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크트갈렌 대성당,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장크트갈렌은 스위스 장크트갈렌주의 주도이다. 프랑스어로는 생갈로 불린다. 장크트갈렌은 스위스 북동부 해발 약 700m의 계곡에 위치해 있다. 스위스에서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이며 눈이 많이 내린다. 도시는 콘스탄스 호수와 아펜젤알프스 산맥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주변 풍광이 수려하다.
18세기 직물 공업이 발달하면서 지방 상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20세기 들어서는 레이스와 자수의 명산지로 유명하다.
8세기에 건립된 장크트갈렌 수도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우수한 경영대학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장크트갈렌대학이 이 도시에 있다.
장크트갈렌은 8세기에 세워진 장크트갈렌 수도원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이 사원은 아일랜드 선교사 갈루스의 은둔지로 지어졌으며, 수도원 자체는 720년에 성 오트마르에 의해 설립되었다. 수도원은 9세기에 번창하여 게스트하우스와 마구간, 병원 및 순례 장소를 갖췄으며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926년 헝가리 마자르족이 수도원과 주변 마을을 공격했다. 바티칸이 성인으로 공표한 최초의 여성인 성 비보라다는 수도사와 시민들이 탈출하는 동안 수도원에 남기로 선택했고, 습격자들에 의해 살해당했다.937년 4월 26일, 수도원에 화재가 발생해 많은 부분이 불에 탔으나 도서관은 화재를 면했다. 약 954년경 수도원 주위에 보호벽이 세워졌다.
안노 수도원장은 문과 탑이 있는 벽을 세우기 시작했고, 975년 경 노커 수도원장은 그 벽을 완성했다. 인접해 있는 정착지가 장크트갈렌 마을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12세기 후반부터 장크트갈렌은 점점 수도원으로부터 독립을 추진했다. 1180년 수도원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제국의 지방행정관이 취임했다.
1353년에는 방직길드가 이끄는 길드들이 시민정부를 장악했다. 1415년 장크트갈렌은 신성로마제국의 지기스문트 황제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장크트갈렌은 1454년 구스위스연방의 정식 회원으로 가입했다.
1526년 당시 시장 요아힘 폰 와트는 장크트갈렌에 개신교 개혁을 추진했다. 우상숭배 폭동으로 수도사들이도시를 탈출했지만 요새화된 수도원은 손대지 않았다. 수도원은 1803년까지 개신교 도시의 가톨릭 거점으로 남아 있었다.
1798년 프랑스가 구스위스연방을 침공했다. 헬베티아 공화국 체제하에서 수도원과 도시 모두 권력을 잃었으나 1803년 헬베티아 공화국이 전복되면서 중재법에 따라 장크트갈렌은 새로운 장크트갈렌주의 주도가 되었다. 1846년 지방 재배치로 장크트갈렌은 별도의 교구를 만들었고, 수도원 교회는 성당으로, 수도원 건물 일부는 주교의 거처로 지정됐다.
720년에 지어진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수도원은 카롤링거왕조 시대의 수도원으로 1805년 세속화되었다.
수도원 내 도서관에는 2,000여 점에 달하는9세기 책들이 소장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양피지 건축 도면을 포함하여 귀중하고 오래된 필사본들을 소장하고 있다. 수도원 건물은 1755년에서 1768년 사이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장크트갈렌의 수도원
장크트갈렌의 수도원은 7세기 초에 아일랜드의 수도자 갈루스가 알프스 숲 속에 작은 암자를 세움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수도원의 최고 전성기는 9~10세기의 중세, 그리고 17~18세기의 바로크, 로코코 시대였다.
특히 이 곳의 도서관은 중세 이후의 수많은 필사본과 독일어로 쓰여진 최초의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종교 개혁의 혼란기에도 명맥을 이어온 이 수도원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문화유산을 보호해 오늘날에 전하고 있다.
원래 작은 은둔처였던 장크트갈렌의 수도원은 중세에 크게 발전했으며, 17세기와 18세기에 이루어진 대규모 증개축으로 제2차 황금기를 맞았다. 이 곳에서는 중세 이후로 수도원과 시의 공장에서 마직물업이 성행했다. 후에 얇은 목면이나 섬세한 자수를 주제품으로 하는 고급 직물 산업이 발전했다. 현재 장크트갈렌은 스위스 목면과 자수 산업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612년경에 아일랜드의 수도자 갈루스는 성콜룸바누스를 따라 이탈리아로 향하던 도중에 병에 걸려 쓰러져 보덴 호반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이윽고 아르봉의 숲 슈타이나흐 계곡에 수도할 곳을 정하고 소예배당을 지어, 그 곳에 모여든 젊은 제자들 12명과 함께 신에게 기도하며 지냈다. 650년에 사망한 갈루스는 소예배당에 안치되었다.
그 후 이 땅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다. 719년경에 콘스탄츠의 주교가 사제 오트마어를 파견해 본격적으로 장크트갈렌을 수도원으로 건설할 계획을 정비했다. 처음에는 수도원의 회칙을 둘러싸고 갖가지 혼란이 일었지만, 747년에는 베네딕투스회가 정식으로 채용되었다.
9세기 초 이웃의 라이헤나우 수도원 원장 하이토는 새로운 수도원 건축을 위한 평면도를 당시 장크트갈렌의 수도원 원장인 고츠벨트에게 보냈다. 전체적인 통일성을 기본으로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려던 하이토의 설계에 따라 새로운 수도원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장크트갈렌의 실정에 맞는 석조 성당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하이토의 계획이 완벽하게 실현되지는 않았다.현재 장크트갈렌의 수도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하이토의 평면도는 당시 베네딕투스회 수도원의 기능과 일상 생활의 모습을 알아내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9세기의 건축물은 성당 동쪽의 지하 제실뿐이다.
▲장크트갈렌의 성당
▲장크트갈렌의 성당
현재 장크트갈렌의 수도원 건축물 대부분은 제2의 황금기인 18세기에 세워진 것이다. 기본 구상이 완성되자, 1756년 초에 목수 페터 툼은 공사를 시작했다. 성당의 내진 공사는 요한 미하엘 베어가 감독했다. 1766년에는 높이 68m의 탑 2기가 있는 성당의 주요 부분이 완성되었다.
고해석을 비롯한 성당 안의 각 부분을 장식으로 조각한 사람은 요제프 안톤 포이히트마이어였으며, 화가 크리스티안 벤팅거와 요제프 바넨마허도 벽화 제작에 참가했다.장식 기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도서관도 이 때 함께 건설되었다.도서관에는 페터 툼과 요한 바넨마허를 비롯해 성당 건설에 참가한 일류 직인들의 솜씨가 유감없이발휘되어 있다.
▲장크트갈렌의 성당
1517년에 마르틴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 개혁은 순식간에 각지로 번져 갔다. 이듬해인 1518년에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사제 츠빙글리가 교회를 비판하는 설교를 시작하자, 종교 개혁의 불길은 단숨에 달아올랐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은 주와 주 사이의 대립과 맞물려 무력 충돌로 발전했다. 장크트갈렌의 수도원도 이 시기 이후에 일어난 갖가지 혼란으로 파란 만장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1524년에 장크트갈렌의 시장이 시를 프로테스탄트에게 넘겨 주자, 수도원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1529년에는 장크트갈렌의 수도원장도 주변의 다른 수도원이나 성으로 옮겨 가야 했다.그 사이에도 장크트갈렌의 수도원 도서관은 수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보호해 주었다.
1712년 종교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조약이 맺어져 수도원이 회복되자, 장크트갈렌은 제2의 황금기를 맞았다.그러나 그 후 주요한 특권이 폐지되고, 마침내 1798년에는 최후의 수도원장 판크라츠 폴스터도 장크트갈렌을 떠났다.
그리고 7년 후인 1805년,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장크트갈렌의수도원은 폐쇄되었다.수도원장의 관저를 포함한 현재의 장크트갈렌의 수도원 건물에는 역사적, 양식적으로 다양한 요소가 섞여 있다또 주변의 거리에는 성서 장면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가 장식되어 있는 망루 형식의 건축이 남아 있다.
▲Stadtplan St Gallen 1642
▲Stiftsbezirk St. Gallen 1876
"Reconstruction of the buildings of the abbey of Saint Gall according to the historical plan from the early 9th century" - Note the Plan is from St Gall, but was apparently never built, and may not have been produced or intended for there.
▲장크트갈렌 수도원
E: 수도원 , 현재는 장크트 갈렌 주 청사 C: 대성당 B: 수도원 부속 도서관
D 화살표 : 대성당 광장에서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장크트갈렌 대성당 내부
▲장크트갈렌 대성당 내부
▲장크트갈렌 대성당 내부
▲장크트갈렌 대성당 내부
▲장크트갈렌 대성당 내부
▲장크트갈렌 대성당 내부
▲장크트갈렌 대성당 내부
▲장크트갈렌 대성당 내부
성당 성가대석의 부조 장식은 조각가 포이히트마이어의 작품이다.
베네딕투스회의 창설자 성베네딕투스의 생애가 조각되어 있다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도서관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도서관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도서관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도서관
장크트갈렌 수도원의 넓은 도서관을 둘러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감탄사를 내게 된다.
다양한 색깔의 목재로 쪽매붙임 세공을 한 바닥, 황금빛 기둥머리를 이고 있는 기둥과 목조 세공,
수많은 인물이 그려진 천장,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회랑과 회색 농담을 살려서 그린 장식 문자 등,
그 하나하나가 18세기 후반 건축 기술의 정수를 모아 놓은 로코코 양식의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에는 1000년 남짓 이전부터 가치 있는 문서가 풍부하게 소장되어 왔으며,
수도자나 필사본 연구자들을 위한 중세의 필사본도 2000권 넘게 갖추어져 있다.
장크트갈렌의 수도원 도서관에서는 성서 [시편과 복음서] 외에도 갖가지 교의서, 교회력, 순교록,
라틴어 고전, 카룰로스 대제 전기 등 참으로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볼 수 있다.
특히 의례용 성가집 사본은 장크트갈렌의 수도원이 의례의 확립과 발전에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를
잘 말해 준다. 10세기의 수도자 ‘말더듬이 노트커’는 수많은 중요한 필사본을 제작했다.
또 그는 의례용 기도를 음표로 옮기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한편 11세기의 수도자 ‘아랫입술이 두꺼운 노트커’는
8~9세기 이후에 장크트갈렌에서 시도한, 라틴어를 옛 고지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과 어휘집 편찬을 추진하는
일에 크게 공헌했다. 이것은 독일어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업적이었다.
옛 고지 독일어란 문서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독일어를 말한다. 8세기에 제작된 독일어 주기도문 필사본을 비롯해
장크트갈렌의 수도원에 소장되어 있는 아일랜드계의 중세 사본, 18세기의 [니벨룽겐의 노래] 사본 등은
현재 대기 오염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그 원인은 지나날 수도원 도서관 아래의 갈루스 거리로 하루에 12000대가 넘는 차가 지나다녔기 때문이다.
현재는 차를 우회시켜 진입을 제한하는 등 도서관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도서관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도서관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도서관
목수 페터 툼의 지도로 1765년에 완성되었다.
쪽매붙임 세공으로 이루어진 이 화려한 방은 현존하는 스위스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도서관
▲장크트갈렌 수도원(Stiftsbezirk St. Gallen) 도서관
▲Verbrüderungsbuch von St. Gallen (9. Bis 11 Jahrhundert)
'■서유럽********국가들 > ⊙스위스*****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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