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도(長古島)ㅡ제주 해녀들이 원정 오는 ‘충남의 제주도’
▲충남 대천에서 뱃길로 약 1시간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장고도는 멀리서 쳐다보면
섬의 모양이 얼핏 장구처럼 생겼다 하여 장구섬이라고도 불렸다. 드론으로 촬영한 장고도 전경. 이재언 제공
미리 밝혀두자면, 난 오늘의 주인공 장고도와 참 인연이 많은 편이다. 지인이 이 섬에 살고 있는 까닭에, 두 번이나 여수에서 등대호를 타고 바닷길을 달려오다 이 섬에 잠시 정박해 섬을 꼼꼼하게 답사한 기억이 다시금 새롭다.
2013년 8월엔 일행들과 인천을 향해 항해하던 중 장고도에 하루 머물렀다. 주민들이 염전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소금을 만드는 모습을 카메라에 고이 담았다. 대부분의 주민은 어업에 종사하면서 민박집도 운영한다. 섬의 골목엔 젓갈을 담아놓은 젓갈통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봄에는 까나리, 여름엔 새우를 잡아 젓갈을 담는 게 가장 큰 수입원이라고 한다.
젓갈통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은 그만큼 이 섬에 해산물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신호다. 풍성한 해산물 덕인지 주위에 부자마을로 알려진 섬. 장고도는 바로 그런 섬이다. 장고도.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딸린 이 섬은 대천에서 뱃길로 약 1시간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멀리서 쳐다보면 섬의 모양이 얼핏 장구처럼 생겼다 하여 장구섬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현재의 이름이 굳어진 건 1910년. 장고도는 대천 앞바다의 섬들 가운데 북쪽에 위치한 편이라 북풍을 가장 많이받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밀려온 파도 덕분에 멋있는 해수욕장을 선물로 받았다. 가끔씩 사람들이 장고도를 ‘충남의 제주도’라 부르는 까닭도 여기 있을 게다. 때론 ‘황금의 섬’이라는 다소 과분한 별명도 붙곤 하는데, 아마도 유독 해산물이 풍부한 이 섬의 특징 때문이리라.
▶해삼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
실제로 장고도는 여름만 되면 제주도 해녀들이 원정을 오기도 한다. 비밀은 바로 해삼. 장고도는 충남 지역에서 해삼이 자라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장소로 평가받는다. 청정해역에다 수심이 적당해 수많은 해삼이 돌 틈 사이에서 자란다. 제주도 해녀들이 이곳에 원정 오더라도, 이들이 잡은 해삼은 4 대 6의 비율로 배분해 현지 주민 몫이 더 많다고 한다.
해마다 주민들이 챙기는 몫은 가구당 600만~1000만원 정도. 충남도청에서 주민들의 수익사업을 위해 해삼 양식장을 만들어주고 관리한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해삼은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편이다. 거의 모든 중국 요리에 해삼이 들어갈 정도다. 이런 이유로, 장고도에서 잡은 해삼은 말려서 전량 중국에 수출한다.
▲장고도 해변 풍경. 물이 빠지면 바닷길이 열려 네 개의 무인도인 명장섬까지 걸어갈 수도 있다. 이재언 제공
장고도를 비옥하게 만드는 선물은 해삼만이 아니다. 전복과 홍합, 바지락 등의 수확도 다른 섬에 견줘 월등하게 많다. 주민들은 물이 많이 빠지면 갯벌로 나가 바지락을 캔다. 해마다 마을에서는 종패를 뿌려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정해진 날에만 갯벌에 나가 작업할 수 있다. 힘이 좋은 사람은 40㎏ 정도 캐지만 힘이 없는 노인네들은 그닥 많이 캐지 못한다.
그래도 주민들은 공동으로 작업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요령을 부리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없다. 이밖에 마을의 논에서는 주민들이 자급할 정도의 쌀도 수확하고, 소금도 많이 나오는 편이다.
한때 많은 주민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뭍으로 나갔으나, 언젠가부터는 주민들의 수익이 늘어나면서 고향을 등졌던 젊은이들마저 하나둘씩 돌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폐교 직전까지 몰렸던 초등학교 분교엔 이제 학생이 12명으로 늘었다. 잘 포장된 해안도로를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며 경주를 벌이는 모습이 너무 정겹다.
▲주민들이 갯벌에서 바지락 등을 캐는 모습. 이재언 제공
섬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선착장 앞쪽으로 보이는 큰 섬은 안면도. 해안탐방로 구간은 대머리 선착장에서 시작되는데 여기서 명장해수욕장까지는 1.25㎞ 거리. 잘 정비된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명장해수욕장에 발길이 이른다.
명장해수욕장에는 잘 알려진 명장섬이 있는데, 아주 작은 네 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자녀들의 체험 학습이나 가족나들이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물이 빠지면 명장해수욕장에서 명장섬까지 바닷길이 열리므로 걸어갈 수도 있다. 고둥, 조개, 게 등을 잡을 수있어 생태체험학습에 그만이다.
장고도 자랑거리가 어디 이뿐이랴. 200여년 전부터 내려오는 등바루놀이는 장고도가 자랑하는 문화전통이다. 해마다 4월 초에 벌이는 등바루놀이는 옛날부터 이 섬에 전해져 내려오는 처녀들의 집단놀이다. 마을 처녀들은 놀이 하루 전날 바닷가에 둥근 돌담(등바루)을 쌓는데, 돌담 안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바다 쪽을 향해 너비 1m 정도를 터놓는다.
놀이 날이 되면 처녀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조개 등 어물잡기 시합을 벌이고, 점심때가 되면 이긴 편과 진 편을 가린 뒤돌담 안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동그란 원을 만들어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노래와 춤을 춘다.
어찌 보면 일종의 성년식 성격의 놀이라 할 만하다. 지금도 이런 전통은 이어진다. 등바루놀이 이외에도이 섬엔 진대서낭제, 용왕제, 등불써기 등 다양한 전통놀이 흔적이 남아 있다
▲장고도엔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이재언 제공
▲장고도 선착장. 태안에서 뱃길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이재언 제공
▶까나리액젓 파는 장고도교회
주민들 가운데 재미있는 사연을 간직한 분들도 많다. 지금까지 21년간 장고도교회를 지켜오고 있는 두 여성 콤비, 석영화(67) 목사와 이영자(65) 전도사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대천의 녹도교회에서 17년을 함께 일했고, 21년째 장고도를 지키고 있다.
두 사람이 팀을 이룬 지 어느덧 37년의 세월이 흘렀다. 석 목사는 1981년 이웃섬 녹도에 부임했는데 이듬해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다름 아니라 주민들이 배를 타고 나가 가득 잡아 온 까나리를 처치하지 못하고 다 버린 것을 본 것. 그러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적당하게 소금을 섞어서 까나리액젓을 만들어 전국의 교회에 공급해봤다.
처음엔 소규모로 벌인 일이다. 이후 주민들의 요청으로 10리터짜리 용기에 넣어 10년 동안이나 김장철마다 승용차로 싣고 다니면서 전국 곳곳의 교회에 공급했다. 이 일은 녹도 섬 경제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고, 석 목사는 졸지에 까나리액젓의 전문가가 됐다. 많은 때는 2000개에서 2500개 정도 물량을 댔다고 한다.
녹도 주민들의 안정적인 판로가 열린 터라, 장고도로 옮겨오는 발걸음도 홀가분했다. 석 목사는 장고도 교회에 옮겨와서도 녹도 시절처럼 액젓을 만들어 내다팔았다. 어쩌면 두 사람의 이야기는 교회가 영혼 구원뿐 아니라 주민들의 삶에 밀착해 그들의 현실을 구원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아닐까, 잠시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소금창고에서 한 주민과 이야기를 하는 석영화 목사(오른쪽). 이재언 제공
출처 / 한겨레닷컴 / 이재언 국립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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