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남 아시아****국가들/⊙터키******기행

터키ㅡ이스탄불(Istanbul)ㅡ神이 보내준 선물’ 대하듯…손님 위해 새벽장 봐 푸짐한 한상

by 삼수갑산 2022. 3. 12.

이스탄불(Istanbul)

神이 보내준 선물’ 대하듯…손님 위해 새벽장 봐 푸짐한 한상

▲갈라타 타워 인근에 위치한 상점들은 전통 공예품 등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

가격이 저렴하지 않으므로 여행 일정에 바자르 방문이 포함돼 있다면 구경만 하는 것이 좋다.

 

터키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결같았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모스크의 웅장함에 감탄하고, 바자르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겼다.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짧았던 여정을 되짚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뜻밖의 장면들이었다.

 

흔쾌히 자신의 집에 초대해 조식을 대접하고, 길을 잃은 여행자가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지도를 꺼내와 몇 번이고 설명하는 따뜻한 모습들, 더불어 이스탄불이 아니라면 하지 못했을 이색 경험들이 그것이었다. 모두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 꼭 여행의 정답은 아닐 것이다. 이스탄불만의 색다른 매력을 찾았다.

 

■ 현지 가정식 맛보기

 

11시간의 비행 끝에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간으로 새벽 4시. 여행자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공항 근처에서 조식을 해결하고 호텔 체크인을 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를 인솔하기로돼 있는 여행사의 직원은 뜻밖의 선택지를 내밀었다.

 

자신의 지인 집을 방문해 함께 아침 식사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 현지인의 집을 방문하고 함께 식사하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무엇이 있을까. 손님을 ‘신이 보내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는 설명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공항에서 차로 40분을 달려 베식타시구에 위치한 오즐렘 바탈(37)의 집에 다다랐다. 이른 시간,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할 법도 한데 그녀는 오히려 ‘돌발’ 상황을 즐거워했다. 실내는 그리 넓지 않았지만 10여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식탁과 소파가 있는 거실은 손님맞이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느껴졌다.

 

간단히 먹을 것을 사온 뒤 본격적인 요리가 시작됐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던 일행들이 그녀를 돕겠다고나섰지만 바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절했다. 터키에서는 손님이 요리나 상차림을 돕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장을 보고 있는 오즐렘(위 사진)과 1시간에 걸쳐 완성된 조식.

터키인들은 하루의 식사 중 조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마침내 한 시간여의 준비가 끝났다. 터키의 가정식 요리는 크게 애피타이저에 해당하는 메제, 본요리 그리고 후식으로 나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음식들이 코스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푸짐한 한상으로 차려진다는 점이다. 바탈은 “터키의 식사 시간에는 음식을 먹는 것 외에도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포함돼 있다”며 “한상 차림은요리를 한 사람도 함께 식사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여유로운 주말에는 평균 3~4시간씩 아침 식사가 이어지기도 한다. 조식 문화가 이렇다 보니 점심은 간단하게 해결하거나 거르는 일도 다반사다. 메뉴 또한 다양했다. 저마다 ‘터키’ 하면 떠오를 다양한 음식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여행을 통해 터키 빵의 매력에 푹 빠졌다.

 

페이스트리의 한 종류인 ‘뵈렉’은 얇은 반죽을 차곡차곡 쌓은 것으로 그 사이 치즈와 버터를 뿌려 부드러운 맛을 냈다.

바탈은 꿀과 ‘카이막’이라는 크림을 곁들여 먹을 것을 추천했는데, 이후 호텔 조식을 먹을 때도 이 조언은 유용했다. 올리브 요리들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우리들의 김치가 무침 방식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듯 이들의 올리브는 굽거나 조리거나 양념을 하는 것으로 다양하게 변주됐다.

 

▲갈라타 타워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보스포루스 해협과 골드혼.

이스탄불 전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갈라타 타워는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 있어 조금만 늦어도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한다.

 

터키인들이 손님을 초대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음식을 풍족하게 즐기도록 돕는 것이라고 한다.바탈 역시 식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손님들의 접시를 예의주시했다. 부족한 것은 없는지 수시로 묻고, 차와 커피는 잔이 비워질세라 채웠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대화를 이끌었다. 터키인들이 즐겨 한다는 ‘커피 점’도 선보였다.다 마신 커피잔을 뒤집어 커피 찌꺼기가 떨어지는 모양으로 점괘를 파악하는 방식이었다. 시차로 인해 졸음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시간은 훌쩍 흘렀다. 누구 하나, 무엇 하나 겉돌지 않고 어우러졌다. 배 속 든든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 침묵이 건네는 힘, 수피 댄스

 

그 나라의 문화를 읽는 데에는 공연 역시 큰 도움이 된다. 이스탄불의 거리를 걷다 보면 전통춤 공연 팸플릿이나 포스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터키만의 이색 공연을 관람하고 싶다면 호자파샤를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터키식 목욕탕인 ‘하맘’을 개조한 호자파샤에는 수피 댄스를 보여주는 ‘훨링 데르비쉬’(Whirling Dervishes)와 이스탄불 역사를 춤으로 엮은 ‘화이트 로즈’(White rose), 터키의 전통춤을 모은 ‘리듬 오브 더 댄스’(Rhythm of the Dance)가 시간대별로 무대에 오른다.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훨링 데르비쉬’는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메블라나의 종교의식에서 시작된 춤으로 ‘수피 댄스’라고도 불린다. 슬픔, 경건, 신비로움을 표현하는 연주가 끝나자 5명의 데르비쉬(탁발승)들이 원통형의 모자를 쓰고 검은 망토를 입은 채 등장했다. 이들은 이후 피리와 북소리에 맞춰 끊임없이 도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원통형의 모자는 자신의 묘비를, 검은 망토는 속세,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공연이 무르익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메카를 향해 예를 올리고 난 뒤 검은 망토를 벗어 던진다. 속세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양팔을 X자 모양으로 어깨에 얹어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는 1이라는 숫자를 의미하며 신과 하나가 되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표정의 얼굴과 무수히 반복되는 회전이 이어지는 공연장은 경건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음악의 빠르기에 따라 회전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는데 격렬하게 돈다는 것은 곧 신의 세계와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이 춤을 통해 신과 더 가까이하고, 신의 축복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함이 이 공연의 목적이다. 이 때문에 박수나 촬영은 금지돼 있다.

 

■ 애거사 크리스티의 서재

 

짙은 색의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 손때가 묻은 언더우드 타자기와 한쪽에 놓인 저서들에서 은둔의 삶을 즐겼던 작가의 생애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코넌 도일과 함께 영국의 저명한 추리소설 작가인 애거사 크리스티가 머문 페라팰리스 호텔

411호의 풍경이다.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이 호텔에서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오스만 제국시대에 이르는 이스탄불 특유의 문화에 화려한 유럽의 인테리어까지 경험할 수 있다. 현재 이곳은 ‘뮤지엄 호텔’로도 운영되고 있다. 작가는 파리에서 이스탄불로 향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 안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의 영감을 얻은 뒤 이 호텔에서 두문불출하며 집필에 몰두했다고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뿐이 아니다. 이 호텔이 관리한 고객 중에는 작가들이 많았다. 1938년에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곳에 머물면서 <킬리만자로의 눈>을 썼다. 1969년에는 옥스퍼드 출신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이 호텔에 머물면서 소설 <내 이모와 함께 여행>을냈다. 두 작품은 모두 영화화되며 더욱 유명해졌다.

 

더불어 이곳은 귀족·부호들이 별장처럼 이용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1892년에 건축된 페라팰리스는 당시유일하게 전기가 공급되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최신식’ 호텔이었다. 예술가들과 부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의 매력이 무엇이었을지 유추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시간일 것 같다.


출처 / kyunghyang.com / 이스탄불(터키)=글·사진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