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洛陽)ㅡ古今의 흥망성쇠를 알고 싶다면 洛陽에 가보라
용문석굴(龍門石窟)
낙양(洛陽)은 ‘천하의 명도(名都)’로 불릴 만큼 유명한 고도(古都)다. 한 국가의 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전국 각지로 연결되는 교통이 편리해야 하고 외침을 막는 데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또 산물이 쉽게 집결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낙양은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황하가 낙양의 북방 지역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고, 낙하(洛河)와 이하(伊河)가 남쪽 지역을 관통하므로 외침에 대비하고 아울러 수로를 통해 사방으로 뻗어나가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길지다. 또 낙양 서남쪽으로는 복우산맥(伏牛山脈)이 뻗어있고, 동쪽으로는 대평원이 펼쳐져 있어서 산과 평원에서 나오는 산물들이 낙양에 산더미처럼 쌓이는 것이다.
이런 지리적 장점 덕분에 중국 역사상 13개 왕조가 낙양에 도읍을 정하고, 8개 왕조가 이곳을 제 2의 수도로 삼은 것이다. 역사학자 사마광(司馬光)은 이렇게 읊조렸다.
낙양에는 수많은 유적지와 문물들이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으뜸은 역시 용문석굴(龍門石窟)인데, 불교 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불상들을 통해 서역의 간다라미술이 어떻게 중국에 전래되었으며, 또 그것이 신라의 석굴암으로 어떻게 체현되었는지를 알게 하는 문명 교류사의 귀중한 세계 문화유산인 것이다.
용문은 낙양 시내에서 13㎞ 떨어진 곳에 있다. 야트막한 향산(香山)과 용문산(龍門山) 사이에 이하(伊河)가 흐르고 있는데, 양안(兩岸)의 암벽을 조각하여 만든 것이 바로 용문석굴이다.
용문석굴에 현존하는 불감(佛龕)은 2345개이며, 불탑이 70여 좌, 조상(造像)이 근 11만 존(尊)인데, 모두 한 시대에 만든 것들이 아니고 북위(北魏) 태화(太和) 17년(493)부터 시작하여 오랜 세월 동안 조성한 것이다.
그 가운데 백미는 봉선사(奉先寺)의 노사나불(盧舍那佛)이다. 『하락상도용문지양대노사나불상감기(河洛上都龍門之陽大盧舍那佛龕記)』의 기록에 의하면, 봉선사는 당(唐)나라 황후 무측천(武則天)이 고종 함형(咸亨) 3년(672년)에 지분전(脂粉錢) 2만관(貫)을 희사하여 축조하기 시작했으며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675)에 낙성했다. 오늘날 봉선사의 건물들은 소실되었고 석굴만이 남아 있다.
▲만오천개의 불상이 있다는 석굴
좌우측에 토들토들한 것이 전부 작은 불상이다.
▲봉선사의 주존(主尊) 노사나불 좌상은 높이 17,14m, 두상은 4m, 귀는 1,9m다. 얼굴은 풍만하고 눈썹은
그믐달 모양이며 눈은 아래를 향해 있고, 꼭 다문 입술은 단정하면서도 우아하다. 인자하면서도
위엄이 서려 있고 고요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부처님의 은은한 미소는 세상의 모든 번뇌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하는 것 같다. 좌측은 부처님의 제자 가섭(迦葉)이다. 체구는 왜소하게 표현되었으나 세상의 모든 풍파를 한 몸에 겪은 노승의 형상이다. 우측은 부처님의 또 다른 제자, 아난다(阿難陀)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다.
보살, 천왕(天王), 역사(力士)들이 부처님을 호위하며 서 있다. 13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불상들이 모진 풍상을 겪으면서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는 조금도 변하지 않고 여전히 중생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고 있다.
▲좌측
▲주존(主尊) 노사나불, 측천무후의 미소도 보인다.
측천무후는 당나라의 유일무후(有一無後)한 여황제이다.
▲우측
▲우측은 이하(伊河)
▲향산 쪽에서 본 용문석굴
춘추(春秋)를 아는 듯, 이하(伊河)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봉선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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