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秘와 生命 그리고 커피의 땅 에티오피아
▲아리족 마을 가는 길. 길 끝에서 한 소녀의 아련한 시선이 느껴진다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
인천을 출발한 에티오피아항공은 홍콩을 거쳐 14시간 만에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 도착했다.착륙을 위해 비행기가 아디스아바바 상공을 선회할 때 지평선 너머에서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사흘 전에 맞은 황열병 주사가 문제였다. 출발할 때부터 몸살이 난 듯하더니 홍콩에서부터는 온몸이 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으면 그렇게 아플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가 생각났다. “힘을 뺀 바이러스를 몸에주입해서 면역력을 생기게 하는 거예요. 40만명 중에 한 명은 이 주사를 맞고 죽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맞으실래요?” 잠시 망설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출장을 가야 하니까. “제가 알기로 비행기 사고는800만 번을 타야 한 번 사고를 당한다고 하더라고요.그게 무서워서 비행기를 안 탈 수는 없잖아요.” 의사는 이렇게 말하며 팔뚝에 주사바늘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나마 홍콩에서는 옆 좌석이 비어서 누워 올 수 있어 약간은 다행이었고, 더 다행스러운 건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을 때는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은 회복되어 있었다는 사실.호된 신고식을 치른 셈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행자를 바라본다
▲아리족 마을의 아이들. 무엇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을까
ㅁ아디스아바바 트리니티 성당. 1942년 이탈리아의 침공을 물리친 용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트렁크를 끌고 공항 밖으로 나오자 아프리카의 뜨거운 햇살에 눈이 부셨다. 하지만 그다지 덥게 느껴지진 않았다. 아디스아바바는 적도에 가까운 곳이지만 도시가 해발 2,400m 정도에 위치해 있는데다 습도가 낮아 그렇게 덥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한국의 지금 날씨가 정말이지 아디스아바바보다 훨씬 더 덥다. 스마트폰 날씨 앱을 켜 보니 오늘 한국의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은 각각 39도와 30도. 아디스아바바는 21도, 13도다. 시원한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고 싶다.
아디스아바바는 어수선한 풍경이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새로운 꽃’이라는 이 도시가 품은 아름다운 의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거대한 공사장 한가운데를 지나는 것 같았다. 도로는 포장 중이었고 건물은 지어지고 있었다. 공사 중인 건물 가림막에는 ‘중국교통공사’, ‘중국건설집단’ 같은 중국 기업들의 이름이 붉은 색 한자로 굵게 쓰여 있었다. 중국 자본이 아프리카를 사들이고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낡은 자동차들은 매연을 뿜으며 거리를 내달렸고 염소 떼는 인도 한 쪽을 차지하고서는 게으른 표정으로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트리니티 성당에서 기도 중이던 신도가 읽던 성경
“일단 커피부터 한 잔 하시죠.” 가이드 바유(Bayu)가 말했다. 맞다. 에티오피아에 왔으니 커피부터 마셔야지. 예가체프, 시다모, 하라르 등 우리가 익히 들었던 커피가 이곳 에티오피아에서 재배된다.
게다가 에티오피아는 커피를 가장 먼저 발견한 곳이다. 목동 칼디(Kaldi)가 아비시니아(Abyssinia) 고원에서 붉은 열매를 깨물어 보지 않았다면 우리는 졸리고 지루한 아침 회의를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바유가 안내한 곳은 ‘토모카(Tomoka)’라는 카페였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피 프랜차이즈에요. 에티오피아의 스타벅스라고 보면 되죠. 마키아토가 가장 맛있어요."
카페는 1920년대 이탈리아 카페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우리나라 카페처럼 푹신한 의자와 테이블이 갖춰진 카페가 아니었다. 손님들은 카페에 서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신문을 보는 사람도 있었고 우두커니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는데, 모두들 10분이나 15분 정도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후다닥 일어났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 체인인 토모카의 내부.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일어나는 이탈리안 스타일의 카페다
유리잔에 담긴 짙은 갈색의 액체, 그러니까 토모카의 마키아토는 지금까지 먹어 본 마키야토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뭐랄까, 지금까지 내가 모르는 고유한 방식의 마키아토가 비행기로 14시간 거리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할 때마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을 느끼고, 그것이 바로 여행이 우리에게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마키아토는 그런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 어딘가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문을 열고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게다가 가격도 놀라웠다. 마키아토 한 잔이 고작 12비르Birr(1비르=약 45원)라니.나는 바유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정말 맛있어요.” 바유가 흐뭇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로는 드물게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믿는다. 랄리벨라를 찾은 순례자들
●랄리벨라(Lalibela)
무슨 인연인지 지난 한 달 동안 에티오피아를 두 번이나 여행하게 됐다. 첫 번째 여행은 5일 동안 아디스아바바와 랄리벨라, 곤다르를 돌아보는 일정이었고, 두 번째 여행은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해 진카, 아바르민치, 하와사, 바레 국립공원을 거쳐 짐마, 하라르 등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그것도 무려 15일 동안. 6월 한 달 동안 한국에는 고작 일주일만 있었을 뿐, 에티오피아에서 22일을 보낸 셈이다. 그 시간을 보내고 에티오피아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에티오피아는 멋지고 환상적인 곳이다’라는 것. 물론 커피는 시애틀의 스텀타운이 더 맛있을 수도 있고, 케냐의 세렝게티 사파리가 훨씬 더 아프리카다운 모습을 보여 줄지도 모른다.
에티오피아에는 바다도 없고 음식도 딱히 맛있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숙박, 도로, 수도시설 등 여러 인프라도 부족해서 여행을 하려면 상당한 불편을 감수하고 때로는 감내해야 할 정도다.
▲화려한 성화로 장식되어 있는 메드하네 알렘 교회 내부 모습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내가 가본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나라였다. 랄리벨라의 암굴교회와 그 교회에서 만난 성스럽고 초연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
총천연색으로 칠해진 하라르의 골목들, 신비로웠던 봉가의 야생 커피나무숲, 진카에서 만난 무르시족과 하마르족 등 원시부족, 생명력 넘쳤던 아와사의 어시장,
그리고 짐마 길거리 카페에서 맛보았던 커피와 바레 국립공원의 광활하면서도 압도적인 풍경은 에티오피아가 아니었다면 어디서 만나고 경험할 수 있었을까. 에티오피아는 에티오피아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이 내게 영감을 주었고, 나는 문장을 썼고 사진을 찍었다. 물론 지금 누군가 내게 “에티오피아에 다시 가실래요?” 하면 나는 당장 고개를 끄덕이며 트렁크에 티셔츠를 주섬주섬 챙길 것이다.
◆구약성서를 믿는 사람들
에티오피아를 다녀온 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랄리벨라(Lalibela)의 암굴교회에서 마주쳤던 순례자들의 얼굴이다.
메드하네 알렘 교회(Bet Medhane Alem)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평생에 걸쳐 와 보길 소망했던 성스런 장소에 직접 발을 들인 그 기적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스 신전을 닮은 메드하네 알렘 교회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구약성서를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반도의 5배 넓이의 땅에 9,900만명이 살아가는데, 이중 에티오피아 정교회가 43.5%, 기독교가 18.5%, 이슬람교가 33.9% 정도 된다. 랄리벨라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성지다.
한때 로마, 페르시아와 함께 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악숨 제국이 10세기 이후 대가뭄으로 쇠퇴하자 이슬람 세력이 세력을 확장한다. 그러던 중 13세기 자그웨 왕조의 7대 국왕인 랄리벨라가 들어서면서 에티오피아는 다시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가 1181~1221년. 랄리벨라는 수도를 랄리벨라로 옮기고 도시는 왕의 이름을 따 랄리벨라로 불리기 시작한다.
신앙심이 깊었던 왕은 꿈에서 암굴교회의 건설을 지시하는데, 이는 이슬람 세력 때문에 예루살렘으로순례를 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꿈에 제2의 예루살렘을 건설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그는 팔레스티나와 이집트의 기술자 등4만명을 동원해 그들을 직접 감독하며 교회를 세운다.
실제 교회를 만드는 데는 120년이 걸렸지만, 전설은 천사들이 밤낮으로 도와 23년 만에 완공했다고 전한다.적갈색의 응회암 암반을 깎아 내 만든 암굴교회는 모두 11개가 있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모두 미로 같은 지하 통로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보려면 1박 2일은 잡아야 해요.” 직접 본 암굴교회는 이런 바유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거대하다.
그리스 신전의 형태로 만들어진 메드하네 알렘 교회는 이곳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회인데, 가로 22m, 세로 33m, 높이 11m로 32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다. 지금은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철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씌운 채로 보수 중이다.
▲랄리벨라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기오르기스 교회. 십자가 모양으로 건축됐다
하이라이트는 기오르기스 교회(Bet Giyorgis)다. 인터넷에 ‘랄리벨라’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십자가 모양의 교회 사진이 바로 이곳이다. 바위를 가로, 세로, 높이 모두 12m의 정 십자가 모양으로 파 내려가며 지었다.
교회로 가기 위해서는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한다. 교회 입구에서 교회에 대해 설명해 줄 목사가 기다리고 있는데, 하얀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에티오피아 정교회 목사가 다가온다.
목사와 포옹을 하며 인사를 하려는데 아뿔싸, 그의 어깨에 꼬물거리며 기어가고 있는 벼룩이 보인다. 하필 이 엄숙하면서도 종교적인 영감으로 가득한 순간에 벼룩이 끼어들다니!
▲랄리벨라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교회가 11개 있다
◆벼룩으로는 막을 수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랄리벨라 여행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벼룩이다. 암굴교회 바닥에는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는데, 그 카펫은 아무리 봐도 깔린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햇빛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교회에 들어서면 텁텁한 먼지 냄새가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카펫을 밟았을 때의 그 덥수룩한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뭔가 수염 난 남자의 얼굴을 지그시 밟는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이것 말고 표현할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쨌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발가락 끝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암굴교회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신자들
랄리벨라 벼룩의 악행은 이미 여행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서 이번 여행을 함께한 일행 중 한 명이 12시간 동안 계피 등 12가지 약재를 하루 동안 중탕을 해 손수‘벼룩기피제’를 만들어 왔을 정도였다.우리는 교회에 들어서기 전, 호텔 침대에 눕기 전 기피제를 미친 듯이 뿌려 댔다.
게다가 에티오피아항공의 노란색 기내용 양말을 챙겨 와서 바지 위로 한껏 끌어올려 신고 성스러운 랄리벨라 암굴교회 투어를 했는데, 이를 본 포르투갈 여행자들이 도대체 그 패션은 뭐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다행히 목사와의 인사는 포옹이 아닌 악수로만 끝났고 벼룩은 설명이 끝날 때까지 그의 어깨를 떠나지 않았다.
▲암굴교회 입구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 신자와 아이
그렇다고 벼룩 때문에 암굴교회에서 받는 감동이 줄어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벼룩은 고작 벼룩일 뿐이다. 목사를 따라 교회 앞에 섰을 때의 감동을 모자란 필력으로 묘사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암굴교회 앞에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한, “그리고 나는, 역시 이 세상에는 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직접 그 공간에 몸을 두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그런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육체를 그 공간에 두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라는 문장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세상에는 직접 봐야만 이해가 되는 것이 있다. 팔뚝에 난 털들이 일제히 기립할 정도였고(머리카락이 있다면 분명 머리카락도 일어섰을 것이다) 머릿속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정말이지 종교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또 그 생각을 실제로 실행에 옮겨 이런 건축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오직 종교적 신념과 믿음으로만 이런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교회를 둘러싼 벽에는 어느 사제의 미라 한 구가 안치되어 있는데, 이는 죽어도 이 교회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제의 유해라고 한다.
1520년부터 6년간 에티오피아에 머물며 <프레스터 존 왕국의 비밀>이라는 견문록을 쓴 포르투갈의 수도사 프란시스코 알바레스(Francisco Alvares)는 이 불가사의한 암굴교회에 대해 이렇게 적다. “이 교회들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나를 지치게 할 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쓴 글을 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니까.” 랄리벨라는 지금도 수많은 여행자들을 감동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성곽의 도시’로 불리는 곤다르. 파실리다스 황제의 궁 등 요새처럼 굳건한 성이 아직도 원형을 보존한 채 남아 있다
●기품 있는 성곽 도시 곤다르(Gondar)
랄리벨라의 감동은 곤다르(Gondar)로 이어진다. 곤다르는 에티오피아의 옛 수도다. 에티오피아는 16세기까지 암흑기를 거치게 되는데 1635년 파실리다스(Fasilides) 황제가 등극하고 1855년까지 에티오피아의 정치 및 경제 중심지로서 황금기를 이끌게 된다.
그의 이름을 따 ‘파실 게비(Fasil Ghebbi)’라고 부르는 요새 지역에는 이 나라의 고대 왕국인 악숨의 영향 외에도 포르투갈, 북아프리카 무어, 인도 등 다양한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아 아름답게 꾸며진 성들이 많다.
“같은 문명권의 건축물이라 하기엔 이질적으로 보이는 고성들은 약 200년의 통치기간 동안 곤다르가 다양한 문명과 교류했음을 증명하고 있어요.”바유가 아치형으로 멋지게 만들어진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요새 지역은 수차례 외침을 겪으면서도 그 형태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가장 오래된 건물은 파실리다스 황제의 궁이다. 모서리 4개의 탑이 마치 달걀을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달걀 성(Enqulal Gemb)’이라고도 불린다.
▲성곽을 지나 마을로 돌아가는 여인들
이야수 1세가 세운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교회(Debre Berhan Selassie Church)’도 지나칠 수 없다. 겉보기엔 소박하고 단순한 건물이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생애, 성 기오르기스 성인의 모습 등 정교하게 묘사된 성화에 마음을 뺏긴다.
특히 교회 천장에 그려진 135개의 천사 얼굴은 에티오피아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쓰이고 있다. 천사들의 눈빛은 모두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고, 각양각색의 표정을 짓고 있어 인간을 보호하고 희로애락을 공감하는 신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한다.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다 보면 각종 브로슈어와 홍보물에 이 천사들이 등장해 에티오피아로 오라고 눈짓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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