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유럽********국가들/⊙러시아*극동지방

러시아ㅡ캄차카 반도ㅡ야생이 살아 숨 쉬는 땅 / 불곰과 연어의 고향, 쿠릴호수와 옥팔라강

by 삼수갑산 2022. 3. 7.

캄차카 반도(Kamchatka Pen)

야생이 살아 숨 쉬는 땅 / 불곰과 연어의 고향, 쿠릴호수와 옥팔라강

▲어미 곰은 새끼 곰을 위해 분주히 연어사냥을 하고 잡는 법을 가르친다.

 

2017년 9월 첫째 주. 일반적인 관광객의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 동부의 캄차카Kamchatka를 방문하기엔 약간 늦은 감이 있었다. 7~8월의 맑은 하늘과 비교적 온화한 날씨가 점점 그리워지는 계절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이제 곧 겨울이 올 거예요. 여긴 한순간이죠. 다음 달만 돼도 헬기가 맘대로 뜨기 어려울걸요.”

러시아에서 온 소식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짐을 싸서 그곳으로 향했다. 한 방송사의 여행프로그램에서 함께 캄차카를 돌아보며 그곳의 야생을 직접 체험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했다. 캄차카는 탐험가에게 그 어떤 곳보다 억세고 척박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여 만에 하바로프스크Khabarovsk에 도착했다. 이곳은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와 함께 러시아 극동지방의 관문이다. 그러나 아직 겨우 반을 왔을 뿐, 러시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반도인 캄차카까지는 오호츠크해를 건너 다시 2시간여를 날아가야 한다.

캄차카의 주도는 페트로파블로브스크 캄차츠키Petropavlovsk-Kamchatsky다. 아마도 내가 아는 한 지구상에서 가장 긴 도시이름이 아닐까 싶다. 하바로프스크를 떠난 비행기는 이 도시에서 북서쪽으로 붙어 있는 예리조보Yelizovo에 도착했다.
예리조보는 러시아의 여느 마을처럼 작고 낡은 분위기였다. 우리는 이 마을을 둘러보는 것을 조금 미루고 곧장 쿠릴Kurile호수로 향했다.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날씨가 변덕스러운 탓에 헬리콥터가 뜰 수 있는 날이 제한적이고, 그 기회를 놓치면언제 또 헬리콥터가 뜰지 몰랐기 때문이다.쿠릴호수까지는 헬기를 타고 약 한 시간 동안 200km를 날아가야 한다.

 

고도 300~1,500m 사이를 오가며비행하는 동안 창밖에는 온통 짙푸른 자연의 색으로 가득했고, 흰 눈을 덮어쓴 화산들도 종종 나타났다.그제야 우린 야생의 땅으로 향하고 있음이 실감났다.

 

▲연어가 돌아오는 시기는 곰이 긴 겨울을 나기 전이어서 최대한 영양을 많이 보충해 놔야 혹한기를 보낼 수 있다.

 

연어와 불곰의 세상, 쿠릴호수

면적이 76㎢에 이르는 쿠릴호수는 화산폭발로 생성된 칼데라Caldera호이다. 약 4만 년 전, 그리고 1만 년 전의 폭발이 얼마나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을지는 수치를 들어도 상상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전히 마그마의 분출구가 이 호수 깊숙이 4km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3,000여 개의 화산이 있는 캄차카에선 놀랄 일도 아니지만 여전히 끓고 있는 곳에 당도했다는 것 자체가 낯선 경험이었다.

폭발은 흔히 재앙 또는 종말을 상징하지만 그 변화의 결과로 이 호수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어들이 탄생하고 또, 되돌아오는 곳이다. 엄청난 수의 불곰이 그 연어를 먹고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종말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탄생이 되는 곳. 쿠릴호수와 야생의 생명들은 그렇게 태어났다.

우리는 좀처럼 찾아오기 힘든 이곳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했고 본격적인 쿠릴호수 탐험에 나섰다. 길들여지지 않은 불곰과 야생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었다.오호츠크해와 강으로 연결된 이 호수는 연어가 돌아오는 시즌이면 수많은 불곰들이 사냥을 위해 몰려든다고 했다.

 

호숫가는 물론이고 강의 상류로 올라가면 더욱 가까이에서 그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모험심이나 호기심만으로 길을 나섰다가는 되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야생은 결코 우리 편이아니다.

 

더군다나 우리 일행은 야생의 삶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총으로 무장한 보호구역 안전요원과 야생곰을 연구하기 위해 머물고 있는 두 명의 생태학자가 우리와 동행하기로 했다.

모터보트가 물살을 가르기 시작하자 차디찬 쿠릴호수의 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왼편으로 커다란화산이 보이고 호수 한가운데에는 ‘세르드차 알라이다Serdce Alaida’라는 이름의 바위섬이 외롭게 서 있었다.과연 이곳에 곰이 득실거린다는 것이 사실인지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불신을 확신으로 돌리는 데까지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불과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한 모래밭에 곰 가족이 한창 연어사냥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인지 아니면 사냥에 정신이 팔렸는지 우리 배가 닿도록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숲으로 들어가자 나무마다 곰들이 영역을 표시한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강함을 드러내야 하는 야생의 습성이다.

 

이곳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인 데다 곰 사냥을 금하고 근거리로 접근을 하지 않는 등의 원칙을 오랫동안 지켜왔기 때문에 곰들이 사람에게 무신경한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안전요원은 항상 우리 앞에서 곰들을 주시하며 총을 놓지 않고 있었다.

곰들을 관찰하니 제각각 성격이나 입맛들이 달랐다. 어떤 녀석은 몇 번을 실패해도 계속 물길로 뛰어들며 연어를 사냥하고, 또 어떤 녀석은 다른 곰이 먹다 버린 반 토막 난 연어를 주워 먹기도 했다.한 녀석이 60cm는 족히 넘을 커다란 연어 한 마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내가 본 바로는 거의 열 번 만의 성공이었다.

 

녀석은 양지바른 모래밭으로 나와 연어를 두 발로 꾹 누르고 입을 댔다. “아드득~”하며 연어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그제야 불곰의 엄청난 이빨이 드러났다. 그 무시무시한 이빨에 연어껍질이 종잇장 찢기듯 벗겨졌고 연어의 배에서 시뻘건 알이 쏟아져 나왔다.

녀석은 연어의 알만 쏙 빼먹곤 다시 사냥을 하러 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몇 마리의 연어를 사냥했지만여전히 몸통은 버리고 알만 쏙 빼먹었다. 하긴 차고 넘치는 연어 떼를 보니 이 정도 편식도 납득할 만했다.

 

이렇게 연어가 많아도 이 지역에서는 인간의 연어사냥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극히 일부라고 생각하고 허용되는 순간 야생은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늘 허용한계치를 넘어가려는 습성이 있으니까.

우리는 다시 4km 정도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다. 쿠릴호수 안에는 두 곳의 캠프가 있는데 메인인 하나는 호수의 북서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남쪽에 있다. 두 곳의 거리는 약 7km다. 모두 외부로부터 헬리콥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고 둘 사이는 보트로 오갈 수 있었다.

남쪽 캠프에 배를 정박하고 숲길을 따라 곰들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캠프를 지나는데 비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세계적인 야생사진가 미치오 호시노Michio Hoshino를 기리는 것이었다. 1952년생인 그는 1996년 8월, TV 프로그램 촬영차 이곳을 방문했다가 불곰의 습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세상 누구보다 야생과 동물을 사랑했던 그가 야생의 땅에 묻히게 된 것이었다.

 

▲캄차카 서부해안은 지형이 매우 독특하다.

얇고 긴 내륙의 곁가지 오른편으로 강이 흐르고 왼편으론 오호츠크해가 마주보고 있다.

 

숲으로 들어가자 걷는 곳마다 뜯겨져나간 연어 몸통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근처에 불곰이 많다는 증거이고 또한 바로 조금 전까지도 이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긴장했다. 몸집 큰 녀석들이지만 목표물에 달려들 땐 우샤인 볼트보다 더 빠르다고 했다.

숲이 우거진 터라 곰을 미리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갑자기 안전요원이 걸음을 멈추고 다급하게 우리를 멈춰 세웠다.

“바로 앞에 곰이 있어요. 조용히 하고 움직이지 말아요.”

그의 어깨 너머로 거대한 불곰 한 마리가 연어를 입에 물고 지나는 중이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덩치가 저렇게 큰데도 코앞에 닿아서야 있는 걸 알 정도니 내 뒤에서 순식간에 곰이 달려들어도 모를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생태학자들은 곰을 만날 때마다 그 모습과 특징들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모두 똑같이 생긴 것 같지만 수년 동안 곰을 관찰해 온 연구원은 녀석들을 다 구분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유독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곰 가족이 있었다. 어미와 세 아기 곰들이었다. 어미 곰은 쉴 틈 없이 연어를 물어와 새끼들을 먹이고 때론 따스한 햇볕을 쬐며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어미가 젖을 먹이는 모습이었는데, 배가 고픈 새끼들이 젖을 보챌 때 아주 특이한 울음소리를 냈다.

이 순간은 모두 숨을 죽여야 했다. 모성애가 강한 곰은 새끼들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매우 사납게 돌변하기 때문이었다. 곰이 젖을 먹이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라는 말에 한참동안 관찰했다.아무리 포악한 야생동물일지라도 제 새끼에게만큼은 푸근한 엄마일 뿐이다.


▶멀고 먼 위대한 여정의 종착지, 오팔라강

쿠릴호수에서의 여정을 마친 뒤 다시 보트에 몸을 실었다. 이제 캄차카의 서부 오호츠크해와 오팔라강 일대를 찾아간다.

미리 예약해 둔 러시아제 카마즈 트럭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고가 높은 육중한 트럭을 보니 캄차카의 어디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가슴이 설렜다.

 

▲곰 서식지를 찾기 위해서는 보트를 타고 이동해야 하며 또 안전을 위해 늘 소총을 든 요원이 대동해야 한다.

 

▲잡은 연어는 종류별로 분류한 뒤 저장박스에 담아 공장으로 옮겨진다.

 

진흙탕 길은 너무나 거칠었다. 그런 곳을 차를 타고 달리는 짜릿함은 모험가적 기질이 있는 사람들에겐 최고의 순간일 것이다. 이미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었고 한 시간 반 동안 겨우 20km를 달렸다. 아무리 덩치 좋은 트럭이라도 맘껏 달릴 수 없는 곳이었다.

다음날 오전 오호츠크해가 보이는 해안가로 갔다. 이곳에서는 매우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내륙에서 뻗어 나온 땅이 본토와 강을 사이에 두고 북에서 남으로 길게 누워 있었다. 폭은 겨우 100~300m 정도였지만 이런 땅이 무려 100km까지 이어졌다. 그 오른쪽은 강줄기이고 왼쪽은 오호츠크해다.

오팔라강으로 향했다. 많은 강줄기들이 오호츠크해로 흘러나가지만 그중에서도 오팔라강은 연어가 가장 많이찾는 곳이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도 가장 많이 몰려드는 곳이었다.몇몇 작은 배들이 부지런히 그물질을 하고 있었다. 그물의 한쪽은 배가 끌고 다른 한쪽은 사람이 끌며 물살에 따라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무척이나 지루하고 고된 노동임은 굳이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대화를 나눌 사람도, 구경할 거리도 는 오직 물과 하늘뿐인 이곳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일을 반복해야 연어를 잡을 수 있다.배가 뭍에 닿자 기대를 가지고 달려가 봤지만 연어는 겨우 바닥에 깔린 정도로 적었다. 어부의 표정도 그리밝지 않았다.

 

예년에 비해 어획량이 줄어들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연어라면 깔끔하게 손질된 분홍빛 살점 정도만 봐왔던 나로선 어른 허벅지보다 굵은 녀석들의 실체가 그저 신기했다. 게다가 연어의 종류도 생김새에 따라 제각기 다르고 그 맛도 다르다고 한다.

우리의 식탁에 오른 연어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산란을 위해 수천 수만 km를 헤엄쳐 온 연어들의 노력과 이 외진 땅에서 수없이 그물질을 반복하는 어부들의 노력 말이다.한 노인이 내게 연어 한 마리를 선물했다. 내가 직접 요리해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곳에선 연어를 잡는 것만 허가되고 그것을 조리하거나 생으로 섭취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그들 역시 ‘바깥 마을에서 사온 연어만을 먹어야 한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쿠릴호수나 이곳이나 연어가 넘쳐나지만 정작 그 연어를 잡아먹을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노인과 차 한 잔을 나누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페트로파블로브스크 캄차츠키로 향했다.

 

1 오팔라강은 캄차카에서도 최대의 연어어장이다. 하지만 매년 줄어드는 어획량에 어부들의 고민이 늘어가고 있다.

2 야생사진가 미치오 호시노를 기리는 비석이 그가 사망한 자리에 세워져 있다.

 

◆위대한 여정의 목격

물길을 건너기 위해 트럭을 타고 야생을 달리는 기분은 도시의 여행과는 전혀 다른 체험이었다. 차가 높으니
창밖으로는 오로지 바다와 강과 저 멀리의 산맥들뿐이다. 그러나 물길로 길이 막히는 곳에서는 배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트럭에서 내리자 우리 말고도 여러 대의 비슷한 트럭들이 물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승객들은 대부분 근처의 연어가공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그중 일부 승객들이 우리 트럭에 함께 타도 되냐고 물었다.

교통편이 워낙 부족한 곳이기에 이곳까지 한 트럭에 꽉 차게 타고 힘들게 온 것이었다. 의자는 고사하고 바닥에 앉을 자리조차 없어 짐 위에 걸터앉거나 서서 달려온 모양이었다. 우리 트럭엔 운전사를 제외하고 4명만 타고 있었으니 자리가 무척 많이 남았다.

그래도 된다는 말에 신이 난 여성들이 연신 “스바시바~(고마워요!)”라며 차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하바로프스크로 간다”고 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나는 이르쿠츠크요”, “나는 벨로루시”, “나는 우즈벡”이라며 각자 자신들이 갈 목적지를 외치면서 웃었다. 무엇이 그렇게 신나느냐고 물으니 이제 모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이들은 이 지역의 연어가공공장에서 시즌 동안 일을 한다고 했다. 다른 곳보다 일은 힘들지만 한 시즌만 와서 일하면 꽤 큰돈을 벌 수 있어서 매년 이곳을 찾는다는 여성도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딸과 손자 사진을 보여 주며 그리움에 눈물을 글썽였다.

나의 캄차카에서의 첫 여정은 ‘위대한 여정의 목격’이라 제목을 달아도 될 법하다. 먼 대양에서 산란을 위해 이곳까지 헤엄친 연어의 여정과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새끼를 데리고 쿠릴호수로 몰려드는 곰들의 여정,

 

그리고 가족을 위해 이 먼 곳까지 돈을 벌러 온 여성들의 여정이 있었다.사랑에는 희생이 동반되고 그 희생으로 더 큰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그들을 통해 배웠다. 캄차카, 척박한환경에서 꾸밈없는 자연의 섭리와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출처 / chosun.com / 월간 산 / 글·사진 남영호 탐험가,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