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Firenze)ㅡ연인들의 성지 피렌체 두오모와 두 거장의 맞대결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
신부님 왼쪽에 서시고 신랑께서는 오른쪽에서 서로 마주보세요. 여기 어딘지 아시죠?”
“글쎄요…모르겠는데요.”
“유명한 영화 촬영지예요. 나중에 보시면 압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앳된 한 쌍의 한국인 커플이 웨딩화보를 찍는다. 안타깝다. 포토그래퍼의 설명에도 커플은 이 광장을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그럴 수 있겠다.
피렌체에서 촬영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가 처음 상영된 지 20년 가까이 됐으니. 20살에 만난 준세이와 아오이는 10년 뒤 아오이 생일에 피렌체 두오모에 오르자고 약속한다.
변함없이 함께 있을 것으로 믿었기에. 우여곡절 끝에 헤어졌지만 오래전 약속을 잊지 않고 두오모 꼭대기 쿠폴라에서 재회한 두 사람. 피렌체 길을 걸으며 변치 않은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선 곳이 안눈치아타 광장이다. 많은 연인이 이 영화를 보고 피렌체로 낭만 여행을 떠난다.
예술과 사랑, 꽃보다 아름답다/‘연인들의 성지’ 이탈리아 피렌체/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무대/주인공들 재회했던 두오모 건축에 얽힌 두 거장의 스토리 흥미진진/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운명의 사랑에 빠진 베키오다리/젊은이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산 지오바니 세례당(앞)과 피렌체 두오모
▲연인들의 성지 피렌체 두오모
피렌체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로 불린다. 쿠폴라에 올라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보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냉정과 열정 사이’ 팬이 많은 한국 여행자들에게 피렌체는 이탈리아 여행의 1순위다.
피렌체 중앙역을 나서자마자 저 멀리 두오모의 둥근 지붕이 보이니 가슴이 뛰며 걸음이 빨라진다. 10분 남짓 걸으면 산 조바니 세례당과 그 뒤에 웅장한 두오모, 그리고 오른쪽에 조토의 종탑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피렌체 두오모의 원래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다. 외벽을 색칠하듯 녹색, 흰색, 붉은색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짜 맞췄는데 이름 그대로 꽃이 핀 듯 아름답다.
▲산 지오바니 세례당 기베르티 천국의 문
▲오페라 박물관 기베르티 천국의 문 진품
우리에게는 영화 때문에 유명해진 피렌체이지만 두오모 건축에 얽힌 거장들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아는 여행자는 많지 않다. 바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로 둘의 역사적인 대결인데 산 조바니 성당에서 시작된다.
단테 등이 세례를 받은 이 성당에는 3개의 청동문이 있고 이 중 두오모와 마주하고 있는 동문에 많은 여행자가 몰려 있다. 문을 장식한 정교한 조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극찬한 기베르티의 작품으로 아담과 이브의 창조 등 창세기의 내용을 10개의 부조 작품에 담았다.
▲기베르티 얼굴
1402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측은 세례당의 나무문을 교체하려고 설계를 공모했는데 당시 22살이던 견습 화가 기베르티와 한 살 많은 금세공사 브루넬레스키가 격돌했다.
구약성서 중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내용을 4엽 장식으로 만들어 1년 안에 내놓는 미션의 최종 승자는 기베르티. 계약 기간은 9년이었지만 기베르티는 21년 만인 1424년에 완성한다. 평생을 받친 셈이다. 예수의 삶을 담은 북문도 그의 작품. 하지만 3개의 문은 모두 복사품이다.
▲오페라 미술관 도나텔로 막달라 마리아
진품이 있는 인근 오페라 미술관으로 향한다. 1층에 세 개의 문을 나란히 세워놓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거장의 숨결이 느껴진다. 기베르티는 문의 여러 얼굴조각 사이에 자신의 얼굴을 마치 지문처럼 숨겨놓았으니 그의 얼굴을 찾아보자. 두오모와 종탑을 장식한 조각품 진품과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등도 있으니 꼭 들러야 한다.
▲조토의 종탑에서 바라보는 피렌체 두오모 쿠폴라
▲큐폴라를 완성한 브루넬레스키와 조토의 종탑
그럼 브루넬레스키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경쟁에서 패했지만 역사는 그를 기베르티의 앞에 세운다. 그가 바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3만t에 달하는 거대한 돔, 쿠폴라를 완성한 인물이어서다.
피렌체 정부는 산타 레파라타 대성당이 붕괴위험에 처하자 앙숙이던 시에나와 피사의 대성당을 능가하는 새 두오모를 1296년 착공한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최초 설계해 조토 디 본도네 등 많은 이의 손을 거쳤지만 바닥에서 114m나 되는 높이의 천장을
덮을 거대한 돔을 남겨놓고 난관에 부딪혔다.
발판을 놓지 못해 팔각의 기단 위에 원형 돔을 얹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에 1418년 설계를 공모했는데 이번에는
브루넬레스키가 기베르티를 제치고 승자가 됐다.
첫 대결에서 패한 뒤 로마로 건너가 이를 갈며 건축기법을 공부한 그는 달걀처럼 발판이 필요 없이 무게를 지탱하는
혁신적인 이중구조의 돔을 1434년에 완성했다.
▲두오모 쿠폴라에서 보는 조토의 종탑과 피렌체 시내
거장의 작품을 가까이서 보는 길은 매우 험난하다. 쿠폴라까지 무려 464개의 좁은 계단을 쉬지 않고 올라야 하는데 나중에는 허벅지가 찢어질 듯한 통증이 몰려온다.
준세이와 아오이가 재회하는 큐폴라에 오르면 온통 붉은색 지붕으로 꾸민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데 계단을 오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하고 남는다. 매우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특히 높이 84m에 달하는 ‘조토의 종탑’이 인상적으로 큐폴라에 올라야지만 제대로 종탑을 즐길 수 있다. 르네상스 건축의 부흥을 이끈 피렌체 화가 조토가 설계하고 제자 안드레아 피사노가 완성했는데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했을 정도로 유명하다.
▲두오모 천장 프레스코화 ‘창세기’와 ‘최후의 심판’
▲조토의 종탑에서 본 두오모 쿠폴라
큐폴라를 오르다 보면 천장 내부를 덮은 거대한 프레스코화 ‘창세기’와 ‘최후의 심판’을 만난다. 조르조 바사리와 제자들의 작품이다. 이제 큐폴라를 내려 종탑에 오른다. 꼭대기에 올라야 큐폴라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이번에도 계단은 414개. 그래도 중간중간 쉬어가는 공간이 있어 큐폴라보다는 좀 낫다.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궁
▲넵튠의 분수
▲왼쪽부터 다비드,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사비나 여인의 능욕
▲로자 데이 란치
#단테의 운명적 사랑 그리고 미켈란젤로 광장
피렌체 여행의 장점은 명소들이 몰려 있다는 점이다. 종탑에서 5분이면 시뇨리아 광장에 닿는데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등 조각품들이 몰려 있다. 물론 모두 복제품. 이곳에 있던 진품을 보려면 인근 아카데미아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다비드와 헤라클레스를 배경으로 우뚝 선 베키오궁전, 넵튠의 분수가 어우러져 여행자들의 포토명소가 되고 있다. 잠볼로냐의 ‘사비나 여인의 능욕’ 등 15개의 조각품이 늘어선 회랑 로자 데이 란치의 계단은 지친 여행자들의 쉼터다.
▲우피치 미술관
▲전시작품 카라바조 바쿠스
▲우피치 미술관 전시 작품들
베키오궁과 회랑 사이 골목에 우피치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메디치 가문은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하며 그들의 작품을 이곳에 모두 모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카라바조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피카소가 매일 찾아와 데생한 것으로 전해지는 우첼로의 ‘산 로마노의 전투’도 만나게 된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내려다 보는 베키오다리
▲베키오다리
우피치 미술관을 나서면 자연스럽게 피렌체의 명물 아르노강과 베키오다리로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기 전 카페에 앉아 젤라토와 초콜라테를 즐기니 달콤함에 피로는 달아난다. 다리 주변에는 인증샷을 남기며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하는 연인들의 달콤함도 넘쳐난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곳이 바로 베키오다리여서다. 초록 빛깔 아르노강과 푸른 하늘, 고풍스러운 건물이 얹어진 베키오다리가 어우러지니 낭만이 가득하다. 정작 베키오다리 위로 올라서면 별로 볼 것은 없다. 원래 푸줏간들이 있었는데 16세기부터 들어선 보석상들만 가득할 뿐이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보는 피렌체 두오모와 베키오다리
피렌체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 내려다보는 피렌체의 야경이다. 베키오다리에서 20여분 걸어야 하지만 걷기를 추천한다. 아르노강 풍경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어서다. 이름은 광장이지만 높은 언덕이다.
시간을 잘 맞춰 올랐나 보다. 노을이 아르노강을 점차 붉게 물들인다. 두오모, 종탑, 베키오궁과 베키오다리, 아르노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광장에 오르기 전 슈퍼마켓에서 눈에 쏙 들어오는 이탈리아 와인이 있기에 한 병을 샀다. 와인 이름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플라스틱컵에 한 잔 마시며 거장들이 가득한 피렌체를 내려다보니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완성하는 듯하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
아! 연인들은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에서 영화처럼 마주보며 꼭 사진을 찍도록. 아주 유치하지만 피렌체를 오래 기억하는 좋은 방법이다. 소가죽 제품과 티본스테이크도 유명하니 잊지 말자.
야경을 즐기려 시뇨리아 광장으로 다시 향한다. 회랑 조각상을 배경으로 버스킹 연주자의 기타 선율이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공교롭게도 이탈리아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의 ‘타임 투 세이 굿바이’. 이제 피렌체를 떠날 시간인가보다.
안녕!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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