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량(馬梁)포구ㅡ갈대밭뿐이였는데...관광백화점이 됐네
▲충남 서천의 서쪽 해안과 딱 붙어 있는 장항송림산림욕장. 하늘을 가린 소나무의 위용도 위용이지만,
촘촘한 소나무의 높은 밀도가 대단한 곳이다. 오죽하면 숲을 끼고 있는 마을 이름이 송림리(松林里)다.
해 질 무렵이면 이 촘촘한 솔숲은 온통 붉은 기운이 도는 황금빛으로 물든다.
충남 서천에는 이렇다 할 관광 명소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수년 전까지는 말입니다. 꼽아보자면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마량포구, 그 포구 인근의 정자 동백정, 그리고 영화 배경으로 등장했던 금강 변의 갈대밭 정도가 고작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곳곳에 명소들이 새로 생겨났습니다.
무너지고 흐트러진 것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발길을 불러들이는 곳도 있고, 먼지 앉은 역사를 뒤져 찾아낸 곳도 있습니다. 갯벌 매립의 유혹을 이기고 생태 보전의 가치를 택하면서 얻어낸 생태원 같은 대규모 시설도 있습니다.
다양한 매력으로 다듬어지고 있는 서천은, 주어진 경관을 넘어서 지방자치단체의 전략이 어떻게 명소를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기벌포의 역사를 굽어보는 곳
서천은 오래전부터 외세와의 접촉이 잦았다. 인천이나 목포처럼 일찌감치 개항한 것도 아니고, 큰 포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때로는 충돌로, 때로는 교유로 외세와 만났다.
장항제련소는 서천이 일제강점기 광물자원의 수탈기지였음을 보여주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서천읍내의 거대한 미곡 창고는 일제가 쌀을 수탈해간 흔적을 보여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대국가 시절 금강하구의 서천 앞바다 기벌포는 외세와의 전투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곳이다. 이곳이야말로 백제와 신라, 일본과 당나라가 한반도 패권을 놓고 충돌했던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 전쟁터다.
기벌포에서 벌어졌던, 고대국가가 벌인 세 번의 전투는 모두 한반도의 명운을 좌우했다. 첫 번째로 나당연합군과 백제의 수군이 이 바다에서 맞섰고, 두 번째는 백제 부흥군과 일본 연합군이 나당연합군과 맞붙었다.
세 번째는 신라와 당나라 간의 치열한 전쟁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해전으로 신라는 비로소 대당 전쟁을 승리로 끝맺었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뤘다.
땅에 스며든 이런 역사는 실체로 남아 있는 게 없으니 눈으로 볼 것도 없다. 이 역사의 현장에 관광객들의 발길을 닿게 한 건 서천시가 울창한 송림 숲의 해안가에다 놓은 ‘스카이워크’ 덕이다.
서천시는 버려져 있다시피 한 울창한 솔숲을 산림욕장으로 단장하면서 해안가에다 높이 15m, 길이 250m의 스카이워크를 놓았다. 철망으로 마감한 바닥이 오금을 저리게 하는 길 끝을 바다 쪽으로 끌어내 전망대를 조성하곤 그곳을 ‘기벌포해전전망대’로 이름 붙였다.
근래에 유행처럼 전국 여기저기에 들어서고 있는 스카이워크가 대부분 조망만을 내세우고 있다면, 여기 서천 장항의 스카이워크는 역사를 딛고 서 있다.
장항의 스카이워크가 다른 곳들보다 더 각별한 건 전망대가 조망하는 곳이 풍경이 아니라 역사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스카이워크를 딛고 서서 보는 기벌포 앞바다는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비장하고 장엄하다.
아 참, 기벌포 전망대의 입장료는 2000원이다. 고작 250m의 스카이워크를 놓아두고 입장료를 받느냐고 시비하지 않기를…. 매표소에서 입장료 전액을 서천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으로 고스란히 돌려준다.
상인들도 상품권을 반긴다. 전망대 앞 노점의 뻥튀기 장사도 이 상품권을 돈 대신 받았는데 장사가 여간 잘되는 것이 아니었다.
▲충남 서천의 장항 해변에 설치된 스카이워크 끝의 기벌포해전전망대. 해안으로 내민 이 전망대에 올라 마주하는 바다가 최초의 동아시아 국제전쟁이 벌어진 기벌포의 바다다. 장항 스카이워크는 바다와 솔숲의 경계쯤에다 15m 높이로 놓은 250m 길이의 보행용 덱이다. 철망으로 바닥을 마감해 덱에 올라서면 고도감으로 아찔하다.
# 갯벌 매립과 맞바꾼 생태 공간
기벌포 전망대와 송림을 끼고 있는 드넓은 백사장과 갯벌이 바로 ‘장항 갯벌’이다. 지난 2007년 5월 서천군은 계획된 374만여 평의 갯벌 매립 대신 정부가 대안으로 제안한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장항국가생태산업단지 조성 등을 선택했다. 대단위 갯벌 매립을 포기하고 ‘갯벌 보전과 생태산업 중심’으로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그 결과는 장항의 백사장과 갯벌에서 목격하는 바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광활한 갯벌에는 달랑게들이 동글동글 빚어놓은 모래가 한가득이다. 긴 해안선을 따라 갯벌 생물들이 저마다 분주하다.
전망대 아래 해변을 끼고 있는 솔숲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곰솔이 울창하다. 이 숲길을 따라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온몸이 청량감으로 푸르게 물들 것만 같다.
갯벌 매립과 바꾼 것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국립생태원이었다. 2014년 개관한 생태원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열대지역과 사막지대, 온대지역, 극지방의 다양한 동식물을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동물원과 식물원의 미래’다. 동물을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서도, 식물을 얽어매지 않고서도 얼마나 훌륭한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둬놓고 보여주는 건 뱀과 파충류가 대부분인데, 아마도 관람자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들만을 선택한 듯하다. 누구도 맹독의 방울뱀 등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그게 올바른 것인지 여부를 떠나서 ‘영리한’ 선택이다.
국립생태원의 유일한 흠이라면 부지가 너무 넓다는 것쯤이겠다. 실내 전시공간인 에코리움은 물론이고 인공 연못 주변의 깊은 갈대숲도, 청개구리들이 텀벙거리는 연못도, 잘 다듬은 조경도 모두 훌륭하다.
국립생태원으로 나들이 나온 어린이들은 생태를 주제로 조성해 놓은 놀이터를 가장 즐거워했다. 이 정도라면 자녀와 함께 수도권에서 이곳만을 목적지로 삼아 다녀올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
# 마량…성경이 처음 전해진 곳
서천에서는 마량포구를 빼놓을 수 없겠다. 만(灣)을 이루며 바다를 향하는 곶이 길게 이어진 서천의 마량포구에서는 내만의 바다 위로 해 뜨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곶 반대편 서쪽 해안에서는 바다 너머로 지는 해까지 볼 수 있으니 일출과 일몰을 한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셈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마량포구에 관광객들이 몰리는 건, 그해의 마지막 낙조와 이듬해의 첫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한자리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는 것만 빼고 나면 마량포구는 이렇다 할 게 없다. 명성만큼 경관이 빼어난 것도 아니다. 포구 뒤쪽으로 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데다 포구는 어수선하다.
서해안의 작은 포구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해마다 인구는 줄고, 고기잡이도 신통치 않다. 근래에는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뜸해져 포구는 활력을 잃었다.
지난해 9월 마량포구 한쪽에 200년 전의 영국 함대 함선을 재현해 놓은 공원이 들어섰고,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지중해풍의 건물에 ‘성경전래지기념관’이 들어섰다.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성경이 이곳을 통해 들어왔음을 기념하는 공원과 기념관이다. 신도 입장에서는 좀 다르겠지만, 개신교의 경우 전래를 기념할 만한 일반적인 공간을 찾기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특별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쯤 성경이 이곳 마량포구로 처음 들어왔다. 성경을 가장 먼저 이 땅에 전해준 이는 뜻밖에 선교사가 아니라 영국 함대의 선장이었다. 영국 함대의 선장과 조선의 수군 장교와의 흥미진진했던 이틀 동안의 만남이 이곳에서 있었다.
성경을 전해준 영국 함대의 선장이 남긴 여행기의 기록과 성경을 넘겨받은 이를 조사해 남긴 규장각 도서 일성록에 그날의 만남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이 기록으로 그날의 시간을 복원해 보자.
▲서천의 국립생태원 전시공간인 에코리움. 동물이나 식물을 가두거나 얽어매지 않고도 얼마나 훌륭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 성경이 전해진 200년 전의 시간으로
200여 년 전인 1816년 9월 4일 오후 3시. 마량포구 앞바다에 영국 함대 소속 배 두 척이 닻을 내렸다. 조선인이 목격한 최초의 이양선(異樣船)이다. 235t짜리 배 리라호가 선두에 섰고, 리라호의 네 배쯤 되는 1101t 거함 알세스트호가 뒤를 따라 들어왔다.
이 두 척의 배는 7개월 전 동인도회사 상업보호를 위해 중국 사절단으로 파견한 윌리엄 애머스트 경 일행을 태우고 영국을 출발했다. 브라질을 경유하는 6개월에 걸친 긴 항해 끝에 중국에 도착해 임무를 마친 두 척의 배는 본국으로부터 ‘조선 서해안 일대를 탐사하라’는 훈령을 받는다. 훈령을 받은 영국 함대는 조선의 서해안을 찾아 들어와서 마량에 처음 닻을 내렸다.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배가 마량포구 앞에 나타나자 조선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당시 마량은 성을 쌓고 수군이 진주해 있던 군사기지였다. 수군 부대의 대장 격인 마량첨사 조대복, 그리고 지금으로 치면 군수격인 현감 벼슬의 이승렬이 판옥선을 타고 닻을 내린 영국 함선으로 향했다. 영국 함대와 조선 관료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배 위에서 마주 선 영국함대의 바실 홀 선장과 조대복, 이승렬 일행은 서로 난감했다. 단 한마디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에게 정중했고 우호적이었다. 홀은 조대복과 이승렬 일행이 조정에 올릴 보고서 작성을 위해 배를 조사하는 데 적극 협조했다.
대포를 직접 쏘아 보기도 했고, 탄환을 살펴보라고 내주기도 했다. 홀은 배 이곳저곳을 살피며 세심하고 꼼꼼하게 기록하는 조대복과 이승렬의 성실함에 탄복해 훗날 자신의 여행기에서 조선 관료의 치밀함을 찬탄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튿날 홀은 조대복과 이승렬을 아침 식사에 초대했다. 체리 브랜디와 럼주가 곁들여진 융숭한 식사였다. 식사 후 조대복과 이승렬이 선장실에 꽂혀 있던 책에 관심을 보였고 이를 눈치챈 홀은 책을 선물했다. 이승렬이 먼저 뽑아 든 건 값비싼 브리태니커 사전이었으나, 홀은 대신 성경책을 선물로 전달했다.
이게 바로 조선 땅에 최초로 전해진 성경이었다. 이 대목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건 성경책을 받은 이승렬이 답례로 부채를 건네주던 상황이다. 이승렬은 테이블 밑으로 ‘매우 비밀스럽게’ 맞은편에 앉은 선장을 쿡쿡 찔러 답례로 부채를 건네주었다.
# 아무도 읽을 수 없었던 성경의 의미
▲ 200여 년 전 우리 땅에 처음 들어온 성경책과 같은 판본의 책. 성경전래지기념관에 전시된
이 책은 자그마치 3억 원에 미국에서 사온 것이다.
홀이 떠난 뒤 조선의 조정은 부실한 조사의 책임을 물어 조대복과 이승렬을 파직했다. 이양선을 붙잡아 두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수십 기의 대포로 무장한 배를 과연 무슨 수로 억류할 수 있었을까. 홀마저 탄복할 정도로 성실하게 제 임무를 수행했던 두 명의 관료는 그렇게 억울하게 관직을 잃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받아온 성경은 어떻게 되었을까.
성경책의 뒷얘기는 정약용의 ‘다산 시문집’에 실려 전한다. 정약용은 “책은 가로 세로로 아주 작은 글씨로 되어 있는데 2품 이상의 재상들이 모여 보고 나서 몇 장씩 뜯어다가 집안사람들에게 주었다”고 적었다.
영어를 읽을 수 없어 그게 무슨 책이고, 거기 무슨 글이 적혔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니 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도 읽지 못했고, 뜯겨져 사라져버렸으니 그게 어떤 책이었든 무슨 상관이었을까. 그러나 마량포구 앞바다에서의 첫 성경의 전래는 다만 ‘전해졌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홀은 귀국 후 조선항해 경험을 여행기로 남겼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영국에서 은둔의 나라 조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홀의 항해기에 등장하는 ‘성경을 조선인들에게 전해줬다’는 한 줄의 글은 영국의 선교사들이 조선을 찾아오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전해진 성경은 뜯겨 사라졌지만, 그 성경 전래의 기록이 영국 사회에서 조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조선의 선교를 이끌어냈던 것이었다.
성경전래지기념관 인근에 아펜젤러 순직기념관이 들어선 것도 의미심장하다. 1885년 언더우드와 함께 한국에 선교사로 부임한 아펜젤러는 1902년 8월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 번역자 회의 참석을 위해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가다 어청도 앞에서 충돌사고로 배가 침몰해 사망했다.
동행했던 조선인 통역사와 여학생을 구하려다 익사했던 것이다. 감리교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해 어청도에서 가장 가까운 서천 마량포구 안덕에 기념관을 세웠다.
# 한 권에 3억 원짜리 성경책
성경전래지기념관은 기독교 신자뿐만 아니라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이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롭다. 은둔의 나라 조선이 제국을 꿈꾸던 영국과의 첫 만남이란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영국의 함대와 조선 관료의 당혹스러웠을 만남이 충실한 기록과 세밀한 설명으로 생생하게 재현돼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눈에 비친 이방인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무엇보다 기념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홀이 건넸다는 것과 똑같은 판본의 성경책이다. 1611년 발간된 최초의 영어 완역판 ‘킹 제임스 성경’. 두툼한 가죽 표지의 킹 제임스 성경은 영국의 제임스 1세가 왕위 즉위 후 최고의 성서학자 54명을 임명해 필사본을 모아 7년 만에 펴낸 것으로 성경사(史)에서도 의미 깊은 책이다. 이 귀한 책을 어떻게 구했을까.
구입 경위 인즉 이렇다. 지난 2015년 성경전래지기념관을 착공하면서 서천군은 1611년판 킹 제임스 성경 찾기에 나섰다. 이 판본은 초기 300여 권이 발간됐으며 세계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30권 안팎. 그중 거래되는 건 5∼6권에 불과했다.
수소문 끝에 미국 피닉스주의 고(古)성경박물관이 이 책을 소장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후 세계적인 경매사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전문 감정가로부터 1개월에 걸친 감정을 통해 진품임을 확인받고 이 성경책을 구입했다. 기념관에 전시된 성경책의 가격은 3억 원. 함께 구입한 비슷한 시기의 성경책 세 권을 합친 가격의 두 배가 넘는다.
성경 전래의 의미는 사실 전래된 성경 자체보다는, 홀이 펴내 조선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낸 베스트셀러 항해기 ‘조선 서해안과 유구(오키나와) 항해기’와 군의관 존 매클라우드가 남긴 ‘조선해역 및 유구열도 항해기’에 있다. 기념관에는 이 두 항해기의 초판본도 전시돼 있다. 특히 매클라우드가 펴낸 여행기에는 영국함대의 선장과 조선인 관료의 첫 만남 장면이 생생한 삽화로 묘사돼 있다.
서천은 전쟁과 종교, 그리고 식민지 압제가 지나간 땅이다. 사실 우리 땅 어딘들 그런 기억이 없을까. 서천이 이렇게 제 땅에 새겨진 오래전의 기억을 하나둘 살려내고 있는 건, 매립과 간척 대신 보전과 생태의 가치를 선택하면서 시작된 노력 때문이 아닐까. 서천이 제 땅에서 더 찾아낼 것들이 기대되는 건 그래서다.
◇ 마량포구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IC로 나간다. 춘장대IC 삼거리에서 웅천·주산 방면으로 좌회전하자마자 구복교회를 지나 다시 좌회전해 주원로를 타고 가다 배다라 낚시터를 끼고 우회전해 607번 지방도로로 갈아탄다.
이어 바다를 왼쪽으로 끼고 직진하면 마량포다. 성경전래지기념관은 마량포구를 굽어보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다. 마량리 마을 초입의 더 높은 언덕 위에는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이 있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장항송림산림욕장 북쪽 끝에 서천유스호스텔(041-956-0003)이 있다. 유럽풍의 붉은 기와와 흰 벽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다. 송림산림욕장 산책로와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가까이 있다. VIP룸 2인실이 4만 원, 일반 유스룸은 3만5000원이다.
유스호스텔이라 8인실(10만 원)도 갖추고 있다. 춘장대해수욕장 쪽에는 펜션이 여럿 있다. 여름철 성수기만 아니라면 예약 없이도 쉽게 방을 잡을 수 있다. 서천에는 캠핑장이 곳곳에 있다.
장항송림산림욕장에 솔바람캠핑장(041-956-6769)이 가장 추천할 만하다. 희리산 자연휴양림 캠핑장(041-953-2230)이나 춘장대의 나드리캠핑장(010-5450-2988)과 오토캠핑장(010-4177-7836)도 인기 있는 곳이다.
서천의 맛집으로는 해물탕을 내는 서해안해물(041-956-7500), 아귀탕과 아귀찜으로 이름난 할매온정집(041-956-4860), 녹두삼계탕으로 알려진 남경가든(041-953-7612) 등이 손꼽힌다.
전복탕과 생선회를 내는 미정(041-951-7773)과 영양밥과 궁중비빔밥 전문인 육육구이(041-952-6692)도 지역주민이 알아주는 곳들이다. 모둠물회는 자연횟집(041-957-0019)을, 꽃게장은 섬마을 횟집(041-951-9918)을 추천한다. 생선구이는 금강하구둑에서 멀지 않은 서천생선구이가게(041-956-0292)가 괜찮다.
'▣新八道(신팔도)*紀行錄 > ⊙충남 대전****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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