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유럽********국가들/⊙프랑스*****기행

프랑스ㅡ파리(Paris)ㅡ몽마르르트의 여류화가.수잔 발라동(1865년~1938년) 작품

by 삼수갑산 2022. 5. 1.

프랑스 여류화가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년~1938년) 작품

19세기 말 파리 몽마르트, 그곳은 불운한 예술가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득실거리던 파리의 뒷골목이었다. 이 시기 몽마르트는 인상파라고 불리워진 일군의 화가 군단과 음악가들을 배출해냈다.

 

르느와르와 로트렉, 드가 등의 화가들이 몽마르트 뒷골목의 싸구려 술집에서 압상트 술을 앞에 놓고 내일 먹을 거리와 자신의 예술이 나갈 바에 대해 고민하며 취해갔다. 그들의 귓전에는 무명의 음악가였던 에릭 사티의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곳에 한 여인이 이었다. 그녀는 몽마르트에 모인 모든 예술가들의 유일한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는 화가들의 모델이었고, 음악가들의 벗이었으며, 모든 예술가들의 뮤즈이기도 했다. 남자들이 군림했던 19세기 말 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 그 스스로가 뛰어난 화가가 된 여인 '수잔 발라동.

 

Vase of Flowers on a Table, 1918,

Oil on paper on canvas, 64.8 X 49.8 cm, Private collection

 

▲"L'eglise de Goussainville" en 1926 une de ses dernieres oeuvres abouties

 

▲Bouquet de fleurs devant une fenetre a Saint-Bernard by Suzanne Valadon (1926)

 

Women in white stockings, 1924, oil on canvas

The Museum of Fine Arts of Nancy, France

 

The Blue Room, 1923, Oil on canvas

Muse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nu au grand tableau, 1922.

 

▲Amedeo Modigliani - Suza

 

▲Portrait Of Utrillo, oil on Canvas

 

Portrait De Femme, oil on Canvas ,

 

Still LIfe with Fruit Bowl, 1920, oil on canvas , 61 cm X 50.2 cm , Private collection

 

▲Flower vase on a round table, 1920,

 

Still LIfe with Bowl of Fruit, Flowers and onions, 1919,

oil on canvas , 50 cm X 73 cm, Private collection

 

▲Nudes, 1919 , oil on cardboard , 45 x 31 cm

Sao Paulo Museum of Art, Sao Paulo, Brazil

 

Cat Lying in front of a Bouquet of Flowers, 1919,

oil on canvas, 66.4 cm X 35 cm, Private collection

 

▲Woman Reclining on a Sofa, 1917-1918, oil on canvas, 65.4 X 92.7 cm, Private collection

▲Self-Portrait, 1883

 

▲Woman with a Double Bass, 1908 ,oil on canvas ,

Musee du Petit Palais - Geneva (Switzerland - Geneva)

 

▲Adam and Eve, 1909, oil on canvas , 131 x 162 cm

Centre Pompidou - Musee National d'Art Moderne (France - Paris)

 

▲Nude from the Back, in Front of a Mirror, 1910 ,pastel on paper,

58.4 cm X 48.3 cm , Private collection

 

▲Self Portrait with Family (Andre Utter, Madeleine Valadon and Maurice Utrillo), 1910

 

▲Roses in a Vase, 1914, oil on board , 38.5 cm X 26.5 cm, Private collection

 

▲Self-Portrait, 1916, oil on cardboard on canvas, 43.1 cm X 34 cm, Private collection

 

▲Self-Portrait, 1917

 

▲Still Life with Bouquet of Roses and Bowls of Fruit, 1917,

oil on canvas , 46 cm X 55 cm Private collection

 

▲Le Sacre-cœur, 1917

 

▲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1865~1938

 

▲Suzanne Valadon, Maurice Utrillo, and Andre Utter all famous artists of Montmarte,

enjoy some vermouth as they pause from their work on their paintings.

 

르느와르와 로트렉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여인, 약간 사팔뜨기 눈에 풍만한 몸매, 삶의 고통을 송두리째 알아버린 듯한 표정의 여인, 그녀는 몽마르트 언덕 화가들의 단골 모델 쉬잔 발라동이다. 가난한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다섯 살에 파리로 흘러 들어와 공장 직공, 식당 종업원, 서커스 곡예사로 전전하다가 몽마르트르 거리에서 화가들을 만나 직업모델이 되었다.

 

르누아르, 로트렉, 샤반느, 드가 등 기라성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다. 작가의 취향에 따라 그녀의 모습은 몽실한 관능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강한 자의식을 나타내 보인다.

 

발라동은 최하류층의 여인이었습니다. 18세에 그녀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출산한다. 바로 아들인 모리스 위트릴로 이다. 그녀는 그 아이를 에스파냐인 기자 미겔 위트릴로의 양자로 입적 되어 위트릴로라는 성을 가지게 하였다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잔은 마담 르누아르가 빗자루를 들고 내쫒기 전까지 그녀는 르누아르의 모델이자 정부이기도 했고, 로트렉과는 잦은 스켄들로 좁은 몽마르트 거리를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이 불구의 백작과 결혼하기 위해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지요.

 

수잔 발라동이 어울린 예술가들은 오늘날 예술사에서 후기 인상파로 알려진 화가들이었다. 그녀를 특히 많이 그린 사람들은 르느와르와 로트렉, 샤반 등이었다. 그녀는 그들 모두의 모델이자 애인이기도 하였지만 특히 로트렉과 음악가 에릭 사티와의 사랑은 각별했다.

 

로트렉은 그 누구보다 수잔을 많이 그렸습니다. 르느와르가 그녀의 겉모습을 아름답게 그린데 비해 로트렉은 수잔의 신산스러운 삶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그 자신이 불구였던 로트렉은 그 누구보다 쉬잔을 잘 이해했으며 그녀의 성장을 돕기 위해 애썼죠. 로트렉의 그림 속에 수잔은 아름답지는 않으나 삶의 깊이를 아는 여인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편 한평생을 가난 속에서 무명의 음악가로 살았던 에릭 사티는 수잔과 6개월간의 짧은 동거생활이라는 사랑을 나누었고 그 사랑을 한평생 간직하며 살았다. 수잔 발라동은 그들의 애인이자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간직한 예술적 혼을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수잔 발라동과 그의 아들로 몽마르트 화가로 유명한 유트릴로

 

우터는 아들의 친구였다. 어느 날 창 밖에서 어슬렁 대던 그를 불어들여 초상화를 그린 수잔은 마침내 그를 벗게 만들어 태초의 누드 남녀 <아담과 이브>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을 한다. 그녀 나이 마흔 여섯, 스물 셋의 남편과 스물 아홉 아들의 공존, 몽마르트르의 주정뱅이인데다 정신병까지 앓고 있던 아들 위트릴로와 그의 친구이자 양아버지, 발라동 등 세 화가의 기묘한 동거를 당시 사람들은 ‘저주받은 삼위일체’라고 불렀다.

 

한편 외가에서 키워지던 아들 위트릴로는 열 세살부터 알콜에 빠져 들었고, 수잔은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에게 림을 그리도록 권유한다. 알콜중독은 고쳐지지 않았지만 위트릴로에게 그림은 절망에 비친 하나의 빛 줄기였고, 위트릴로가 그린 그림은 세 사람을 그래도 살데 만들어주었다.

 

늘 버림 받았음을 탄식하는 아들의 질투와 젊은 여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어미, 그들의 동거는 늘 위태로웠다. 후에 바람난 우터는 그녀를 떠나갔지만, 이 모자의 작품에 주목하기 시작한 화상들 덕분에 두 사람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잔은 아들 위트릴로가 결혼으로 인해 자신의 곁을 떠난 지 3년만에 술이 원인이었을 병을 얻어 숨을 거두고 영원한 고향 몽마르트에 묻혔다.

 

이렇게 세속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살았던 발라동이 죽었을 때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등 당대의 화가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꽃을 던졌다고 한다.

 

19세기말 서양예술사는 산업혁명이후의 사회적 혼란과 세기말이라는 정신적 불안 속에서 위태롭지만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정점에 파리 몽마르트의 예술가들이 있었다. 수잔 발라동은 그 예술가들의 가운데 서서 그들과 함께 예술과 자유를 만끽하고 스스로도 화가로 우뚝 선 19세기말 예술사의 히로인이었다

 

출처 / blog.naver / 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