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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아시아****국가들/⊙중국****서북지방

산시성(陝西省)ㅡ시안(西安). 양산(梁山)ㅡ唐3대황제 고종과 측천무후의 건릉과 의덕태자 묘.

by 삼수갑산 2022. 5. 27.

당(唐) 3대황제 고종과 측천무후(測天武后)의 건릉(乾陵)과

의덕태자 묘(懿德太子 墓).

▲능으로 가는 참배로(參拜路)로 약 1km의 거리입니다.

신의 길이라는 뜻의 신도(神道)라고 합니다.

 

시안(西安) 서북쪽 86km 지점의 량산(梁山)에 있는 건릉(乾陵)은 당(唐)의 3대 황제인 고종(高宗)과 중국 유일의 여 황제 인 무측천(武測天, 624-705)의 합장묘입니다.무측천은 우리들에게는 측천무후(測天武后)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인물로, 14세 때 궁녀로 입궐하여 당시 40세였던 태종(太宗)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으며, 총명하고 고집이 세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태종의 첩이었으나 태종이 죽자 그의 아들인 고종이 첩으로 삼았습니다. 우유부단했던 고종을 앞세워 첫째 아들을 죽인 후 황후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제거했으며, 황후가 된 후 고종이 죽자 둘째 아들마저 죽였습니다.이후 셋째 중종, 넷째 예종을 차례로 왕위에 올렸으나 모두 폐위시키고 자신이 스스로 당 나라의 실권을 쥐었던 여인입니다.

 

한 때 나라 이름을 주(周)로 바꾸고 스스로 성신황제(聖神皇帝)의 지위까지 올랐으며, 정치적 능력과 통치술이 뛰어나 나라가 평탄했다고 합니다.이 건릉도 그녀가 실권을 잡고 있을 때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자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이유로 역사적 평가는 매우 혹독하다고 합니다. 그녀가 죽은 이후 오늘날까지도 악녀의 대명사로 되었다고 합니다. 입장료 46위안.

 

▲길 옆 양쪽에 인간(石人像)과 동물(神兽)의 석상들이 줄지어 서 있어

마치 호위를 받으며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타조 부조가 가끔 눈에 띠는 것 보면 산시성(陜西省)과 타조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네요.

당시에 타조가 희귀한 동물이었나?

 

▲길 양 옆에 줄 지어 서 있는 석마흥견석인(石馬興牽石人)상입니다.

이들은 고종의 장례식에 왔던 신하들과 외국 사신들이라고 합니다.

 

▲목이 잘려져 있는 모습입니다.

석상 뒤에 출신 국가를 새겼으나, 지금은 다 마모되어 확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옹중(翁仲)은 동상, 또는 석조 상을 가르치는 말로 왕의 무덤 앞에 있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목이 잘려져 있는 옹중입니다.

 

▲술성기비(述圣记碑)로 측천무후가 당 고종의 업적을 구술해서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무자비(无字碑), 또는 무명비(无铭碑)로 말 그래도 아무 글씨도 새겨지지 않은 비입니다.

이는 측천무후가 자신의 업적이 너무 많아 한 개의 비석에는 다 새길 수 없어 그냥 비어 두라고 해서 글씨가 없는

비석입니다. 혹시나 싶어 둘러 봤더니 뒤에는 무슨 글씨가 새겨져 있던데…. 높이 7.53m입니다.

 

▲61 번신(蕃臣) 상입니다. 외국에서 온 사신들인데, 머리는 모두들 잘려 나가 있습니다.

이런 사신이 반대편에도 있습니다.

 

▲산 같은 릉 모습입니다.

보통 관광객들은 여기까지 와서 보고는 그냥 돌아갑니다.

 

◆건릉(乾陵)의 부장 묘(部葬 墓)로 영태공주 묘(永泰公主 墓), 장덕태자 묘(章德太子 墓),의덕 태자 묘(懿德太子 墓)가 있습니다. 영태공주는 측천무후의 손녀로 17세 때 우연한 자리에서 측천무후의 남자관계를 비판한 죄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비련의 공주입니다. 장덕태자는 고종과 측천무후의 둘째 아들로 이현(李贤)이라고 하며, 어머니인 측천무후의 전횡을 비판하다 태자자리에서 쫓겨나 스찬성(四川省)으로 유배되었다가 결국은 자살을 한 비운의 태자입니다. 의덕 태자 묘

입장료 31위안.

 

▲중종의 장자로 측천무후에게 죽임을 당한 의덕태자(懿德太子)의 묘 안에 있는 벽화들입니다.

벽화의 상태가 좋기 때문에 볼만합니다. 사진 흔들린 것은 이해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