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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八道(신팔도)*紀行錄/⊙전라 북도****기행

전북 부안ㅡ지극히 味적인 시장ㅡ부안 상설시장(常設市場)

by 삼수갑산 2022. 5. 14.

지극히 味적인 시장ㅡ부안 상설시장

▲혹자는 전설의 밥도둑이 간장게장이라지만,꽃게찜은 밥도둑에, 술도둑이다. 

진한 게향이 식욕을 마구마구 자극한다. 갑각류는 열을 받아야 제대로 향을 낸다

 

오일장이 서지 않는 곳이 몇 곳 있다. 지난 80건의 연재 기사 중 서산, 강릉은 오일장이 없던 동네였다. 아직 취재하지 않은 속초도, 이번에 다녀온 부안 역시 오일장이 없다. ‘지극히 미적인 시장’은 시장 이야기다. 오일장을 주로 다룬다.

 

전국에서 열리던 오일장, 물류가 발전하면서 상설시장이 그 기능을 대체했다. 필요하면 열리는 것이고, 없으면 사라진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떤 형태로든 장이 열린다. 매일, 혹은 5일 그리고 그마저도 힘들다면 10일에 한 번 열린다.

 

예전에 부안은 일 년에 서너 차례 이상 다닐 정도로 출장이 잦았다. 이번에 부안을 선택한 것은 장터 구경도 구경이지만 계화농협에서 생산하는 ‘남선’이라는 감자를 보기도 위함이었다. 올해로 3년째 씨감자 재배이고, 내년에 드디어 본격 시판을 위한 생산에 들어간다고 한다. 6월 말 수확하면 조금 맛볼 것을 보내 준다고 하니 6월이 벌써 기다려진다.

 

거의 20년 전의 초록마을 시절, 정월대보름 행사나 고구마 캐기 등 행사를 주로 부안에서 했다. 부안 하서면 작목반에서 잡곡 생산을 하기에 이래저래 매년 몇 번의 출장을 십 년 동안 다녔다. 부안 잡곡은 맛이 좋았다. 서해의 서늘한 기운이 잡곡의 단맛을 높였기에 내륙의 어느 지역보다도 질 좋은 잡곡이 난다. 

 

그 시절 부안의 바다는 풍부했다. 동진강, 만경강에서 내려오는 민물이 바다 생물에게 풍부한 먹이를 내줬다. 김제와 부안의 개펄에는 바지락이며 백합 조개가 지천이었다. 하서면에서 격포까지 들어가던 길 따라 넓은 바다가 있었고 그 중간에 새만금이 한창 공사 중이었다. 

 

2006년 4월 물막이가 끝나고부터 바다는 그대로였지만, 내가 알던 바다는 아니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바다는 품고 있던 생명체를 죽은 채로 토해냈다. 그렇게 16년이 흘렀다.

 

▲김장아찌

 

싱싱한 조개·갑오징어 가득…수산물 보고 ‘부안 상설시장’
새만금 공사로 모래 사라지며‘부안 바지락’도 실종 아쉬움

 

싱싱한 꽃게는 찌는 게 최고빨갛게 익은 갑각류의 진한 향
살의 단맛 제대로 느끼려면수족관 들어가기 직전에 사야

 

갓 지은 밥에 김장아찌는 ‘요물’비싼 백합보다 ‘가성비’ 바지락죽
새싹보리 가루 올린 음식 궁합에찬으로 나온 김치까지 ‘대만족’

 

▲바지락죽 

 

부안 상설시장은 수산물이 많았다. 싱싱한 조개며, 갑오징어가 손님을 유혹했다. 가게마다 ‘생합’이라고 쓰인 팻말이 보였다. 생합, 상합, 참조개 등 여러 사투리가 있다. 본명이 ‘백합’이다. 백합 옆에서는 속 꽉찬 바지락 또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부안 여행하면서 두 집 건너 하나 있는 것이 죽집. 백합죽이나 바지락죽 파는 곳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죽 파는 곳이 더 많아졌다. 반가운 마음에 여기 것인지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노(No)”. 부안군과 이웃한 고창과 군산에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백합은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펄에 모래가 많이 있어야 질 좋은 것이 난다. 바다는 넓은 둑에 막혀 어쩌다 수문 열 때만 강을 만난다. 강물은 흘러가면서 산에서 만들어진 모래를 바다로 흘려보낸다. 그 덕에 모래가 바다에 쌓인다. 강물도, 모래도 없으면 백합이 살지 못한다.

 

 아울러 모래나 잔돌이 있어야 하는 바지락 또한 부안의 바다에서 사라졌다. 인간의 욕심이 끝없이 내주던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긴 둑으로 갈랐다. 시장 끝에서 뒤돌아 가던 길, 들렸던 상인의 말이 귀에 꽂혔다. “금빛 바다가 똥빛 바다가 되면서 내주는 것이 없소.”

 

▲백합

 

시장 구경하던 날이 일요일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상설시장이지만 매월 첫 번째 일요일은 쉰다. 상설시장인지라 사전 체크를 하지 못했다. 다만 수산물 시장은 열려 있었다. 몇 가지 수산물을 보고서는 지갑을 열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산란을 앞둔 꽃게가 좋아 보였지만 선뜻 다가서지 않고 구경만 다녔다.

 

전날 변산 해수욕장에서 맛본 꽃게찜 때문이었다. 숙소를 잡기 전 탐색하다가 편하게 숙소 옆 횟집을 잡았다. 직전 출장지인 산청에서 대리운전 때문에 속 썩은 것이 있어 가능한 한 대리운전을 이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패착도 그런 패착도 없었다. 꽃게로 하는 음식은 게장, 매운탕, 매운찜이 있다. 앞선 음식보다 간단하지만, 싱싱한 꽃게를 그대로 찐 것이 가장 맛있다.

 

혹자는 간장게장이 밥도둑의 전설급이라고 한다. 꽃게를 그냥 찐 것 앞에서는 그냥 좀도둑일 뿐이다. 게, 새우, 조개 등은 회로 먹는 것이 가장 맛없게 먹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다음이 간장에 절인 채 먹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갑각류는 열을 받아야 제대로 향을 낸다. 향이 없는 음식은 차별점이 별로 없다. 간장게장은 간장의 향과 간으로 먹는 음식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꽃게를 찌면 밥은 기본인 술도둑이다. 특유의 진한 게향이 식욕을 마구마구 자극한다.

 

그런데, 향 없는 찜을 만났다. 아마도 수족관에 몇 날 며칠 있었던 녀석인 듯싶었다. 찌는 시간을 고려해서 숙소에서 미리 주문했다. 식당에 가서 앉아 있으니 잠시 후 나왔다. 껍질 안 내장은 밝은 빛을 잃고 있었고 비린내가 났다. 향이나 단맛이 사라진 살 또한 식욕을 자극하지 못했다.

 

다른 것을 주문해서는 먹는 듯 마는 듯하다가 나왔다. 전날의 이런 안 좋은 기억 탓에 꽃게를 쉽게 사지 못했다. 이제 갈까 하는 순간, 한 집에서 얼음을 채워 막 들어온 꽃게가 보였다. 바로 다가가 2㎏ 주문했다. 같이 간 이가 멀뚱멀뚱 보고 있기에 바로 사라고 했다. “육지에서 맛보는 최고의 꽃게가 바로 네 앞에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소래포구나 여느 항구에서도 타이밍이 맞으면 이렇게 바로 들어온 꽃게를 살 수 있다. 수족관에 들어가지 않은 꽃게는 다른 것보다 맛이 좋다. 까닭은 간단, 오래 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가족들 모두 인생 최고의 꽃게를 맛봤다.” 7~8월 금어기를 앞둔 5월, 꽃게 먹기에 딱 맞다. 꽃게든 대게든 같은 돈이라면 보관 수족관에 들어가기 직전에 사면 가장 맛있다. 다만 운이 따라야 한다.

 

진짜 우연히 들어갔던 식당이었다. 2008년 정도였을 것이다. 부안에 폭설이 내렸던 연말에 친한 이들과 가족 여행을 떠났다. 대설주의보와 함께 새해를 맞았다. 이틀 동안 더 부안에 있으면서 내소사를 찾았다.

 

내소사 가는 삼거리를 지날 즈음 ‘신사와 호박’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내소사 구경을 마치고 밥집으로 갔다. 밥을 주문하고 앉으니 한참이 걸렸다. 이 집은 주문한 사람에 맞춰 그때그때 밥을 새로 하기 때문이었다.

 

▲과거 부안 개펄에는 바지락과 백합이 지천이었지만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난 뒤 그 모습은 사라졌다. 

부안 상설시장은 고창과 군산에서 온 백합이 채우고 있었다. 

 

밥 기다리기를 20분 남짓, 찬이 차려지고 이내 밥이 나왔다. 솥에 밥을 하는 사이 찬을 무치고 생선을 구웠기에 찬의 맛이 하나하나 살아 움직였다. 같이 간 이들 모두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그 이후로 내 머리와 마음속에서 가장 맛있는 ‘밥’집이 되었다.

 

부안으로 취재 일정이 잡히니 가장 먼저 떠올랐다. 김 나는 밥에 김장아찌 올려 먹는 상상을 했다. 이 집 김장아찌가 요물 중의 요물이다. 먹은 사람들 대부분이 김장아찌를 사갈 정도다. 서울에서 부안까지 5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다. 2년 만에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주말이면 다들 나가는 덕에 차가 막혔다.

 

‘밥이 밥이지’ 하던 친구도 밥과 찬을 먹기 시작하면서 말수가 줄었다. 간혹 감탄사만 낼 뿐이다. 10가지 정도 반찬을 먹다 보면 밥이 금세 사라진다.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여기는 공깃밥 추가가 안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람 수에 맞춰 밥을 한다. 다만 솥에는 누룽지가 있기에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십몇 년 전, 우연히 갔던 식당이 여전히 있었다. 신사와호박 (063)581-6840

 

부안을 떠나기 전 메밀국수를 먹을 생각이었다. 메밀 하면 강원도, 요새는 제주도도 메밀 산지로 많이 알고 있다. 사실, 메밀은 전국 어디에서나 난다. 다만 두 곳이 유명할 뿐이다. 부안 또한 메밀 농사를 짓는다. 부안산 메밀로 국수를 내는 곳이 있다 해서 찾아가려고 했다. 가면서 전화를 하니 몸이 좋지 않아 잠시 문을 닫았다고 한다. 며칠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문을 연다고 한다.

 

시간을 보니 부안에서 지체했다가는 서울 올라가는 길 내내 정체와 함께할 듯싶었다. 빠르게, 맛나게 먹을 것이 부안에는 차고 넘쳤다. 바로 바지락죽, 시기상으로도 가장 맛이 오를 때이기에 바로 선택.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이 나왔다. 죽 위에 푸른 가루가 올려져 있었다. 녹차 가루보다는 색이 밝았다.

 

“무슨 가루인가요?” “새싹 보리요.” 아하! 궁합이 참으로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개와 흰쌀에서 부족한 것은 바로 ‘식이섬유’. 음식 궁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자람을 채워 주는 것. 그 원칙에 딱 맞았다.

 

죽도 맛있었지만, 찬으로 나온 김치가 죽과 잘 어울렸다. 부안에서 자주 먹었던 바지락죽이었지만 가장 맛나게 먹었다. 부안 사람들도 비싼 백합 대신 바지락죽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원조 해물칼국수 (063)582-1199

 

출처 / kyunghyang / 김진영 식품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