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五日場ㅡ산만 있더냐 맛도 있더라
▲인구 2만2000명 규모 전북 장수군. 비록 오일장은 작았지만 볼 것과 먹을 것이 많은 곳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뿐인 장수, 분지 품 안에 매력이 소소히 흐르고 있다.
아무런 바람이 없었다. 그저 여든일곱 번째 칼럼만 채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떠났다. 여름은 항상 어렵다. 맛있는 것도 드물고 나는 것도 애매한 시기다. 포도는 하우스에서 난 것이, 사과는 빨간 것이 맛있음에도 여전히 파란 아오리나 ‘썸머킹’ 등을 판다.
두 품종 모두 8월 중순이 넘어야 제맛이 난다. 여름이 그나마 시원한 강원도는 속초와 철원 빼고는 다 다녀왔다. 남쪽의 고지대인 장수군이 8월의 첫 출장지. 장수로 한 회만 잘 채우자며 떠났지만 기우였다. 다닐수록 은근한 매력이 차고 넘치는 곳이 장수였다.
▲장수 사과 소스로 색다른 ‘돈까스’
식품 MD 27년 차, 1995년부터 시작했다. 장수는 27년 동안 지나만 다녔다. 처음 가는 장수, 나랑 뭐가 인연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두 가지가 생각났다. 하나는 사과, 추석에 나는 홍로 품종.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이 홍로 사과의 중요한 생산지다. 장수를 구경 다니면 두 집 건너 한 곳이 사과 농장이다.
장수의 평균 해발고도는 400m대. 1000m가 넘는 산도 있고 500m가 넘는 산등성이마다 사과 농원이 지천이다. 그 덕에 추석 사과가 맛있다. 두 번째는 곱돌. 예전에 초록마을에서 일할 때 좋은 먹거리 다음으로는 좋은 쓸거리를 찾을 거라 예상했다. 거창의 유기와 장수의 곱돌을 매장에서 취급했다.
지금도 집 부엌 한쪽에 20년 된 곱돌 밥솥이 두 개 있다. 1~2인용은 뚜껑 손잡이가 부러졌어도 여전히 제 기능을 발휘한다. 장수의 곱돌은 다른 지역과 달리 두툼하다. 열 받으면 갈라지기도 하지만 먹다 남은 우유를 넣고 태우면 구멍이 메워지기도 한다. 곱돌과 무쇠 가마솥 둘 다 가지고 있다. 누룽지까지 좋은 것은 가마솥, 밥맛도 좋고 관리하기 쉬운 게 돌솥이다.
※그저 칼럼을 위해 아무런 기대없이 찾은 장수…지천이 사과 농장인,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
작지만 반듯한 오일장, 산지 고구마줄기·호박잎·된장·쌀…향취 독특한 고수도 보인다
특색 있는 돈까스·한우·짬뽕·수제비…관광책자에도 잘 안보이는 작은 지역이지만 매력은 차고 넘친다
▲칼칼하고 시원한 ‘다슬기 수제비’
장수 오일장은 작다. 거주 인구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적다. 울릉군, 영양군 다음이 장수다. 인구가 2만2000명이기에 오일장 또한 작다. 작지만 그래도 영양군보다는 컸다.
아는 사람 몇몇이 조그만 골목에 모여 있었던 영양과 달리 번듯한 시장 건물에 장(0, 5일장)이 섰다. 충남 금산을 지나 무주, 장수다. 그사이에 시나브로 고도가 높아진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산이고 그 안에 살포시 장수가 들어앉아 있다. 작은 시내답게 시장 또한 작다. 다 둘러보는 데 10분이면 그만이다. 애당초 기대라는 것이 없기에 편하게 시장을 둘러봤다.
▲곱돌에 구운 ‘습식 숙성 한우’
삼삼오오 모여 앉은 이들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손은 절로 팔 것을 손질하면서 이야기 삼매경이다. 오는 이가 있으면 잠시 중단했다. 손님이 가면 다시 반복한다. 가장 많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고구마줄기. 데쳐서 무치면 맛있다.
누군가 해주면 참으로 맛난 반찬이지만 껍질 까는 것이 항상 고역이다. 가만히 서서 보고 있었다. 어릴 적 엄마 생각이 났다. 줄기 껍질 까는 옆에서 같이 까던 기억, 엄마가 세 개 깔 때 겨우 한 개 까던 ‘똥손’의 내가 생각났다.
고구마줄기 말고는 호박잎이 나와있었다. 쌈용으로 적당한 크기다. 작은 시장이어도 살 것이 있었다. 대장간에서 잠시 지갑을 만지다 돌아섰다. 고구마줄기 앞에서 잠시 머물기도 했다.
내가 산 것은 서리태. 시장 한편에 농부 상점이 있다. 장수군 일대에서 나는 농산물을 판매한다. 말려서 묵힌 것, 잘 발효한 된장과 청국장, 고지대에서 재배한 삼광쌀 등이 있다. 상점 앞은 아침에 거둔 농산물이 저렴한 가격에 나와 있다.
잘 익은 가지가 두 개 500원, 주스용으로 좋은 작은 애플수박이 세 개 1만원이었다. 한창 봉지에 나누고 담고 있는 깻잎, 감자탕 끓일 때 넣는 용도다. 서리태는 사서 콩국 할 생각이다. 밖에서 사 먹는 콩국의 진득함이 싫기에 아주 가끔 맑은 콩국을 내려서 국수를 말기도 한다.
같이 간 이는 나보다 한술 더 뜬다. 고수를 좋아하기에 한 바구니 5000원 주고 산다. 고수라는 게 베트남 쌀국수가 유행하면서 알려졌다. 외국에서 들여왔다고 여기기 쉽다.
우리네와 오랫동안 같이해온 작물이 고수다. 고수를 무치거나 생으로 삼겹살과 같이 먹기도 하고, 여름 별미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장수군의 여느 식당에서는 여름 한정으로 내기도 한다.
▲0, 5일장인 장수 오일장, 삼삼오오 모여 앉은 이들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서울에서 출발해 장수 장계 나들목으로 빠지기 전이 무주 안성 나들목이다. 그곳에서 빠져서 국도 따라 육십령에 올랐다. 예전에 화적떼가 들끓어서 60명이 모여야 안심하고 고개를 넘었다는 곳, 장수와 함양의 경계에 식당이 있다. 시작할 때는 서울 호텔에서 일했다는 셰프가 운영하던 곳. 지금은 셰프는 떠나고 돈가스만 남았다.
이도 육십령을 찾는 등산객 성화에 부활한 메뉴다. 주문하고 앉아 있으면 말린 꽃잎이 떠 있는 차를 내준다. 그윽한 향내에 잠시 취해 있다 보면 돈가스가 나온다. 돈가스보다는 ‘돈까스’라 불러야 하는 모양새다. 어느 분식점이나 경양식당에서 본 듯한 익숙함이 밀려온다. 모양새에 숨은 반전이 있다.
소스가 남다르다. 시판 소스에 장수에서 나는 사과를 더했다. 달곰한 소스에 장수 사과의 새콤함이 더해져 어디에서 보기 힘든 소스로 탄생했다. 돈가스는 어디서든 맛볼 수 있는 맛. 소스를 듬뿍 묻히는 순간 색다른 돈가스로 탈바꿈한다. 돈가스 먹을 때 김치와 피클은 ‘국룰’. 오이 피클은 주변에서 농사지은 걸로 담근다.
김치도 직접 담근다. 다른 메뉴는 없고 다양한 꽃차를 곁들인, 돈가스라 하는 순간 맛이 반감하는 ‘돈까스’만 판다. 육십령 휴게소 (063)353-1964
장수에서 나는 것 중 사과와 한우가 유명하다. 시내 중심에도 마블링 잘된 고기를 파는 전문점이 제법 있다. 마블링 좋은 것을 찾는다면 군청 주변이 제격이다. 다른 맛을 찾는다면 조금 움직여야 한다. 군청 소재지에서 9㎞ 정도 떨어진, 재 너머에 한우집이 있다.
습식 숙성한 고기를 판다. 주로 1등급, 등심은 2등급도 판다.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추천은 특수 모둠과 꽃등심이다. 안창은 전국에서 가장 비싼 듯하지만 2등급 꽃등심은 2만원대다. 3만원인 특수 모둠을 주문했다. 부챗살과 업진살 등이 나온다.
일전에 횡성 편에서 이야기했듯이 마블링 없는 고기는 잘 익혀야 한다. 같이 간 이에게 고기를 구워줬다. 잘 익힌 것과 덜 익힌 것 두 가지를 줬다. 맛을 본 이는 글로 봤을 때는 이해가 잘 안 되던 부분을 맛으로 바로 이해했다. 푹 익히면 마블링이 좋든, 나쁘든 맛이 없다.
마블링 없는 고기는 적당히 익혔을 때 빛을 발한다. 곱돌 판에 굽는 1등급 한우의 맛은 숯불에 굽는 1++와는 다른 맛을 낸다. 값이 비싸고 싸고의 문제가 아니다. 고기는 등급에 따라 맛이 달라질 뿐, 순위를 다투지 않는다. 올림픽 금, 은, 동메달 가리듯 맛은 마블링 순이 아니다. 1등급 특징의 맛이 있다.
마블링으로 맛 순위를 가르는 것은 편협함을 드러낼 뿐이다. 장수는 대리기사가 없다고 한다. 식당과 펜션을 같이 운영한다. 대리기사 없는 덕에 술 한잔하고 은하수를 실컷 봤다. 장수한우마을 (063)352-6002
장수시장에서 해장으로 짬뽕도 좋다. 얼큰함과 시원함이 있는 짬뽕이 시장 바로 옆에 있다. 이보다는 시원함이 더 필요하다면 장수군 진천면으로 가야 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메뉴가 수제비다. 수제비라도 얼큰한 것과 들깨 수제비는 별로다. 감자를 많이 넣거나 아니면 다슬기 듬뿍 넣고 끓인 것이라면 ‘만사 OK’다.
천천면 영광분식이라는 집이 다슬기를 넣고 끓인 수제비를 낸다. 이른 아침 장터 구경을 끝내고는 바로 갔다. 탕과 칼국수가 있어도 수제비다. 수제비와 잘 어울리는 열무김치와 단무지, 콩나물무침이 함께 나왔다.
다른 것은 먹는 둥 마는 둥 했어도 열무김치는 두 번 더 주문했다. 시원하게 끓여서 매운 고추를 넣은 국물과 적당히 신맛 품은 김치의 궁합은 최고였다. 오복식당 (063)351-2698, 영광분식 (063)352-4690
장수로 떠날 때 기대는 집에 두고 왔었다. 여행 기사거리도 별로 없었다.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도 장수 관련 콘텐츠가 몇 개 없을 정도다. 칼럼 하나만 채우자는 심정으로 떠났지만 올 때는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다시 가라고 해도 갈 만큼 볼 것, 먹을 것 많은 곳이다. 장수의 매력은 그 자체에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뿐인 장수, 분지 품 안에 매력이 소소히 흐르고 있다.
사진.글 출처 / kyunghyang. / 김진명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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