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Paris)ㅡ프티 팔레 (Petit Palais) / 자드킨 미술관 (Musée Zadkine)
파리의 수많은 미술관을 다 가보려면 꽤 넉넉한 기간을 잡아야 한다. 예산도 만만치 않다. 미술관 한 곳당 입장료가 기본 10유로 이상이다. 그래서 일정 기간 동안 대부분의 파리 미술관 입장이 가능한 뮤지엄 패스가 파리 여행 필수품이 된 거 아닐까. 이미 뮤지엄 패스로 유명한 파리의 미술관은 다 가봤다면? 무료로 방문할 수 있는 미술관은 어떨까. 기대 이상으로 만족할 만한 미술관을 소개한다.
▲프티 팔레 (Petit Palais)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알려진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너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고풍스럽고 웅장한 두 건물이 나온다. 1900년대에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그랑 팔레와 프티 팔레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프티 팔레는 현재 파리 시립 미술관으로 파리 시민들에게 특별전을 제외한 내부 관람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이름은 프티( petit )지만 내부 규모가 웅장하고 볼 작품도 많다.
커다란 기둥과 건물 입구의 섬세한 조각들, 금빛으로 반짝이는 문이 반기는 프티 팔레로 들어간 순간, 나 자신이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 만큼 미술관은 고풍스럽다.
▲그랑팔레에서 바라본 프티 팔레
▲프티 팔레에서 바라본 그랑팔레
무료 미술관이라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았다. 무료니까 볼거리가 적은 게 아닐까, 하지만 무료라고 볼 것이 없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루브르처럼 많은 인파가 없어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작품을 하나하나 감상할 수 있다.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와 피사로, 쿠르베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오르세를 6번 이상 가서 인상주의 작품에 익숙하다 느꼈지만, 프티 팔레에서 보는 인상주의 작품들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또 다른 신선한 느낌이었다. 장소에 따라, 시간에 따라 작품이 주는 느낌은 매번 다르구나.
작품을 보며 눈길을 끌었던 건 작품 속 파리의 옛 풍경이었다. 지금은 파리 최대 쇼핑몰로 바뀐 레알 시장의 모습이 눈에 띈다. 작품 하나로 과거의 파리에 온 듯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다. 미술관에서 과거 여행을 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프티 팔레는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다. 프티 팔레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미술관 안뜰에 자리한 카페. 작품 감상을 한 후 안뜰로 가서 커피 한 잔을 하면 완벽한 파리의 오후를 즐길 수 있다. 미술관 안뜰에 준비된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그 어떤 곳보다 따뜻하고 달콤하게 느껴진다. 마카롱과 함께라면 더욱 만족스러울 것이다.
▲자드킨 미술관 (Musée Zadkine)
파리 6구의 심장 뤽상부르 정원 근처에 작고 사랑스러운 미술관이 있다. 파리에서 학교를 나온 뒤 활발한 활동을 했던 러시아 출신의 조각가, 오십 자드킨의 미술관이다.
그의 작품들이 특별한 이유는 입체주의, 큐비즘을 조각에 녹여냈다는 점이다. 피카소와 샤갈과 교우관계였던 그는 당시 완벽하고 절대 비율을 중시하던 화풍에서 입체주의 화풍에 매료되어 자신의 작품으로 창조해냈다.
자드킨 미술관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아싸스 길의 자드킨 미술관 표지판 옆 문을 지나 좁다란 건물 사이 안으로 쭉 들어가야 숨겨진, 작고 따스한 미술관이 나온다.
간결하고 대담한 선이 눈길을 끄는 자드킨의 작품들. 미술관 안은 수많은 조각상들이 조화롭게 공간을 채우고 있다. 창이 참 많은 미술관 내부. 차창 너머로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어와 작품을 감싸 주었다. 선은 대담하지만 작품 저마다 뿜어내는 느낌이 다르다.
자드킨의 300여 개의 조각과 그림, 작업실을 그의 아내가 파리 시에 기증을 하며 세워졌다고 한다. 이후 파리 시에서 그의 작품을 계속적으로 구매하여 미술관을 채우고 있다고. 유심히 작품을 보고 파리의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 세워진 작품 중에 '어? 자드킨!'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쉬어가기 좋은 미술관 뜰의 의자. 무료라서가 아니라 조용하고 사색하기 좋은 파리의 미술관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바로 자드킨 미술관이다. 피카소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강렬하게 여운이 남은 것처럼, 수많은 조각상들 중에 자드킨의 조각은 시대를 앞서간,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작품이다. 파리에서 선물을 받은 듯, 특별한 미술관이다.
주소ㅣ100bis Rue d'Assas, 75006 Paris, 프랑스
시간ㅣ오전 10:00~오후 6:00, 월요일 휴무
▲오르세 미술관
이미 파리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가 되어버린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프랑스 미술을 대표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19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일반 대중들은 더 친숙한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지금의 오르세 미술관은 20세기 초 건축가이자 교수였던 빅토르 랄루(Victor Laloux)에 의해 오르세 역으로 지어진 곳이다. 그 후 2년여의 공사를 거쳐 1900년 7월 14일 파리 만국 박람회를 계기로 미술관으로 오픈했다.
너무 유명한 곳이라 미술관을 소개한다는 자체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제대로 못 받기도 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대상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어지는 것이 이치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고 있었다. 우연히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이야기를 써 놓은 챕터가 눈에 띄어 읽게 되었고 그의 글을 통해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작품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고흐는 프랑스 남부 지방, 아를에서 15개월 머물면서 약 200점의 그림을 그리고, 100점의 스케치를 하고, 200여 통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그의 전성기라고 합의가 이루어진 시기인 것이다.
때마침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프랑스의 유명한 극작가인 아르토에 의한 반 고흐의 작품의 분석을 중심으로 그림, 드로잉, 편지를 포함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대부분 오르세 미술관의 컬렉션에서 온 것에 암스테르담의 반고흐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텔로의 크뢸러 밀러 미술관,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에센의 포크윙 미술관의 작품이 더해졌다고 한다.
이 기획전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아르토가 1947년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열린 '반고흐 회고전'을 보고 난 후 극도의 열광 상태에서 에세이를 썼고 이 에세이로 그는 그 다음 해에 생트 뵈브 비평상을 받았다. 에세이 제목은 'Le Suicide de la societe'(사회가 자살하게 만든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에 대한 아르토의 새로운 해석으로 광적인 에피소드의 진의와 화가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요인들을 파악할 수 있는 키를 갖게 되었고, 이번의 전시도 아르토가 쓴 에세이의 내용을 토대로 반고흐의 작품들을 구성해 놓은 식이었다.
특별전에 선보였던 작품들은 대부분 아를에 있는 동안 그렸던 작품들이었는데 나는 그의 그림들 중에서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린 작품들이 유난히 궁금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알랭 드 보통이 설명해놓은 사이프러스 나무에 대한 설명과 그림의 이미지를 비교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 남프랑스 지역의 모습. 사이프러스 나무는 이곳의 가장 흔한 나무 중 하나였다.
▲ 남프랑스에서 보았던 사이프러스 나무
그가 쓴 글을 읽은 탓일까? 고흐에 대한 나의 사랑이 커졌던 탓일까?나는 반 고흐가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들에서 한동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책을 통해, 스크린을 통해 수없이 많이 봤던 작품이 사이프러스 나무인데도 그날 나는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제대로 본 것이다. 나무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서 그린 그의 열정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내 눈에서도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던 시간이었다.
고흐의 눈에 비친 사이프러스 나무는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둔탁했고 두꺼웠다. 몇 가지 색을 섞어서 완성한 그림이 아니라 수 십 가지 색이 섞여서 칠해지고 또 칠해져서 완성된 작품이었다. 그가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물감을 아끼지 않고 그의 열정을 쏟아부은 것이기에 나에게는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비로소 나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그려진 작품을 제대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수많은 작품들을 뒤로 한 채 고흐의 작품을 보는 데만 몇 시간을 할애했지만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날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그냥 알던 친구가 친한 친구가 되었을 때의 느낌과도 비슷했다.
이번 관람을 통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 유명한 미술관의 작품을 전부 보고 오겠다는 생각은 버릴 것. 단 하나의 작품이라도 본인에게 끌림이 있고 감동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작가와 작품을 만날 준비를 하고 갈 것!
◈오르세 미술관 Information
홈페이지: http://www.musee-orsay.fr/en/home.html?cHash=1030a57d48
주소: 1 Rue de la Légion d'Honneur, 75007 Paris, France
개장 시간:09:30 ~ 18:00 (목요일 ~21:45)
휴무일: 매주 월요일, 1/1, 5/1, 12/25
입장료: 어른 11유로, 18~25세 미만 8.5유로, 18세 이하 무료
찾아가는 방법: M12 Solférino역, RER C Musée d’Orsay역버스 24, 68, 69, 73,83,84,94
Tips
뮤지엄패스 사용 가능.
매주 첫째주 일요일 무료 입장
오르세 미술관 + 오랑주리 미술관 티켓은 16유로에 구입 가능하다.
오르세 미술관 + 로댕 미술관 티켓은 15유로에 구입 가능하다.
목요일은 제외한 오후 4시 30분 이후엔 티켓을 8.5유로에 구입 가능하다.(목요일의 경우 저녁 6시 이후 8.5유로에 구입 가능함)
※사진 촬영 가능(플래시 꺼진 상태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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