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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국가들/⊙노르웨이***기행

노르웨이ㅡ트롬쇠(Tromsø)ㅡ아문센 동상, 순록 요리…겨울왕국의 도시.

by 삼수갑산 2022. 4. 7.

아문센 동상, 순록 요리…겨울왕국의 도시. 트롬쇠(Tromsø)

▲겨울왕국 노르웨이 트롬쇠 정경. 눈과 물과 냉기가 출렁이는 바다 위로 인간이 만들어낸 불빛이 출렁인다.

추위 속에서 반짝이는 그 온기가 마음을 덥힌다./이병철 제공·ⓒnordnorge.com

 

누구에게나 몹시 추운 기억 하나씩 있을 것이다. 불볕더위를 피해 은행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노르웨이 트롬쇠(Tromsø)를 추억한다. 생각만으로 서늘해지는 곳이다. 혹한기 훈련이나 꽁꽁 언 운동장에서 치렀던 방학식처럼, 트롬쇠 해변에서의 하룻밤을 떠올리면 지금도 발끝이얼얼하다. 하지만 내 생애 가장 환하고 따뜻했던 겨울밤이 아직 그곳에 있다.

지난해 2월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 스칸디나비아항공 여객기를 타고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 내렸다. 가방을 찾은 후 입국장으로 나갔다가 다시 출국장에서 짐을 부쳐야 하는 오슬로 공항 규정을미처 몰랐다. 체크인이 오래 걸려 예정된 환승에 실패했다. 저녁 비행기로 겨우 예약 변경을 해 밤 10시가 돼서야 트롬쇠에 발을

디뎠다.

북위 69도, '북극의 관문'인 트롬쇠는 오로라의 본고장이다. '트롬소'라고도 한다.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모르겠다.현지인들은 '소'와 '쇠'의 중간 발음을 하는데, 그건 따로 배워도 못 할 것 같다. 오로라를 만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전문 가이드와 동행하는 투어 대신 북극광이 지나는 길목에 텐트를 치고 무작정 야영하는 구식을 택했다.노르웨이의 높은 물가 때문이기도 했으나, 가장 추운 계절에 가장 추운 방식으로 '겨울왕국'을 여행해보고 싶었다.

렌터카를 빌렸다. 창문이 얼어붙어 열리지 않았다. 오로라가 자주 관측된다는 프레스트반네트(Prestvannet) 호수를향해 맹렬히 쏟아지는 눈보라 속을 달렸다. 불 켜진 상점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미리 공항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생수를 산 것은 잘한 일이었다. 얼어붙은 호수 위로 눈 쌓이고, 수몰(水沒) 나무들은 얼음에 하반신이 갇힌 채 서 있었다. 풍경에 매혹된 탓일까, 호수가까이 차를 대다가 눈밭에 바퀴가 빠졌다.

 

조수석 문으로 나와 언 땅을 팠다. 헛수고였다. 새벽 2시, 근처 주택가를 배회 중이던 현지인의 도움으로 결국 견인차를 호출할 수 있었다.오로라는 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호수를 빠져나왔다. 몸과 마음이 지쳐 북극박물관 근처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침낭을 폈다. '큰 바위(Big Rock)'라는 뜻의 해발 421m 스토르스테이넨(Storsteinen)산이 웅크린 북극곰처럼 보였다. 밤은 길고, 침낭에 덮이지 않는 얼굴 위로 북구의 냉기가 내려앉았다.

날이 밝자 어제의 사나운 트롬쇠가 아니었다. 설경이 포근했다. 북극박물관으로 가 이누이트가 바다표범을 사냥할 타던 선박과 아문센 탐험대의 개썰매 전문가 헬메르 한센 동상을 봤다. 노르웨이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조 성당인 트롬쇠 대성당 주변으로 중심가가 형성돼 있다.

 

생선 스튜와 순록 요리로유명한 '엠마의 드림키친(Emma's Dream Kitchen)'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해풍과 추위, 눈보라에 낡아 빛이 바랜 아문센 동상 앞에서 괜히 울컥했다. 눈발 속 우뚝 선 트롬쇠의 랜드마크북극교회에선 비장미와 숭고미가 느껴졌다. 내부 파이프오르간과 스테인드글라스는 뛰어난 예술 작품이었다.

 

①북극 교회(The Arctic Cathedral)의 스테인드글라스. ②신비한 살결의 오로라. ③차디찬 해안가에 텐트를 치고,

양고기를 굽고 라면을 끓이는 이 맛! ④트롬쇠 대성당 근처 아문센 동상./이병철 제공·ⓒnordnorge.com

 

시내에서 5㎞ 떨어진 곳에 북극해가 파도 치는 텔레그라프북타(Telegrafbukta) 해변이 있다. 도무지 제대로 발음할 재간이 없는 이 해변 역시 오로라 관측 포인트. 칼바람과 싸우며 가까스로 텐트를 쳤더니 금세 캄캄해졌다.

 

일회용 그릴에 불을 붙여 양고기를 구웠다. 온통 흰 눈에 덮여 딴 세상 같은 해변으로 북극해의 파도가 엄숙한 성가처럼 밀려왔다. 어둠마다 얼음이 박혀 있어 바람은 날카롭고, 유리 두드리는 맑은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맥주를 마시면서 오로라를 기다렸다. 추위를 피해 침낭 속에 있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길 반복했다. 오로라는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못 봤어도 본 것처럼 황홀했다. 여러 색깔로 하늘빛이 바뀌는 트롬쇠의 밤은 아름답고, 파도마저 잠들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보라와 얼음바람을 맞는 텐트 안이 우주선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텐트를 걷고 나니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오로라는 다시 돌아올 약속으로 남겨둔 채 배낭을 쌌다.

'자연에의 접근권'은 노르웨이 안 모든 사람에게 자연 어디서든 야영과 취사를 허용하는 법적 보장이다. 나 같은 여행객에게는 그야말로 멋진 복지다. 우리나라보다 3배 큰 땅에 500만명이 산다. 뜨문뜨문 떨어져 사니까 그들도외로울 것이다.

 

자연에의 접근권도 대자연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게나 텅 빈 곳을 누군가가 채워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신의 제도적 실천인 복지 역시 마찬가지다. 넓은 땅에 인구가 적으니 사람이 귀하다. 보행자가길을 다 건너기 전엔 차들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해변에서 텐트를 걷으며, 진정한 복지는 자연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의 풍요와 아름다움, 그걸 누구나 공평하게 누릴 수 있게 하는 것. 산과 바다마다 투기꾼과 기업가들이 몰려가 골프장과 스키장, 카지노, 호텔을 짓는 걸 위락(慰樂)이라 부른다면 복지는 너무 먼 얘기다.

 

자연의 소중함을 알아야 사람 귀한 것도 알게 된다. 복지는 제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에도 있어야 한다.나는 자연이 그 미덕을 길러준다고 믿는다.

지금 트롬쇠는 완전한 백야, 하루 종일 환하다. 시간에 손목이 붙들린 채 끌려다니는 일상을 벗어나 여유로운 삶을 잠시 회복하고 싶다면, 밤이 없어 하루가 이틀처럼 느껴지는 여름의 트롬쇠, '소'와 '쇠'의 중간 발음을 지금부터 연습해볼 일이다.오슬로 공항 환승 시스템이 개선돼 이제 국제선 이용 후 국내선 환승 시 수하물이 자동으로 최종 도착지까지 이동된다고 한다.

노르웨이에서는 건물이 들어서거나 울타리로 구획된 곳을 제외한 어디에서나 야영 및 취사가 가능하다. 숲에서 불을 피우는 것도 허용된다. 노르웨이 관광청 홈페이지(visitnorway.co) 참조.시가지 규모가 작아서 도보로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본다. 케이블카를 타고 스토르스테이넨 전망대에 올라 트롬쇠 전경과 피오르의 장관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마트에서 우리 돈 3000원짜리 일회용 그릴과 소시지를사 공원에 앉아 구워 먹으면 북유럽의 정취를 느끼는 한편 여행 경비도 절약할 수 있다.시내 정육점에서 엘크·순록 등 북극 야생동물 고기를 판다.

 

1877년 세워진 양조장 ‘맥 브루어리(Mack Brewery)’에서 운영하는 ‘욀할렌 펍(Ølhallen Pub)’에 가면 여러 종류의 트롬쇠 맥주를 맛볼 수 있다.시내 외곽에 아웃렛 형태의 마트 단지가 있다. 대형마트 ‘유로프리스(Europris)’, 스포츠 아웃도어 ‘지 스포츠(G-sports)’, 가구점 ‘이케아(IKEA)’ 등에서 북유럽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캠핑버너용 이소가스는 아웃도어매장에서 구입 가능하다.

출처 / Chosun.com / 이병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