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북서부ㅡ세계문화유산
이란의 아르메니아 교회 수도원 유적
▲성 타데우스 수도원
▲사도 성 타대오
엘 그레코 / 캔버스에 유채 97 x 77 cm 스페인 톨레도 엘 그레코 박물관 소장
이란 북서부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교회 수도원 유적은 아르메니아 기독교 신앙을 따르는 세 곳의 수도원, 곧 성 타데우스(St. Thaddeus) 수도원・성 스테파노스(St. Stepanos) 수도원・조르조르(Dzordzor) 예배당을 말한다. 이 건축물들은 아르메니아의 건축과 장식 예술 전통의 세계적인 가치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가장 오래된 성 타데우스 수도원은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건축물은 특히 비잔틴・동방정교회・페르시아 등 다른 지역 문화와의 교류를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증거이다. 아르메니아 문화권 중심 지대의 남동쪽 끝에 위치한 수도원들은 이 지역에 아르메니아 문화를 보급하는 거점 역할을 하였다. 이 수도원들은 완전성과 진정성이 만족할 만한 상태에 있는 아르메니아 문화의 마지막 지역 유산이다.
게다가 수도원들은 순례지로서 수세기에 걸친 아르메니아의 종교 전통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이다.등재된 세 곳의 수도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성 타데우스 수도원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기적을 행하는 타테우스가 이곳에서 생을 마친 뒤 묻혔고(1세기), 훗날 아르메니아 교회의 신부인 성 그레구아르(St. Gregoire)가 이곳에 예배당을 세웠다고(4세기) 한다.
그러나 오늘날 건축물 자체에서는 이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나 고고학적 정보가 남아 있지 않다. 7세기에 마쿠(Maku) 저지대에 한 아르메니아 그리스도교 주교가 있었고, 그 후에 좀 더 구체적으로 10세기에 성 타데우스 수도원이 가톨릭 교구의 본거지였다는 최초의 언급은 확인되었다.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이 창설된 것도 7세기이다(649년 첫 번째 흔적). 그리고 10세기에 새 교회가 세워졌다. 아르메니아가 독립하고 발전하는 동안(885~1079) 그 곳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따라서 성 타데우스 수도원은 아르메니아 인의 신앙생활을 위한 주요한 장소 중 하나이다. 중세 시대에 여러 종교적 갈등과 침략으로 이 두 수도원은 여러 번 심하게 파손되었다.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은 셀주크 왕조와 비잔티움 제국 사이에 전쟁이 수차례 일어나는 동안(10~12세기), 성 타데우스 수도원은 몽골 인들의 침략으로 파손되었다(1231년과 1242년). 페르시아의 새로운 지배자, 훌라구(Hulagu)와 그의 뒤를 잇는 일칸 왕조가 그리스도교에 우호적이었던 덕분에 수도원은 복원되었다(13세기 후반). 아르메니아 성직자들과 일칸 왕조는 평화 협정을 맺었다.
13세기와 14세기는 서방에서 온 그리스도교 포교단을 맞이하며 수도원의 영향력이 맹위를 떨쳤던 시기였다.자카리아(Zachariah) 주교와 강력한 그의 교파는 1314년 조르조르의 마쿠차이(Makuchay) 강 부근,성 타데우스 수도원 약간 위쪽에 대규모의 수도원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이 수도원은 고고학적으로 10세기에서 12세기 비잔틴의 영향을 받은 매우 단순하고 오래된 교회 따라 건축되었다. 성 타데우스 수도원은 지진으로(1319년) 파괴되었다. 자카리아는 즉시 재건에 착수하였고, 이 두 개의 수도원은 1320년대에 완공되었다. 곧이어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은 지식과 문화 전파의 전성기를 맞이한다(14세기).
많은 예술품과 문학 작품이 이곳에서 그림과 채색된 수사본으로 만들어졌다. 그 주제는 종교, 역사, 철학을 다루고 있다.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에서 나온 문학 작품과 성화 작품들은 예레반과 베니스에 보존되어 있다. 마쿠의 요새로 보호되던 이 지역은 일칸 왕조에 대항한 몽골계 이슬람 왕조 티무르와의 전쟁을 비껴갔다. 15세기 초, 새로운 사파비 왕조는 아르메니아 그리스도 교도들을 보호해 주었다.
그렇지만 이 지역은 중앙아르메니아와 서아르메니아를 장악한 오스만 제국이 정복을 꾀하려는 곳이 된다(1513년). 동부에 위치한 수도원들은 쇠퇴하기 시작하였고(14~17세기), 샤 압바스는 1604년 군사 전략으로 국경 지대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도록 했다. 250,000명에서 300,000명에 이르는 아르메니아 인들이 이란의 중심부로 이주하면서 수도원들은 방치되었다. 조르조르 수도원은 작은 예배당만 남겨두고 모두 파괴되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힘을 키운 사파비 왕조는 1650년부터 성 타데우스 수도원, 그 다음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을 탈환하고 복원 공사에 착수하였다. 1700년 무렵, 프랑스 여행자 타베르니에(J.B. Tavernier)는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을 아르메니아 문화의 성스러운 유물로 기술했으며, 발굴 작업을 통해 유골 안치소가 세상의 빛을 보았다(2005년). 17세기 말엽, 이 지역은 러시아 제국・오스만 제국・페르시아 제국의 야심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영토의 균형에 변화가 생기면서 아르메니아 공동체들은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처음에는 페르시아의 새 왕조 카자르(Qajar)가 그루지아 곧 조지아(1787년 티플리스 점령)를 침범하였다. 이 전쟁 중에 수많은 아르메니아 종교 건축물이 훼손되었고, 거기에는 성 타데우스 수도원도 포함된다. 1808년 러시아가 예레반을 점령하면서 이 지역은 각각 터키・페르시아 그리고 러시아 행정 체계를 가진 여러 지대로 분할되었고, 국경은 아락스(Araxes) 강 쪽으로 밀려났다.
강제 이주는 러시아 쪽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카자르 왕조는 종교 건축물의 재건과 복원 사업을 조성하면서 아르메니아 인들을 보호하였다. 성 타데우스 수도원에는 ‘백교회(church white, 1814년)’가 세워져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은 1819년에서 1825년 사이에 재건되었으며, 아르메니아 교구는 다레샴(Darresham) 마을을 매입하였다.
1900~1910년에 성 타데우스 수도원은 오스만 제국에 저항하는 아르메니아 인들의 활발한 거점이 된다.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1930년에서 1947년 사이에 아르메니아 교회의 가톨리코스(Catholicos; 동방정교회 일부 교회에서 사용되는 수장의 칭호)는 성 타데우스 수도원으로 이송되었다.
오늘날 성 타데우스 수도원은 이란에 있는 아르메니아 인에게 신앙의 중심지이다. 또한 그리스도 교도뿐만 아니라 이 지역 이슬람 교도에게도 순례지이다. 성 타데우스 수도원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유산이다. 이 수도원의 일반적인 건축 형태와 현존하는 설계도는 1319년 지진이 일어난 후, 1320년대에 재건했을 때의 것이다. 특히 교회를 지을 때는 원래의 모습을 충실히 복원한다는 정신으로 7세기와 10세기의 요소들을 그대로계승하였다. 복원 공사는 17세기 후반에 착수되었다.
백교회는 19세기에 추가되었는데 에치미아진(Etchmiadzin; 현재 아르메니아) 총대주교의 교회를 본떠 재구성되었음을 보여 준다.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도 자카리아의 추진력으로 1330년 무렵에 7세기와 10세기에 남아 있던 유적에 근거하여 재건되었고, 17세기에도 다시 재건 작업이 이루어졌다. 1940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성 타데우스의 교회는 또다시 심하게 파손되었다. 1972~1973년에 유네스코의 후원을 받아 이란의 문화예술부가 첫 복원 프로그램에 착수하였다.
벽을 보강하고 돔을 수리하고, 침수된 교회의 일부분을 물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긴급 공사가 1977년까지 이어졌다. 두 번째로 실행된 연구와 공사는 테헤란 건축예술대학과 아르메니아 교구에 속한 건축가 팀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977년에서 1983년에 이루어졌다. 이전의 공사에 이어 다시 복원 공사를 한 것이다. 1983년에서 2001년까지 세 번째 단계는 건물 전체의 심각한 방수 문제 특히 백교회의 방수와 보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앞선 수많은 공사를 다시 진행하며 보완하였다.
1992년에는 외부 복원 공사에 착수하였다. 2001년부터 총괄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에서는 1974년에 성벽 복원 프로그램이 시작되었고, 다레샴 마을의 고고학적 유물 연구에도 착수하였다. 이때부터 수도원에서 정식으로 공사가 이루어졌다.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은 건축물을 지탱하는 충적토의 안정성과 관련한 광범위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벽과 둥근 천장을 보강하는 공사 특히 시계탑의 상부 두 개 층에 대한 재건축이 필요하다. 조르조르 예배당은 17세기 초에 사라진 수도원의 매우 중요한 생존 흔적이다. 예배당 유물들은 댐 건설로인해 이전되어 다시 세워졌다 1987~1988년 아르메니아 교구의 협약과 정부 프로그램에 힘입어 파손된 예배당을 해체하고 재건축하는공사가 실행되었다.
▲성 타데우스 수도원
▲성 타데우스 수도원
▲성 타데우스 수도원
▲성 타데우스 수도원
▲성 타데우스 수도원 내부
▲성 타데우스 수도원 외벽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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