핀에어는 인천∼헬싱키 구간 직항편을 주 4회(월·화·금·토요일)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9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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