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군ㅡ동해의 보배’ 경북 울진
대게에 침 흘리고 볼 게 많아 땀 흘리고 떠나는 게 싫어 눈물 흘리다
▲국내 최대 대게잡이 항구인 울진 후포항의 하루는 매일 아침 힘이 넘치는 대게와 싱싱한 홍게 경매와 함께 시작된다.
경북 울진(蔚珍)은 이름 그대로 진귀한 보배의 도시다. 짙푸른 동쪽 바닷길(101.2㎞)을 따라 싱싱한 수산물이 넘쳐나고 국내 최대 규모의 금강송 군락에서 귀한 송이버섯이 자란다. 기암절벽 아래 맑은 강에서는 은어와 연어가 헤엄을 치는 곳. 가는 길이 멀어도 늘 가보고 싶은 곳이 울진이다.
▲멀리서 내려다 본 후포항 전경.
지난 1일 오전 7시 울진 후포항이 비릿한 바다 내음으로 들떴다. 빨간 고무장갑을 낀 아주머니들이 노련한 손놀림으로 대게를 12㎝ 이상, 9㎝ 이상, 9㎝ 미만으로 분류해 바닥에 깔았다. 국내 최대 대게잡이 항구답게 수천마리 대게의 군무는 싱싱하고 힘이 넘쳤다. 온몸을 비틀며 퍼덕거리기가 무섭게 값을 매기는 경매가 시작됐다.
후포항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임효철 사장이 손바닥만 한 칠판에 몽당분필로 아무도 보지 못하게 가격을 써냈다“자, 없어요? 다 했습니까? 15번 2만5000원(11㎝)!” 경매사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제일 높은 가격을 발표했다.
“진짜 대게의 본고장이 울진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아닙니까. 대게는 배를 눌렀을 때 단단해야속이 꽉 찬 거지요. 껍데기가 얇고 살이 튼실해야 달아요. 왜 대게 하면 울진인지 맛을 보면 압니다.” 임 사장은 낙찰받은 대게를 활어차에 싣자마자 자리를 떴다.
울진이 대게로 유명한 것은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 떨어진 왕돌초 때문이다. 여의도의 2배만 한 왕돌초는대게의 최대 서식지이자 온갖 해산물들이 모여 있는 생태계 보물섬이다. 대게는 수심 100~400m에서 그물로 잡아 올리고, 홍게는 수심 2000m 아래서 통발로 건져 올린다. 매년 2~3월에 열리는 왕돌초 인근 울진 대게·홍게축제 광장으로 향했다.
촘촘히 늘어선 대게집 뒤편 언덕으로 골목이 보였다. 요즘 뜨고 있는 후포리 벽화마을이었다. 이발관, 가스통 배달트럭, 비눗방울을 날리는 아이들 등 그림 모두 정감 있고 푸근했다. 쪽빛 바다를 제대로 만나고 싶어 차에 시동을 걸었다. 명승지로 알려진 관동팔경은 강릉 경포대, 고성 삼일포, 삼척 죽서루, 양양 낙산사 등 강원도에 6개가 있고 나머지 2개가 울진에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인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 나오는 울진의 망양정과 월송정을 찾아나섰다.망양정(望洋亭)은 과연 일출 명소다웠다. 짙푸른 바다와 새하얀 파도는 카메라에 담을수록 빛이 났다. 왜 조선 숙종이 관동팔경 중 망양정 경치가 최고라고 해서 ‘관동 제일루’란 현판을 내렸는지, 겸재 정선이 <관동명승첩>에 망양정을 화폭에 담았는지 수긍이 갔다.
월송정(越松亭)은 금강소나무가 압도적이었다. 월송은 신라 때 화랑들이 빼어난 솔숲을 지나쳤다고 해서 달(月)이 아니라 넘을 월(越)을 썼다고 한다. 전봇대처럼 하늘로 쭉쭉 뻗은 붉은빛이 감도는 소나무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막힌 속이 확 뚫렸다. 두 팔을 벌려도 안을 수 없는 금강송은 추위마저 잊게 했다. 월송정 앞에 얼굴을 내민 바다는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 울진은 생태 보물섬이다
▲1급수 생태하천인 왕피천.
“전국 최대 규모의 민물고기 생태체험장이 여기 있다고요?” 울진군청 황석준 팀장의 얘기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울진 하면 바다인데 민물고기라니…. 1급수 생태하천이라는 왕피천은 원시림 그 자체였다.
갈대숲이 우거진 너른 강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끝없이 펼쳐졌다. 그제서야 여름에 은어가 헤엄치고, 늦가을에 연어가 회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국 최초 민물고기 연구실이 들어서 있는 생태체험관은 여느 아쿠아리움이 부럽지 않았다. 수조마다 색깔과 모양이 다른 물고기들이 총 74개(총수량 300t) 수조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은어와 연어, 비단잉어와 차례로 인생샷을 남겼다.왕피천을 따라 얼마나 달렸을까. 바로 앞에 성류굴이 보였다. 선유산 아래 있는 성류굴은 2억5000만년 전 신비를 간직한 석회동굴이었다.
주 동굴의 길이는 330m, 사방으로 뻗은 작은 굴은 540m인데 270m를 개방하고 있다고 했다. 왕피천의 맑은 물이 그대로 담겨 있는 크고 작은 호수에 종유석과 석순, 석주가 투명하게 내려앉아 ‘지하 금강’으로불린다는데 과연 그럴 만했다.불영사 계곡(명승 제6호)은 놀라웠다.
구불구불 15㎞를 달리는데 깊은 산 아래 우뚝한 기암괴석은 절경이 따로 없었다. 넓적하고 평평한 바위틈으로 녹아내린 얼음이 맑게 찰랑거렸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계곡 중간쯤에 있는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651년) 때 세운 1300여년 된 고찰인데 무릉도원이 따로 있을까 싶었다.
“산짐승인 산양(천연기념물 제217호)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살아요. 1급수에만 사는 은어가 계곡에서 헤엄을 칩니다. 꼬리진달래, 백리향 등 560여종 식물들이 꽁꽁 얼어붙은 계곡 아래서 봄을 기다리고 있지요.” 울진군 김덕용 문화해설사는 “울진을 심산유곡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하지만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은따로 있다”면서 “죽변항으로 가보자”고 말했다.
대나무가 많이 자생한다고 해서 죽변이라고 부르는 항구마을은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을 전망대에 오르자 ‘독도까지 직선거리로 216.8㎞’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대나무숲은 빽빽했다. 천천히 바닷가로 내려가자 사랑의 하트 모양처럼 생긴 해변이 나왔다. 하늘과 맞닿은 하얀 등대 아래 파도가 부서지는데 색감과 질감이 서로 달랐다.
돌아오는 길 온천에 들렀다. 울진에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백암·덕구 온천 두 곳이 있다. 죽변항에서 가까운 덕구온천은 연중 43도의 약알칼리성 온천수가 자연용출하는 국내 유일한 곳이다.서울에서 323㎞, 동해고속도로까지 생겨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동차로 4시간가량을 달려야 한다. 멀어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울진은 또 가고 싶은 곳이었다.
▶대게찜·물회·장치탕·해물칼국수…새봄 에너지 재충전에 딱!
▲후포항 ‘왕돌회수산’에서 맛볼 수 있는 문어.
울진은 대게가 유명하다. 해마다 2~3월에 울진 대게·홍게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4일까지 울진군 후포항 왕돌초·한마음·부두 광장 일대에서 열린다.
후포항에 있는 ‘왕돌회수산’(054-788-4959)은 주인이 직접 대게 경매를 받아 가마솥에 쪄내는 맛집이다.바닷가인 만큼 활어회, 물회, 매운탕, 우럭지리 등 싱싱한 해산물을 실컷 즐길 수 있다. 여수 출신 안주인의
손맛이 좋아 음식이 모두 맛깔스럽다.
대게는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붉은대게는 7·8월 두 달을 제외한 10개월 동안 맛볼 수 있다. 대게찜·붉은대게찜(시가), 매운탕 3만원, 모둠회 5만~7만원. ‘망양정횟집’(054-783-0430)의 인기 메뉴는 생선회가 아니라 해물칼국수다.
다른 집과 달리 큼지막한 가리비를 비롯해 홍합, 바지락 등 해물을 통째로 끓여낸다. 푸짐한 해산물이 우러난 국물은 칼칼하면서도 구수하고 달콤하면서도 감칠맛이 돈다. 해물칼국수 9000원, 물회 1만2000원.
‘불영사식당’(054-782-1130)은 산채비빔밥 전문점. 유명 관광지에 있는 집인데도 한번 맛을 보면 단골이 된다. 산채비빕밥·도토리묵 8000원, 감자전 7000원. 울진군청 맞은편 울진시장에 있는 ‘칼국수식당’(054-782-2323)은 40여년 전통의 맛집. 화학조미료 없이 100% 멸치로만 국물을 우려내는데 속이 시원하다.
넓적한 면발에 김과 깨, 휘휘 저은 계란이 전부이지만 깊은 맛이 오래 남는다. 칼국수·비빔국수 5000원, 회국수 7000원 죽변항에 있는 ‘명물곰식당’(054-783-7575)은 장치탕, 가자미탕으로 유명하다. 미역치라고 불리는 장치는 장어와 돔의 중간쯤 되는 어종인데 겨울 음식으로 별미 중의 별미다.
해풍에 잘 말려 얼큰하고 시원하게 끓여낸 장치탕은 속풀이 해장으로도 그만이다. 찜이나 조림으로도 많이 먹는다. 장치·가자미·도루묵탕 각 1만원. ‘하나대게’(054-783-8918)는 단체 모임을 하기에 좋다. 울진대게, 붉은대게, 킹크랩, 수입 대게와 동해 자연산 활어회를 파는데 100명까지도 예약할 수 있다. 대게 뚜껑에 뜨끈뜨끈하게 밥을 비벼 먹는 맛도 일품이다. 대게찜·붉은대게찜(시가).
‘우성식당’(054-783-8849)은 칼칼하게 김치를 넣고 끓인 물곰국으로 소문난 맛집이다. 뜨끈하고 시원한 국물에 부드럽고 뽀얀 생선속살이 입안에서 사르륵 녹는데 담백하다. 물곰국은 너무 오래 익히면 살점이 부서지고 맛이 없어 5분 정도만 끓여낸다고 한다. 물곰국·도루묵찌개(시가).
‘동심식당’(054-788-2588)은 전복죽으로 유명한 집이다. 큼지막한 대접에 죽을 한가득 내주는데 전복 한 마리를 통째로 넣는 것이 특징이다. 쫄깃하면서도 고소하고 짭조름한 전복이 혀끝에 착착 감긴다. 전복죽 1만4000원. ‘바다횟집’(054-783-9966)은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식당이다. 매콤새콤하면서 감칠맛이 나는
물회가 잘 나간다.
물회는 먼저 회를 초장이나 와사비 간장에 3분의 1 정도 찍어 먹은 뒤 3분의 1은 골고루 휘저어 물회로, 나머지 3분의 1은 밥을 넣고 비벼 먹어야 제맛이다. 물회 1만5000원‘이게대게’(054-787-8383)는 대게요리를 퓨전 스타일로 내놓는다. 매콤달콤하게 비벼 먹는 게짜박이를 비롯해 게살비빔만두, 대게돌솥비빔밥 등이 잘 나간다. 게짜박이 1만5000원, 게살비빔만두·대게돌솥비빔밥 1만3000원.
출처 / kyunghyang.com / 글.사진=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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