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해안길ㅡ포르투에서~~산티아고 까지 성지 순례길
▲대서양 해변을 곁에 두고 모우가스 해변을 따라 걷고 있는 순례객.
인도를 여행하던 중, 스페인에 사는 요셉으로부터 메일이 왔다.‘우리는 5월에 포르투에서 시작하는 포르투갈 해안길을 걸으려 한다. 친구들 모두가 너와 함께 걷기를 원한다.’ 포르투갈 해안길의 경로와 대략적인 일정까지 첨부한 메일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초대였지만 고민하지 않았다. 5월 중순까지 예정이었던 여행 일정을 줄이고 한국에 갔다가 스페인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스페인으로 직접 건너가도 되겠지만 아주 작은 선물이라도 나의 마음을 담아 가고 싶었다.
홀로 여행하는 두려움을 단숨에 불식시켜 주셨고, 세상에는 멋지고 좋은 사람들로 가득한 곳임을 알게 해주신 분들이다. 그 이후로 길에서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을 수없이 만나고 있다. 그분들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사는 요셉, 루이스, 알버트, 요한, 안토니오, 다니엘. 그리고 또 한 분의 요한.
▲포르투에서 출발 산티아고 까지 가는 순례도
▲순례길을 걷다가 잠시 홀로 되면 즐겼던 그림자 놀이,
길을 걷다 만난 바르셀로나 친구들빨, 주, 노, 초, 파, 남, 보 7분의 멋진 신사들을 만난 때는 2016년 10월,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 길을 걷기 시작한 둘째 날이었다,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으로 향하는 길은 밤이 지천으로 뒹굴고 있었다.
유독 좋아하는 밤인데 이곳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통실 통실한 밤을 하나 둘 주워서 배낭 앞에 달린 작은 주머니에 담았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밤을 삶아 먹어야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바빴다. 이런 내 모습을 보시던 한 분이 밤을 주워 주셨고, 다른 분들도 커다란밤만 눈에 뜨이면 나에게 가져다 주셨다.
그분들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오신 70세 전후의 할아버지들. 만난 첫날, 그분들이 예약한 숙소에 함께 머무르면서 자연스럽게 동행이 되었다.요셉이 “이제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 주었던 순간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24시간을 함께 동행하면서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기엔 충분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이하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어떤 힘이 날 끌어당겼다.
▲뿔뽀(문어)의 도시 비고에서 먹었던 뿔뽀는 부드럽고 담백했다.
11일 동안 300km 이상을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자면서 떼지 못할 정이 들었다. 이별의 날, 산탄데르(Santander)에 도착했다.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나는 아빠 곁을 떠나는 아이였다. 영화 엔딩처럼 이분들과 함께했던 순간순간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첫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의 클라이맥스였다.
데이빗의 집에서 다시 만난 그분들은 3년 전과 다름없이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한 분 한 분 스페인식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었다.어찌나 반갑게 맞아 주시는지!!! 이분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분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했다.
TV 프로그램 ‘스페인하숙’의 단골메뉴였던 김치볶음밥. 처음엔 포크로 조심스럽게 맛을 보시다가 어느새 접시를 비우셨다.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추억의 보따리를 풀었다 쌓기를 하면서 우리들의 우정은 더욱 더 농익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길가의 식수대.
다시 선 순례길, 햇빛은 쨍쨍 포르투갈 해안길의 첫 시작인 포르투Porto. 포르투갈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우루(Douro)강이 도도하게대서양으로 흐른다.
노천카페에는 이 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푸른색의 강 옆으론 주황색 지붕을 이고 있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빼곡히 앉아 있고, 하늘은 누가 더 푸른빛을 띠고 있는지 강물과 경쟁하고 있었다.도우루강에 세워진 동 루이스 1세 다리(Ponte de Dom Luis I)에 오르니 그림엽서처럼 펼쳐진 포르투의 모습에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마토지뉴스Matosinhos까지 구간은 차로 옆을 따라 걷는 구간. 도시 구간을 피하고 싶은 사람은 버스를 타기로 했다. 누가 버스를 이용할 것인지 누가 걸을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각자가 단답형 대답으로 끝냈다.
다니엘, 알버트, 안토니오, 미켈, 그리고 나는 걷기로 했다. 도우루강을 따라 걷는 길은 ‘역시나’였다. 오후 4시에 출발했는데도 태양은 식을 줄을 몰랐다. 햇빛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모두들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있어 출발한 지 30분도 안 돼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되었다. 아직 여름이 시작되지않은 5월인데 대낮의 체감온도는 35℃ 이상 되는 것 같았다.숨이 턱!! 막혔다.
걸으면서 ‘편히 버스로 갈 걸 그랬나?’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다행히 길가에 식수대가곳곳에 있어서 물은 부족하지 않게 마실 수 있었다. 포르투갈은 차량전용 도로가 아니면 거의 작은 돌이 깔려 있었다. 오랜만에 돌길을 걸으니 꽤 정겨웠다.
▲까레코의 촉촉한 오솔길. 돌집엔 유난히 이끼가 많이 끼어서 더욱 정감 있다.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집. 소박하지만 주인의 정성이 담겨 있는 정원엔 장미를 비롯한 꽃들과 더불어 과실수가 있다. 레몬과 오렌지 나무가 유독 눈에 띄었다. 하나 따먹고 싶을 정도로 탐스럽게 열려 있다.
눈으로 맛을 보면서 길을 걸었다. 순례길은 직선이 아닌 점선이다. 한 마을을 스쳐가는 길이 아니라 중심지까지 들여다보고 가는 마을기행의 연속이다.
비아나 도 카스텔로(Viana do castelo)를 지나서 산으로 접어들었다. 바다가 보이고 산기슭에 자리 잡은 집들은 옛 돌길로 연결되었다. 초록의 이끼가 가득한 옛 돌담길 곁에 있으니 마치 중세시대로 시간이동을 한 듯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배낭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레인재킷을 입었다. 하늘은 온통 먹구름.비를 맞으며 모처럼 홀로 생각에 잠겼다.
비를 맞아도 어느 한 사람 발걸음이 빨라지지 않았다. 30km를 넘어서자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카페로 들어섰다. 시원한 맥주를 한 잔씩 하면서 옆 테이블의 동네 아저씨, 주인장도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다.순례길에서는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친구가 된다.
언덕 중간에 자리 잡은 알베르게는 호텔처럼 깨끗했다. 알베르게 까사 도 사르다우(Albergue Casa do Sardao). 포르투갈 해안길에서 묵었던 알베르게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눈을 감고 샤워기로 따뜻한 물을 머리에 흘렸다. 세상의 모든 행복은 이곳에 모여 있는 듯했다.
▲까민냐 해안길을 걷고 있는 순례객들. 까민냐에서 페리를 타고 스페인의 아과르다로 국경을 넘는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포르투갈의 끝머리. 아쉬움을 더욱 진하게 남기려는 듯 몰레도 비치(Moledo Beach)는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빨간 보트 모양의 벤치. 백발의 노신사가 그림엽서 속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바다에서 눈길을 떼지도 못하고 소나무가 무성한 숲으로 들어섰다. 소나무향 가득한 그곳엔 나무들이 키자랑을 하듯 하늘로 솟아있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소나무의 진한 향이 내 몸속까지 샤워를 해주었다.
이런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순례길을 걷는 이유는 충분했다. 까미냐(Caminha)에서 페리를 타고 잠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스페인의 아과르다(A Guarda)에 도착했다. 비자도 입국심사도 없이 마치 옆집에 마실 가듯이 국경을 넘었다.
발이 편해질 때까지 배낭을 메지 말라고 모두들 강하게 충고하셔서 배낭을 다음 숙소까지 동키서비스로보내기로 했다. 배낭을 메고 걸어도 될 것 같은데 동행하는 분들이 신경 쓰시는 것도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다.
동키 서비스 요금이 프랑스 길은 5유로인데 포르투갈 해안길은 이용자가 많지 않아서인지 7유로. 가볍게 이동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꼭 배낭을 메고 걸어야 순례길인 것은 아니니까.
▲마토지뉴스에서 빌라 도 콘데까지 연결된 데크길.
도시를 벗어나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집 구경도 하고 아이들이 공 차는 모습도 보았다. 너무나 일상적인 길. 특별히 아름다운 길이 아니라 삶속을 걸어가는 길도 좋았다. 로열 모나스테리 오브 산타 마리아 데 오이아Royal Monastery of Santa Maria de Oia 수도원, 마을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수도원이 있는 마을과 하얀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이곳엔 유독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집의 대문이나 벽은 온통 배에 관련된 소품들이 가득했다. 해안선을 따라서 걷는 길은 해파랑길과 닮았다. 오늘 숙소는 ‘캄핑 모우가스 이 알베르게 솔리다리오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ping Mougas y AlbergueSolidario Camino de Santiago)’ 이름이 참 길다.
알베르게와 캠핑장, 뱅갈로 수영장, 그리고 테라스에선 선셋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순례자들이 쉬어가기엔 최고의 숙소였다.폰테베드라 4.5km 전방, 레돈델라(Redondela)에서 약 19km 지점에서 까미노 루트와는 별개의 우회로Complementario)가 있다.
기존 루트는 도로 옆을 따라서 걷는데 우회로는 숲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우거진 푸른 숲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모습이었다. 거친 듯한 숲의 숨결이 가슴에 닿는 순간, “정말 멋지구나”, “너무 아름다워!” 탄성이 이어졌다. 생수를 부어 놓은 듯 투명한 냇물에 뛰어들고 싶었다.
초록 햇살이 나무 사이를 밀치고 들어와 나와 놀자며 손을 내밀었다. 한발 한발 발을 옮길 때마다 눈길이 머물렀다. 하룻밤 머물기 어려우면 돗자리를 깔고 잠시 쉬어가고 싶은 곳. 구불구불 휘어진 길을 따라서 걸으며 사람들의 입에선 노랫소리가 흘렀다. 행복을 느끼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같았다. 4km가 채 안 되는 이 길이 포르투갈 길에서 가장 멋진 코스라는 데 이견은 없었다.
▲파드론을 지나면 노란 들꽃 벌판이 이어진다.
폰테베드라에 도착하니 순례자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100km 이상만 걸으면 증명서를 받을 수 있어서일까? 포르투갈 내륙길과 해안길이 합쳐져서일까? 이곳은 차가 없는 도시, 유적이 잘 보존된 구 시가지로 유명하다. 수도원 앞의 광장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호사스런 여유로움을 즐기고 중심가를 한 바퀴 돌았다.
1700년대 세워진 순례자의 교회Capela da Peregrina, 산타마리아 교회Iglesia de Santa Maria la Mayor 등유적지 아닌 건물이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였다. 역사탐방은 순례길의 보너스!
칼다스 데 레이스Caldas de Reis는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 온천이 있는 호텔도 있지만 알베르게에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 그러나 마을 중심지에 무료 온천탕이 있었다.
마을마다 있던 공동 빨래터와 비슷했다. 온도도 적당했고 유황 성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발만 담그고 있는 사람, 발만으론 부족해서 옷을 입은 채 입수를 한 사람. 유쾌한 웃음소리가 넘쳤다. 온천탕에서도 “부엔, 까미노” 인사를 나눴다.
▲산티아고를 약 5km 남긴 지점부터 시작된 작은 오솔길.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서다이별을 알고서 흘리는 눈물일까? 내일이면 산티아고 도착인데 오늘은 날씨가 유난히 흐렸다.
비까지 오락가락했다. 강행군을 했는지 길에서 발의 부상을 치료하는 순례자들이 많이 눈에 뜨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는 그나마 짧은 거리이고 쉬운 코스인데도 매일 20~30km를 걷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쉬움이 커가는 만큼 남아 있는 거리는 쑥쑥 줄어들었다. 도심구간으로 들어서니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이 보였다.
아!! 아스라하게 3년 전 산티아고 도착 날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다른 이들이 길에서 만나서 함께 배려하면서 산티아고에 도착했던 날!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었다.
수백km를 걸어온 서로의 노고를 칭찬해 주고 위로받았던 그 순간의 격정이 나를 에워쌌다. 가슴이 요동을 쳤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만나는 순간의 모습을 상상했다. 선보러 나가는 노처녀의 마음이었다.
▲순례길의 최종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서는 순간, 잠시 세상이 멈췄다. 첫 순례길보다는 많이 짧았던 길이었지만 거리가 중요하지 않았다. 광장에는 많은 순례객들이 특별한 세리모니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들은 돌아가며 한 사람 한 사람 격하게 포옹을 했다. 내일부터는 걷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보다는 함께 걸었던 친구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먹먹함이 에워쌌다.
순례길에서 나누었던 “부엔 까미노Buen Camino”가 다시 그리워지면 나는 또 순례길에 서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길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배려하면서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길.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 행복한 사람들 속에서 함께하는 시간,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을 다시 만나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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