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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국가들/⊙아이슬란드*기행

아이슬란드ㅡ싱벨리어 국립공원(Þingvellir National Park)

by 삼수갑산 2022. 8. 14.

싱벨리어 국립공원(Þingvellir National Park)

아이슬란드의 남서쪽에 있다. 이곳에는 세계 최초로 의회가 열린 회합 장소가 있다. 930년 바이킹들이 모여 의회(Althing)를 구성하였고, 국가를 수립하였다. 1798년까지 1년마다 싱벨리어에서 의회가 열렸다.

 

이후 아이슬란드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많은 사건들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야외 의회가 열린 장소와 후배지는 아이슬란드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졌음을 상징한다.

 

그 외에도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호수인 싱발라반 호수가 있고, 옥사라강(江)이 공원을 가로지른다. 또 지질학적으로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판이 만나는 부분이 있다. 이 판은 1년에 2cm씩 벌어지고 있다.

 

벌어진 틈 사이로 폭포들이 장관을 이룬다. 18∼19세기의 농경유적도 남아있다. 192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2004년엔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Scuba diver in the Silfra

 

아이슬란드 전체를 상징하는 야외 의회인 알싱(Althing)이 아르네시슬라 지구[District of Arnessysla] 블라스코가비교[Blaskogabyggð Municipality]에 속하며, 930~1798년까지 계속해서 개최된 장소가 있는 국립공원이다

 

매년 2주 남짓 동안 열리는 의회에서는 자유인 사이의 계약인 법을 검토하고 분쟁을 해결했다. 알싱은 아이슬란드 인들에게 깊은 역사적?상징적 연관 관계가 있다. 유산은 싱벨리어 국립공원과 알싱 유적 자체를 포함하며, 잔디와 돌로 건축된 50개의 부스 유적과 주변 흔적들이 남아 있다.

 

10세기 이래의 유물들은 지하에 매장된 것으로 추측된다. 유적지는 또한 18, 19세기부터 농업 유적도 포함한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1,000년이 넘도록 보존해 온 뚜렷한 경관을 보여 준다.

 

알싱과 배후지를 비롯한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의회 참석자들을 위한 부스 유적과 의회 부지의 유적을 통해, 의회 설립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착지의 풍경을 통해, 980~18세기에 이르기까지 고유하게 지속?반영해온 중세 스칸디나비아-게르만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중세 스칸디나비아-게르만 통치와 알싱 사이의 강한 관련성에 대한 자부심은 12세기 아이슬란드의 전설을 통해 알려졌으며, 19세기 독립 투쟁 기간에 강화되었다. 이곳은 회합 장소로서 웅장한 자연 환경과 더불어 아이슬란드 국민의 성지와 같은 상징적인 지위를 가진 장소이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에는 930년에 설립되어 1798년까지 회합이 계속되었던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야외 의회가 남아 있다. 의회는 매년 2주 남짓 동안 자유인 사이의 계약인 법을 검토하고 분쟁을 해결했다. 알싱은 아이슬란드 인들에게 깊은 역사적?상징적 연관 관계가 있다.

 

현재 활화산 지대에 속하는 세계 유산은 싱벨리어 국립공원과 알싱 유적 자체를 포함하며, 잔디와 돌로 건축된 50개의 부스 유적과 주변 흔적들이 남아 있다. 10세기 이래의 유물들은 지하에 매장된 것으로 추측된다. 유적지는 또한 싱벨리어 교회, 인접한 농장, 싱그발라바튼(Thingvallavatn) 호수의 북극 곤들매기들과 같은 18세기, 19세기부터 이용해온 농업 유적도 포함한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1,000년이 넘도록 경관을 잘 보존해 온 뚜렷한 증거를 보여 준다. 의회는 몇몇 부속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 자문 위원회, 5개의 법원, 법률 중재자 등이 그것이다. 법 자문 위원회의 주요 업무는 법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있다.

 

12세기 역사 연대기 <아이슬란드 인의 책(Islendingabok)>에는 섬을 가로질러 가기 편리한, 의회 장소로 어울릴 만한 곳을 찾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선택된 장소가 섬의 남쪽이었지만 농업 인구가 가장 집중한 곳으로 적당한 장소로 여겼다. 싱벨리어의 유적에는 약 50개의 부서진 참석자 부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천막으로 덮인 지붕과 잔디와 돌로 건축되었던 이 부스는 의회의 참석자들을 위한 임시 거처로 사용되었다. 이런 부스는 자주 수리되었거나 혹은 동일한 장소에 재건축되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부스는 의회의 마지막 번영기인 17세기, 18세기에 지은 것과 초기의 유적 위에 만들어 것으로 짐작된다.

 

의회의 배후지는 섬의 번영과 관련 있는 농업용 토지에 자리 잡았다. 현재 국립공원에는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다. 이 공원을 조성할 당시 이 지역에서 3개의 농장이 있었으며, 이 농장은 인수되었고 주거지와 건물은 점차 상실되었다. 마지막 거주자는 1960년대에 떠났다.

 

공원 경관에는 농작물과 건초를 둘 작은 거주 영역, 헛간, 양 우리 등 초기 농경지와 연관된 구조물들의 풍부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곳들은 각각의 농장들과 그들이 집중하여 모일 회합장소는 네트워크 식의 길로 연결되도록 되어 있다. 넓게 탁 트인 땅에 농장의 양과 소, 의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말을 위한 방목지가 자리하였다.

 

여름 농장 또는 여름 방목장, 예배당과 양조장 등으로 이루어진 6개의 농장 유물이 남아 있다. 그림스타디르(Grimsstadir) 농장 같은 특정 정착지는 문서 기록에 따르면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유물들은 대부분 18세기, 19세기 것들로 짐작된다.

 

1850년대부터 보호 건축물이 된 오늘날의 싱벨리어 교회는 11세기 초에는 훨씬 넓은 부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싱벨리어 인근 농장은 고전적 아이슬란드 양식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현대적 건축물이며, 오늘날에는 아이슬란드 대통령의 별장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