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둥(丹東)ㅡ주몽의 홀본성(忽本城)은 어디에…
▲신의주~단둥 간 압록강 철교 (출처 / 두산백과)
▲단둥(丹東) 인근 호산산성의 공심적대(空心敵臺)에서 내려다본 풍경.
호산성은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따라 쌓은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으로 추정된다.
단둥에서 압록강을 따라 상류로 30분가량 이동하면 호산장성(虎山長城)이 있다. 성벽을 쌓았으니 그냥 호산성이건만 장성이라고 한다. 만리장성 동단기점(東端起點)이라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뒤쪽에 설명도 있다. 8,851.8km 길이를 상징하는 8.85m 높이로 세워 호거용반(虎踞龍盤)이라 한다.호랑이가 걸터앉고 용이 휘감고 있는 웅장한 산세를 뜻한다.
압록강과 호산을 쌍룡에 비유한다. 용의 전인(傳人)인 중국의 부흥과 발전으로 위대한 중국몽(中國夢)을 구현한다는 취지를 담았다는 자랑이다. 예전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자기네 영토이니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왜 ‘중국의 꿈’이 등장하는지도 알 수 없다. 진시황이 만리나 되는 장성을 축조했다는 말보다 더 부질없는 이야기다.
▲만리장성(万里長城) 동단기점(東端起點)’이라 쓴 호산산성(虎山長城) 앞의 호거용반(虎踞龍盤) 조형물.
▲호산산성(虎山山城) 입구
호산산성은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에 세운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으로 비정된다. 중국은 당나라 시대에 고구려를 침공한 사실을 기초로 만리장성의 시작이라 주장한다.
실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기껏해야 랴오허강(요하) 서쪽 발해만에 있는 산해관(山海關)이다. 호산성엔 고구려의 흔적을 지우고 신축한 냄새가 심하게 난다. 하기야 지금 남아있는 명나라 시대 만리장성도 관광지가 되면서 대부분 새로 보수했다.
▲호산산성(虎山山城) 공심적대(空心敵臺) 오르는 계단.
▲호산산성(虎山山城)에서는 북한 땅이 바로 내려다보인다.
관문 옆 입구를 지나 계단을 따라 오른다. 성벽을 두르고 안전한 길을 만들었다. 공심적대(空心敵臺)에 이른다.16세기에 명나라가 보수공사를 하면서 군대를 주둔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중국의 민족 영웅인 척계광 장군이 책임자였다. 베이징 외곽으로 장성 관광을 가면 무수히 많다.
무너진 모습도 있지만 깔끔하게 남아있으면 최근에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경사가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진땀 흘리며 조심조심 오른다. 정상에 도착하니 북한 땅을 비롯해 사방팔방이 트였다.
▲오른쪽 애하(靉河) 옆이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등장하는 상첨촌(上尖村)이다.
남쪽 방향으로 북한 땅을 바라보고 서면 오른쪽으로 애하(靉河)가 흐른다. 북쪽에서부터 182km를 흘러 압록강과 합쳐진다. 두 강줄기 사이에 사주인 어적도(於赤島)가 있다. 농사를 짓고 있으며 북한 영토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바로 북한이다. 애하 오른쪽에도 사주가 있다.
여기에 상첨촌(上尖村)이 있다.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 축하 사절단에 합류한 연남 박지원의‘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장소다. 도강록(渡江錄)을 보면 ‘오후에 압록강을 건너 30리를 가서 구련성에서 노숙을 하다(午後渡鴨綠江行三十里露宿九連城)’라는 내용이 나온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소나기도 쏟아지는 밤을 보낸 연행의 고충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대목이다. 호산 꼭대기에서 보니 조선 선비의 치열한 글쓰기가 더욱 실감난다.
▲호산산성 공심적대(空心敵臺) 밖으로 보이는 풍경.
▲공심적대(空心敵臺) 안쪽 모습.
▲호산산성의 천미잔도(千米棧道) 절벽.
반대쪽 성벽을 따라 내려간다. 흐린 날씨였는데 맑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공심적대의 아치형 문을 통과한다. 아래로 내려오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걸어가면 천미잔도(千米棧道)다. 북한 땅인 어적도를 감싸고 압록강과 딱 붙은 길이다.
맨땅을 지나 암반 아래를 통과하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난다. 절벽을 따라 만든 잔도는 압록강으로 풍덩 빠질지 모를 공포를 느낀다. 주섬주섬 몸을 가누며 내려간다. 국경 철책도 보이고 경비 초소도 보인다. 낚시하는 북한 사람도 있다.
▲호산산성 광장의 ‘지척(咫尺)표석.
잔도를 빠져나오면 광장이 나타난다. 바위에 흥미로운 글자가 적혀 있다. 지척(咫尺), 재미있는 말이다. 우선 지(咫)는 길이로 여덟 치를 말한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치는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촌(寸)이다. 대략 3.03cm로 척(尺)의 10분의 1 길이다.
무지하게 짧다는 이야기를 왜 이렇게 복잡하게 붙였을까? 자료를 찾다가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지척지서(咫尺之書)가 나온다.회음후는 한나라 대장군 한신을 말한다. 조나라 모사인 이좌거가 연나라를 복종시킬 계책을 설명하며 등장하는 용어다. 고대에 목간이나 죽간에 짧게 써서 보내는 물건을 편지라고 했다.
▲북한과 중국이 공유하고 있는 수풍(水豊)댐.
▲압록강 수풍(水豊)댐 건너 북한 마을 뒷산 자락에 지도자를 찬양하는 구호가 걸려있다.
호산에서 압록강 강변도로를 따라 상류 쪽으로 60km 지점에 수풍댐이 있다. 라구샤오촌(拉古哨村)까지 차량이 들어간다. 콴덴만족자치현(寬甸滿族自治縣) 창덴진(長甸鎭)에 있는 강변 마을이다. 강 건너에 ‘위대한 김일성 – 김정일 주의 만세!’라 쓰인 글귀가 국경 마을이라 말하고 있다.
수풍댐은 압록강 유역에서 가장 큰 수력발전소다. 일제가 1943년 구축했다. 높이는 106m이고 길이는 900m다. 1945년 일제가 패망 직전에 댐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발전 장비도 가지고 갔다.
1950년 전쟁 중에 미군 폭격으로 파괴됐다. 1955년 중국과 북한이 공동으로 투자해 보수하고 발전을 재개했다. 전력은 양국이 반반 사용한다. 댐으로 만들어진 수풍 호반도 공동 양식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수풍(水豊)댐 유람선에서 본 북한 풍경.
▲수풍(水豊)댐 유람선에서 본 북한 풍경.
수풍댐을 출발하는 유람선이 있다. 날씨는 맑고 강은 고요하다. 뱃고동이 울리자 약간 흥분된다. 북한 땅을 지겨울 정도로 마주보고 유람한다.갑판에 나가 잔잔하고 새파란 강물을 본다. 강 건너 북한은 삭주군이다. 나룻배와 모터보트가 보이고 가건물에는 인공기가 걸렸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였는데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다. 듬성듬성 자란 초록 풀이 반영돼 아름다운 풍광이 이어진다. 날개를 펼친 새는 인적 드문 산하를 마음껏 날아다닌다.배는 구불구불 회전을 자주한다. 북한 땅이 밀고 오면 중국 땅은 물러선다. 다시 반대로 흐르기도 한다. 낚시하는 사람이 많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한다.
▲수풍(水豊)댐 중국측 지역에서 배를 타고 압록강을 유람할 수 있다.
▲압록강의 청성교(清城橋). 중간이 끊겨 있다.
포말이 계속 따라오고 있다. 배가 회전하면 물살은 더 큰 원을 그려 반영을 조금씩 지운다. 철교가 하나 나타난다. 창덴과 북한 땅 청수를 왕래했던 철교로 보인다. 새떼가 오랫동안 보금자리로 지내는 듯하다. 혹시나 하며 자세히 봤으나 운행을 하지 않는 듯하다. 저 멀리 압록강단교와 닮은 다리가 보인다.
1942년 건설된 청성교(清城桥)다. 1950년 10월 펑더화이가 참모와 경호원 2명, 무전병 1명과 함께 지프차로 다리를 건넜다.한국전쟁에 참전한 통로다. 1951년 3월 미군 비행기 다섯 대가 여섯 차례 폭격해 절단됐다.압록강에 있는 제2의 단교다. 끊어진 다리 너머 아담한 언덕이 보인다. 상흔을 남긴 다리만 아니라면 그저 남한 땅 어느 뒷산과 너무도 닮았다.
▲환런(桓仁)의 오녀산(五女山). 정상부가 테이블처럼 보인다.
1시간 30분 동안 유람을 마치고 하구에 다다른다. 단둥에서 후다닥 다녀오는 유람보다 몇 배는 기분 좋다. 압록강과 북한의 산천을 마음에 품은 느낌이다. 이제 고구려 옛 영토이던 환런(桓仁)으로 간다. 동북쪽으로 약 160km, 3시간을 달린다. 거의 도착하니 모자를 거꾸로 뒤집은 모양의 요상한 산이 나타난다.
차를 멈추고 잠시 바라본다. 오녀산(五女山)이다. 해발 824m의 산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생김새만이 아니다. 부여의 왕자 주몽이 세운 고구려의 첫 도읍지로 추정된다. 산에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녀산(五女山)의 십팔반(十八盤) 계단.
입구로 올라가면 곧바로 십팔반(十八盤) 계단이 나타난다. 태산에도 악명 높은 수천 개의 계단인 십팔반이 있다. 오녀산은 겨우(?) 1,600개 정도다. 살짝 걱정이 됐지만 태산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가쁜 숨을 고르며 오르고 다시 등산로를 따라 움직인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마냥 흩날리는 소나무 가지들이 정말 시끄럽다. 절벽에 기대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소나무가 진풍경이다. 푸른 하늘은 소나무와 어울려 한 폭의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오녀산(五女山)의 호한송(好漢松).
▲오녀산의 자매교(姉妹橋).
호한송(好漢松) 앞에 멈춘다. 아슬아슬하게 뿌리를 박은 채 바람에 흔들린다. 오래오래 변함없는 친구처럼 앉은 모습이다. 곁에 앉아 하늘과 소나무와 친구처럼 대화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바람이 적막을 깨고, 새소리도 간혹 들린다.
자매교(姊妹橋)는 절벽과 절벽을 연결하고 있다. 좁은 다리를 건너 아래로 내려가니 모양이 경이롭다. 양쪽 절벽에 서로 헤어진 자매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통나무 한 그루가 단단하게 서 있다.
절벽 사이가 좁아 아래에서 치받는 바람이 엄청난 속도다. 세찬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절벽에 꼿꼿하게 매달려 있다.
▲오녀산(五女山)의 오녀분(五女墳).
다섯 개의 돌무덤 오녀분(五女坟)이 있다. 무덤이 다섯이나 있으니 전설이 있다. 요괴를 물리친 선녀이거나 둔병을 위해 주둔한 흔적이라고 한다. 항일 전투 시기, 다섯 여성 전사의 무덤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산 이름이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고구려 옛 성터가 있어서인지 관광지 정식명칭은 ‘오녀산산성’이다. 고구려 덕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산성이다.‘고구려 정권’이라는 모호한 표현 대신 그냥 ‘고구려’라 쓰자고 하면 중국 당국이 뭐라 할까 궁금하다
▲오녀산(五女山)의 고구려 성터 유적지 발굴 현장.
▲오녀산산성에 삼족오(三足烏)가 새겨진 고구려시조비(高句麗始祖碑)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사실을 설명하는 비(碑)가 세워져 있다.
왕궁과 민가가 있던 유적지가 크게 세 군데에 흩어져 발굴됐다.왕궁유적지로 추정되는 현장을 지나니 연못 하나가 있다.
산 위에 연못이 있으면 크거나 작거나 거의 일반명사처럼 ‘천지’라 부른다.
그래서 중국에 천지는 셀 수 없이 많다. 민가 흔적인 발굴 현장도 나타난다. 출토된 유물 복제품은 산 아래 박물관에서 보면 된다. 삼족오가 새겨진 고구려시조비(高句麗始祖碑)도 있다. 입장료에 포함돼 무료이다. 다만 속이 터질 정도로 불편하니 각오는 해야 한다.
▲오녀산(五女山) 고구려 산성 유적지 근처의 천지(天池).
▲오녀산(五女山)에서 본 혼강(渾江).
점장대(點將臺)에 이르면 산 아래로 강물이 보인다. 호수처럼 보이지만 혼강(渾江)이다.백두산 서쪽 도시 바이산(白山) 북부에서 발원해 445km를 흐른다. 고구려 기록에는 비류(沸流)로 등장한다.
주몽은 비류를 따라 하류로 내려와 고구려를 건국하고 도읍을 정한다. 파란 하늘을 그대로 담은 짙푸른 물빛에 고구려의 혼이 느껴진다. 마침 관광객도 하나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혼자 보다니 정말 아깝다. 역사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데 말이다.
▲오녀산(五女山)의 고구려 산성 흔적.
▲오녀산(五女山)의 고구려 산성 흔적.
하산하는 길을 찾는다. 바위 사이에 좁다랗고 가파른 길을 중국에서는 언제나 일선천(一綫天)이라 부른다. 천지만큼 많다. ‘하늘로 오르는 한줄기 줄’은 대체로 신비한 길이다.
산을 많이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초소유지(哨所遗址)가 몇 군데 보인다. 산성의 초소가 위치했던 장소다. 산성이 가깝다는 이야기다.
고성 담장이 차례로 나타난다. 한참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아래로 내려가서 보고 옆에서 본다. 가지런하고 빈틈이 없다. 세월의 연륜을 말해주듯 균열도 있다. 이름 모를 풀도 틈새를 막고 자라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고구려 성터인지 눈으로 재고 손으로 매만져도 대답이 없다.성터가 조금 외로워 보인다. 중국 영토에 남아있는 우리 역사의 흔적은 외톨이 같다.
광개토왕비에 ‘추모왕(鄒牟王)이 비류곡(沸流谷)의 홀본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추모왕은 동명성왕의 별칭이다.
역사책의 인명과 지명을 떠올려보지만, 동명성왕 주몽이 기원전 34년에 도읍한 흘승골성(紇升骨城)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홀본성(忽本城)도 없다. 광개토왕비가 있는 지안(集安)에 가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 풀릴 수 있을까?
출처 / hankookilbo.com /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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