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동 아시아*****국가들/⊙이스라엘***기행

이스라엘ㅡ예루살렘(Jerusalem)ㅡ시온산.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

by 삼수갑산 2021. 8. 26.

예루살렘(Jerusalem)ㅡ시온산.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1495 -1497)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460㎝X 880㎝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의 재능이 완벽하게 종합된 작품이다. 교묘하게 그 위치가 정해지고 계획된, 이 작품은 산타 마리아 수도원 식당의 북벽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신실한 수도자들이 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그들 위로 예수와 열두 제자는 영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레오나르도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예수를 감싸게 하고 다른 인물들보다 예수를 살짝 더 크게 그리는 방식으로, 제자들 틈에 있는 예수의 위상을 교묘하게 강조하였다.

 

레오나르도는 제자들이 누가 배신할 것인지를 예수에게 묻는 순간을 선택함으로써, 벽화에 인간적인 드라마를 불어넣었다. 화가는 당시 사람들이 즐겨 사용했던 상징물에 의지하지 않고, 각 제자들의 반응을 통해 각각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식별할 수 있게 하였다. 

 

▲시온 게이트, 예루살렘 안쪽, 사람이 나오는 쪽으로 들어가면 시온산

 

▲시온 게이트 출입구

 

▲시온 게이트 출입구, 시온산 쪽에서

 

▲길이 끝나는 지점에 보이는 대문이 현재 작은 형제회 "최후의 만찬 기념" 수도원

 

▲수도원 정문,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은 오른쪽으로 가면 나온다.

 

▲유대인들이 수도원 정문에 낙서 한 모습

 

▲수도원 후문

 

▲시온산 최후의 만찬 수도원

 

시온산은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만찬을 행하셨으며 부활하신 후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발현하셨으며, 승천하신 후에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성령강림) 교회의 발상지가 된 곳이기에 아주 소중한 성지이다.

 

또한 성령강림 때에 성모님은 사도들과 함께 이곳에 계셨으며 이곳에서 사시다가 돌아가셨다고 교회 전승은 전한다. 시온산은 335년 골고타와 예수님 무덤 위에 “부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예루살렘의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중심지였으며 주교좌가 있었던 곳이다.

 

시온산 위에 지어진 4세기초의 대성전은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고, 그 후 십자군 시대에 다시 최후의 만찬 기념성전(Coenaculum)을 지었지만 다시 이슬람에 의해 파괴 되었다.

 

그 후 폐허가 된 이곳을 1333년 나폴리 왕이 이집트 술탄으로부터 매입하여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 봉헌 하였고,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서는 이 부지에 수도원과 고딕식 양식의 2층 기념 성전을 지어‘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 ’이라고 불렀고, 이곳 수도원을 2백 여년 동안 본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은 1551년 오스만 터키 제국에 빼앗겼고, 기념 성전은 이슬람 사원으로 변모 되었다.

 

그 후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수도원 건물은 다시 이스라엘 정부 손으로 넘어갔고, 1층은 다윗의 무덤과 시나고가와 탈무드 학교를 만들었고, 2층의 성령강림 경당은 폐쇄시키고 최후 만찬 기념 성당만 개방 하면서 성목요일과 성령강림 대축일만 말씀의 전례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다.

 

작은형제회에서는 1936년, 원래의 기념 성전 터 바로 옆에 부지를 구입하여 오늘날의 최후만찬 기념 성전과 수도원을 지었고,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최후의 만찬 및 성령강림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1495 -1497)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460㎝X 880㎝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

 

▲최후의 만찬 / 베네딕트 빈터할더(1813~1890)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44.6 x 75 cm

파리 지중해 문명 박물관 소장

 

▲최후의 만찬 / 필립 드 삼페뉴 프랑스 (1602~1674) / 루브르 박물관 소장

 

▲최후의 만찬 / 이태리 틴토레토(1560~1594) 산 조르조 마조레 교회 소장

 

▲시온산에 있는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과 마리아 영면 성전을 중심으로 한 도면

 

아래쪽 화살표 방향은 "자파 게이트"(자파 또는 요빠와 통하는 문)에서

"시온 게이트"를 거쳐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으로 가는 길을 표시함.

 

1 - 시온 게이트. (1번 시온 게이트 아래쪽이 구 예루살렘 안쪽이고,

1번이 표시된 성곽 위 쪽은 현재 예루살렘 성곽 밖에 위치한

시온산)

 

2 -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묘지

 

3 - 1933년에 지어진 작은형제회의 최후 만찬 기념 수도원

 

4 -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 길

 

5 -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

 

6 - 성령강림 경당, 현재는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폐쇄 됨

.

7 - 성모님 영면 기념 성전 (베네딕도 수도회)

 

8 -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원 자리, 5.6.8번을 아우르는 공간은 작은형제회 수도원 이었으나

오스만 터키가 들어면 서 빼앗겼고, 현재는 이스라엘 정부 소유로 시나고가와 탈무드 학교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 참고로 3번 옆에 "Casa di Caifa"라고 되어 있는 지역이 예수님 당시의 대사제였던

"가야파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학자들이 추정하는 곳이다.

 

▲수도원 내부, 계단을 올라가면 기념 성당

 

▲수도원 정원 

 

▲수도원 정원

 

▲수도원 정원 '

 

▲시온산 수도원 기념 성전 내부, 최후의 만찬과 성령강림 미사는 이곳에서 봉헌된다.

 

▲시온산 수도원 기념 성전 내부

 

▲시온산 수도원 기념 성전 내부

 

▲기념성전 정면에 있는 최후의 만찬 기념 조각상

 

▲출입구 쪽

 

▲최후의 만찬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최후의 만찬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성모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한 성모님의 모습(두 팔로 가슴을 감싸안은)이 인상적이다.

 

▲Pax et Bonum, 평화와 선

 

▲성체성사를 상징화

 

▲성령강림

 

▲성체성사, 빵과 포도

 

▲발을 씻기심

 

▲시온산 수도원 원장의 인장

 

성모님과 함께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받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기시는 모습이 새겨져있다. 작은형제들은 1333년 최후 만찬 성지를 확보하고 수도원을 세운 후, 이슬람 당국자로부터 주님의 거룩한 무덤 성지의 공식 거주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작은 형제들은 그리스도교 전체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체를 대표하여 성지에 대한 법적인 소유권과 사용권을 갖게 된다.(1342년 교황 클레멘스 6세의 칙서를 통해)

 

성지관구 관구 봉사자는 "예루살렘의 시온산 수도원 원장"의 법적 권한을 가지고, 성지 및 동방교회의 교황 대리자가 되었다. 지금도 성지 관구의 관구 봉사자의 공식 직함은 "시온산 수도원 원장"이다.

 

출처 / blog.daum /.sungh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