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新八道(신팔도)*紀行錄/⊙제주 자치도**기행

제주도ㅡ제주시ㅡ거문오름 용암의 길ㅡ용이 토한 ‘불의 숨길’ 따라 동굴 한바퀴…1만년의 신비에 숨이 멎다

by 삼수갑산 2022. 10. 14.

제주도ㅡ거문오름 용암의 길

용이 토한 ‘불의 숨길’ 따라 동굴 한바퀴…1만년의 신비에 숨이 멎다

▲비공개 공간인 제주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벵뒤굴(천연기념물). 제주 세계자연유산 축전 중 탐방이 가능한 미로형 동굴인데, 제주4·3사건 당시 주민들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류는 북동쪽 해안가로 흘러가면서 벵뒤굴, 김녕굴, 만장굴, 용천동굴 등 수많은 천연 동굴을 만들어 놓았다.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논다는 뜻의 ‘구룡농주(九龍弄珠)’. 여의주에 해당하는 알 명당 쪽으로 9개 산봉우리가 다투듯 둘러싼 형상을 묘사하는 풍수 용어다. 실제로 제주도에는 ‘알(새끼)오름’을 향해 9개 봉우리가 서 있는 지형이 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이다. 한라산 백록담보다 무려 4배나 큰 분화구 가운데에 알오름이 치솟아 있는 거문오름은 ‘용이 불을 토해 놓은’ 듯한 화산체다. 이곳에서 흘러나온 용암은 만장굴, 김녕굴 등 세계적인 천연기념물을 만들어 놓았다. 지금 제주도에서는 거문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의 길’을 따라 축제 한마당이 벌어지고 있다.

 

▲9개 봉우리가 가운데 알오름을 둘러싸고 있는 형상인 거문오름.

 

거문오름(해발 456.6m)은 제주도의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거문’이라는 말은 삼나무, 편백나무, 소나무 등 수림이 울창해 거무스레한 빛깔을 띤 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한편으론 신령스러운 공간(黔·검)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데, 그 뜻답게 아무 때나 출입할 수 없다. 방문 시 온라인 사전 예약을 거쳐야 하며, 주 1회(매주 화요일) 자연 휴식일제로 운영된다. 탐방객 수도 엄격히 제한한다.(하루 450명)

 

출발 지점인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경사진 길을 따라 50분 정도 걸으면 거문오름의 정상인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에서는 화산 폭발 때 생긴 분화구 주위를 둘러싼 봉우리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제주의 360여 개 오름 중 3분의 1이 이곳에서 보인다고 한다.

분화구 가운데로는 볼록하게 솟아오른 작은 알오름이 인다. 1만 년 전 거문오름이 폭발한 뒤 다시 또 화산이 터져서 110m 정도의 오름이 분화구에 생긴 이중화산체 구조다. 바로 이 알오름, 즉 여의주에서부터 ‘용암의 길’이 시작된다.

 

▲문오름동굴계에 속하는 용천동굴의 석순과 종유관.

 

용암은 너비 80∼150m, 깊이 15∼34m 규모로 거문오름의 북동쪽으로 긴 협곡을 이루어 놓았다. 그리고 직선거리로 월정리 해안가까지 약 14km 흘러가는 동안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화산 지형과 20여 개의 크고 작은 용암 동굴을 탄생시켰다.

 

만장굴(7.4km), 김녕굴(700m), 벵뒤굴(4.5km), 용천동굴(3.4km)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동굴들이 바로 거문오름의 ‘자식’들이다. 이를 ‘거문오름용암동굴계’라고 부른다.

지금 이 용암의 길에서 다양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가 ‘2022 세계유산축전―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10월 1∼16일). 제주도 세계자연유산마을보존회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진행하다가 2년 만에 대면 행사로 돌아왔다.

 

주최 측이 마련한 여러 프로그램 중 ‘세계자연유산 워킹투어―불의 숨길’이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생성 전 과정을 직접 걸으며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거문오름 분화구에서 용암이 분출되기 시작한 ‘시원의 길’(1구간), 용암이 흐르며 빚어낸 거대 협곡인 ‘용암의 길’(2구간), 용암이 굳어 가며 만들어낸 ‘동굴의 길’(3구간), 용암이 바다로 뻗어가며 생성된 ‘돌과 새 생명의 길’(4구간) 등 총 4개 코스(총 26km)로 이뤄져 있다. 용암을 통해 ‘용의 기운’을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은 9월 초부터 사전 예약(세계유산축전 제주 홈페이지)을 받았는데, 이미 4000명 선에서 예약이 완료됐을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다만 3구간의 평지 일부와 4구간인 ‘돌과 새 생명의 길’(만장굴 주차장∼구좌읍 월정리 구간·6.9km)은 행사 기간 중 제주를 방문한 모든 이들도 참여할 수 있다.

 

행사 진행자인 강경모 총감독은 “용암이 흘러가면서 협곡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월정리 바다를 만나면서 식어가는 과정과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생활까지 확인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말했다.

 

▲세계유산축전 기념식이 열리는 성산일출봉(세계자연유산지구).

 

이번 축전에서는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비공개 구간도 개방해 주목을 끌고 있다. △만장굴(비공개 구간)과 김녕굴, 벵뒤굴을 탐험하는 ‘세계자연유산 특별탐험대’ △만장굴 전 구간을 탐사할 수 있는 ‘만장굴 전 구간 탐험대’(12명) △거문오름용암동굴계를 비롯해 한라산, 성산일출봉 일대를 걸으며 체험하는 ‘세계자연유산 순례단’(30명·5박 6일) 등은 평소 접근이 어려운 곳까지 프로그램에 담고 있다.

 

강 총감독은 “비공개 구간은 사전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코스여서 지원자들 간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했다”고 밝혔다.

 

◈신비한 모습 드러낸 비공개 동굴 구간

 

거문오름동굴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한 만장굴(제주 구좌읍 김녕리) 3입구. 세계유산축전 언론 현장 브리핑에서 취재진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다.

 

‘만장굴 전 구간 탐험대’에 선발된 12명의 대원만이 축전 기간(15일) 중 탐사할 수 있는 비공개 구간(1, 3구간) 중 일부다. 만장굴의 3입구는 지상에서 15m 정도 아래에 있어 래펠로 내려가야 한다. 해설을 맡은 김상수 운영단장은 “동굴 3입구에 햇빛이 비치면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말했다.

박쥐가 서식하는 구멍과 배설물들을 만나면서 진입한 비공개 구간 동굴의 내부는 바닥과 벽면 곳곳에 용암이 흘러간 흔적이 선명했다. 새끼줄처럼 꼬이거나 거친 물결이 굽이치는 듯한 모습의 용암 흔적, 브이(V)자 협곡처럼 길게 뻗어 있는 동굴 형태 등을 통해 용암류가 어디서 어느 방향으로 흘러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안전상의 이유로 개방하지 않고 있던 김녕굴과 벵뒤굴도 축전 기간 중 열린다. 김녕굴은 모양이 꾸불꾸불하고 뱀과 관련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어 ‘사굴’이라고도 불린다. 동굴 입구에 바람을 타고 날아온 고운 모래가 덮여 있는 게 인상적이다. 조개껍데기와 산호가루로 된 모래라고 한다.

벵뒤굴은 용암이 뚫고 갈 곳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헤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가장 복잡한 미로형 동굴로 손꼽힌다.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제주4·3사건 때 토벌대를 피하려는 주민들이 이곳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축제 기간 중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 마을(세계자연유산마을)에서는 ‘모산이 연못’을 낀 캠핑장에서 ‘기름떡’을

먹으며 제주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축전 기간에는 제주 마을 주민들과 함께 7개의 세계자연유산마을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돼 있다. 특히 ‘덕천리 자연유산 스테이’(제주시 구좌읍 덕천리) 프로그램에서는 ‘모산이 연못’을 낀 넓은 잔디밭에서 진행하는 캠핑과 제주의 전통 떡으로 불리는 ‘기름떡’을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양영선 덕천리 사무장은 “봄가을로 신혼부부들이 웨딩 촬영을 하러 찾아올 만큼 예쁜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구좌읍 김녕리 마을(세계자연유산마을) 해변에서 늦더위를 즐기는 관광객들.

 

김녕리 마을의 경우 ‘제주의 문화 해녀 그리고 어머니’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요트 체험, ‘태왁’(해녀가 물질을 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을 뜨게 하는 뒤웅박) 만들기를 직접 해볼 수 있다.

 

해녀 고영희 씨(72)는 “해녀들이 직접 태왁 만드는 법을 가르쳐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만든 태왁을 가지고 바다에 들어가서 체험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축전 기간 중 제주의 자연 친화적 분위기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페스티벌 사이트’, 뮤직 페스티벌, 정크아트 등이 진행된다.

 

글.사진출처 / donga.com / 글·사진 제주=안영배 기자·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