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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ㅡ1788년 英國 이주민이 시드니 땅 밟은날...호주 역사가 시작된 날

by 삼수갑산 2022. 2. 28.

시드니(Sydney)

1788년 英國 이주민이 시드니 땅 밟은날...호주 역사가 시작된 날

 

◈1770년 영국인 제임스 쿡이 탐사… 17년 뒤 영국 죄수들 유배 보내 개척

처음 도착한 곳은 동부 '보타니만'
땅이 척박해 가까운 시드니에 정착… 도착한 1월 26일은 호주 최대 기념일

 

▲ 영국 화가 알제논 탈메이지가 그린 '호주 건국'(The Founding of Australia). 영국 해군 대령 아서 필립과 군인들이1788년 1월 26일 호주 시드니 지역에 정착해 영국 국기를 올리는 모습입니다. 이후 영국계 이민자의 후손들은 이날을 호주 역사가 시작된 날이라고 여기고 '호주의 날'로 기념하게 됐습니다. /위키피디아

 

지난 1월 26일은 호주의 최대 기념일 중 하나인 '호주의 날(Australia Day)'이었어요. 호주의 날은 1788년 1월 26일 영국 함대 선원들과 영국계 이주민들이 호주 동부 지역에 최초로 상륙하여 오늘날의 호주 최대 도시인 시드니를 개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개천절과 같은 날이라고 볼 수 있어요. 호주 역사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날은 과연 어떠한 날일까요?

◇영국인 제임스 쿡, 1770년 호주 대륙 본격 탐사

17~18세기 서양 세력은 영토 확장을 꿈꾸며 대륙 탐사에 나섰어요.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세력을 키워가던 영국은 또 다른 새 대륙을 발견해 영국에 편입시킨다면 대영 제국의 위상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어요

 

그래서 영국은 당시 유능한 군인이자 항해사였던 제임스 쿡 해군 대위를 지휘관으로 임명해 호주 대륙 탐사를 시작하였고, 마침내 1770년 4월 20일 호주 동부 해안에 도착하였습니다.

 

쿡과 동행했던 인물 중에는 식물학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호주 동부에서 채집한 귀중한 식물 표본들을 기념하기 위해 도착한 만(灣)에 보타니(Botany·식물학)만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또 쿡은 보타니만이 있는 대륙의 동쪽 지역을 '뉴 사우스 웨일스'라고 명명했습니다. 두 지역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죠.

죄수 유배지로 삼아 영국인 이주 시작

호주 대륙에 영국인들의 이주가 시작된 것은 호주 발견 후 10여 년이 지나서였어요.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에 성공하며 사회의 부는 늘어났지만, 계급 차이로 갈등은 심화됐어요. 이는 급격한 범죄율 증가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점차 감옥이 부족해지자 새로운 처벌 방식으로 유배가 논의되었어요.

 

이때 제임스 쿡의 친구이자 그와 함께 호주 대륙을 탐험했던 식물학자 조셉 뱅크스는 정부에 뉴 사우스 웨일스의 보타니만을 죄수를 유배 보낼 수 있는 지역으로 제안하였어요. 그는 이곳이 원주민들이 공격할 가능성이 작고, 무엇보다 유럽인들이 정착한 다른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죄수들이 탈출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당시 명성 높은 군인이었던 아서 필립 해군 대령은 남녀 죄수와 군인, 선원 등 1500여명의 사람과 함께 11척의 배를 나눠 타고 1787년 5월 13일 출항했습니다. 이들은 약 8개월 뒤인 1788년 1월 20일 보타니만에 닻을 내렸어요.

 

시드니 정착일을 호주 역사 시작으로 여겨

 

그러나 보타니만은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어요.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 많았고, 항구에 함선 정박도 어려웠어요. 그래서 1월 21일 아서 필립과 몇몇 군인들은 북쪽으로 약 12㎞ 떨어진 포트 잭슨을 며칠간 살펴본 뒤, 이곳이 살기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어요.

 

그의 판단에 따라 함대 본진도 1788년 1월 26일 이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서 필립은 이 지역의 이름을 당시 내무부 장관으로서 영국의 모든 해외 식민지 관리를 맡고 있었던 시드니 경의 이름을 따 시드니로 지었는데, 지금까지도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1월 26일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초반부터였어요. 뉴 사우스 웨일스의 주지사가 처음 1818년이날을 공식적인 날로 기념하였고, 후에는 호주의 모든 지역에서 호주의 날을 기념하였어요.

 

호주 원주민들에겐 '침략의 날'

 

호주의 날은 영국계 이민자 후손들에게는 뜻깊은 날이지만, 호주 원주민들에게는 정반대 의미가 있습니다. 이들에게 호주의 날은 영국인이 75만여 명이나 되는 원주민의 존재를 무시하고 호주 대륙을 차지한 '침략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원주민은 이민자들이 옮긴 전염병으로 급격하게 인구가 줄었고, 원주민 아이들은 '문명화 정책'이라며 강제로 백인 가정이나 선교 기관에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원주민 후손들은 낮은 소득과 약물중독 등에 시달리면서 사회 최하층을 구성하고 있습니다.최근엔 이런 역사를 고려해 호주의 날을 첫 의회 개회일(1901년 5월 9일) 등 다른 날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