닝샤후이족자치구ㅡ西夏제국, 칭기즈칸의 충돌과 흥망이 기록되다!
▲중국 서하(西夏)는 칭기즈칸이 초원을 지배하기 전까지 초원 실크로드를 장악한 대제국이었다. 서하는 실크로드 요충지를 차지, 동서무역을 매개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한자에서 차용한 독자적인 서하문자를 창안해 보급하는 등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서하는 1032년에서 1227년까지 중국 북서부의 간쑤성(甘肅省), 산시성(陝西省)에 위치했던 티베트계 탕구트족(당샹족)의 왕조이다. 사진은 실크로드 서북쪽, 지금의 오르도스(Ordos)라 불리는 초원지대의 모습이다.
중국 닝샤(寧夏)는 낯선 땅이다. 중국인에게도 낯설기는 마찬가지.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에 ‘닝샤는 어느 성(省)인가?’ ‘닝샤는 성(省)인가 시(市)인가?’ 하는 질문이 올라와 있다. ‘닝샤 회족(후이족)’ 자치구는 중국인들에게도 친숙한 곳이 아니다.
위치는 황허강 중류에 있다. 수도는 인촨(銀川). 중국 시베이(西北)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남쪽으로는 쓰촨성(四川省), 동쪽으로는 간쑤성(甘肅省)과 접해 있는 닝샤는 서하제국과 칭기즈칸의 몽골이 얽힌 비밀스런 곳이다.
▲실크로드의 옛 대상길. 실크로드 교역을 담당한 대상들이 오랫동안 오갔던 장청(長城) 옛길.
중국 서하(西夏·1032~1227)는 칭기즈칸이 초원을 지배하기 전까지 초원 실크로드를 장악한 대제국. 그 옛날실크로드의 영화(榮華)를 200여 년 동안 누리며 제국의 역사를 썼다. 그러나 세계 제국의 대역사를 쓴 정복자 칭기즈칸이 들이닥쳤다. 두 제국의 충돌과 흥망이 기록된 곳이 바로 닝샤다.
사실, 서하와 칭기즈칸의 역사는 한순간에 불과했다. 두 제국의 전쟁은 20년에 불과했으니까.지금 그 땅은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회족이 지배하는 ‘회족제국’으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닝샤는 회족들의 고향, 후이샹이라고 불린다.아라비아의 대상(隊商)과 용병, 기술자들… 원나라 왕조와 아랍세계 교류의 주역이었던 그들이 지금 회족의 선민(先民)이었다.
그들은 아랍세계 문명과 중화문명의 매개체이자 교류자였고 그들이 이주한 역사가 곧 회족의 역사다. 중국에 유입된 시기와 문화, 배경이 제각각이지만 이슬람교라는 종교를 바탕으로 그들은 하나의 민족을 구성했다.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회족은 중국을 이해하는 또 다른 키워드다.
▲중국 닝샤(寧夏)의 회족(후이족·回族) 자치구는 한국인에게 낯선 곳이다. 닝샤의 유명 관광지인 사후(沙湖)에 세워진
모택동의 황금빛 동상.
닝샤에서는 칭기즈칸과 마오쩌둥의 숨결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세기의 정복자’라는 칭기즈칸이 운명을다한 곳이 닝샤의 류판산(六盤山) 자락이었다. 그곳에는 ‘신(新)중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毛澤東)의 꿈이 기록돼 있다.
장제스(蔣介石)에게 쫓기던 마오는대장정을 이끌면서 마침내 류판산에 올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청평락(淸平樂) 류판산’이란 한 편의 시(詩)를 통해 황제의 꿈을 내비쳤다.
“하늘은 높고 구름도 맑은데/ 남쪽으로 향해 줄지어 나는 기러기 떼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만리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장부라 이르지 못하거늘/ 손꼽아 헤어보니 지나온 여정 이만 리.
류판산 정상에 올라 높은 봉우리를 바라보니/ 홍기는 서풍에 펄럭이고
내가 이끌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오늘/ 푸른 용은 이제 언제라도 잡을 수 있을 터.”
▲중국 어느 가정에서나 마찬가지로 서하의 후예도 마오쩌둥 사진을 집 안에 걸어두고 있었다.
아래쪽 중앙에는 《삼국지》의 관우상이다.
그러나 서하 정벌에 나선 칭기즈칸이 서하를 정복하기 직전 류판산에서 사망한 것은 미스터리다. 그의 무덤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도 그의 사망 원인이 불명인 것도 여전히 미스터리다닝샤의 사막과 초원은 실크로드의 역사와 연결돼 있다.
한때 실크로드의 지배자였던 서하제국과 서하를 멸망시키고 대제국을 완성한 칭기즈칸의 최후까지 담긴 류판산, 그곳에서 마오쩌둥은 신중국 황제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마도 마오는 진시황의 자취도 찾아냈을 것이다. 닝샤에서는 선사시대 인류가 만들어 낸 허란산 바위 벽화에서부터 ‘수이둥거우(水洞溝)’ 선사시대 유적지까지 다양한 역사 유적을 만날 수 있다.
▲동방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서하왕릉 모습이다. 황금색 피라미드 뒤쪽으로는 허란산(賀蘭山)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서하제국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첫 번째 유적들이다.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서하의 도성인 싱칭부(현재의 인촨·銀川)를 파괴하고 왕족과 귀족은 물론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의 무덤’인 이 서하왕릉은 파괴하지 못했다. 서하왕릉은 중국에서 ‘아름다운 황제의 능 10선’ 중 하나다.
▲서하왕릉은 각각의 능원마다 월성(月城), 능성(陵城), 능대(陵隊) 등을 갖춘 하나의 독립된 능원을 이뤘다.
능원 곳곳에서는 발굴하다 만 유적들을 만날 수 있다. 서하왕릉은 아직까지도 1~3호의 왕릉만 발굴됐다.
▲서하박물관에 전시된 서하제국의 유물.
닝샤에 가면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이 서하왕릉이다. 칭기즈칸과 서하제국과의 오랜 숙명과도 같은 전쟁은 서하를 멸망시켰다. 이는 칭기즈칸의 최후 또한 앞당겼다. 서하도 칭기즈칸도 몽골의 원제국도 200년 이상의 시간을 이어가지 못했다.
▲서하의 영광을 노래하는 닝샤 회족 자치구의 민족 가수.
▲회족 고유 의상을 입은 한 여성의 모습.
▲닝샤 회족 자치구의 이슬람 신자들이다. 회족은 중국 이슬람이다.이들은 중동의 무슬림과 마찬가지로 하루 다섯 번씩 예배를 올린다
닝샤 회족 자치구는 매일같이 하루에 다섯 번인 이슬람의 기도 시각을 알려주는 아잔의 ‘방커’ 소리를 들으면서 이슬람 문화를 흠뻑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닝샤에서는 이슬람사원인 ‘모스크’의 중국식 사원이 무려 2000여 개나 있다. 닝샤 인구의
3분의 1이 회족이다.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와 몽골공화국의 경계에 있는 어지나치(額濟納旗)시 부근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흑수성(黑水城) 유적이다.
정확한 위치는 어지나치시 쿠푸진 동남쪽 25km 지점이다. 이곳은 약수류사(弱水流沙)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흉노족들이 유목하던 곳으로 말 그대로 ‘모래가 흘러내리는 강’이었을 것이다.
흑수성은 한때 오아시스 주민들에게는 악령이 사는 금기의 땅이었다. 거센 모래폭풍이 성을 뒤덮고 있던 모래를 한꺼번에 날려버리자 흙으로 쌓아 올린 성벽 일부와 탑신이 드러났다.
필자는 닝샤 회족 자치구에서 황허강이 만나는 첫 번째 마을인 ‘난창탄춘’을 찾았다. 그 마을에서 서하의 마지막 후예들을 만났다. 사방이 해발 2000m가 넘는 험준한 산맥과 황허의 거센 물살에 가로막혀 있어 천혜의 요새와 같았다. 이에 외부인의 침입을 전혀 받지 않았다.
대충 어림잡아 마을은 200호가 안 됐다. 촌장은 서하제국 후예를 소개해 주겠다고 앞장섰다. 탁(拓) 씨 할아버지는 “당신이 후예임을 증명해 달라”는 필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늘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절대로 우리의 조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우리가 누구였는가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 우리는 서하 사람이거든
출처 / chosun.com / 월간 조선 2월호 / 글.사진=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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