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 성지(성 도리 헨리꼬 신부가 체포된 선교사들의 전교 유적지)
▲손골 성지 표지석
▲찾아가는 길
▲손골 성지 입구
수원시 북쪽에 솟아 있는 광교산 동쪽 깊은 골짜기 안에 위치한 손골 성지는 옛부터 향기로운 풀이 많고 난초가 무성했던 곳으로 '향기로운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 손곡(蓀谷)의 형성시기는 알 수 없으나,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이룩한 교우촌으로 병인박해(1866) 때에는 10여호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손골은 주민들 사이에서 신자들의 부락 '성교촌'이라 불리어 오는데 특히 이요한, 그의 아들 베드로,손자 프란치스코 삼대가 손골에서 살던 중 병인박해시 피신하여 신미년(1871년 3월 16일)에 순교하였다 한다(치명일기). 손골은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전교 유적지로서 특별히 성 도리 헨리꼬 신부님께서 조선에 입국하여(1865) 선교하시다가 포졸들에게 직접 체포되신(1866) 곳이다.
이곳은 1857년 페롱 신부,1861년 조안노 칼레 신부, 1863년 성 오매트로(베드로) 신부 등이 입국하여 활동하던 곳이고, 조선 제4대 교구장인 장 베르뇌 시므온 주교도 방문(1861, 1863)했던 곳으로 신앙의 전통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유서 깊은 성지이다. 손골 성지는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관리하고 있다. 이 수녀회는 1969년 3월21일(예수 수난 주일) 이우철 시몬 신부가 창설한 방인 수녀회이다.
▲손골성지, 입구쪽에서 바라보는 성 도리 신부 묘역
▲성 도리 신부 묘역
▲성 도리 신부 묘역
▲성지 성당
▲성지성당 내부
▲제대
▲십자고상
▲제대 좌측 성 도리 신부 상
▲제대 우측 순교화
▲예수성심상
▲성모상
▲성 김 헨리꼬 도리(김 베드로, Dorie, Pierre Henri) 신부
도리 신부의 본명은 "삐에르 앙리(헨리) 도리"이다. 삐에르는 베드로의 프랑스식 이름이다. 이 이름은 부친 삐에르 도리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그래서 도리 신부님을 "김 베드로 신부"로 불렀다. 헨리꼬는 세례명이다. 도리 신부는 "김"을 성으로 택했다. 따라서 도리 신부는 "김 헨리꼬 도리 신부"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순교자 성 김 헨리꼬 도리(김 베드로, Dorie, Pierre Henri) 신부(1839-1866)
1839년 9월 23일 프랑스 뤼송 교구 탈몽에 속하는 생 틸레르 드 탈몽의 작은 바닷가 어촌에서 팔남 매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가난하게 생활하셨지만 신앙이 굳건했고 성 김(도리)헨리꼬 신부 또한 그러한 가정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던 중 뤼송 대 신학교에 들어가 소품을 받고 파리 외방 선교회 신학교에 들어가 차부제품, 부제품을 거쳐1864년 5월 21일 사제품을 받고 신부가 되었다.
조선 선교사로 임명된 그는 역시 조선 선교사로 임명받은 백(브레트니에르)위스또 신부, 서(볼리외)루 도비꼬 신부, 민(위앵 마르틴)루까 신부와 같이 그해 7월 15일 마르세이유를 출발하여 9월 중순 홍콩에 도착하였으며 이어 상해를 거쳐 11월 요동지방에 대기하며 조선입국의 기회를 기다리게 되었다.
다음해(1865년) 4월 17일 동료선교사 3명의 신부와 같이 차쿠를 떠나 백령도를 거쳐 5월 27일 내포에 상륙할 수 있었다. 위앵 신부만 내포에 남고 나머지 3명의 신부는 서울로 올라와 우선 말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서 가까운 교우촌으로 보내졌는데 성 김(도리)헨리꼬 신부는 용인의 손골리로 가게 되었다.
얼마 안가서 병인대박해가 일어나자 그해 즉 1866년 2월 28일 배교자 이선희의 밀고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포도청에서 조선에 온 경위와 체류에 대해 설명, 심문을 받은 후 3월 7일 장(베르뇌)시므온 주교와 백(브레트니에르)위스또 신부, 서(볼리외) 루도비꼬 신부와 같이 군문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어 한국의 103위 순교 성인 대열에 들었으며 유해는 절두산 지하성당에 모셔져 있으나 그중 일부를 분배받아 손골성지에 모셔 안치하고 있다.
▲성 도리 헨리꼬 김 신부 순교비
상단 십자가는 특별한 것이다. 1966년 도리 신부님 순교 100주년을 맞아 도리 신부님 출신 본당인 "쌩 띨래르 드 딸몽" 성당의 주임 신부인 죠셉 그럴레 신부는 도리 신부와 손골 성지를 연결 하고픈 마음으로 도리 신부님 집에서 밀을 찧는데 쓰던 화강암으로 된 맷돌로 똑같은 돌 십자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도리 신부님 생가 벽에 붙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 보내 주었다. 이것을 받은 수원 북수원 본당은 한국산 화강암으로 된 돌로 순교비를 쌓고 맨 위에 고향에서 보내온 돌 십자가를 올려 놓아 현양비를 말들게 되었다. 1966년 10월 24일 축복 되었다.
▲성 도리 신부 묘역
▲성당 쪽에서 본 묘역
▲성 도리 신부 묘
▲성 도리 신부 묘
▲성 도리 신부 유해
▲십자고상
▲야외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1 처
▲십자가의 길 2 처
▲십자가의 길 3 처
▲십자가의 길 4 처
▲십자가의 길 5 처
▲십자가의 길 6 처
▲십자가의 길 7 처
▲십자가의 길 10 처
▲십자가의 길 11 처
▲십자가의 길 12 처
▲십자가의 길 13 처
▲십자가의 길 14 처
출처 / blog.daum / sung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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