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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국가들/⊙에디오피아*기행

에티오피아ㅡ커피벨트를 가다ㅡ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

by 삼수갑산 2022. 2. 23.

커피벨트를 가다ㅡ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 

▲제베나 분나. 에티오피아의 전통 커피 의식.

한자리에서 생두를 볶고, 볶은 원두를 절구로 빻아 주전자(제베나)에 담아 끓인다.

농장 사람들은 멀리서 온 손님에게 커피 한 잔을 대접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했다.

최상기씨 제공

 

산업적으로 커피시장의 가장 큰 잠재적 위협은 지구온난화다. 이미 기상이변으로 냉해와 가뭄, 홍수 등으로

지역에 따라 매해 적지 않은 생산량의 진폭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의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2080년쯤 에티오피아 커피 생산지의 약 85%가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건기의 기온이 높아지고, 우기의 강수량이 감소하는 등 기후 환경이 변화하면 커피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

줄어들면서 커피 생산량이 감소하고, 결국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지금보다 훨씬 값비싼 음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커피를 생산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 나라의 농부들에게 지금 당장의 가장 큰 위협은 가격 변동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터무니없이 낮은 커피(생두) 가격이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매년 평균 7억 6,000만달러어치가 해외로 판매돼 단일 품목으로 이 나라의 최대

수출품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는 국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국민들의 건강 교육 인프라와 기타 사회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의존하는 외화 수입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그래서 커피 가격이 떨어지면 커피 농가뿐 아니라, 국가 전체 경제가 위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커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데 반해, 커피는 에티오피아 농가들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기본적인

수익원이 되질 못한다.

 

유엔의 보고서에서는 구매력 지수가 1인당 하루 1.9달러 아래일 때를 극단적인 빈곤 상황으로 본다.

 

현재 8억 정도의 지구인이 이 계층에 속하는데, 이 중 약 5,000만~1억명의 인구는 커피를 재배하고 있거나,

이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으로서의 커피는 빈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등식을 이루는 셈이다.

 

왜 그렇게 가난할 수밖에 없을까. 문득 커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르가체페 농가들의 소득이 궁금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차마 물어보질 못했다.

 

이미 그들의 삶의 모습과, 살고 있는 환경에서 충분히 짐작이 되는데 구체적으로 확인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밤 늦은 시간 이르가체페를 떠나오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물론, 대략의 답은 나도 알고,

이 곳에서 커피를 생산하는 농민들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세계에는 어떤 경제적인 역학관계가

내재되어 있을까.

 

이르가체페 농민들이 품질 좋은 커피를 생산하고도 빈곤의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복잡한 연결고리로 묶여진 커피와 빈곤의 함수관계, 그것이 몹시도 궁금했다.

 

▲현지인들이 딤투라 부르는 읍내.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길을 오가는 꽤 번잡한 타운이지만,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오지 마을이다.

이 곳을 지나 두어 시간 즘 더 가면 에티오피아인들이 최고의 커피로 손꼽는

구지라는 이름의 커피 산지가 나온다. 최상기씨 제공

 

이르가체페에서 며칠을 보낸 후 좀 더 깊은 산악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르가체페 읍내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네댓 시간가량 가면 제법 시끌벅적한 마을이 나온다.

 

구글 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현지인들은 딤투라 부르는 꽤 큰 타운이다.

 

이 곳부터는 이르가체페와 다소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여전히 2,000m에 이르는 고지대이지만,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가 좀 더 가파르다.

 

산 언덕으로는 목축을 위한 초지와 밀밭이 푸른 하늘 아래 연둣빛으로 펼쳐진다. 차보다는 말들이 주요

교통수단이 되고, 이르가체페보다 붉은색을 띄는 흙이 뽀얀 먼지를 일으킨다. 구지 존의

함벨라라는 지역이다.

 

우리에게는 이르가체페가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가장 낯익은 커피 산지이지만, 과거 이 나라 사람들이

최고의 커피라고 여겼던 곳은 하라르다.

 

수도 에티오피아 동쪽 홍해와 소말리아와 인접한 커피 산지로, 그 유명한 모카 하라의 원산지다. 프랑스의

천재 시인 랭보가 20대 젊은 나이에 절필을 선언하고, 커피 무역상으로 활동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초콜릿의 중후한 부드러움과 감미로운 와인의 향, 잘 익은 열대과일의 달콤함을 함께 머금어 에티오피아 대표

커피로 불렸던 하라르. 하지만, 오랜 가뭄과 척박한 재배 환경으로 인해 최근에는 하라르 커피를 찾기

쉽지 않으며, 하라르로 둔갑한 가짜들이 많아 더욱 접하기 어려운 커피가 됐다.

 

근래 들어 하라르를 대신해 에티오피아 최고 커피 산지로 부상한 곳이 구지 지역이다. 커피 산업에 종사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최고의 커피를 물어보면 대개 구지를 손꼽는다.

 

구지는 넓게 보면 시다모 지역에 속한다. 시다모는 에티오피아 남부 지역의 상당히 넓은 면적으로, A, B, C, D, E

등 이르가체페를 돌아가며 감싸듯 위치한 다섯 개의 존으로 나뉘는데 이 중 A존의 일부가 구지이다.

 

이 지역의 커피는 다른 시다모에 비해 훨씬 강렬하고, 화려한 휘발성의 꽃 향을 갖고 있는데, 이를 구분하기

위해 시다모를 버리고 구지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함벨라뿐 아니라 샤키소, 우라가, 케르차 등의 커피 산지들이 구지 커피를 대표한다.

 

함벨라의 어느 커피 가공시설로 들어왔다. 수확철이라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찐득하게 단물이 배어

나온 커피 체리를 햇볕에 고루 말리고 있었다.

 

그런데 커피 건조대에서 커피를 말리는 상당수가 앳돼 보이는 아이들이다. 열 살 내외로 보이는 아이들부터

네댓 살 밖에 안돼 보이는 아이들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낯선 이방인을 주시한다.

 

왜 아이들이 이 곳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 아이들은 고사리 손으로 끈적한 커피 체리를 뒤집어 햇볕에 고루

말리거나, 드문드문 눈에 띄는 미성숙 체리를 골라낸다.

 

키가 작아 일을 할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은 건조대 아래로 떨어진 커피 열매를 줍는다. 작업량에 따라

다르지만, 이렇게 일하면 하루 600원가량을 일당으로 받는다고 한다.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일을 하고 있지만, 싱그럽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힘든 표정을 발견하기 어렵다.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많은 에티오피아 커피들이 이런 아이들의 고사리 손으로 생산된다. 최상기씨 제공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 각국의 협정을 통해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노동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전 세계 아동노동은 줄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강제로 끌려가서 노동을 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점차 부모나 본인의 뜻으로 일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 커피 농장의 일은 금광이나 열악한 환경의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더럽거나 위험하거나어렵지 않다.

 

월드뱅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에티오피아에서 하루 1.9달러 이하의 돈으로 생활하는 극빈층 인구는 약 27% 정도에 이른다. 에티오피아 인구가 1억이 넘으니, 2,700만명 이상의 적지 않은 숫자다. 노동을 하는 어린이들의 비중은

이 나라 전체 아동의 29% 정도이며, 이들 중 35%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일만 하는 어린이들이다.

 

아이들은 평균 주당 29시간가량 일을 하는데, 일만 하는 아이들은 35시간,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아이들은 19시간씩 일을 한다.커피 처리시설의 관리자에게 왜 아이들이 이 곳에서 일을 하는지 물었다. 그는 한 단어로 대답했다. 빈곤. 순간 괜한 질문을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가난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왜 일을 하겠는가. 덧붙여 물어보지 않았지만, 관리자의 설명은 이어졌다. 다행히 이 마을의 아이들은 대개 학교를 다닌다. 학교가 끝나면 이 곳에 모여 그들의 부모와 함께 일을 한다. 아이들은 일도 같이 하지만, 해질녘까지 뛰어놀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런 집단농장이 없다면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일부는 도시로 나갈 것이다. 도시에서 그들이 할 수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국제 협정에 아동노동이 금지돼 있지만, 집단농장은 가난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커뮤니티 역할도 하고있음을 이해해달라.그의 설명을 듣고 다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만큼 맑은 얼굴.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끊임없이까르르 웃는다.

 

이방인이 신기한 듯 움직이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밝은 표정 때문인지모두 건강해 보인다.지구 반대편 에티오피아의 깊은 산골 오지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커가고 있다. 아동노동은 21세기 온 지구가 협력하여 없애야 할 단어임에는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강제로 금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아이들이 다치거나, 학교를 가지 못하거나, 힘들지 않다면 아이들이 일하는 작업장은 그들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될 수도 있다.무엇보다 아동노동의 근본 원인이 경제적 궁핍이라면 아이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환경을 갖추는것이 중요하다.에티오피아 커피는 아이들의 식량이 되고, 옷이 되고, 학교에 다니는 수업료가 된다. 아이들은 커피나무를키우고, 커피 열매를 따서 햇볕에 말린다.

 

우리가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커피를 마신다면 그것은 공정한 거래가 되어 에티오피아 아이들을 키우는 데 사용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모든 에티오피아의 아이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앞당기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잘 익은 체리만 골라 손으로 수확(Hand-pick)하는 에티오피아의 커피 재배는

대형 기계로 수확하는 방식보다 품질은 좋지만, 비용이 높고 효율은 떨어진다.

 

소비국들이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가들에게 자선이나 지원보다 품질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합리적인 보상이다. 최상기씨 제공

 

에티오피아 커피 농가의 빈곤에 대한 당장의 해답을 구하기는 어렵다.

 

이 문제가 소비국과 생산국으로 나뉘어진 국제 무역 질서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유통 구조, 그리고 경제와 정치가 분리될 수 없는 각 국의 이해관계까지 엮인 거대 담론이라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혹자들은 공정무역이나 새로운 무역협정 등을 대안으로 내놓지만, WTO 자유무역 질서가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체되지 않는 이상, 아니면 큰 기후변화가 닥치거나 새로운 병해가 공습해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이 급감하지 않는 한 극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런 거대한 변화가 도래할 때까지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마존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미 대륙에 토네이도를 일으키듯 일상의 작은 실천으로 불평등한 시장의 흐름을 바꾸어 볼 수는 없을까?

 

커피는 제국주의 시대에 지배 국가와 피지배 국가 간의 수탈과 착취의 도구였다. 지금도 여전히 생산지 저임금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거래되는 매우 불공정한 산물이다.

 

수백 년간 역사는 바뀌었지만, 생산지 농가들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다행히 1980년대부터 이런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생산지가 아닌, 소비국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공정무역(Fairtrade)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저임금의 커피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자는 생각이다.그 영향력은 아직 크지 않지만, 일부 선진국의 양심적인 로스터들과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공정무역에 참여하고 있다.

 

착하고 바람직한 활동이다. 그러나 커피 공급 사슬에 속해 있는 수요자의 양보를 전제로 한 대가 또는 캠페인 차원의 공익적 자선활동은 한계가 있다.

 

조건 없이 어느 정도의 가격을 보장하라는 것은 공정거래를 이유로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국적기업이나 대기업들이 공정무역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공정무역이 전체 기업 구조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공정무역 레이블을 붙이기 위해 1~2%의 제품에만 인증을 받는 것은 실제로는 도덕적이지 않으면서 윤리적 메시지의 이점만 누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아울러 이런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윤리 구매, 또는 착한 소비 프로그램에 대한 실효성을 의심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음은 오히려 공정무역의 좋은 취지를 왜곡시킬 수 있다

.

두 번째로 등장한 대안은 환경 키워드를 내세운 지속 가능한 경작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생태 환경 붐을 배경으로 대규모 커피 재배로 인한 환경 파괴를 이슈화하는 환경주의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생산국의 환경 보호를 요구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아울러 이런 활동의 부산물로 몇몇 비영리단체가 주도하는 친환경 인증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열대 우림보전을 주장하는 ‘레인포레스트 얼라이언스(Rainforest Alliance)’나, 철새의 생태계 보호를 위한‘버드 프렌들리(Bird-friendly)’, 농가의 지속 가능한 경작 관행과 기술을 지원하기 위한 UTZ 인증 등이 대표적이다.

 

공정무역과 마찬가지로 이들 친환경 인증 프로그램 역시 훌륭한 취지와 목적을 두고 있다. 레인포레스트  하더라도 인증 조건이 까다롭다. 열대우림의 그늘에서 생물 다양성과 야생 생물을 보전하며 재배해야 하고, 화학비료 사용을 줄여 수질과 토양의 오염을 방지해야 한다.

 

15세 미만 어린이들의 노동을 금하고, 노동자들에게 깨끗한 물과 집, 건강,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적절한임금과 근로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대체로 환경보존과 생산 여건 개선을 연계한 진일보한 움직임으로 선진국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다.하지만 정작 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커피 생산자들도 많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가난한 커피 농가들은 화학비료를 살 돈이 없어 오롯이 유기농으로 경작한다.

 

나무와 풀이 우거진 숲 속 생태 조건에서 커피를 재배할 수 밖에 없어 환경 인증이 의미가 없다. 과테말라에서 만난 소형 농장주들은 유기 비료 사용 비중이 월등히 높지만, 굳이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인증마크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생태 보존을 통한 재배농가의 생산기반 개선 노력 또한 커머더티(커머셜) 커피에 대한 안티 테제로부상한 캠페인이지만, 소비국 커피 회사들의 마케팅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산 농가들의 냉소적인 시각도 간과하기 어렵다.

 

▲스페셜티 커피 문화는 정당한 거래를 기반으로 한다.

다행히 좋은 커피라면 충분히 높은 금액을 지불할 의지가 있는 로스터들과 소비자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좋은 품질의 에티오피아 커피가 점점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은 고무적인 흐름이다. 최상기씨 제공

 

▲이르가체페 숲 속에서 만난 아이들. 지금처럼 먼 훗날에도 커피와 불가분의 관계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커피는 단순히 작물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런 삶을 수천, 수만년동안 이르가체페 고원에서 이어왔을 것이다.

최상기씨 제공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의 한 가공시설에서 마을 사람들이 과육을 벗겨낸 커피를 말리고 있다.

커피가 대중적인 음료가 되는 데는 이들의 값싼 노동력이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최상기씨 제공

 

제국주의 시대 이후 커피의 생산국과 소비국은 완전히 이원화됐다. 커피벨트에 자리한 식민지에서 생산된 커피가 유럽 열강으로 보내지기 시작한 이후, 커피 소비와 생산의 불균형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소비국에서의 커피가 보편적인 음료로 수요가 늘어나는데 반해, 커피 생산자들은 고된 노동의 대가로는 턱없이 낮은 보상에 신음하고 있다. 산지의 커피 가격은 왜 그렇게 낮은 것일까? 왜 에티오피아 커피 농가들은 생존과 생계의 위협을 받으며힘겨운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국제 시세에 있다. 현재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사고파는 커피 가격은 40년 전 선물시장이처음 문을 열었을 때와 비교하면 절반 남짓한 수준이다.같은 기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8배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커피 가격은 터무니 없다. 거시적으로 커피 가격은 소비 국가의 수요와 생산 국가의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크게 늘어난 커피 생산량이 지난 반세기 국제 커피 가격을 지속적으로 짓눌러 온 것이다.

 

커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까지 꾸준히 오름세를 유지하다가 이후 생산량 증가로 가격이 내리기 시작했다. 1962년 남미의 커피 생산국들을 중심으로 가격 유지를 위한 국제협정(ICAㆍ International Coffee Agreement)을 체결하고, 이를 소비국까지 확대해 국제 커피시장의 안정을 꾀했다. 그러나 1989년 미국이 자유무역을 이유로 돌연 협정에서 탈퇴하면서 커피 가격은 급락했다.

 

게다가 베트남은 1990년대 저가의 로부스타 커피 생산량을 1,400%나 성장시키면서 수 년 만에 커피대국으로성장했고, 세계 최대 아라비카 생산국인 브라질도 같은 기간 두 배 이상 생산량을 늘렸다.

 

브라질과 베트남은 대형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기계로 커피체리를 수확하면서 생산효율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 시대에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에티오피아 소농들은 그런 대량생산시스템에 맞서는 것이 불가능했다.

 

국제 커피 시세가 생산비용 이하로 떨어지면 에티오피아 커피 농가들의 생계와 의료비, 아이들 학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고, 결국 고리의 빚만 쌓이게 된다.

 

과잉 공급의 문제만큼은 아니더라도 커피의 복잡한 공급사슬 또한 중요한 이유가 된다. 커피가 최종 소비자까지도달하는 데는 재배농민을 시작으로 가공시설, 수매업체(중간상인), 영농조합, 도정공장, 커피 거래소 시장, 수출업체, 메이저 곡물회사, 수입업체, 로스팅 업체(제조업체), 커피전문점 또는 소매 유통시장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을 거치게 된다.

 

산지와의 직거래(Direct Sourcing) 등 공급 사슬을 단순화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농작물인 커피가 한 잔의 음료로 전달되는 데는 상당히 많은 참여자들의 손을 거치면서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아울러 전 세계 커피 거래의 40%를 움직이는 4대 메이저 곡물회사와 내로라하는 글로벌 커피업체들까지가세하면 엄청난 규모의 커피가 소수 다국적 기업들의 손에서 거래된다.

 

이들이 커피 수급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격이다. 대기업 구매부서의 미션이자 목표는 얼마나 낮은 가격에 커피원료(생두)를 사들여 원가를 낮추고, 이익을 극대화해 주주들의 이해에 부합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그들은 매일 뉴욕 선물거래시장(ICE)의 시세표를 주시하고, 이를 토대로 에티오피아 상품 거래소(ECXㆍEthiopia Commodity Exchange)와 같은 국가별 곡물 시장에서 대량으로 커피 원두를 사들인다.

 

최근 몇 년처럼 국제 커피 가격이 안정하향세를 이어가면 이들 소수 글로벌 기업들의 이익과 그에 비례한 주식가치 및 투자자들의 배당금은 늘어난다. 하지만 그렇게 늘어난 이익이 산지의 농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다른 곡물도 마찬가지지만, 커피도 원료 자체로는 부가가치가 매우 낮다. 대부분의 커피 생산국은 저개발국가, 또는 개발도상국들이고, 글로벌 환경 시장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커피 브랜드는 커피 소비국의 대기업들이다.

 

물론 에티오피아와 같은 커피 생산국에서도 생두를 가공해 상품화를 하지만, 에티오피아로부터 로스팅한 커피 또는 소매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완제품으로 수입하는 외국기업은 거의 없다.

 

농업으로서 커피의 부가가치는 제조업 또는 서비스업 차원의 커피에 비해 턱없이 낮다. 반대로 농업 단계에서의 커피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한마디로 채산성이 낮은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커피 생두는 같은 기간 유럽이나 북미의 카페에서 판매되는 커피음료 가격의 1~3% 수준이고,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로스팅한 원두커피 가격의 2~6%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유통, 제조업에서의 커피 가격이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복잡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점은 농업으로서의 커피의 부가가치가 선진국 중심의 제조와 서비스업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는 점이다.

 

▲에티오피아의 어느 커피 가공시설에 모인 마을 부녀자들이 커피를 선별하고 있다.

꽃 향 그윽한 이르가체페 커피 한 잔에는 이들의 고단한 노동과 힘겨운 현실이 녹아 있다. 최상기씨 제공

 

커피 농사는 부가가치가 낮은 데 반해 리스크는 높다.기본적으로 낮은 수매가격 외에도 가뭄이나 홍수, 냉해로 인한 자연재해나, 커피 녹병 등 병충해의불가역적인 외생변수는 에티오피아 커피 산업과 농민들에게는 그대로 재앙이 된다.국내에서 소비되는 내수용 농작물의 경우 자연재해로 인한 공급 부족은 가격 인상을 통해 경제적 위험을 줄인다.

 

하지만 커피처럼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는 농산물의 경우 전세계 커피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급감하더라도 이를 상쇄시킬 만큼 커피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세계 6위의 커피 생산국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1980년대 아프리카 대기근이나, 2000년대 초반 동아프리카의 큰 가뭄에도 커피 가격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자연재해로 이 지역 수확량이 크게 떨어지더라도 국제 커피 시세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WTO 체제에서의 에티오피아 커피 농가들은 자신들이 땀 흘려 농사를 지은 것과 상관없이 세계적인 가격 추세에 따라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이 결정된다.

 

예컨대 베트남의 로부스타 농장이 늘어나고, 과테말라에서 커피 잎마름병이 유행하는가 하면, 브라질에서 새로운 비료가 개발되어 생산량이 증가하는 등 다른 나라에서 발생된 요인들로 인해 그들이 손에 쥐는 수익이 정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커피 농가뿐 아니라, 에티오피아나 브룬디처럼 커피산업의 의존도가 높은 농업 국가들의경우 전체 국가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제조와 서비스업 중심의 선진국 커피 기업들은 국제 커피 가격이 하락하면 원가 하락에 따른 이익을 늘리고, 국제 커피 시세가 오르면 이를 구실로 커피 소매 판매 가격을 인상해서 위험을 분산시킨다. 커피 소비자들이 국제 원유 시세에 연동되는 자동차 기름값만큼 국제 커피 가격에 민감하지 않는 것이 커피를 제조하거나, 유통하는 기업들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40년 전의 절반 수준인 커피 가격. 이 짓눌린 생산지 커피 가격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겨둘 수밖에 없을까. 이 거대한 불균형의 거래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이르가체페 커피 농가들의 한숨과 눈물이 잦아들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르가체페 여인들이 커피 열매의 과육을 벗겨내고 내과피(파치먼트) 상태의 생두를 뒤섞어 골고루

건조하고 있다. 이런 단순한 일들은 주로 여자들이나, 노인, 아이들의 몫이다. 최상기씨 제공

 

커피 밭을 걸어 나와 커피 열매를 가공하는 시설(Preparation Station)로 자리를 옮겼다.

 

각 농가에서 재배한 커피 열매를 처리해 씨앗인 생두를 분리해내는 작업장이다.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가들은 소출 규모가 작아 마을 단위의 공동 가공시설을 운영하거나, 지역마다 처리시설을 갖춘 회사에 수확한 커피 체리를 팔고, 이런 작업장에 함께모여 열매를 말리거나, 선별하는 일을 한다.

 

이 곳의 남자들은 여러 농가에서 수확해온 커피 열매의 무게를 재고 물로 씻어 껍질과 과육을 벗겨내거나, 가공한 생두를 포대에 담아 나르는 일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들, 예컨대 커피 열매나 생두를 건조시키고, 좋지 않은 콩들을 골라내는 작업들은 주로 여자들이나 노인, 아이들이 맡아서 한다. 단순한 일인만큼 수입은 매우 박하다.수확기여서인지 커피를 말리는 건조대 위에는 커피 열매 또는 과육을 벗겨낸 내과피(Parchment) 상태의 생두들로 가득하다.

 

커피를 건조하는 동안 부패하지 않도록 커피를 뒤집어주는 일을 하던 여인들이 경계심 없는 미소로 낯선 이방인을 반겨준다.잠시 후, 분나(Bunnaㆍ커피) 대접을 받았다. 즉석에서 생두를 볶고 절구통에 넣어 빻은 후, 제베나라 불리는토기 주전자로 끓여 손님에게 내주는 에티오피아의 전통 커피 의식이다.

 

커피 추출 과정이 길고, 모든 일을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한 잔의 커피가 나오려면 30분 이상 족히 기다려야 한다.하지만 그들의 바쁜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이윽고 작은 분나 잔에 더 이상 신선할 수 없는 커피가 담기고, 마을 주민들과의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커피 맛을 음미할 틈도 없이 다짜고짜 커피 가격이 왜 낮은지 물어온다. 느닷없이 한 대 맞은 느낌이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들의 하소연이 길게 이어진다. 지금처럼 커피를 재배해서는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생계, 다시 말해 가족들이 끼니를 이어가거나 깨끗한 물을 마시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커피 가격에는 시장이라는 거대한 힘이 작용하기에 나에게서 들을 수 있는 답이 별로 없다는 것을 농민들도잘 알 것이다.이 문제는 나와 그들, 또는 이르가체페 지역이나 에티오피아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 지구인들의 커피 수요와 공급에 따른 복잡한 요인들이 얽힌 거대 담론이어서 간단한 대답으로 그들의 답답함이 풀리기는 어렵다.

출처 / hankookilbo.com / 최상기 커피 프로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