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포 빙하와 히스파 빙하를 관통하는 길 112km,
히스파 라(고개 5,128m)를 넘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풍경의 스노 레이크는 곳곳에 크레바스가 있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파키스탄 여행의 메인 코스인 비아포-히스파(Biafo-Hispar)빙하 트레킹을 맛볼 차례다. 파키스탄의 히말라야는 한 번 맛보면 헤어 나오기 힘든 짜릿한 경험을 위해 많은 오지 탐험가들이 도전하는 곳이다.이름처럼 빙하를 따라 걷는 길이다.
파키스탄 북부 카라코룸산맥을 따라 위치한 49km의 비아포빙하와 63km의 히스파빙하는 히스파 라(5,128m)를 사이에 두고 동에서 서로 길게 뻗었다. 거대한 빙하 계곡을 따라 올랐다가 능선을 넘어 빙하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인 셈이다.
극지방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긴 빙하 트레일이다. 4km 폭의 거대한 빙하 위를 크레바스를 피해 걸어야 한다. 마을이 없어 빙하를 벗어난 가장자리 초지를 골라 11일 동안 이동해야 한다.
긴 거리와 시간만큼 필요한 식량과 장비도 어마어마하다. 이 장비를 옮기기 위해선 능숙한 현지 포터가 필요하고, 시간이 지나 식량이 줄어들수록 포터들도 줄어들어 히스파 라를 넘을 땐 절반으로 줄어든다.
▲카라코롬 하이웨이
▲망고전망대에서 바라 본 카라코룸 산줄기와 비아포빙하.
비아포-히스파빙하 트레킹은 인명사고로 인해 2016년 트레킹이 금지됐다가 2018년 다시 허용 되었다. 낭가파르바트 트레킹을 함께했던 팀과 비아포-히스파빙하 트레킹을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가이드와 스태프 몇 명이 바뀌었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새로운 가이드 후세인의 리딩으로 트레일의 시작점 아스콜리(Askole.3,000m)로 향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아슬아슬한 절벽과 무너진 길을 건너기 위해 차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 해가 지고 나서야 겨우 마을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50여 명의 남자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그 시선이 너무 불편해 트럭에서 멀리 떨어진 숙영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후세인이 한 남자에게 신호하자, 그가 다가와 내 텐트를 설치해 주려 했다. 그마저도 불편해 나는 텐트를 받아 직접 치기 시작했다.그들이 치기엔 복잡한 개인텐트라 설명해 주는 것보다는 직접 설치하는 게 나을 듯했다.
얼른 텐트로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도 한몫했다. 소수로 움직이던 낭가파르바트 트레킹과 달리, 인원이 많아지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낮시간 동안에는 녹아내린 맑은 빙하천이 트레일을 따라 굽이쳐 흐른다.
다음날 아침, 밤새 잠을 설쳐 머리가 무거웠다. 빙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임에도 한국의 여름 날씨와 다를 게 없었다. 마을을 벗어나 평원을 한참 걸은 뒤에야 오르막이 시작됐다. 먼저 출발했지만, 무거운 짐을 짊어진 50여 명의 포터에게 추월당했다. 가파른 오르막과 머리를 달구는 강렬한 태양은 내 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더위를 먹은 듯 반쯤 정신 나간 채 걷다가 스태프들이 간식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곳에 겨우 도착했다.트레킹 멤버들 중에서 가장 젊고, 백패킹으로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부쩍 치솟아 있던 자부심의 높이만큼추락한 자존심은 이미 산산조각 났다.
멤버들이 다 먹고, 접시에 한두 점 남겨진 황도를 건네는 조여정 언니를 바라보며 수줍게 입에 떠 넣었다. 미지근하지만 새콤달콤한 노란 덩어리는 영혼까지 탈출한 나에게 소소한 청량감으로 기운을 북돋아줬다.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부끄러움을 짊어지고 다시 길 위에 섰다.
▲스노 레이크에 가까워 질수록 빙하 위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어 발 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빙하 트레일이라고 하지만, 웅장한 얼음덩어리 위에는 바위와 자갈·흙이 두껍게 층을 이루고 있어, 그냥 너덜길을 걷는 느낌이다. 군데군데 벌어진 크레바스가 빙하임을 증명해 줄 뿐이었다. 돌덩이에 흡수된 태양열은 몸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정오가 지나자 후세인은 빙하의 가장자리 초지 언덕을 가리키며 오늘의 숙영지라고 알려줬다.
보통 때라면 벌써 끝이냐고 투덜댔겠지만, 엉망진창인 컨디션을 부여잡고 그나마 남은 1㎞ 남짓의 거리를 아등바등 줄여 나갔다. 텐트를 만지작대는 개인 포터에게 대충 설명을 하고, 겨우 완성된 텐트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보금자리였다. 점심은 뒤로하고 우선 잠을 청했다. 어차피 이후 일정은 아무것도 없어 다행이었다.
잠을 많이 잔 덕분인지 둘째 날 컨디션은 K2도 오를 기세였다. 다행히 빙하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더위도 사라져 걷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틀 함께 걸어서인지 포터들의 얼굴이 익숙해지면서 경계심도 사라졌다. 나의 개인 포터 아저씨 이름은 알리였는데 지긋한 연세였다. 마주칠 때마다 그들의 언어인 우르두어로 인사도 나눴다
50명이 넘는 스태프와 포터들의 얼굴이 익숙해지자 장난치기 좋아하는 내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세계여행을 하며 느낀 건, 현지 언어를 익히고, 어색하지만 그들의 언어를 사용했을 때 모두들 반가워한다는 것이다. 영어를 하는 포터에게 배운 우르두어(파키스탄 공용어)를 그들에게 사용했다.“슛바헤르!(좋은 아침)”, “짤로!(가자)”, “틱해(괜찮다)”
▲빙하 트레일 곳곳에 산재한 크레바스는 최고 깊이가 1.5km에 달한다고 한다.
그들은 어설프게 떠들어대는 내가 재밌었던지, ‘할리마’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후로 모두들 나를 ‘할리마’라 불렀고, 사진과 영상 찍는 걸 좋아하는 내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면 무거운 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멈춰서서 멋진 포즈를 취해 주었다. 영상을 찍고 있으면 야크 떼를 몰아 주거나 멋있는 뷰포인트를 가르쳐 주곤 했다.
같은 풍경에 너덜길의 연속이라 슬슬 지루해지려던 나의 여정은 소소한 재미가 생겼다. 멤버들 중에는 ‘포터랑 너무 친하게 지내면 팁을 뜯어내려 한다’는 충고를 해주는 부류와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니 즐겁게 걷도록 대우해 주는 것이 옳다’는 온건파로 나뉘었다.
슬슬 여러 명과 팀으로 움직이는 여행을 꺼려했던 내 걱정이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돈 주고 고용한사람들이라고 해서 그 위에 군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여느 여행 동반자처럼 대하면 안 된다는 적당한 선을 그어놓았고, 그들 또한 선을 넘지 않았다. 일상도 사람도 익숙해진 어느 날, 텐트 풍경 찍는 걸 좋아하는 나를 파악한 알리 아저씨가 설산이 올려다 보이는 탁 트인 장소에 능숙한 솜씨로 짱짱하게 설치해 놓은 텐트를 보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개인 포터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장소가 완벽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고마움에 엄지손가락을 추어올린 나를 보며 검게 그을린 얼굴이 주름지도록 씨익 웃어 보이는 아저씨의 반응에 더 기분 좋아졌다.
총무가 공동 팁을 주고 있었고, 절대 개인 팁은 주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기에 팁이라고는 한 푼도 준 적이 없어 좀 미안하기도 했다. 저녁식사 전 사진을 찍으러 돌아볼 요량으로 언덕 위로 올라갔다.
캠프사이트에서 봤을 땐 금방 닿을 것 같았는데 제법 가파르고 높았다.전망 좋은 바위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내가 걸어온 동쪽 끝에서 쭉 이어진 웅장한 첨봉들은 서쪽으로끝을 알 수 없이 이어져 있었다.
▲크레바스가 위험한 구간은 빙하를 벗어나 우회하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장관을 이룬다.
그 산맥과 노란색 점으로 텐트가 보이는 숙영지 사이로 거대한 물줄기가 산세를 따라 굽이굽이 흘러내리다 갑작스레 얼어붙은 듯 하얗게 동과 서로 뻗어 있었다.이제껏 봤던 빙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길이의 빙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긴 빙하 트레일의 명성 그대로였다.
눈동자를 움직일 때마다 펼쳐진 풍경은 다시 봐도 매 순간 새롭게 각인되었다. 날이 저물어 가는 줄도 모른 채 사진을 찍다가 산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서야 서둘러 하산했다. 하산 길에 포터들이 사탕수수처럼 씹어 먹는 풀을 발견해, 한움큼 잘라 내려갔다. 삼삼오오 모여 저녁에먹을 로띠(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밀어 구운 빵 종류)를 굽고 있었다.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알리 아저씨에게 풀을 주었다. 아저씨는 말없이 웃으며 나에게 하나 건넸다. 껍질을 벗기고 한입 베어 물자 비릿한 풀 냄새가 입안에 가득 찼다. 잠깐 멈칫 했지만, 계속 씹으니 나쁘지 않았다.
“마즈다해(맛있다)!” 어설프게 외운 단어를 외치자 모두가 한바탕 웃어 젖혔다.늦은 밤 구석진 내 텐트 앞에서 노숙하는 포터 중 한 명이 조용히 노래를 시작했다. 야영지 가득 그의 목소리가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조용히 텐트 문을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풀밭 위로 반짝이는 모래알을 흩뿌려 놓은 듯 하늘에 별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 굵직한 은하수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 끝에는 영원히 녹지 않을 듯한 만년설을 뒤집어 쓴 설산들이 장대하게 이어져 있었다.이제껏 걸은 길은 군데군데 초지가 있어 포터들이 음식과 보온을 유지할 땔감을 구할 수 있었지만, 수목 한계선을 넘어선 카르포 고로Karfo Goro(4,680m)부터는 땔감은 물론 냉기를 차단해 줄 땅도 없었다.
포터들은 눈과 얼음에서 고스란히 전달되는 냉기를 품은 바위 덩어리 위에서 서로 몸을 맞댄 채 추운 밤을 보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먼저 출발했던 오스트리아 트레킹 팀이 히스파 라에서 중도 포기하고 되돌아 왔기에우리는 물론 포터들도 걱정이 앞섰다
▲며칠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포터들은 촬영을 하면 걸음을 멈추고 포즈를 취해 주기도 한다.
다음날 문제는 스노 레이크를 걸으며 발생했다. 비아포-히스파빙하 트레일의 최고 높이인 히스파 라(5,128m)를 넘기 위해선 눈으로 덮인 기나긴 평원인 스노 레이크를 건너야 했다.
흙과 자갈로 덮인 빙하는 크레바스가 보여 피해 다닐 수 있었지만, 여기선 크레바스가 눈에 덮여 길을 잘못 들어섰다가는 빠질 위험이 있었다.
가이드와 트레킹에 능숙한 포터 대장을 선두로 멤버들 모두 로프로 몸을 연결해 이동했다. 포터들도 팀을 이뤄 안자일렌을 한 채 이동했다. 매년 빙하가 자라 길이 바뀌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후세인도 포터 대장의 도움을 받아 길을 찾아야 했다. 사라진 길을 찾아내느라 시간은 더뎌졌고, 햇빛이 강렬해지면서 눈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고산 등반에 대한 특별한 지식은 없지만, 남미에서 몇 번의 등반 경험으로는 해가 중천에 뜨면 눈이 녹아크레바스에 빠지기 쉬워 운행을 삼가는 게 안전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멤버 중 한 명은 일정대로 히스파 라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고, 포터들은 위험하다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안전을 위해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히스파 라가 멋지다고 하니,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욕심도 났다.
몇 분간의 설전 끝에 히스파 라에 오르면 성공보수를 주는 조건으로 이동하기로 결정됐다.하지만 길은 쉽지 않았다. 푹푹 빠지는 습설을 지그재그로 오르는 와중에 눈보라까지 불어 닥쳤다.
▲수목한계선을 넘어가면 땔감이 없어 미리 많은 양의 로띠(빵)를 준비한다.
변변찮은 복장으로 오르다 쉬기를 반복하는 포터들은 지나가는 우리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틱해(괜찮다)”라고 대답하고, 그들에게 “틱해?”라고 되물었다. 눈보라 속에서 겨우 버텨내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이런 와중에도 갈라진 거대한 얼음 덩어리는 왜 그리도 멋있는지, 걱정과 즐거움, 경이로움 등 만감이 교차했다.
눈보라를 뚫고 정상에 올라서자 언제 악천후가 있었냐는 듯 거짓말같이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그 아래로 하얗게 빛나는 설원이 펼쳐졌다. 모두 성공의 기쁨을 만끽했다. 알리 아저씨는 서둘러 텐트를 꺼냈다. 나는 텐트를 받아 들고, 직접 설치하겠다며쉬라고 전했다. 나는 무리에서 벗어난 곳에 텐트를 쳤다.
포터들의 보금자리는 돌덩이 대신 바람을 피하기 위해 쌓아 올린 눈이 전부였다. 그 위에 비닐을 씌워야 했지만, 약한 눈에 고정할 수 없어서, 나의 스틱을 빌려주었다밤은 고요했고, 하늘엔 사치스러울 만큼 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으며, 포터들의 울타리 안에서는 고요한 노래가 울렸다
▲7~8월이면 수백 가지의 야생화가 피어나고, 이 중에는 약재로 쓰이는 유용한 식물도 많다.
다음날 아침, 눈이 녹기 전에 서둘러 히스파 라를 벗어나야 했기에 새벽부터 일정이 시작됐다. 포터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숙영지를 정리하고, 먼저 출발한 우리를 지나쳐갔다. 스노 레이크와 마찬가지로 안자일렌을 한 우리는 걸음이 더뎠고, 히스파 쪽 크레바스는 비아포 쪽보다 더 험악했다.
위협적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아슬아슬한 크레바스 사이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가이드와 포터 대장, 쿡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들이 오스트리아 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동분서주하며 길을 찾아 움직였고, 덕분에 우리들 모두 안전지대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비아포-히스파빙하 트레킹을 성공한 순간이었다. 모두 환호성을 질렀고, 나는 그들에게 후한 팁을 주고 싶었지만, 환전을 해오지 않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감사 인사만 전할 뿐이었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덕분인지 트레킹의 종착지인 히스파마을로 향하는 남은 이틀 동안은 모든 멤버와 스태프·포터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사라졌다. 각자 따로 보냈던 휴식 시간을 이제는 함께 얘기도 나누며 웃고 즐기는 모습이었다.
처음 트레킹을 시작할 때의 불편한 호기심과 경계는 눈 녹듯 사라지고, 초원에 펼쳐진 야생화처럼 마지막까지 온화한
분위기에 발걸음이 가벼웠다.여세를 몰아 이 멤버 그대로, 빙하 트레킹의 끝판왕인 발토르 트레킹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출처 / chosun.com / 월간 산 / 글.사진=민미정 백패킹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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