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도(大靑島)ㅡ바다와 소나무가 함께 노래하는 푸른 섬 대청도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3시간 가량 걸려 도착하는 대청도 전경 / 옹진군제공
▲대청도의 자랑거리인 옥죽동 모래사막. 서해의 거대한 겨울 파도가 물밀듯이 옥죽동 해변으로 밀려오면서 모래들이
오랜 세월 동안 해변과 산자락에 날려서 쌓인 것이 지금의 모래밭으로 변했다. 사막의 정취를 살리겠다며 모조품 낙타
2마리를 가져다놓았다. 이재언 제공
인천광역시 서북쪽 섬. 황해도 장산곶과 불과 19㎞ 떨어진 국가안보상 전략적 요충지. 군사분계선에 근접한 서해5도 중 한 곳. 이 정도 얘기를 듣는다면, 아마도 백령도를 머릿속에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주인공은 백령도가 아니다. 인근 백령도의 유명세에 눌려 덜 알려진 섬. 그럼에도 백령도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섬. 바로 대청도 이야기다.
대청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면에 딸린 섬으로, 면적 12.63㎢에 해안선 길이는 24.7㎞에 이른다. 산지가 대부분이고, 농경지라고 해봤자 북쪽에 조금 있다. 주민들의 주업도 당연히 어업이다.
2016년 현재 724세대 134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남쪽으로 소청도, 북쪽으로 백령도, 동쪽으로 황해도 옹진군과 마주하고, 서남쪽엔 황해가 펼쳐져 있다. 옛 문헌에 의하면 원래 이 섬의 이름은 포을도(包乙島)였다가, 고려 초기에 대청도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대청도는 죄인들의 유배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당시 원나라 황실 황태자까지도 유배를 왔다고 한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충렬왕 4년(1278)에 삼별초의 난을 평정했으나 모반을 했다는 모함을 사 유배된 무신 김방경을 꼽을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고려 충숙왕 5년(1318) 원나라가 티브이(TV) 드라마 <기황후>에서 순제로 등장하는 발라태자를 대청도에 귀양 보냈다가 충숙왕 10년에 소환하고, 그 이듬해 재차 귀양을 보냈다가 소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충숙왕 17년 도우첩목아를 귀양 보냈다가 후원년(1332)에 소환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와 관련해, 1996년에 발간된 <옹진군 향리지>에는 “유배 당시의 궁궐터가 내동초등학교 터였다고 하며 내동 지명을 고쳐 장안으로, 그리고 대청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삼각산이라 불러 이곳을 자기의 도읍지라 생각하고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적혀 있다.
▶아우뻘 소청도에서 10분 거리
대청도는 백령도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녔다. 남성적인 모습의 우람한 삼각산(343m)을 중심으로 고운 모래 해수욕장과 빼어난 경관을 뽐내는 ‘신이 내린 낙원’이다. 이웃한 두 섬이지만, 느낌도 서로 다르다.
대청도는 산이 높아 길을 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각 마을을 연결하는 도로를 잘 만들어놓았다. 대청도의 일주도로는 전체 길이가 18㎞밖에 되지 않지만 볼거리가 많아 한바퀴 둘러보는 데 4시간 정도는 족히 잡아야 한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백령도행 쾌속선을 타면 3시간 후에 가장 먼저 소청도에 닿고 이후 10분 정도 더 들어가 대청도에 도착한다. 대청도의 관문은 선진포다. 배가 닿기 전에 우측으로 보이는 곳이 답동해수욕장이다. 답동이란 식량이 매우 귀하던 시절에 다랑논이 몇 마지기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대청도의 선진포 선착장에 내리면 아담한 포구에 수많은 어선이 출어 준비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미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으나, 한때 대청도는 서해의 고래잡이 전진기지였던 적이 있다. 1904년 우리나라 어업권을 침탈한 일본은 대청도 선진포에 들어와 서해상에서 고래를 잡았다.
1918년 선진항에 들어선 일본 동양포경주식회사가 1930년대 초까지 해마다 30~40마리의 고래를 포획하는 등 이곳은 전국 최대의 포경장 노릇을 했다. 대청도 근해에서 잡히는 어종도 세월에 따라 변해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엔 고래잡이가 성행했고, 1950~60년대는 조기와 까나리잡이, 1970~80년대는 홍어잡이,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우럭과 볼락 등 활어가 주력 어종이다. 대청도의 고기잡이가 예전만은 못하지만, 선진포항을 가득 메운 어선들은 대규모 선단을 이루고 있었다.
선진포에서 출발하는 일주도로는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상관없다. 먼저 들판과 해안사구가 있는 옥죽동에 가려면 도중에 꽤 높다란 고개를 네 개나 넘어야 한다. 첫번째 고개는 높이가 74m에 불과하지만 바다에서 치솟아 그런지 훨씬 높게 느껴진다. 일주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고개의 연속이다.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고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는 형국이다.
▶모래 서말 먹어야 시집 장가 간다
고개에 올라서면 양지동 들판이 펼쳐지고, 내리막으로 내려와 우측으로 가면 적송 보호림이 나타나고 그 옆에는 널따란 모래언덕이 펼쳐져 있다. 이 모래언덕은 신안군 우이도의 모래언덕과 비슷한 이치로 만들어졌다.
서해의 거대한 겨울 파도가 물밀듯이 옥죽동 해변으로 밀려오면서 모래들이 오랜 세월 동안 해변과 산자락에 날려서 쌓인 것이 지금의 모래밭으로 변했다. 모래사막은 꽤나 넓고 높게 분포되어 있는데 길이 1.5㎞에 폭은 1㎞ 정도 된다.
이 모래언덕에 정말 낙타가 있다면 중동의 사막이라 착각할 법하다. 그래서였을까. 최근에 모조품으로 낙타 2마리를 만들어놓았는데 사막 정취를 살리겠다는 취지인지 모르겠으나, 좀 생뚱맞은 느낌도 준다.
안내를 맡은 택시기사 김명익씨는 “30년 전만 해도 길이가 2㎞나 되는 커다란 규모였다”며 “해변에 경계지대를 만들고 방풍림인 소나무를 심어서 모래밭이 점점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모래가 바람에 계속 날리다보니 배수로를 막고 경작지인 밭까지 덮어 방풍림을 조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자연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다시 소나무를 베어버리고 모래사막을 조성키로 했다고 한다.?
모래언덕에 올라가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뛰기도 하고 뒹굴며 내려오기 딱 좋다. 우리나라에도 중동처럼 이런 사막이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대청도의 처녀 총각들은 결혼할 때까지 모래 서말은 먹어야 시집가고 장가를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바람에 모래가 정말 많이 날린다.
옥죽동 해안에서 벗어나면 오른쪽으로 오솔길이 하나 있는데, 농여 해안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 대청도에는 옥죽포, 농여, 사탄동, 탑동 등 해수욕장만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농여 해수욕장이 규모가 가장 크면서도 한적하고 백령도가 마주 보이는 장점을 지녔다.
다시 양지동을 지나면 대청도에서 가장 높은 사당고개(143m)를 넘어야 사탄동해수욕장에 이를 수 있있다. 힘들게 고개를 오르면 사탄동 해수욕장의 비경이 멀리 눈앞에 펼쳐진다.
사탄동 해수욕장엔 모래가 바람에 날려서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어 1㎞ 정도 고운 모래가 깔려 있고 주변에는 수백그루의 적송이 기암절벽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사탄동 해변은 너무 아름답고 한적한 숨은 명소다.
이 해변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제66호 동백나무 자생지는 우리나라에서 동백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북단이어서 의미가 더욱 크다. 이 해변은 당장이라도 풍덩 물에 빠져 수영을 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정도다.
사탄동이란 이름이 참 재미있다. ‘사탄’(沙灘)이라는 말은 어감이 좋지 않아 오래도록 기억되는 장소다. 사탄은 모래여울이라는 뜻으로 모래가 바람에 실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 여울이란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여러 기관에도 덩달아 사탄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예전엔 섬에 사탄초등학교가 존재했고, 천주교 사탄동 공소도 있다. 사탄초등학교는 20년 전 폐교돼 지금은 야영장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대형 트럭으로 모래 메꾸는 중
사탄동 해변을 지나면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오고 정자를 지나 세 번째 고개(105m)를 오르게 된다. 정자 남쪽으로 길게 뻗은 반도가 보이는데 절경의 해안절벽이다. 대청도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해안도로다. 독바위 해안을 지나서 다시 오르막길로 변하면서 네 번째 고개(117m)가 나온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일주도로의 출발지인 선진동 포구가 나온다.
아쉽지만 세 번째 방문한 대청도를 뒤로하고 소청도로 떠나야 했다. 대청면 행정선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청도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사라져가는 모래언덕이다. 옹진군에서 임시방편으로 대형 트럭을 이용해 모래를 퍼다가 사라진 곳을 채우고는 있으나, 자연적인 방법이 아니기에 예전의 기능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듯했다.
▲1㎞ 정도 고운 모래가 깔려 있고 주변에는 수백그루의 적송이 기암절벽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사탄동 해변.
옹진군 제공
▲대청도 근해에서 잡힌 홍어를 말리고 있는 모습. 옹진군 제공
▲대청도의 관문이라 할 선진포항의 설경. 옹진군 제공
▲대청도 해변에서 후리질 그물로 고기잡이를 하는 모습. 옹진군 제공
출처 / 한겨레닷컴 / [토요판.이재언의 섬]=이재언 국립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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