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未知의 땅 찾아 망망대해로...200년간 이어진 바닷길 개척
▲대항해 시대에 전 세계의 바다를 누볐던 포르투갈의 범선‘카락’. 당시 모든 포르투갈 범선의 돛에는
그리스도 기사단을 상징하는 붉은 십자가가 장식돼 있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유럽의 서쪽 끝 호카곶. 포르투갈은 대서양으로 배를 띄움으로써 유럽 변방이라는 지리적인단점을 기회로 전환시켰다.
▲리스본 벨렝에 서 있는 '발견 기념탑'. 대항해시대 주역들을 기리는 거대한 구조물이다.살라자르 독재 시대인 1940년에 가건립됐다가 20년 뒤 재건축됐다.벨렝은 바스쿠 다가마 함대가 출항한 항구다.
발견 기념탑 맨 앞에 있는 사람은 엔히크 왕자다. 그 뒤로 바스쿠 다가마,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같은 포르투갈영웅들이 저마다 직업을 상징하는 물건을 들고 줄지어 서 있다. 서면 끝에는 일본과 중국에 선교를 했던 신부 하비에르가 무릎을 꿇고 있다.
동면 열두째에 서서 글을 적은 문서를 들고 있는 사람은 루이스 카몽이스다.카몽이스는 군인이며 시인(詩人)이다. 포르투갈의 개척 정신을 바스쿠 다가마가 상징한다면, 카몽이스는 포르투갈 문화의 상징이다.
▲ ①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2년 에스파냐 여왕의 지원을 받아 항해하던 중 새로운 육지를 발견해요.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으로, 콜럼버스는 이곳을 죽기 전까지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직후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②에스파냐 항해가인 마젤란의 초상화. ③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코로나 유행으로 강화됐던 여행 규제가 최근 풀려 세계 곳곳에서 여행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해요. 과거에도 사람들이 다양한 계기를 통해 해외로 나아가려는 열망이 강하게 분출됐던 시기가 있어요. 이 시기를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라고 부르는데요. 대항해시대는 15세기부터 200여 년간 서유럽 나라들이 새로운 바닷길을 개척해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섰던 시대를 말한답니다.
대항해시대 포문 연 포르투갈
중세 말까지 여행은 주로 종교적 성격이 강한 '순례(巡禮)'의 형태로 이뤄졌어요. 그런데 점차 기사 계급을 중심으로 여행 중 만나는 온갖 역경이 '모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면서, 자유 여행이 확산하게 됩니다.
중세 유럽에는 "무슬림과 이교도 나라 너머인 동방 어딘가에 강력한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전설이 있었는데요. 특히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과의 투쟁을 통해 성장한 두 왕국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스페인)인들이 이 전설에 매료됐어요. 여기에 바닷속으로 사라졌다는 전설상 대륙 '아틀란티스'를 찾겠다는 열망도 컸어요.
자연스럽게 두 왕국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고 후추 같은 향료를 인도 등의 동방 국가들과 직접 교역하고자 했어요.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며 새로운 세계를 찾아내겠다는 모험 정신이 확산됐고, 지리학과 천문학 지식이 늘며 선박과 항해 기술도 발달하기 시작했죠.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포르투갈의 왕자 엔히크(1394~1460)였어요. 1411년 엔히크 왕자의 아버지이자 당시 포르투갈의 왕이었던 주앙 1세가 해외 원정을 추진했고, 셋째 아들인 엔히크 왕자가 열광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는 각 바다의 특징과 항해 기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데요. 그 결과 대서양과 같이 바람과 파도가 거친 바다 항해에 효과적인 삼각돛이 달린 범선 '카라벨(Caravel)'을 개발했어요.
그는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남하해 인도에 이르는 항로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1441년부터 6년에 걸쳐 아프리카에서 1000명이 넘는 흑인 노예를 본국으로 데려옵니다.
1487년에는 포르투갈의 항해사 바르톨로메우 디아스(1450~1500)가 3척의 배를 이끌고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어요. 국왕 주앙 2세는 이곳의 이름을 '희망봉'으로 부릅니다. 이처럼 이 시기 포르투갈은 동방으로 향하는 길을 개척하긴 했지만, 실제 인도에 닿거나 새로운 대륙을 찾아내진 못한 상태였습니다.
신대륙 찾아낸 콜럼버스
먼저 신대륙을 찾아낸 건 에스파냐였어요. 비슷한 시기 에스파냐도 해양 개척 사업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이미 항해 기술로 앞서 있는 포르투갈을 뛰어넘기엔 역부족이었죠.
이때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가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서쪽을 통해 인도와 중국에 닿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대서양을 건너갈 항해를 후원해 달라"고 에스파냐 왕실에 요구합니다.
에스파냐 여왕인 이사벨은 콜럼버스의 항해가 포르투갈을 앞설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는 여왕의 후원으로 마련한 3척의 범선에 90명가량의 선원을 싣고 스페인 세비야 인근의 팔로스항(港)을 출발했어요. 그는 카나리아제도를 거쳐 대서양을 가르며 서쪽으로 나아간 끝에 그해 10월 12일 새로운 육지를 발견했어요. 그리고 이듬해 3월 귀환했죠.
이 육지는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인데요. 콜럼버스는 죽기 전까지 이곳이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콜럼버스는 총 네 번의 원정을 통해 유럽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바하마제도·쿠바·아이티·도미니카를 포함한 카리브의 섬들까지 찾아냈어요.
그리고 이 섬들이 인도 서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서인도제도'라고 불렀어요. 이로 인해 원주민들은 인도 사람이라는 뜻인 '인디언(Indian)'이라고 불리게 됐죠.
이후 콜럼버스를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재배하고 있던 옥수수·감자·토마토 등의 작물들이 유럽으로 널리 퍼지게 됐답니다.
반면 포르투갈은 신항로를 개척해 인도 대륙에 먼저 발을 디딥니다.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1469~1524)는 1497년 4척의 배에 160여 명의 선원을 태우고 리스본을 떠나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내려갔어요.
이듬해 인도의 가장 큰 무역항 중 하나인 캘리컷에 도달하지요. 항해 과정에서 선원 3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 발견으로 대서양과 인도양 사이의 바닷길이 처음 열리게 됐어요.
최초로 지구 한 바퀴 돈 마젤란 탐험대
포르투갈 태생의 에스파냐 항해가인 마젤란(1480~1521) 탐험대는 최초로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세계 일주에 성공합니다. 그는 남아메리카를 돌아 서쪽으로 가면 금방 인도에 닿을 것이라고 믿었어요. 마젤란은 에스파냐의 후원을 받아 1519년 8월 10일 5척의 배와 270여 명의 선원을 이끌고 항해에 나서죠.
아메리카 최남단의 험한 해협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그는 곧 고요하고 넓은 바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이 해역에 '태평양'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는 지금의 괌을 거쳐 필리핀에 도착하는데, 저항하는 원주민 세력과 싸우다 목숨을 잃습니다.
하지만 마젤란의 선원들은 항해사 중 한 명인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1476~1526)의 인솔하에 희망봉을 거쳐 에스파냐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즐거움 목적의 여행은 19세기부터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주도한 바닷길 개척은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점이 됐어요.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던 각 국가와 지역은 이 탐험으로 교류를 시작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됐고, 유럽이 세계로 팽창하는 발판이 되기도 했죠.
하지만 유럽인들은 탐험을 하며 원주민에게 전염병을 퍼뜨리고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했어요. 이에 중남미 원주민의 삶은 파괴됐고, 아프리카인들은 일명 '노예 산업'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기도 했어요.
18세기부터는 유럽의 소수 엘리트 계층 사이에 "더 멀리 갈수록 더 많은 것을 보고 알게 된다"는 이야기가 퍼집니다. 이에 탐험가뿐 아니라 교양과 학식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게 되고, 교육적 목적의 여행이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어요.
19세기 중엽부터는 오롯이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 널리 퍼지기 시작합니다. '투어리스트(Tour ist·관광객)'라는 말은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이 자신의 책 '여행자의 회상기'(1838)에 제목으로 쓰며 사용되기 시작했답니다.
출처 / Chosun.com / 정효진 양영디지털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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