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사골 가는 길, 우뚝 선 천년송 여름 한복판 무더위도 쉬어간다
▲남원 운봉읍에서 지리산 정령치 가는 길에 있는 행정리의 마을 숲. 신령스러운 느낌을 주는 아름드리 개서어나무 90여 그루가 활개 치듯 자라고 있다. 200여 년 전에 조성한 이 숲은 마을의 기운이 센 곳은 눌러주고 빈 곳은 채워주는 비보림(裨補林)이다.
달궁 앞의 물 많은 ‘심원 계곡’
찾는 이 적어도 물놀이에 적합
정령치·성삼재서 맞는 밤하늘
별무리 능선 위 은하수 한가득
빽빽한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
얽히고설킨 나무 그늘에 서늘
이야기·상상력 덧대진 광한루
밤에 더 아름다운 낭만의 공간
남원‘ 새 핫플’ 김병종 미술관
세련된 전시에 관광객들 붐벼
수목원이자 미술관인 ‘아담원’
남원 대표 절 ‘실상사’도 추천
바야흐로 휴가의 절정을 코앞에 두고 가족과 함께하는 휴가를 생각합니다. 가족과 보내는 휴가는 피곤합니다. 즐겁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휴가’라는 말뜻 그대로 편히 쉴 수는 없습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휴가에서 ‘내가 쉬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는 노릇이니 말입니다. 더 잘 놀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것들을 해야 하고, 되도록 즐겁게 보내야 합니다. 가족의 저마다 다른 취향과 기호까지 고려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좋은 휴가지는, 좋은 여행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올여름에 추천하는 ‘좋은 휴가지’는 지리산을 끼고 있는 전북 남원입니다. 삼복 더위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한 지리산 뱀사골계곡을 함께 걷고, 지리산 와운마을에서 천 년 소나무가 건너온 시간을 함께 올려다보고, 자그마한 서어나무 마을 숲에 들어 함께 바람 소리를 듣는 휴가 얘기입니다.
남원을 택한 이유의 절반이 지리산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의 이유가 광한루에 있습니다. 광한루에서는 꿈속 같은 야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밤이 되면 더 근사해지는 누각과 정원이 사랑의 낭만으로 빛나는 곳입니다. 휴가의 밤 시간까지도 알차게 보낼 수 있습니다.
이게 휴가 목적지를 택하는 이유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원은 여행을 기념해 무언가를 사오기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여행지의 특산물이나 기념품은 그저 그런 비슷비슷한 것들뿐인데, 남원의 기념품 판매점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사 가지고 오고 싶은 것들이 넘쳐납니다. 기세등등한 폭염 앞에서 전북 남원으로 떠나는 휴가를 제안합니다.
# 861번 도로…지리산 품으로 드는 길
먼저 지리산 얘기다.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려보자. 지리산 북쪽에 전북 남원시 인월면이 있다. 인월면에서 남쪽으로, 그러니까 지리산 한복판으로 파고드는 길이 흔히 ‘지리산 횡단도로’라 불리는 861번 지방도로다. 이 길은 줄곧 만수천 물길을 끼고 달린다. 이 길 위에 ‘반선마을’이 있다. 말이 마을이지 가게, 식당, 숙박업소로 이뤄진 관광지 상점가다.
반선마을 앞 만수천 물길은 Y자,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ㅓ’ 자 형상이다. 왼쪽에서 합류하는 물길이 ‘뱀사골’이다. 반선마을에서 반선교로 만수천을 건너 왼쪽 물길로 접어들면, 뱀사골계곡의 시작이다.
차로는 거기까지. 계곡 입구부터는 두 발로 걸어 올라야 한다. 뱀사골계곡을 따라서 간장소까지 이어지는 걷는 길과 그 길의 중간에서 와운마을의 천년송을 보고 온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기로 하자.
뱀사골에 들어서지 않고, 그러니까 반선교를 건너지 않고 직진해 861번 도로를 따라가면 이어지는 7㎞ 남짓의 계곡이 심원계곡이다. 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달궁’이 나온다.
달궁이란 ‘달의 궁전’이란 뜻. 마한의 임금이 진한의 난리를 피해 도성을 지은 곳이라고 전해진다. 300년 전쯤 출간된 남원의 인문지리지 ‘용성지’에 나오는 얘기다. 용성지가 그 근거로 삼은 건 지리산의 명승을 찾아다니며 수도생활을 한 서산대사가 지은 글 ‘지리산 황령암기’다.
서산대사와 마한의 시대는 1600년이나 차이가 나니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서산대사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지명이 지리산 곳곳에 남아있다.
마한의 왕은 달궁에 성을 짓고 주변의 고갯마루마다 병사를 배치했는데, 북쪽의 ‘팔량치’는 여덟 명의 장군을 배치했다고 해서, 서쪽의 ‘정령치’는 정씨 성의 장군을 배치했다고 해서, 남쪽 ‘성삼(姓三)재’는 성씨가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해서 그렇게 부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와 지명으로 새겨진 뜻이 톱니처럼 딱 맞아떨어진다.
# 달의 궁전, 그리고 지리산의 별
아무튼 심원계곡을 끼고 있는 달궁은, 뱀사골의 명성에 밀려 찾는 이들이 적긴 하지만 계곡도 깊고 물도 많아 물놀이를 하거나 더위를 피하는 데는 오히려 더 낫다.
뱀사골은 계곡에서는 몸을 물에 담글 수 없고 만수천과 합류하는 하류 쪽에서만 물놀이를 할 수 있지만, 달궁 앞의 심원계곡에서는 자유롭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야영장이 잘 갖춰져 있고, 식당이나 숙소 등의 편의시설도 뱀사골 주변보다 더 많다.
달궁을 지나면 지리산 횡단도로는 두 갈래다. 갈림길에서 737번 지방도로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길은 정령치로 이어진다. 정령치는 만복대와 고리봉 능선 사이의 고개. 해발 1172m로 지리산에서 차로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무시로 몰려온 구름이 고갯마루를 자욱하게 뒤덮는 곳이다. 갈림길에서 직진해 861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굽이굽이 산을 타고 올라 노고단 등반의 들머리인 성삼재에 닿는다. 성삼재를 넘어 내려가면 지리산 남쪽인 전남 구례다.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맑은 날이라면 밤에 정령치와 성삼재에 올라보길…. 여름밤, 그곳에서는 마치 쏟아져 내릴 듯한 별을 볼 수 있다. 지리산 종주길에서 올려다보는 별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정령치나 성삼재에서 올려다보는 은하수도 한마디로 ‘감격’이다.
별 무리가 지리 능선 위의 밤하늘에서 황홀하게 반짝거리는 풍경은 마음속에 진하게 인화돼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가족들이 휴가의 추억을 공유하며 간직하고 때때로 꺼내 볼 수 있는 가장 빛나는 장면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 뱀사골, 길고 깊은 계곡을 걷다
여름 지리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뱀사골이다. 뱀사골은 지리산 반야봉과 명선봉 사이의 계곡이다. 계곡은 반선리에서 화개재까지 골짜기를 따라 장장 14㎞가 이어진다.
지리산의 골짜기는 몇 개나 될까. 일흔세 개라고도 하고, 아흔아홉 개란 얘기도 있다. 뱀사골은 그중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섣불리 최고라 단정하지 못하는 건, 지리산의 품이 워낙 넓고 깊어서다.
뱀사골이란 지명은 어디서 왔을까. 유래가 분분하다. 정유재란 때 불탄 인근의 절 배암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물이 뱀처럼 곡류한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불심 깊은 스님을 잡아먹고 이 계곡에서 죽어 ‘뱀이 죽었다’는 뜻의 뱀사골로 부르게 됐다는 전설도 있다. 전설은 죽은 스님이 반쯤 신선이 됐다 해서 뱀사골 아랫동네를 ‘반선(半仙)’이라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뱀사골계곡은 기암괴석 사이로 맑은 계류가 아름다운 소(沼)와 담(潭)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물은 차고 계곡 주변은 원시림의 숲지대여서 한여름에도 웬만해서는 기온이 16도를 넘지 않는다.
아무리 가마솥더위라 해도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다. 빼어난 경관과 청아한 물소리를 충분히 음미하며 걸을 수 있을 만큼, 나무 덱과 자연의 길이 교차하는 뱀사골계곡 탐방로는 대부분 순하다.
뱀사골계곡에는 기암 절경으로 그득하다. 눈 돌리는 곳 어디나 절경이 아닌 곳이 없지만, 따로 이름을 붙여 부르는 명소만 열 군데가 넘는다.
긴 암반 위로 폭포를 이루며 흐르는 탁룡소,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았다는 뱀소, 병 모양의 병소, 암벽이 병풍을 두른 듯한 병풍소, 신선들이 놀았다는 선인대, 산돼지가 목욕한다는 돗소, 찬바람이 일어난다는 바람소, 귀신이 나온다는 귀신소, 서산대사가 앉았다는 서산대….
뱀사골 입구에서 계곡 끝까지 올라가서 만나는 화개재까지는 편도 9.2㎞로 4시간 20분이 걸린다. 굳이 화개재까지 갈 것 없이, 간장소까지 편도 6.4㎞ 구간만 다녀와도 뱀사골의 절경을 다 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편도 3시간이 채 안 걸린다. 기온은 서늘하고 길도 순하지만 휴가 차 떠난 여행이라면 그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그저 걷고 싶은 만큼 뱀사골계곡 길을 걸어도 좋겠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오지마을인 와운마을 뒷산 능선 위에서 자라는 지리산 천년송. 실제 수령은 500살 남짓이지만
거대한 위용과 압도적인 자태 덕분에 천년송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 500살이지만 이름은 천년송
지리산에는 ‘천년송’이 있다. 천연기념물 424호. 나무 높이는 20m, 가슴 높이 둘레는 4.3m.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18m에 달한다.
숫자로는 물론이거니와 사진으로도 잘 드러나지 않는 천년송의 입이 딱 벌어지는 위용을 글로 담아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 나무 아래에 직접 서봐야 그 압도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천년송을 본 사람들의 첫 반응은 ‘와’하는 탄성이었다.
천년송이란 실은 과장된 이름이다. 천년송의 진짜 나이는 1000년의 절반인 500년 남짓. 할매(할머니) 소나무라 부르는 천년송 뒤쪽에 한아시(할아버지) 소나무라 부르는 나무가 있는데, 두 나무 나이를 합치면 얼추 1000년에 가깝다는 것이 군색한 변명이다. 지리산이 모성의 산이라서 그럴까. 더 크고 더 기운차고, 더 오래된 나무가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다.
천년송은 뱀사골 와운마을 뒷산에 있다. 첩첩산중의 고지대라 구름도 곧추서지 못하고 누워서 지나간다고 마을 이름이 ‘와운(臥雲)’이다. 와운마을은 뱀사골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오룡대쯤에서 살짝 비껴간 물길 와운골 위쪽에 있다. 뱀사골 초입에서 계곡을 따라 오룡대까지는 40분 남짓. 거기서 다시 20분을 걸으면 와운마을이다.
편도 1시간, 왕복 2시간짜리 만만한 트레킹 코스다. 휴가철이면 뱀사골을 걷는 코스보다 와운마을과 천년송을 목적지 삼아 걷는 길이 인기를 얻는 이유다.
지리산국립공원 깊은 오지에는 두 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두 마을의 운명은 전혀 달랐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던 구례의 심원마을은 지난 2017년에 철거돼 사라졌지만, 이곳 남원의 와운마을은 ‘국립공원 명품 마을’이 됐다.
와운마을이 살아남은 건 이 깊은 오지에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산 지 자그마치 1300년이나 됐다는 이유가 가장 컸겠지만, 마을 뒷산에 우뚝 서 있는 우람한 천년송의 존재감도 단단히 한몫했으리라.
1951년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지리산에 살던 주민을 산 아래로 이주시켰을 때 와운마을도 비워졌다가 전쟁이 끝나고 1954년에 사람들이 다시 찾아들었다. 지금은 폐교된 덕동국민학교 와운분교 학생 수가 한때 100명이 넘었을 정도였다지만, 지금은 20가구 40여 명이 마을 주민의 전부다.
민박을 치고, 막걸리에 도토리묵이나 파전 따위를 내놓고 판다. 음식값이 산 아래보다 비싸고 담음새도 좀 허술한 듯하지만, 주민들이 내는 투박한 음식과 서비스는 매끈한 관광지의 그것과는 맛도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남원을 대표하는 명소 광한루의 야경. 광한루의 밤이 낮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건, 화려하되 과하지 않은
야간 조명 덕이다.
# 경관에 이야기를 덧대 짓다…광한루
남원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광한루(廣寒樓)다. 이만큼 선명한 정체성을 가진 공간이 또 있을까. 광한루는 어느 날 한순간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자취와 상상력이 첩첩이 겹쳐져서 완성된 곳이다. 경관이 덧대지고, 건축이 덧대지고, 상상력이 덧대지고, 이야기가 덧대져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는 것이다.
광한루의 시작은 황희 정승이다. 그가 지금의 광한루 자리에다 처음 ‘광통루(廣通樓)’란 누각을 지었다. 황희는 18년 동안 영의정을 지냈으며 좌의정 5년, 우의정 1년까지 합치면 모두 24년 동안 정승 자리를 지켰다.
재상에 오르기 전에는 이조·호조·예조·형조·병조·공조판서를 모두 역임했다. 지금으로 치면 행정부의 전 부처 장관을 역임하고 대통령비서실장과 국무총리까지 두루 다 지냈다는 얘기다.
거의 평생을 고위직에 있으면서 출세 가도를 달렸던 그도 태종 때 귀양을 갔다. 다들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훗날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맏아들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걸 끝내 반대했다가 유배형이 내려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경기 파주의 교하(交河)로 보내졌다가 남원으로 옮겨졌다. 황희는 처자식을 데리고 유배지 남원에서 5년을 살았다.
남원 유배 중 황희는 문중 소유 서실을 헐어내고 ‘광통루’란 누각을 세웠다. 유배를 끝내고 돌아가 승승장구하는 황희 정승의 위세 때문이었을까. 뒤에 부임한 남원 부사는 누각의 규모를 크게 늘렸다. 광통루의 현판을 광한루로 바꿔 단 건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였다.
정인지는 주변의 경치가 전설 속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에 있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와 비슷하다며 여기서 이름을 따서 ‘광한루’라 했다. 광(廣)이라 함은 광대무변의 우주공간을, 한(寒)은 은하수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뜻한다.
정인지는 현판만 바꿔 단 게 아니라 누각 주위 경관 전체를 다시 설계했다. 지리산에서 흘러드는 요천의 물길을 끌어와서 누각 주변에다 연못을 들였고, 거기에 세 개의 섬을 두고 각각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라 이름해서 삼신산(三神山)으로 삼았다.
광한루로 건너는 돌다리에다가는 오작교라 이름 붙였다. 천상의 세상과 은하수를 상징하는 공간에다 오작교로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를 끼워 넣으면서 광한루는, 옛 건축물 중에서 유례가 없는 ‘낭만의 공간’이 됐다. 그렇게 본다면 광한루가 춘향전의 무대가 됐던 것도, 지금처럼 밤에 더 아름답게 빛나는 공간으로 꾸며지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남원 김병종미술관에 전시 중인 ‘생명의 노래’ 연작. 생명을 상징하는 원색의 조형에서 어쩐지 디지털적 감각이
느껴진다.
# 서어나무 숲, 그리고 미술관
뱀사골이나 천년송이 있는 와운마을에 가는 길이라면, 소매를 끌어서라도 데려가고 싶은 곳이 운봉면 행정리의 마을 숲이다. 마을 숲은 홍수나 바람을 막기 위한 보호림 기능과 지형적으로 땅의 기운이 센 곳은 눌러주고 허(虛)한 곳은 보(補)해주는 비보림(裨補林) 기능을 한다. 행정마을의 마을 숲은 마을 옆의 들판에다 200여 년 전에 조성한 곳으로 90여 그루의 아름드리 개서어나무가 빽빽하게 자란다.
한여름에도 숲은 드리운 그늘과 나무의 기운으로 서늘하다. 굳이 이곳만을 목적지로 정해서 가라고 하기에는 좀 망설여지지만, 뱀사골에 가는 길이라면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숲 안으로 들어 나무 덱 위를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남원의 김병종미술관은 개관하자마자 일약 남원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른 ‘핫 플레이스’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미술관은 주민과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미술관은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다. 노출 콘크리트 구조로 지은 미술관과 미술관 앞에 층층이 물을 가둔 공간이 보여주는 건축적 아름다움부터, 충실한 전시와 창의적인 전시기법 등이 돋보이는 곳이다.
감각적인 건축공간과 세련된 미술 전시, 그리고 낭만적인 분위기의 카페의 매력을 한자리에 모아 둔 듯하다. 미술관에서는 ‘김병종의 시화기행’전이 열리고 있다. 2019년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문화일보에 발표한 연재물 ‘시화기행’의 삽화 32점과 자작시 일부를 발췌한 전시다.
프랑스 파리 등 해외 여행지의 풍경과 사연과 감상을 그림과 시로 담아냈는데, 남원을 여행하는 중이라면 자신의 여행이란 액자 안에서 작가가 그려낸 여행의 액자 속을 여행하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여행의 액자 안에 액자가 있고, 그 안에 액자가 또 있는 셈이다.
# 자연 속 카페와 암자가 가진 국보
덧붙여서 추천할 만한 곳이 이백면 양가리의 ‘아담원(我談園)’이다. 이곳은 수목원이면서 미술관이기도 하고, 카페이기도 하다. 본래 나무를 키우던 조경농원이었는데, 연못을 끼고 있는 너른 잔디밭에다 개방감 넘치는 통창으로 자연을 끌어들인 높은 층고의 도서관 느낌의 현대적인 대형 카페를 지었다.
카페 위에는 글라스 하우스 형태의 미술관이 있고 야외 공간에는 설치미술품을 전시했다. 곳곳에 놓인 야외 테라스와 테이블에서는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남원을 대표하는 절집인 실상사야 구산선문을 처음 연 천년고찰인 데다 세상과 교유하는 실천불교로 널리 알려진 곳이어서 말을 더 보태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사를 들르는 관광객들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암자 백장암 얘기는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실상사 인근 수청산 자락에 자리 잡은 백장암은, 법당과 칠성각·산신각에 요사채만을 거느린 자그마한 암자다.
유물로 가득한 실상사에는 국보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백장암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날렵한 자태의 삼층석탑의 몸체에는 보살상과 신장상, 주악천인상, 천인좌상, 삼존상 등이 세밀하게 돋을새김 돼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석탑 뒤에 서 있는 석등도 보물이다.
석탑과 석등도 훌륭하지만, 법당 마당을 잔디로 덮은 암자의 분위기도 빼어나다. 아래에서 순서대로 잔디밭 너머 부도, 부도 너머 석탑, 석탑 뒤에 석등, 그 뒤에 법당, 법당 위에 대숲, 그 위에 솔숲이 있다. 풍경 위에 풍경을, 그리고 그 위에 다른 풍경을 겹쳐놓은 듯한 배치가 가히 일품이다.
■ 대중교통으로 가는 지리산
뱀사골이나 달궁, 그리고 정령치는 남원에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다. 남원시가 지난 2019년부터 남원역과 버스터미널을 거쳐 정령치까지 가는 두 개의 순환 노선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버스 두 대가 하루 세 차례 남원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쳐 광한루원, 운봉, 인월, 실상사, 산내, 뱀사골(반선), 달궁을 들러 정령치 등 지리산 남원권 곳곳을 운행한다. 요금은 1000원. 월요일은 운행하지 않는다.
출처 / munhwa.com / 남원.글.사진.박경일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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