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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ㅡ파리근교ㅡ반 고흐 최후 역작들의 탄생지 그림 속 배경, 변함없이 그곳. 오베르쉬르우아즈.

by 삼수갑산 2022. 3. 31.

반 고흐 최후 역작들의 탄생지그림 속 배경, 변함없이 그곳.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 

▲오베르 쉬르 오아즈 성당 

 

원본출처 / naver 백과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오베르 쉬르 오아즈 성당

 

▲오베르 쉬르 오아즈 성당 / 빈센트 반 고흐 94 x 74 cm. 1890년 6월. 유화

 

▲오베르 쉬르 오아즈 성당

 

▲오베르 쉬르 오아즈 성당

 

▲오베르 쉬르 오아즈 성당

 

▲오베르 쉬르 오아즈 성당

 

▲오베르 쉬르 오아즈 성당

 

▲오베르 쉬르 오아즈 성당

 

▲The road to the church and cemetery goes up to the right

 

▲Here's what Van Gogh saw

 

▲Here's what Van Gogh saw

 

▲It's tough painting rain

 

▲Same view, sans the rain. The trees have grown

 

▲오베르쉬르우아즈 거리(Street in Auvers-sur-Oise)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73 x 92cm

아테네움 핀란드 예술 박물관 소장

 

 

비온 뒤 오베르의 풍경(Landscape at Auvers after the rain)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72 x 90 cm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가셰 박사의 정원

(Le jardin du docteur Gachet à Auvers sur Oise)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 73 x 52 cm

오세르 미술관 소장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된 바로 그 밀밭은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종종 찾는다.

 

파리의 여행 루트는 거의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보고, 에펠탑이 보이는 뤽상부르 공원 잔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찍는다. 센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퐁네프 다리 아래를 지나가며 영화 <퐁네프의 연인>을 떠올려본다.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는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가서 퀴퀴한 종이 냄새에 젖어도 본다.

 

화마가 스쳐간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비둘기를 날려가며 사진을 찍는다. 샹젤리제 거리에선 저절로 ‘오~ 샹젤리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모네의 ‘수련’ 연작 앞에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고, 몽마르트 언덕에 가서는 예술가의 고독을 느껴본다.

 

사크레 쾨르 대성당 앞에 앉아 시내를 내려다보면서도 소매치기를 당할까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개선문에 올라 파리의 야경에 흠뻑 취해본다.파리에 오면 새로운 것을 찾기 이전에 이런 순리를 따르기 마련이다. 숨을 돌리고 나면 고풍스러운 건물들이빽빽하게 늘어선 파리의 골목이 보이고, 카르푸에서 적당한 프랑스 와인을 5유로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꽃가게에서 장미를 고르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장소와 장소를 잇는 그 사이에 여행의 4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 헛헛한 마음이 든다.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다가 정작 나만의 것, 소중한 것을 잃는 것 같아서. 여행이란 시간과 공간을 빌려 쓰는 행위 이전에 나만의 만족을 찾아나서는 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효율적인 여행만을 추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 달 살기’ 같은 여행이 유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현상이 도시 여행에서 특히 더 심해지는데 ‘내가 너무 바쁜 여행을 하고 있구나’ 하고 문득 반성하게 될 때 미술관에 들르곤 한다. 파리에서 가장 내 맘을 끌었던 곳은 오르세 미술관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퐁피두 센터와 함께 파리의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루브르 박물관이 고대에서 19세기까지의 작품을 다루고, 퐁피두 센터가 현대미술을 다룬다면, 오르세 미술관은그 중간인 근대미술 작품을 주로 전시한다. 오르세 미술관의 지위가 한껏 올라간 것은 2011년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반 고흐의 작품을 24점이나 전시하고 있기때문이다.

 

▲오베르에 도착하는 순간 고흐를 기리는 그림이 환영인사를 한다.

 

여행작가로 지내면서 일관된 주제로 찾아 다니는 곳이 딱 하나 있는데, 반 고흐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과 그가 살던 지역이다. 암스테르담 여행을 떠났을 때, 반 고흐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초기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남루한 차림의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감자를 먹는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고는 한참 멍하니 서 있었다.

 

어두운 가난 속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온기, 그 대비가 서글펐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반 고흐의 자화상이전시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타임스스퀘어나 자유의 여신상을 제치고 맨 처음 달려가기도 했다. 전시실 한가운데 유리장 안에 들어있는 고흐의 얼굴은 고독했다. 내게 뭐라고 말을 걸어줄 것 같았다.그다음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는 ‘별이 빛나는 밤’을 만났다.

 

고흐가 귀를 자르고 생 레미의 요양원에 갇혀 지냈을 때 마을 풍경에 상상을 더해 완성한 그림이다. 환상적인 색채와 선, 우뚝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열다섯 살에 나는 반 고흐 화집을 보고 유난히 이 그림에 매료됐다. 그리고 미술 숙제로 ‘별이 빛나는 밤’ 모작을냈고 미술을 해도 되겠다는 선생님의 칭찬을 듣게 된 것도 그때였다.

 

반 고흐의 일대기를 이불 속에서 읽으면서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무려 650여통의편지. 착하고 따뜻한 반 고흐의 심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행을 다니며 깨닫게 된 것이 바로 반 고흐에 대한 나의 사랑이다. 반 고흐를 만날 때마다 매번 목구멍까지 슬픔과 기쁨,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간질간질 차오르곤 했다. 나는 여전히 반 고흐의 숨결을 따라가는여정에 있다.

 

▲오베르쉬르우아즈 마을을 걷다보면 바닥에서 빈센트 표식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감동을 안은 채, 자연스럽게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 이하 오베르)로 발길을 옮겼다.파리에서 불과 30㎞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오베르는 반 고흐가 마지막을 보냈던 곳이다. 주말 여행 삼아 다녀오기로 했다. 파리 북역에서 기차를 타고 퐁투아즈에 내려 크레일 방향 기차를 갈아탄 후 오베르에 닿았다.

 

130년 전 반 고흐도 똑같은 노선으로 오베르에 도착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니 벅차올랐다. 플랫폼과 연결된통로는 온통 반 고흐를 기리는 마음이다. 아마추어 화가들은 해바라기, 밀밭, 오베르강을 천장과 벽에 가득 채웠다. 화려한 색채가 환영인사를 하고 있었다.

 

1890년 5월 빈센트는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정신병이 악화돼 생 레미의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동생 테오의 집에 머문 후, 오베르로 왔다. 작은 교회와 밀밭뿐인 이 작은 마을엔 반 고흐 말고도 여러 화가가 스쳐갔다. 세잔은 이곳에서 약 100점의 작품을 남겼다.

 

▲고흐의 작품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오베르 시청사.

 

햇살이 잘 드는 들판, 높지도 낮지도 않은 부드러운 언덕, 잔잔하게 흐르는 오베르강, 그리고 유일하게 수직선을이루는 존재인 사이프러스와 은행나무가 회화적 요소로 부족함이 없기 때문 아닐까 싶다. 물론 파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점이 가장 크지만. 반 고흐는 오베르에 도착하자마자 테오에게 편지로 말했다.

 

“아름다운 마을이야.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초가가 많이 남아있어.”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코르드빌의 초가’는 당시 오베르의 첫인상을 기록한 작품이다.공원에 서 있는 반 고흐 동상은 시선을 오래 붙들었다. 녹초가 된 듯 깡마른 몸에 이젤과 물감, 캔버스를 등에 짊어지고 있는 모습은 그림에 대한 열정을 말해준다.

 

존경했던 친구 고갱이 곁을 떠나고 그림 한 점 팔지 못하며 좌절만 경험한 그가 죽는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붓과 캔버스였다. 동상과 똑같은 모습으로 반 고흐는 오베르 곳곳을 걸어다니며 그림을그렸을 것이다.

 

▲고흐가 죽는 순간까지 보낸 라부 여인숙. 1층엔 레스토랑, 2층엔 고흐가 지내던 작은 방이 있다.

 

오베르엔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린 장소마다 팻말이 서 있고 친절한 설명이 적혀 있다. ‘오베르의 계단’을 오르고 ‘오베르성’과 ‘오베르 교회’를 구경했다. 건물과 길, 풀의 위치까지 그림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점에 놀랐다. ‘까마귀가 있는 밑밭’의 배경이 된 밀밭엔 까마귀는 날지 않았지만 스산한 바람이 반 고흐의 마지막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밀밭 어디에선가 반 고흐는 총을 맞고 쓰러졌다. 밀밭을 내려다본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진실을 알고 있을까? 반 고흐가 그림으로 남긴 시청의 바로 맞은편에는 그가 죽음을 맞이한 라부 여인숙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고흐의 집’이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마지막을 마주했다.

 

노란 벽면으로 가득한 작은 방. 반 고흐는 이 방 철제침대에 누워 생을 마감했다. 가구라곤 침대 하나, 의자 하나뿐. 이젤과 화구, 캔버스로 가득한 방을 상상했다. 반 고흐가 여기 머물면서 그린 그림은 69일 동안 70점이 넘는다. 작은 스케치까지 포함하면 90점이 조금 못 된다.

 

어떤 날은 가셰 박사를 만나기도 했고 테오가 놀러온 날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니 하루에 한 작품 이상을 그린 것이다. 그리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숨 막히는 불안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세운 건 아니었을까? 독한 압생트를 마시지 않고는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림을 그렸을 그를 떠올리며 울컥하고 말았다.

 

▲고흐는 끝까지 형을 믿고 후원자가 되어준 동생 테오와 나란히 잠들어 있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현대예술 표현주의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거친 화풍과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인 그의 그림에서 정신병으로까지 몰고 간 극심한 고통이 느껴진다. 1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제작된 그의 그림들이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는 영원한 그림이 되었다.

 

고흐는 오베르 쉬르 오아즈로 옮긴 후 라부 부부의 여인숙에 방을 얻어 살면서 닥터 가셰의 치료를 받았다. 6월 말 테오가 직장에서의 갈등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불안한 마음으로 파리를 방문했던 고흐는 테오와 돈 문제로 다투고 오베르로 돌아왔다. 그후 그는 <까마귀가 있는 밀밭><오베르의 교회> 등을 그렸다.

 

1890년 7월 27일, 초라한 다락방의 침대 위에 피를 흘리고 누워 있는 그를 라부의 가족이 발견했다. 그 스스로 가슴에 총탕을 쏜 것이다. 오베르의 성 뒤쪽에 있는 밀밭에서, 닥터 가셰와 닥터 마리제가 라부의 집으로 급히 달려왔다. 이튿날,

파리에 있던 테오는 가셰의 편지를 받고 오베르로 왔다.

 

두 형제는 이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날 밤 고흐는 의식을 잃었고, 7월 29일 새벽 1시 30분 동생의 품에 안긴 채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파란 가득한 삶을 마감했다. 7월 30일, 고흐는 테오, 베르나르, 탕기 영감, 가셰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레르의 묘지에 묻혔다.

 

8월에 테오가 베르나르의 도움으로 몽마르트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고흐의 추모전을 열었다.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후인 1891년 1월 25일, 형의 죽음 이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테오가 네덜란드의 우트레히트에서 3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1914년에 테오의 화장된 유해는 형의 무덤 옆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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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해 시작했지만 일이 되고 보니 여행이 그저 즐겁지만은 않다. 순간순간 불안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외로움. 회사를 다닐 땐 조직 안에서만 인정받으면 됐다. 울타리 없는 세상에 홀로 서 있는 지금은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내 맘대로 여행이나 다닐 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도 안고 가는 편을 택하기로 했다.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점으로 찍은 색채 하나하나가 명작을 이뤘듯 나의 발길하나하나가 언젠가 인생이라는 그림을 완성하리라. 반 고흐도 파리 몽마르트에서 캔버스와 물감을 들고 오베르로 오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인정받기보다는열정으로 살아가겠다는 그런 결심. 햇살이 좋은 가을이었다. 오베르에서 따사로운 위로를 받았다.

 

출처 / KyungHyang.com / 김 진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