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커플ㅡ전 국민이 반대한 결혼 감행한 그녀, 지금 행복할까?
한중일 3개국 중 유일하게 왕이 존재하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일본의 왕은 나랏일에 관여하거나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왕과 왕의 가족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엄청납니다. 왕실은 신들의 자손이기에 신성하며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가족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의 관념 속에서 왕실의 안녕은 일본 전체의 안정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왕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은 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왕실 가족으로 태어나면 막대한 국민 세금으로 왕실의 생계와 품위유지가 이뤄지는 만큼 상당한 특권을 지녔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그 대가로 개인의 자유를 희생해야 하고 일거수일투족이 공적인 관심사가 되는 부담을 떠안아야 합니다. 왕족으로서의 인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크게 불행해지거나 불미스러운 스캔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최근에도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한 일본의 왕족이 있습니다. 바로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인 후미히토 왕세제의 장녀인 마코(31) 일본 공주입니다.
마코 공주는 지난해 10월 대학 재학 시절 만난 동창생 고무로 게이와 결혼했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혼인신고만으로 그녀는 남편을 따라 성 씨를 바꾸고 왕족에서 평민으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쉽지 않은 결합이었을지 단 두 줄의 설명만으로도 짐작이 되시지요?
▲2015년 새해 인사 당시 마코 전 공주. 출처:위키피디아
부계 승계 원칙을 유지 중인 일본 왕실 서열상, 마코 공주의 아버지 후미히토는 외동딸을 둔 나루히토 일왕의 뒤를 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나루히토 일왕이 후미히토보다 다소 늦게 결혼한 뒤 자녀를 봤지만 딸밖에 낳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코 공주는 어린 시절 왕실은 물론 국민적인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모두가 주목하고 기대하는 왕실의 믿음직스러운 장녀로 말이죠. 그런 그녀가 서른이 다 된 나이에 결혼하면서 결혼식도 치르지 못한 건 왕실의 보수적인 분위기는 물론, 일본 왕실에 대한 국민 정서 때문입니다. 국민 정서라 함은 나쁘게 말해 신성한 왕실 가족에게 실수를 용납할 수 없다는 완벽주의, 좋게 말해 왕실 가족은 모든 불행을 피해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노심초사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일본 국민들이 처음부터 마코 공주의 결혼을 결사반대하고 나섰던 것은 아닙니다. 2017년 마코 공주의 약혼 소식이 전해졌을 때 대체적인 여론은 '무난한 배필을 골랐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인 고무로 게이는 마코 공주의 대학 동창생인데다 영어 실력도 뛰어나고, 관광지 홍보대사 등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는 등 열심히 사는 청년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죠.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의 사망으로 편모 가정에서 자랐다는 점이 거론됐으나, 결혼 상대로서 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공주는 2017년 천황 내외가 거주하는 궁전에서 공식 약혼 발표를 했습니다. 결혼식 날짜는 1년여 뒤인 2018년 11월로 잡혔고요.
하지만 몇 달 뒤 결혼식은 갑작스럽게 연기되었습니다.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가던 찰나에 고무로 게이를 홀로 키운 어머니가 연인 관계에 있던 남성에게 금전 지원을 받았고 현재 이 남성이 지원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왔습니다.
고무로의 어머니가 남성이 지원해 준 돈으로 그동안 생활비와 아들 양육 비용을 충당했으며, 그 금액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었죠. 상환 압박 때문에 고무로의 집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무로의 어머니가 일본 왕실에 빚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적인 지원을 요청했다는 이야기까지 파다했습니다.
▲2017년 3월 기자회견 당시 고무로 게이. 출처:위키피디아
언론 보도가 쏟아지자 마코 공주의 결혼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악화했습니다. 마코 공주는 이러한 문제들을 다 알게 됐음에도 결혼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일본 국민들은 곱게 자란 공주가 그런 집안에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앞선듯 보입니다. 여론 조사 결과 97%가 넘는 국민들이 공주의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으니까요.
여론이 악화하자 왕실은 결혼 시점을 2020년으로 2년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공주의 결혼에 부정적인 여론은 반전하지 않았고 결국 일본 왕실은 결혼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폐쇄주의적인 왕실이 결혼식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직접적이고 명확한 입장을 밝힌 바는 없었습니다,
국민 여론이 싸늘한 상황에서 보수와 전통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왕실이 예법을 갖춘 예식을 감행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올 뿐이죠. 결혼 의지를 꺾지 않은 채 '복잡성 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까지 받은 마코 공주의 의사에 따라 혼인신고만 허락하는 선에서 이 문제를 마무리 지은 셈이죠.
왕실이 혼인신고나마 허락한 데는 마코 공주의 엄청난 고집과 의지가 작용한 것 같습니다. '이 결혼 결사 반댈세~'라는 여론이 거세자 마코 공주는 결혼한 왕족 여성 모두에게 지급되는 정착 지원금(한화 약 15억 원)을 안 받아 버리는 쿨한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집안 출신인 데다, 마코 공주와 남자친구 모두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다락같이 높은 대도시의 집세를 감당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도 말입니다.
어쨌든 그녀는 이 모든 어려움을 감당한 채 혼인신고 한 달 뒤 남편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뉴욕 주의 한 로스쿨에서 공부 중인 남편이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미국에서 둘만의 안락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목표였죠.
하지만 두 사람의 고난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법적인 부부가 되었지만 고무로 게이가 아직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무로 게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미국 변호사 시험에서 낙방했습니다. 올해 시험에서는 아주 근소한 점수 차로 당락이 갈린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가뜩이나 색안경을 끼고 고무로 게이를 봤던 일본 국민들은 '역시 공주를 고생시킨다'라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후미히토 왕세제 가족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어린 시절의 마코 전 공주. 출처:위키피디아
어찌 생각해 보면 공주가 남편을 사랑하고 응원한다는데 전 국민 나서서 불신을 표한다는 사실이 공주가 처한 상황 그 자체보다 공주를 더 불행하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 연애와 사랑, 결혼에 대해 온 집안 식구들도 아니고, 온 국민이 감놔라 배놔라 하는 상황, 그런 간섭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정당하게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 PTSD 진단을 받고 거액의 지원금까지 발로 찬 공주의 선택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사실 공주의 결혼 사건과 관련해 부정적인 시선 일색인 일본 여론과 상반되게 외신과 외국인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일본 왕실에 느리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상당하고요.
이 가운데 지난 6월 뉴욕 맨해튼에서 마코 전 일본 공주가 수수한 평상복 차림으로 남편과 함께 포착됐습니다. 얼굴엔 편안한 웃음이 번져있었죠. 변호사 시험에 아직 합격하지 않은 고무로가 로펌에서 받는 박봉으로 침실 한 개짜리 원룸에서 시작한 신혼 생활이지만 그녀가 행복하다면야!
출처 / 아샤 김 썸랩 에디터(sum-la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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