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ㅡ물랭 루즈(Moulin Rouge)
열정적인 무대, 흥분의 도가니! 물랭 루즈.
캉캉춤을 그린 남자. 툴루즈 로트레크
블랑슈 역에서 나오자마자 눈 앞에 나타나는 빨간 풍차는 물랑 루즈. 1889년 몽마르뜨 언덕 아래 첫 문을 열고, 거울 벽으로 둘러 쌓인 내부에서는 여자들이 치맛자락을 잡고 다리를 쭉쭉 들어 올리는 격렬한 프렌치 캉캉을 선보였다.
화려한 밤을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중 화가 툴르즈 로트렉은 그야말로 물랑 루즈의 터줏대감. 무대에서는 격정적인 춤을, 무대 뒤에서는 고단한 모습이 담긴 무희들을 그린 그의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있다.
2001년 영화 <물랑 루즈>의 흥행 덕을 톡톡히 보며 요즘에도 손님이 끊기지 않는다. 물랑 루즈 쇼는 만 6세 이상부터 관람 가능한 건전한 공연이다. 또 단체 손님이 많은 편이니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바레 물랭 루즈(Moulin rouge) 쑈
▲ 빨간 풍차가 인상적인 댄스 공연장. 여자들이 치맛자락을 잡고 다리를 쭉쭉 들어 올리는
'프렌치 캉캉' 이 유명하다.
1889년 10월 음악홀로 문을 연 이곳은 공동소유자인 조셉 올레(Joseph Oller, 1839~1922)와 샤를르 지들러(Charles Zidler)에 의해 ‘물랭루즈(Moulin Rouge)’라는 이름을 얻었다. 물랭루즈는 ‘빨간 풍차’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옥상에 설치된 크고 붉은 네온사인 풍차에서 유래했다.
뮤직 홀(music-hall)의 무대에는 대형 스타들의 공연이 펼쳐졌으며, 프랑스의 유명한 샹송가수이자 리뷰의 여왕으로 군림한 미스캥게트(Mistinguett)는 1907년부터 무대에서 매력을 발산했다. 가뱅(Gabin) 또한 물랭 루즈에서 등단했다. 그 이외에도 재능 있는 다수의 아티스트들이 물랭 루즈에서 그들의 예술적 감각을 표출했다.
( 샤를 트레네(Charles Trenet),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 린 르노(Line Renaud), 부르빌(Bourvil), 로제 피에르(Roger Pierre), 장 마크 티보(Jean Marc Thibault), 페르낭 레이노(Fernand Raynaud) )
▲약 80여명의 아티스트들이 매일 저녁 2번의 공연을 통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1 000여벌의 깃털, 인조보석, 스팽글로 장식된 의상, 우아하며 화려한 무대 장식, 공연을 돋보이게 하는 독특한 음악과 음향 효과 등이 제공하는 세계적인 볼거리를 위해서 물랭 루즈에는 매년600 000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몰려 든다.
물랭 루즈(Moulin rouge)에서는 환상의 세계를 경험 할 수 있다!
▲물랭루즈는 ‘빨간 풍차’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옥상에 설치된 크고 붉은 네온사인 풍차에서 유래했다. 이후 음악과 춤의
사원이 되었고, 남성들이 젊은 파리 여성들을 볼 수 있는 장소로 명성을 얻었다. 파리 여성들의 독특하고 놀라운 춤은 그들의 도덕관념만큼 유연했다.
캉캉춤이 1830년대 이래 노동자계급의 볼룸댄스로 이미 소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랭루즈는 초창기에 이 춤으로 대중적 인기를 공고히 하게 되었다.초창기 음악홀의 가장 유명한 후원자는 화가 앙리 드 툴르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었다.
그는 물랭루즈 풍경에 대한 다수의 그림을 그렸다. 수년 후 물랭루즈는 사창가로서의 명성을 잃는 대신 고급 고객들을 유혹하는 화려한 카바레쇼의 무대가 되었다. 오늘날 물랭루즈는 파리의 성인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트쇼를 보기 위해 찾아온다. 쇼는 100명 이상의 무용수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출연하는데, 성인용 쇼로 어린이들은 관람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바레 물랭 루즈(Moulin rouge)는 급 변화하며 급 성장하는 문화와 예술을 대변해 주는
공간으로 19세기 말에 지어졌다.
▲프랑스의 대표적이며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매김 한 물랭 루즈(Moulin rouge)는 세계적인 감독들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했다.
그로 인해 약 10여편의 영화들이 이 곳을 배경으로 제작 되었다: 니콜 키드만 주연의 바즈 루어만(Baz Luhrmann)
감독의 물랭 루즈가 대표적인 예이다.
출처 / brandplus.chosun.com / 자료제공: 프랑스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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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랭 루즈(Moulin Rouge)ㅡ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캉캉춤을 그린 남자...별명은 '물랭루주의 작은 거인'
알비출생. 처음에는 아버지의 친구인 화가 R.프랭스토에게 배웠고 1882년부터는 파리에서 코르몽(본명 F.A.Piwstre)의
지도를 받으면서 개성 있는 소묘화가(素描畵家)로서 독자적인 자질을 키워나갔다.
이 무렵 고흐, 고갱 등과 알게 되었고 드가의 예술에 끌리기도 하였다. 파리의 환락가 몽마르트르에 아틀리에를 차리고
그후 13년 동안 술집·매음굴·뮤직홀 등의 정경을 소재로 삼아 정력적으로 작품제작을 하였다. 처음에 풍자적인 화풍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유화와 더불어 석판화도 차차 높은 평가를 받았다.
1889년부터는 앙데팡당전(展)에 출품하였고 최초의 개인전은 1893년에 파리에서 열었다. 그의 소묘는 날카롭고 박력 있는 표현으로 근대 소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 소묘의 힘에 바탕을 둔 유화는 어두우면서도 신선하고 아름다운 색조와 독자적인 작풍으로, 인생에 대한 그의 통찰과 깊은 우수를 공감하게 한다.
30대 이후 알코올중독으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1899년에는 3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하였다. 입원 중에는 물론 퇴원 후에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그림 그리기를 계속하였으나,끝내 말로메의 별장에서 요양을 하던 중 37세로 생애를 마쳤다.그의 어머니는 아틀리에에 남겨진 아들의 작품을 전부 챙겨 고향인 알비시(市)에 기증하였고, 1922년 알비시에 로트레크미술관이 개관되었다.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몽마르트르는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의 이름이에요. 19세기 말 그 주변에는 젊고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중에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작은 사진)라는, 다른 사람에 비해 외모가 좀 독특한 사람이 끼어 있었어요.
로트레크는 프랑스에서 손꼽힐 만큼 이름 있고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하지만 선천적으로 뼈가 약했던 그는 열 살 무렵부터 연이은 골절로 고생했고 곧 성장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던 그는 집 안에서 홀로 그림만 그렸어요. 스무 살이 된 그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몽마르트르로 향합니다. 7년 후 그는 감각적인 광고 포스터를 그려 그 분야의 최고가 되지요.
오는 5월 3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로트레크의 스케치와 포스터 150여 점을 국내 처음으로
선보이는 '물랭루주의 작은 거인, 툴루즈 로트레크' 전시를 합니다.작품 1은 로트레크가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번화가에 있던 빨간 풍차라는 뜻의 '물랭루주'라는 댄스홀의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그린 포스터예요.
물랭루즈의 무대를 그린 것인데, 저 멀리 안쪽에 서 있는 관객들을 검은 그림자로 표현한 것이 특이해요.가운데에는 조명을 받은 여자 무용수가 관객 쪽을 향해 나가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쪽으로는 옆모습의 남자 파트너가 자세를 취하고 있네요. 그림은 전체적으로 노랗게 환해서 어디 붙여놓아도 눈에 확 들어왔어요.
▲ 작품1 -〈물랭루주, 라 굴뤼〉, 1891, 컬러 석판화, 176 x 108cm.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 위키백과
이 그림은 엄청 커다랗게 그려서 건물 앞에도 세워놓고, 판화로 3000장 넘게 찍어서 여러 사람이 지나다니는 거리에도 붙여놓았습니다.1891년 여름에 이 포스터가 파리 시내 곳곳에 나붙자 행인들은 포스터 자체가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서로 뜯어가려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해요.
당시 27세였던 로트레크는 하루아침에 유명해졌습니다. 그때부터 그가 포스터를 그리면 무슨 공연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들었어요.로트레크는 이 세상에 단 한 점밖에 없는 그림을 그리기보다 거리에 여기저기 붙어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그림에 관심이 많았어요.
당시 대중을 위한 판화와 포스터는 미술관에 걸리는 점잖고 차분한 그림들에 비해 주제도 흥미롭고 구도나 색감도 혁신적이었어요. 대충 그린 것 같거나 못 그린 듯 보여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끌어당기고 강렬하고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훨씬 중요했거든요.
▲ 작품2 -〈에글랑틴 무용단〉, 1896, 컬러 석판화, 61.7 x 80.4cm.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작품 2를 보세요. 새로 지은 영국 런던의 한 극장에서 물랭루주에서 공연하는 인기 무용단을 초청했는데요. 로트레크의 명성을 듣고는 그에게 홍보 포스터를 그려달라고 의뢰한 것입니다. 로트레크는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다리를 번쩍번쩍 차올리는 캉캉 춤을 추는 무용수들을 그렸어요. 빠르게 휙휙 그려나간 단순한 선이 특징입니다.
인물들의 눈·코·입과 치마의 물결 같은 주름 장식은 순식간에 그려서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듯 보여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무용수들의 격렬하게 움직이는 느낌이 살아납니다. 로트레크는 자세히 그리기보다 무대 공연의 생생한 기분을 내는 데에 더 집중한 것이지요.
작품 3은 광고 문구를 아직 넣지 않은 포스터용 판화예요. 이 그림 역시 인물들이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화면의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를 향해 사선 방향으로 한 남자가 달리고 있고, 잔뜩 성이 난 황소가 그 뒤를 쫓고 있네요.
소에게 공격당할까 봐 긴장한 남자의 표정을 보세요. 로트레크는 인물의 순간적인 표정과 동작을 누구보다 잘 잡아내지요. 아마 요즘 태어났으면 유명한 웹툰 작가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 작품3 -〈성난 소〉 1896, 컬러 석판화, 79 x 57.5cm. 작품4 - 〈경마〉, 1899, 컬러 석판화, 51.1 x 35.5cm.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위키백과
몽마르트르에는 예술가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언덕 아래 지역에는 밤늦도록 문을 여는 주점들이 늘어서 있어서 별의별 사람들이 다 드나들었습니다. 로트레크는 늘 맨 앞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무용수들과 친구가 되어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기도 했어요.
그는 그런 생활에 만족했지만, 낮과 밤이 뒤바뀐 불규칙한 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1899년에 그는 길을 가다 넘어져 크게 다치고 신경쇠약까지 겹쳐 병원에 입원하게 돼요.작품 4는 병실에서 그린 것이에요. 언젠가 보았던 기억을 되살려서 멋지게 달려나가는 말과 기수의 뒷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의사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회복된 증거라고 판단하여 퇴원하게 해주었어요. 병원을 나오며 로트레크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세! 나는 내 그림 덕에 자유로워졌어." 이 짧은 한마디 말은 서른일곱을 살다 간 로트레크의 삶 전체를 압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숨차도록 춤추고 뛰어다녀요. 자유롭게 말을 타고 달리고 싶었던 로트레크의 마음을 대신하는 듯합니다.
▲긴 의자에 앉은 여자 <나부습작> (Study of a Nude)
1882년, 캔버스 유채, 46 x 55cm, Musee Toulouse-Lautrec, Albi, France.
▲로트렉 백작 부인 (Drawing Room at the Chateau de Malrome)
1886 or early 1887. Oil on canvas. 59 x 54 cm. Musee Toulouse-Lautrec, Albi, France.
녹청색을 주조로 한 실내, 46세의 로트렉의 어머니는 호탕한 남편과 결혼 생활이 결코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이 많았기도 했지만 독서는 그녀의 생활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여 단순한 취미 이상의 것을 독서에서 추구하였다. 인상파 기법이 요소요소에 나타나는 이 작품은 화면 전체의 좌측에 쏠린 듯한 인물의 위치에서나 잘린 책 부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창으로부터 비친 역광을 무시한 얼굴 처리처럼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Portrait of Vincent van gogh)
1887년, 파스텔, 56*46,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국립 미술관
코르몽의 기름 냄새 풍기는 화실 생활에서 개성이 강한 고호와 로트렉이 신뢰와 우정을 나누며 자신들의 작품에 열의를 보일 때가 22세 되던 1886년 가을 무렵이다. 4년 후 브류셀에서 2인전을 갖기도 한 두 사람의 우정은 흔치 않은 경우였지만, 강한 자아의 세계로 몰입하는 그들 사이의 우정은 시간적으로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파리의 바라든지 카페 한쪽 구석에 자리한 고호의 개성있는 옆 얼굴을, 짧은 시간에 그릴 수 있는 파스텔을 이용한 재치를 보였다. 반 고호의 까칠까칠하고 긴장된 표정을 일련의 사선으로 그린 진귀한 수법에 관심을 보인 반 고호가 아우 테오에게 사도록 권유한 기념작이기도 하다.
▲르난도 서커스단에서 여자곡마사 (At the Circus Fernando, Eqestrienne)
1887-88. Oil on canvas. 103.2 x 161.3 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물랑드라 갈레트에서 (Au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89. Oil on canvas. 88.5 x 101.3 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화장하는 여인 (Rousse (La Toilette))
1889. Oil on cardboard. 67 x 54 cm. Musee d'Orsay, Paris, France.
▲숙취 (The Morning After)
1889. Indian ink and blue chalk. 48 x 63 cm.
Musee Toulouse-Lautrec, Albi, France.
▲물랭루즈에서 : 춤 (At the moulin rouge : the dance)
1890년, 캔버스에 유채, 113*148, 필라델피아, 앙리 p.맥길레니 소장.
▲Dressage des nouvelles, par Valentin le Desosse / Training of the New Girls by Valentin "the Boneless" (Moulin-Rouge). Detail. 1889-90. Oil on canvas.115 x 150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탁부 (The Laundress)1889년, 캔버스에 유채, 92*74, 프랑스, 르 베시네 도르튀 여사 소장.
▲Seated Dancer.
1890. Cardboard. 52.3 x 46.5 cm. Private collection.
▲물랑루즈에 들어가는 라 굴뤼 (La Goulue Entering the Moulin Rouge)
1891-92. 판지, 유채, 79.4 x 59 cm.
The Museum of Modern Arts, New York, NY, USA.
▲앙바사피르의 아리스티드 브뤼앙 (Les Ambassadeurs: Aristide Bruant)
1892년, 석판, 100 x 150cm, Musee Toulouse-Lautrec, Albi, France.
아리스티드 브뤼앙(1851-1925)은 당시 몽마르트르의 인기 가수인 동시에 작사와 작곡도 잘했다. 1885년에 카바레 밀리통을 개장했으며 이 무렵부터 로트렉과 친했는데 당시 갓스물이 된 로트렉을 처음으로 창녀의 세계로 유인한 것도 그였으며 말하자면 악우(惡友)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로트렉은 그를 위해 꽤 많은 데생과 유화를 남겼는데 화가 로트렉의 그리고 또한 가수 브뤼앙의 진미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은 이작품을 포함 한 4점의 석판 포스터일 것이다. 그것들은 차양이 넓은 모자에 다크 블루의 망토, 게다가 주홍색 머플러를 각각 평탄한 색면으로 분할하고 단순 명쾌한 화면 구성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춤추는 잔느 아브릴 (Jane Avril Dancing)
1892년, 유채, 63×42cm, 코네티컷 워즈워드 애니시움.
▲At the Moulin Rouge (Two Women Waltzing),
1892, oil on cardboard, National Gallery in Prague
▲물랑루즈의 카드리느 (The Beginning of the Quadrille)
1892년, Gouache on cardboard, 79.5 x 60.2 cm, 워싱턴 국립 미술관 소장.
▲Au Moulin Rouge (La Goulue et la Mome Fromage).
1892. Colored lithograph. 45.8 x 34.7 cm.
▲L'Anglais Warner Au Moulin Rouge.
1892. Colored lithograph. 47 x 37.2 cm.
▲Reine de Joie.
1892. Colored bookshop poster. 130 x 89.5 cm.
▲물랑루즈에서 나오는 잔 아브릴 (Jane Avril sortant du Moulin Rouge)
1892. Oil on cardboard. 86 x 55 cm. Wadsworth Atheneum, Hartford, CT, USA.
▲물랑무즈에서 (At the Moulin Rouge)
1892년, 캔버스에 유채, 121*138cm, 시카고 미술 연구소 헬렌 버치 바틀렛 기념 소장.
▲Poster: Le Divan Japonais.
1893. Chalk lithograph. 78.7 x 59.5 cm.
Musee Toulouse-Lautrec, Albi, France.
▲Poster: Jane Avril at the Jardin de Paris.
1893. Lithograph, 124 x 91.5 cm.
Musee Toulouse-Lautrec, Albi, France.
▲Prostitutes Around a Dinner Table.
1893-94. Oil on canvas. 60.3 x 81.5 cm.
Szepmuveseti Muzeum, Budapest, Hungary.
▲At the Foot of the Scaffold.
1893. Musee Toulouse-Lautrec, Albi, France.
▲Study for Woman Putting on Her Stocking.
1894. Oil on board. 61.5 x 44.5 cm.
Musee Toulouse-Lautrec, Albi, France.
▲여자 어릿광대 샤 위 카오
(Au Salon de la Rue des Moulins)
1894. Charcoal and oil on canvas. 111.5 x 132.5 cm.
Musee Touloue-Lautrec, Albi, France.
▲물랑루즈의 샤 위 카오 (The Clowness Cha-U-Kao)
1895. Canvas. 75 x 54.8 cm. Private collection.
▲Crouching Woman with Red Hair.
1897. Oil on cardboard. 47 x 60 cm.
San Diego Museum of Art, San Diego, CA, USA.
▲생전의 로트렉의 모습과 케릭터 삽화
1901년(37세)
4월 파리로 돌아와 파리에서 자신의 작품들은 점검, 손질하거나 실패한 작품을 정리하고, 7월까지 파리에 체재한다. 8월 20일 말로메관(館)에 돌아와 <비오제독>이란 제목을 붙인 미완의 초상화를 남기고, 9월 9일 37세의 나이로 말로메의 별장에서 요양을 하던 중 37세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를 마쳤다. 화장시킨 그의 유해는 베르들레 묘지로 이장하고, 그의 어머니는 아틀리에에 남겨진 아들의 작품을 전부 챙겨 고향인 알비시(市)에 기증하였고, 1922년 알비시에 로트레크미술관이 개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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