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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八道(신팔도)*紀行錄/⊙제주 자치도**기행

제주도ㅡ서귀포 카페기행ㅡ화가 이중섭 거닐었을 서귀포 몽마르트르의 커피향 ‘예술이야’

by 삼수갑산 2022. 2. 17.

서귀포 카페기행

화가 이중섭 거닐었을 서귀포 몽마르트르의 커피향 ‘예술이야’

▲서귀포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 불리는 이중섭 거리에는 여행객들의 눈길을 끄는 카페들이 많다.

카페 메이비의 분위기 좋은 창가. 유동커피, 빌라드 아토.

 

예술가가 있는 곳에는 늘 카페가 있다. 대표적인 곳은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Montmartre)이다.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고흐, 미술사상 가장 뛰어난 판화가 중 한 명인 툴루즈 로트레크 등은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그들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었다. 그들의 흔적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의 관광객이 그곳을 찾는다.

 

서귀포에도 몽마르트르언덕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이중섭 문화거리이다. 이곳은 이중섭 생가를 중심으로 150m 정도 되는 작은 언덕의 거리다. 대향 이중섭(1916~1956). 윤동주와 이상이 그랬듯이 그 또한 요절한 예술가이기 때문일까? 이중섭을 생각하면 연민과 안타까움을 동반한 그리움의 감정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전쟁과 광기의 시대, 1951년 1월 이중섭은 원산에서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피난을 와 이곳에서 1년 남짓 머물렀다. 화순항을 거쳐 서귀포에 들어온 이중섭은 정방동 솔동산 마을의 반장이던 송태주에게 작은 방 하나를 빌렸다. 패션 화보 같은 이생이 어디 있겠나 싶다가도 몸을 뉘었을 1.4평짜리 방을 보고 있으면 화가의 궁핍한 생활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에 슬픈 이슬이 맺힌다.

 

그는 서귀포에서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같은 소중한 그림을 얻었다. 이중섭문화 거리는 이중섭이 실제로 산책하거나 스케치를 하러 오간 길이다.

 

그가 오갔던 상점과 음식점은 이제 없지만 이중섭 미술관과 이중섭창작센터를 중심으로 공방, 소규모 갤러리, 창작 공간, 카페, 음식점, 벽화 등이 어우러져 있다. 그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단연 카페들이다. 카페에 예술가와 여행객 그리고 시민들이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은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볼법한 장면이다.

 

▲유동커피

 

이 거리에는 여러 카페가 있는데 서귀포 출신 토박이가 운영하는 카페들이 많다.가장 대표적인 곳은 단연 카페 메이비(may飛)다. 주인장 이혜연 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고향인 서귀포로 내려와 동생 이시아 씨와 함께 어머니가 40여 년 동안 운영하던 꽃집 옆에 카페를 열었다.

 

카페는 진솔하면서도 자유스럽다. 흐트러진 채 정리된 책들과 직접 그린 그림으로 공간을 장식했고, 카페 곳곳에는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꽃으로 채웠다.

 

커피의 진한 향과 꽃내음은 금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예술가, 도민, 여행객이 모여들면서 메이비 만의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뮤지션들은 작은 연주회를 열었고, 화가와 사진가들은 전시회를, 작가들과 시민들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카페란 공간을 넘어서 사람들의 소통 공간, 문화와 사람이 연결하는 공간이 되었다.

 

작년에는 이중섭 거리 내에 다른 공간으로 장소를 옮겼지만, 매력적인 메이비만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메이비 건너편 ‘빌라드 아토(villa de ato)’도 눈여겨 볼만하다. 산뜻한 파스텔 색조의 분홍빛과 보랏빛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엔 2층 테라스에 싱그러운 장미가 활짝 피어난다.

 

마치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 어느 거리에 있을 법한 모습이다. 이 카페의 주인장 최수현씨는 조소과를 졸업한 서귀포 토박이로, 서귀포에서 카페를 수년째 운영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꽃으로 치장된 샹들리에까지 모두 주인장이 직접 꾸민 것으로, 프랑스의 어느 카페에 앉아 있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 곳 딱새우 튀김이 들어간 샌드위치는 그 맛이 일품이다.

 

유동커피 또한 서귀포 출신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이다. 이곳은 커피 맛으로만 승부하는 곳으로 여행객보다는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카페이다. ‘유동커피’라는 카페명은 주인장 이름인 ‘조유동’에서 따왔을 만큼 커피 맛에 대한 주인장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블렌딩 커피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진한 맛이 느껴지는 초콜릿 계열의 커피와 산미 위주의 커피와 헤이즐넛 등이 있다. 이색 메뉴로 붕어 모양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다금바리 빙수도 있다.

 

고흐와 툴레즈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몽마르트르 어느 카페에서 그들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 갔다. 이중섭 문화거리에는 이중섭이 애용했던 카페는 없지만, 이중섭의 예술을 사랑한 서귀포 토박이들이 만든 카페들이 있다.

 

이 카페에서 제2의 반 고흐, 이중섭이 탄생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서귀포의 몽마르트르 언덕, 이중섭문화 거리에서 예술과 진한 커피 향을 느껴보자.

 

▲빌라드아토

 

메이비_서귀포시 이중섭로 34 전화_070-4143-0639 영업시간_10:00~24:00 휴일_없음

빌라드 아토_ 서귀포시 태평로 413 전화_064-763-7374 영업시간_10:00~19:00 휴일_목요일

 

유동커피_서귀포시 태평로 406-2 전화_064-733-6662 영업시간_ 08:00~22:30 휴일_없음

 

출처 / hankyoreh.com / 글·사진 문신기 작가

[만물상]  이중섭 아내 이남덕

화가 이중섭과 일본인 아내 이남덕(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의 첫 만남은 여느 청춘 남녀처럼 풋풋했다. 원산에서 일본에 유학 간 부잣집 아들 이중섭은 학교 후배 마사코에게 첫눈에 반했다. 웃음 많고 활달한 이중섭이었지만 그녀 앞에선 말문이 막혔다.

 

보다 못한 친구가 자기 생일이라 속여 두 사람을 초대한 뒤 둘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중섭은 연애 시절에도 소를 그렸다. 1940년 작 ‘소와 여인-정령1′에 여인과 그녀 몸에 머리를 기댄 소를 그려 넣었다. 누가 봐도 사랑 고백이었다.

 

▶둘의 사랑은 이중섭이 일제의 징병을 피해 원산으로 돌아갔을 때 끝날 뻔했다. 그러나 이중섭이 보낸 ‘결혼이 급하다’는 편지를 받은 이남덕은 1945년 4월, 소를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살려고 관부 연락선을 오작교 삼아 바다를 건넜다. 전쟁 중 목숨 건 뱃길이었지만 “죽는 게 두렵지 않은 여행이었다”고 했다.

 

▶6·25 중이던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이중섭의 목적은 단 하나, 가족과의 재회였다. 그로부터 행려병자로 죽기까지 4년간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읽는 이를 목메게 한다.

 

‘이 세상에 나만큼 아내를 사랑하고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글을 쓸 줄 알게 된 아들로부터 첫 편지를 받아 든 감격도 담았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도무지 잘 안 되는구먼요. 어떻게 쓰면 아이들이 기뻐하겠는지.’

 

▶희망과 절망은 손등과 손바닥이다. 뒤집히면 극단을 오간다. 하루를 국수 한 그릇으로 버티면서도 ‘작업에 몰두하면서 어떻게 하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온통 그 생각뿐’이라던 이중섭은 1955년 서울과 대구 전시회가 잇달아 실패하자 허물어졌다. 일본에 갈 수 없게 됐다는 절망에 음식마저 끊었다. 아내가 보내온 편지도 열어보지 않았다.

 

▶2016년 6월 서울서 열린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이남덕 여사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 편지에서 ‘다시 태어나도 함께할 거예요, 우린 운명이니까’라 적었던 이 여사가 지난달 101세로 별세한 사실이 그제 알려졌다. 임종은 병원에서 맞았지만 살던 집은 이중섭이 편지 200여 통을 보낸 도쿄 세타가야 주소지 그대로였다.

 

이 여사는 이중섭과 7년을 함께했고 70년을 홀로 살았다. 그 세월을 버틴 사랑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이 여사는 ‘잘생겨서 좋아했다’던 이중섭을 만나러 마지막 오작교를 건넜을 것이다. 다리 끝에서 남편이 두 팔 벌려 아내를 맞이했을 것이다.

 

출처 / chosun.com /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