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유럽********국가들177

몬테네그로ㅡ코토르(Kotor)ㅡ성 루카스 성당, & 바위의여인 섬교회 코토르(Kotor)ㅡ코토르 성 루카스 성당, & 바위의여인 섬교회 .▲몬테네그로 코토르 성 루카스 성당  12세기에 세워진 "성 루카스 성당"은 정교회로 내부에는 17세기 황제의 그림과 예수 그리스도, 황제, 황후가 함께 그려진 성화등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몬테네그로 코토르 성 루카스 성당  ▲몬테네그로 코토르 성 루카스 성당  ▲몬테네그로 코토르 요새 성 요한 성  ▲몬테네그로 코토르 요새 성 요한 성  ▲몬테네그로 코토르 문화유적지 몬테네그로는 발칸반도의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로서 1946년 구 유고슬라비아연방을 구성하는 공화국이었다가 1992년 유고해체시 세르비아와 신유고연방을 결성하였고 다시 2006년 6월 5일 신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정식명칭은 몬테네그로공화국(Republic of Mo.. 2022. 9. 19.
몬테네그로ㅡ코토르(Kotor)ㅡ몬테네그로 코토르 여행 코토르(Kotor)ㅡ몬테네그로 코토르 여행몬테네그로는 발칸유럽 남동부 지역에 위치한 유럽 내에서도 매우 작은 국가입니다.세르비아·몬테네그로·크로아티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마케도니아·슬로베니아 6개 공화국으로 구성됐던옛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몬테네그로의 가장 대표적인 여행지, 코토르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오래된 도시로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입니다▲1602년에 지어진 시계탑은 두번의 대 지진으로 약간 기울어졌으며 시계탑 근처에는이 곳을 지배했던 가문들의 다양한 궁전이 있습니다. ▲코토르 城의 해자(垓字) ▲크루즈 선이 입항해 관광객들을 내리고 있군요 ▲성 트리푼 대성당은 코토르에서.. 2022. 9. 19.
그리스ㅡ플라타이아(Plataea)ㅡ그리스 위해 헌신한 小폴리스…강자들의 배신, 남은 건 폐허뿐 플라타이아(Plataea)그리스 위해 헌신한 小폴리스…강자들의 배신, 남은 건 폐허뿐▲플라타이아의 고고학 유적지에는 약간의 무너진 토대와 돌무더기들만이 남아 있다(오른쪽 작은 사진). 드론 사진 속의 어렴풋이 남은 성곽과 도로의 흔적을 보고 나서야 한때 도시가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큰 사진). 유적지 뒤로는 풍요로운 평야가 펼쳐져 있다. 플라타이아가 멸망한 진짜 이유는 저 평야를 지킬 힘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경석 사진작가 살라미스에서 아테네를 중심으로 뭉친 그리스 연합해군에 대패한 후 페르시아 대왕 크세르크세스는 소아시아로 돌아갔다. 그리스 정복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대왕의 사촌이며 맹장인 마르도니우스(Mardonius)가 30만 명의 정예와 남았다. 그들을 완전히 몰아내려면 살라.. 2022. 9. 9.
폴란드ㅡ포츠난(Poznań)ㅡ작지만 힙한 도시, 포즈난 폴란드 포츠난(Poznań)ㅡ작지만 힙한 도시, 포즈난▲포즈난의 평범한 일요일 일상 일요일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쇼핑몰도 빵집도 문을 닫았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은 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처 없이 거리를 쏘다니기. 그러다 보석 같은 가게라도 하나 발견한다면 그걸로 족할 요량이었다. 포즈난의 느낌은 어딘가 젊고 힙했다. 마이크로 브루어리와 DJ 부스를 갖춘 바, 창고를 개조한 미술관 등이 결정적인 단서였다. ▲포즈난 광장에 있는 소녀상. 밤베르크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을 기념해 1915년 세워졌다 포즈난은 실제로 젊다. 약 60만명 중 12만명, 즉 인구의 5분의 1 가량이 대학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제에도 활력이 있다. 폴란드 전체의 실업률이 평균 5~6%인 데 비해 포즈난의 실업률은 1% 미만을 자.. 2022. 9. 9.
러시아ㅡ名畵감상ㅡ러시아 초상화의 대가ㅡ콘스탄틴 마코프스키(Konstantin Egorovich Makovsky .1839~1915) 名畵감상ㅡ러시아 화가ㅡ콘스탄틴 마코프스키(1839~1915) ▲self portrait 콘스탄틴 마코프스키는 러시아의 영향력 있는 화가로- Peredvizhnik ('이동파',移動派, 순회전람파) 들과 제휴하고 있었다. 그가 그린 많은 유서 깊은 그림들 中에서 특히 Beneath of Crown(왕관 아래서), - 다른 이름으로 "The Russian Bride's Attire and Before the Wedding" (결혼식을 앞둔 러시아 신부의 의상) 같은 그림은 지난 世紀 동안 러시아의 이상(理想)적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흔히 학술적 예술가의 대표로 간주 되었다. 그에게 초상화 분야는 특별한 것이었고, 대의적으로 볼 때, 우리는 그 시대에 그가 패션물 화가가 되어 성공한 것에 대해 감.. 2022. 9. 1.
그리스ㅡ용사의 무덤, 테르모필레(Thermopylae)ㅡ100만 대군에 맞선 300…용기의 원천은 자유였다 그리스 용사의 무덤, 테르모필레100만 대군에 맞선 300…용기의 원천은 자유였다▲300명의 스파르타 전사가 페르시아의 대군을 상대로 영웅적으로 싸웠던 테르모필레 전투 현장에는 오늘날 레오니다스 왕의 당당한 동상이 서 있다. 그들은 비록 졌지만 자유에 대한 투쟁의 불쏘시개가 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리스 세계가 페르시아 제국을 상대로 최종 승리를 거두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서경석 ▶우리의 목적지는 테르모필레(Thermopylae)다기원전 480년 여름, 미증유의 위기로 그리스 문명 전체가 뿌리째 흔들렸다. 페르시아 대군이 마라톤 전투(기원전 490년)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그리스로 진군을 시작한 것이다. 페르시아의 대왕 크세르크세스(Xerxes·재위 기원전 486~465년)가 직접 대군을 이끌었.. 2022. 8. 30.
폴란드ㅡ크라쿠프(Krakow)ㅡ왕의 길을 따라 걷다, 크라쿠프(Krakow)ㅡ왕의 길을 따라 걷다, ▲바벨성에 올랐을 땐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중세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 오후 1시57분, 중앙시장 광장(Plac Mariacki). 성모 승천 성당(Bazylika Mariacka) 앞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든 채로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셋, 둘, 하나, 땡. 초침이 정확히 2시를 가리키자 첨탑에서 등장한 나팔수가 힘껏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그런데 뚝. 웬일인지 나팔수는 곡을 다 마치기도 전에 쏙 들어가 버렸다. ▲크라쿠프 중앙시장 광장으로 향하는 길 ▲중앙시장 광장 주변. 성모 승천 성당이 보인다 끊어진 나팔 소리의 사연이 슬프다. 1241년 몽골군이 크라쿠프에 침입했을 때, 이를 목격한 나팔수가 나팔을 불어 사람들에게 알리다가 몽골군.. 2022. 8. 26.
아제르바이잔ㅡ예디굼바즈(Yeddi Gumbaz)ㅡ아제르바이잔 주마 모스크. 예디굼바즈 예디굼바즈(Yeddi Gumbaz)ㅡ아제르바이잔 주마 모스크. 예디굼바즈▲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 주마 모스크. 샤마크로 이동하는 버스의 차창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하였다.황량한 황무지처럼 보이는 사막지대가 보이더니 곧 푸릇푸릇 푸른 초원지대가 나타났다.이곳은 겨울이 우기이므로 우기가 끝난 지금이 가장 들판이 푸른 빛깔로 보인다고 하였다.여름은 건기이므로 곧 풀들이 시들어 누릇누릇 마치 가을의 황금들판으로 변한다고 하였다. 아제르바이잔은 국민의 99%가 이슬람교라고 하여 마을에 모스크가 많으리라 생각하였는데,다른 이슬람교 국가에 비하여 둥근 모스크의 지붕, 높은 미나레트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나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전부터 이슬람교에 관심이 많아 이슬람 사원을 구경하기를 좋.. 2022. 8. 24.
보스니아ㅡ사라예보(Sarajevo)ㅡ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여행, 우리가 몰랐던 순수 발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여행, 우리가 몰랐던 순수 발칸▲아픈 역사를 간직한 사라예보 보스니아(이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는 사라예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던 '사라예보 총격 사건'으로 유명해진도시다. 도심 자체는 매우 순수하고 덜 개발된 느낌이 강하다. 대부분 당하기만 했던 과거 전쟁사를 모두극복하고 반전을 모색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나라다. 인근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인기에 뒤처져 유럽의변방으로 알려져 있었다. 보스니아를 검색했을 때, 연관 검색어라 '내전' 혹은 '전쟁'이 나올 만큼 발칸반도에서전쟁으로 피해가 극심한 나라였지만,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는 만큼 미래가 밝다. 사라예보에는 아픈 역사.. 2022.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