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 성당ㅡ중구 중림동 약현성당
한국 천주교회 200여 년의 역사 중 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이후 100년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성당이며, 한국 천주교회를 태동시키고 이끌어 온 순교자들의 피와 44위의 성인을 탄생시킨 신앙의 못자리인 서소문 밖 순교 성지 주변에 세워진 성지 순례 기념 성당이다.
1886년 한불 조약이 체결된 뒤 서울에서 천주교 신자가 증가하자 1887년에 블랑(Blanc, 白圭三, 1884~1890, 요한) 주교는 이곳 순화동의 수레골에 교리 강습소를 설립하여 강당을 짓고 교리를 가르쳤는데 이것이 공소가 되었다. 1890년에 이르러 문밖 공소가 문안 본당(종현, 지금의 명동)을 능가하게 되었다. 당시 문안이 586명이요, 문밖이 950명이었다.
1890년 블랑 주교는 직접 맡아보던 종현 본당을 두세(Doucet, 丁加彌, 1853~1917, 가밀로) 신부에게 맡겼고, 두세 신부는 블랑 주교가 별세한 뒤 새로 부임한 뮈텔(Mutel, 閔德孝, 1854~1933, 아우구스티노) 주교에게 문밖에 새 본당을 증설할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이를 위임받은 두세 신부는 이미 매수한 대지에 1891년 10월 27일에 성당의 정초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부주교이던 코스트(Coste, 高宜善, 1842~1896, 요한) 신부는 약현 성당을 설계하고 직접 건축을 지도하였다.
정초식이 있은 지 1년 만에 준공되었으나 프랑스에 주문했던 종이 도착하지 않았고, 가을에 피정을 계기로 신부
들이 모이는 기회에 축성식을 성대히 하기 위하여 1893년 9월 25일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 성당이 자리 잡은 언덕이 서소문 밖 약현이었기 때문에 약현 성당으로 불렸다. 구조는 삼랑식의 약식화된 고딕
양식으로서 정면은 어칸과 협칸의 구별이 나타나지 않으며 건물이 낮은 관계로 고딕 건물의 특색인 뾰족아치를
쓰지 않고 둥근 아치를 쓰고 있다.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성당 근처에 한국 교회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李承薰, 1756~1801, 베드로)의 집이 있었고,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 44명의 천주교도들이 이곳과 가까운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으므로 이 자리에 성당을
세웠다.
서소문 밖 형장이 기억하는 첫 인물은 이승훈 베드로다. 그가 태어난 곳은 서소문과 이웃한 반석골, 곧 지금의
중림동이다. 한국 교회 최초로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훗날 조선 교회의 베드로로서, 세례명이 의미하는 반석의
역할을 하였다.
1991년 5월 12일 김수환(金壽煥, 1922~2009, 스테파노) 추기경의 주례로 축성식을 가졌으며 그 자리에서
약현 성당이 서소문 성지 순례 기념 성당임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무관심과방치 속에 버려져 있던 서소문 밖
성지는 새로운 관심과 기대 속에 성지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갖게 되었으며 중림동 성당은 순교자들을 더욱
현양할 수 있는 성지 순례 기념 성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본당 설정 10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1991년 11월, 본당 안에 서소문 성지 순례자들을 위한 기념 성당과
전시실을 갖춘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전시실에는 성인들의 유해와 선조들이 사용하였던 유품과 서적, 교리서와 성서, 각종 신심서적 및 전례 예식서,
기타 여러 종류의 교회 출판물 그리고 멀리 북만주에서 순교하신 본당 출신 김선영 신부의 유해, 미사종과 각종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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