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Peru)ㅡ살아있는 自然
지구 뒷편 산맥. 호수. 사막. 완벽한 낯선 삶과 맞나다
▲국내에는 페루의 여행지로 마추픽추만 알려져 있지만, 그 못지않은 명소들이 곳곳에 있다. 페루 중남부 태평양 연안의 샌프란시스코 사막.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사막을 바람이 지나가면서 모래 위에 빚은 결들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런 사막에서는 사륜구동 차량을 이용한 투어와 함께 급경사의 모래사구에서 스노보드를 타는 ‘샌드보딩’을 즐길 수도 있다.
풍경 하나. 지구 반대편 남미 대륙의 페루. 안데스 고원의 티티카카 호수에 당도한 것은 늦은 밤이었습니다. 산맥의 구름 뒤로 마른 번개가 번쩍이는 캄캄한 비포장 길을 따라 몇 시간째 달려간 곳. 자그마치 해발고도 3810m. 산소마저 희박한 그곳에 거짓말처럼 거대한 담수호가 있었습니다.
그 밤에 티티카카 호반의 숙소 테라스에 나와 섰을 때였습니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돔형의 스크린 같은 밤하늘이 온통 황홀한 별로 가득했습니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호수 위로 쏟아져 내리는 별들…. 믿을 수 없을 만치 아름다웠던, 그날의 밤하늘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두번째 풍경은 태평양을 끼고 있는 페루 중부 해안의 막막한 사막에서 만났습니다. 와카치나 사구와 샌프란시스코 사막이 그려내는 끝없는 모래의 곡선은 유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황량한 사막 위의 바람이 제가 지나간 길 뒤로 물결 모양의 잔 발자국을 남긴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발자국이 그리는 선과 그림자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걸 거기서 처음 알았습니다. 여기다가 사륜구동 차량으로 저물어가는 사막 한복판으로 들어가 텐트를 치고 즐겼던 한 끼의 식사의 낭만을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경험으로 보탭니다.
페루 중부 해안의 작은 섬 바예스타. 이른바 ‘작은 갈라파고스’라 부르는 곳에서 목격한 ‘살아있는 자연’을 페루에서 만난 세번째 풍경으로 꼽습니다. 둥근 아치 형상의 세 개의 바위섬에는 가마우지, 펠리칸, 펭귄, 물떼새 등 바닷새들이 무려 100만 마리나 머물고 있었습니다.
해안가에는 수천 마리에 이르는 바다사자들이 번식기를 앞두고 무리를 이루고 있더군요. 배를 타고 다가서면 바다사자들이 바위에서 물로 뛰어들었고, 물러서면 섬을 뒤덮은 바닷새의 무리들이 일제히 날아올랐습니다. 작은 섬에서 자연이 있는 그대로 숨 쉬고 있는 모습은 배의 난간을 붙들고 선 이들의 가슴을 벅차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구름을 이마에 두르고 있던 안데스 산맥의 위용을 마지막 풍경으로 꼽습니다. 그렇다고 안데스의 위용과 감동이 덜하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앞선 풍경들이 미처 알지 못했거나, 기대하지 않았다가 의표를 찔린 것들인 데 반해 안데스의 위용과 감동은 익히 기대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잉카제국의 ‘공중도시’라는 마추픽추가 그랬고,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의 독특한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페루 여행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마추픽추는 기대가 컸지만, 거기에 당도해서 만난 풍경은 정확하게 그 기대만큼이었습니다. 잉카제국의 신전은 거대했고 그 험준한 산정에 만들어 놓은 도시는 말 그대로 ‘불가사의’, 그것이었습니다.
무릇 도전적인 여행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낯선 것들과의 충돌’입니다. 제 사는 곳의 형편과는 전혀 다른 광경을 만날 때 감동은 커지고, 사유 또한 깊어지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정반대인 남반구의 땅 페루는 낯선 풍경들로 가득한 완벽한 도전의 여행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익숙한 것들과의 충돌은 비단 풍경만은 아니었습니다.
지도 속의 추상으로만 존재했던 지구 뒤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만남은, 그것 그대로 경이였습니다. 페루의 수도 리마 외곽의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빈민촌, 평생을 갈대로 띄운 호수 위의 네댓 평짜리 섬에 사는 수상가옥, 사방의 산군(山群)들이 벽처럼 솟아 있는 안데스 고산지역의 잉카 후예들의 남루한 삶…. 이들이 지구 반대편의 우리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깨달음조차 모두 경이였습니다.
▲안데스 고원의 티티카카 호수. 해발고도가 3810m로 전 세계의 뱃길이 있는 호수 중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호수다. 안데스의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물이 가둬져 만들어진 호수는 하늘을 비춰내는 맑은 물빛이 가장 인상적이다. 티티카카 호수에서는 전통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들을 찾아가는 투어를 즐길 수 있다.
# 멀고도 낯선 지구 반대편의 땅, 페루
페루는 멀다. 비행시간만 갈아타는 시간까지 합쳐서 도합 서른 시간쯤이니 말 다했다.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심리적인 거리도 못지않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잉카 유적 ‘마추픽추’나 ‘나스카’의 지상 그림 같은 수수께끼의 이미지로 가득한 곳들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알려진 명소도 거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 페루는 마추픽추로만 이해될 수 있는 여행지는 아니다. 여행 목적지로 페루는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다. 우선 기후부터가 그렇다. 페루에서 계절 구분은 모호할 뿐만 아니라 의미도 없다.
1년에 고작 1.5㎜ 남짓의 비가 내리는 사막의 땅이 있는가 하면, 축축한 습기로 휘감긴 열대우림이 있고, 해발고도 4000m를 오르내려 여행자들을 고산증(高山症)에 시달리게 하는 안데스의 고원지대도 있다. 지역과 기후마다 풍경과 삶의 모습이 어찌나 다른지 같은 나라라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멀고 낯설다는 건 곧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뜻이다. 호기심이야말로 여행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태평양의 바다를 마주하고 펼쳐진 거대한 태평양 연안의 사막도, 늘 머리에 흰 구름을 이고 있는 안데스 고원의 깎아지른 협곡도, 하늘을 담고 있는 고원의 거대한 호수도 모두 다 낯선 풍경들이다.
어디 이뿐일까. 도처에 펼쳐진 잉카문명의 유적도, 여전히 잉카의 전통을 지탱하고 사는 후예들의 삶도, 잉카 멸망 후 구축한 스페인 식민지풍의 경관도 모두 흥미롭다. 익숙함, 혹은 관성으로 지탱해 온 삶이 지루해진다면, 지구 반대편의 땅, 페루 땅에 가볼 일이다.
적잖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다 빼고 무책임하게 제안한다면 그렇다. 같은 비용과 시간이 전제하고, 상대적으로 다른 여행지에 비교한다면 페루로의 여정은 다른 여행지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얘기다.
▲페루의 여행지를 대표하는 명소 마추픽추. 거대한 협곡을 끼고 있는 산정에 남아 있는 잉카문명의 흔적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마추픽추의 경관도 그 명성에 걸맞지만, 안데스의 협곡을 끼고 거기에 이르는 길도 탄성을 자아낸다.
# 잉카 문명에 대한 오해, 그리고 신비
페루 여정의 첫머리는 마추픽추부터 시작하자. ‘공중도시’라는 별칭이 붙은 마추픽추는 단연 페루를 대표하는 여행지다. 해발 2400여m 협곡의 산 정상에 들어선 마추픽추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잉카시대의 유적이다. 마추픽추를 찾아가는 것은 그저 경관만을 보겠다는 목적은 아닐 터. 그러니 마추픽추를 세운 잉카문명에 대한 이해는 필수겠다.
여기서 바로잡아야 할 오해 한 가지. 어찌된 영문인지 잉카문명이라면 대부분 수천 년 전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 잉카문명은 13세기 초에 시작돼 스페인의 침공으로 멸망하는 1533년까지를 이른다.
잉카제국이 본격적으로 번성을 누리기 시작했던 시기가 1483년부터이니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40년 뒤쯤이다. 셈해 보자면 잉카는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간에 번성했던 문명이다. 시간의 깊이로만 우리와 비교해 보자면 싱겁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잉카에서 수천 년 전의 시간을 떠올리는 우리의 오해는 왜 생겼을까. 그건 바로 잉카문명이 두르고 있는 ‘신비의 이미지’ 때문이겠다.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가 구축된 결정적인 이유는 잉카문명이 문자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줄의 매듭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이른바 ‘결승 문자’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것도 해독이 되지 않는다. 문자뿐만 아니다. 잉카문명에는 철기도, 수레바퀴도 없었다. 사용 도구에 따른 시대 분류로 보자면 잉카는 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와 같은 사회였던 셈이다.
문자도, 수레도 없이 해발 2400m의 깎아지른 협곡의 산 정상에 만들어진 도시의 흔적인 마추픽추는 그 내력이나 구축 방식 등이 전해지지 않아서 더 신비롭다. 어떻게 이리 거대한 석재를 산 정상까지 가져다 올렸는지, 또 그 큰 돌을 도구도 없이 종이를 오려내듯 정교하게 갈아내 수많은 석조건물로 세웠는지 알 도리가 없다. 고고학자들이 당시의 상황을 가정해 축조 방식 등을 다양하게 재현해 봤지만 결론은 ‘불가능’이었다.
# 마추픽추, 그리고 더 놀라운 경관들
마추픽추를 처음 대했을 때의 느낌은 ‘사진으로 본 것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똑같다’는 건 실망했다거나 놀랍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가파른 경사면에 갈 지(之) 자로 놓인 산길을 차로 올라가서 마주한 마추픽추의 전경은 기대했던 것만큼 놀라웠다.
대개 알려진 유적이나 풍경이 그 이름값을 못해 실망하는 때가 많았지만, 마추픽추는 기대를 완벽하게 채워줬다. 일단 산정의 도시가 앉아 있는 자리부터가 경이로웠다. 양쪽에 협곡을 끼고 있는 도시는 산 아래서는 도저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잉카제국 멸망 뒤에도 수백 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수긍이 되고도 남았다. 태양의 신전, 왕족의 궁전, 해시계, 콘도르 신전 등의 흔적에서는 하늘을 향해 경배를 올리고, 콘도르에게 부활을 의탁하던 잉카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었다. 기대를 채워주는 ‘딱 그만큼’이었다. 그건 마추픽추의 매력이 덜하거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마추픽추를 뺀다 해도 그곳에 이르는 길이 보여주는 극적인 모습에서 더 감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낫겠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안데스의 거봉들과 그 이마에 가득한 구름들, 그리고 협곡을 따라 이어지는 강물의 물줄기…. 무엇보다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안데스의 협곡과 산자락을 따라 실낱처럼 이어진 도보여행 코스인 이른바 ‘잉카 트레일’이었다.
산자락을 넘고 우루밤바강의 협곡을 가로지르며 옛 잉카인들의 행로를 따라서 꼬박 3박 4일을 걸어야 한다는 잉카 트레일. 마추픽추에서 맞은편 산자락 선게이트까지의 왕복 두 시간 코스를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잉카 트레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었다.‘죽기 전에 꼭 해 봐야 할 일’을 뜻하는 ‘버킷리스트’의 목록에 잉카 트레일을 적어둘 법했다.
▲쿠스코 인근 안데스 고원지대 협곡에는 난데없이 염전이 있다. 마라스 염전에서는 바닷물 대신 암염이 녹아든 지하수를 테라스 형태의 소금밭에 담아서 소금결정을 만들어 낸다. 협곡의 경사면을 따라 펼쳐진 소금밭들이 더없이 조형적이다.
# 잉카제국의 수도, 그리고 식민의 기억 쿠스코
마추픽추를 찾아가는 베이스캠프쯤 되는 곳이 바로 안데스 산맥 아래 오래된 도시 쿠스코다. 쿠스코는 해발 3400m의 고원도시다. 이 도시의 역사는 1000년이 넘는다. 쿠스코는 잉카제국의 수도이기도 했고, 잉카제국이 식민지배를 위해 침략해 온 스페인 군에 멸망하는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 침략자들은 쿠스코의 잉카 유적 위에 화려한 성당과 수도원 등 스페인풍의 건물을 지었고, 그 건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붉은 테라코타 지붕의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거리는 스페인의 냄새가 짙게 칠해져 있다.
하지만 사실 처음 쿠스코에 당도한다면 이런 이국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쿠스코 공항에 당도하면 거의 대부분이 높은 해발고도에 따른 산소 부족으로 고산증에 시달릴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간혹 이렇다 할 증상이 없이 적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길을 걷다 보면 숨이 턱에 차기 일쑤고, 모자란 숨으로 급기야 두통과 무기력, 식욕 부진까지 찾아온다.
그러나 마추픽추와 안데스 산맥 협곡이 그려내는 빼어난 경치와 그 협곡에서 염분 섞인 지하수를 소금결정으로 만들어 내는 산중의 마라스 염전, 그리고 농경지를 조형적인 동심원 형태로 만든 모라이 유적지 등 쿠스코 일대의 수많은 장관을 둘러보겠다면, 고산증을 이겨내는 것쯤은 필수다.
낯설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 가져다주는 흥분이 비록 고산증으로 인한 두통을 낫게 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두통이나 무기력쯤은 능히 감수할 수 있게 해주리라.
# 식민지시대 정복자와 피지배자가 뒤섞인 곳 리마
페루를 대표하는 여행지는 마추픽추와 함께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가 꼽힌다. 그러나 페루의 여행 목적지 중에서 그곳은 한 축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 축이라면 태평양을 끼고 있는 페루 해안의 사막지대다.
페루의 수도 리마도 건조한 서쪽 해안에 있다. 리마는 쿠스코를 점령한 스페인이 황금 등을 수탈하기 위해 바다쪽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건설한 도시다. 리마는 해안 지형이 독특하다. 모래와 자갈이 섞여 단단하게 굳어진 땅이 해안절벽처럼 수십m 높이로 서 있고 그 위에 도시가 있다.
기후 역시 독특하다. 적도가 지나는 근처지만 태평양 연안에 훔볼트 한류의 냉수대가 형성돼 여름철로 접어드는 이즈음에도 그닥 덥지 않다. 연평균 강수량이 3.5㎜에 불과하다는데, 아침마다 습한 안개가 온통 도시를 휘감아 몽환적인 느낌마저 준다.
리마의 주요 관광포인트는 구시가지인 센트로 지구. 센트로 지구의 광장에는 바로크, 혹은 안달루시아풍으로 지어진 대통령궁과 리마시청, 노동조합 건물이 에워싸고 있어 마치 스페인 도시를 연상케 한다.
센트로 지구의 중심에는 성프란치스코 성당이 있다. 여기에는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의 관이 안치돼 있다. 피사로는 불과 150여 명의 무장한 군대만으로 잉카의 왕을 사로잡은 뒤 제국을 무너뜨린 인물이다. 식민지배를 위한 서구의 침략자들이 그랬듯 이들은 종교를 앞세웠다.
원주민들을 이교도들로 간주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럼에도 원주민들을 학살했던 정복자 피사로의 관이 성당에 안치돼 있는 것은 300여 년이 넘는 식민지배로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피가 섞이면서, 약탈자와 약탈당한 자의 구분이 모호해지고만 때문이리라. 실제로 원주민과 스페인 인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페루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으니, 페루인들의 절반 가까이가 식민지배를 감행한 스페인 사람들을 조상으로 두고 있는 셈이다.
리마에는 또 라르코 박물관을 비롯해 고대문명의 빼어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수많은 박물관이 있고, 파차카막 신전 등 잉카제국 이전의 문명의 유적지들도 곳곳에 있다. 거기 머물며 며칠을 둘러본대도 미처 다 못 볼 만큼이다.
▲페루의 안데스 고원지대에서 만난 원주민들.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살고 있는 이들의 사는 형편은 남루해 보였지만,
모두들 선한 눈매를 갖고 있었으며 외지인들에 대한 호의도 넘쳐났다.
# 태평양과 사막이 만나는 곳. 이카
수도 리마에서 팬아메리카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향하면 사막지대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산들이 뼈대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이국적이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이런 사막지대를 서너 시간쯤 달리면 중남부 지역 이카다.
이카의 소도시 산이시드로에는 ‘와카치나 오아시스’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지대. 300m 높이의 모래언덕 한가운데 푹 꺼진 땅에 야자나무가 주위를 둘러치고 있는 자그마한 오아시스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일대에는 7곳의 오아시스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2개만 남았고 그마저도 건조한 기후로 계속 물이 마르자 물의 절반 정도를 인공으로 공급하고 있다. 와카치나 사구에서 관광객들은 거대한 버기카를 타고 사막을 둘러보거나 사구 급경사에서 스노보드와 비슷한 ‘샌드보드’를 탄다.
인근의 샌프란시스코 사막은 규모가 훨씬 더 크다. 여기서는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본격적인 사막투어를 즐길 수 있다. 바람이 만들어 낸 모래의 곡선과 기하학적인 무늬가 한데 어우러진 사막은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으르렁대며 사막을 질주하던 차량이 순간 깎아지른 모래언덕의 급경사에 섰다. 함께 탄 이들의 짧은 비명. 퍼렇게 날이 선 칼날처럼 깎인 급경사의 모래언덕 아래쪽에 텐트가 쳐져 있고, 화려한 만찬이 준비돼 있었다. 페루 관광청이 투어 끝에 준비돼 있다던 ‘놀라운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저물녘의 사막 한복판에서 여유있게 식사를 즐기는 낭만이라니….
# 100만 마리의 바닷새를 만나는 섬
샌프란시스코 사막 인근의 파라카스에서는 바예스타섬을 돌아보는 투어보트가 뜬다. 바예스타섬은 ‘작은 갈라파고스’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자그마한 섬. 인산질 비료로 활용되는 바닷새 배설 퇴적물인 구아노의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구아노가 많다는 건 바닷새들이 그만큼 섬에 많이 서식한다는 뜻. 바예스타섬은 온통 새들의 세상이다. 섬에 가까워지면 저절로 탄성이 터진다. 아, 새들이 많다 많다 해도 이렇게 많을 수는 없다.
가마우지, 물떼새, 펠리컨, 갈매기들이 이 작은 섬에 무려 100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겨울이면 우리나라 천수만 일대를 찾아오는 가창오리떼가 많을 때는 50만 마리쯤이라는데, 이 작은 섬에 100만 마리가 서식한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더 놀랄 일은 1953년에는 무려 2200만 마리가 서식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섬의 바위에 찍힌 새카만 점들이 모두 다 새들이다. 훔볼트 한류를 따라 헤엄쳐 온 펭귄도 1000마리가 넘고, 번식기를 앞둔 바다사자도 수천 마리에 달한다. 고개를 들면 날개를 펼친 새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물속과 해안가에는 바다사자들이 무리를 이루고 햇볕을 쬐고 있다.
이런 풍경은 ‘장관’을 넘어서 ‘감격’에 가깝다. 인근의 산가양섬에는 무려 1만5000마리에 이르는 바다사자들이 서식하고 있단다. 바예스타섬 투어는 1인당 25달러. 누구든 이런 감격적인 풍경 앞에서 ‘본전’ 생각은 떠올리지 않으리라.
# 하늘과 물의 푸른빛이 섞인 티티카카 호수
이제 뒤로 미뤄뒀던 티티카카 호수에 대해 말할 차례다. 해발고도 3800m가 넘는 페루 남쪽의 고원 도시 푸노. 이웃나라 볼리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푸노를 찾아가는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 티티카카 호수 때문이다.
배가 뜨는 항로가 있는 호수 중에서 가장 고지대에 있다는 호수 티티카카는 안데스 산맥에서 녹아내린 빙하의 물이 고여 만들어졌다. 호수는 바다를 연상케 할 만큼 거대하다. 전라북도의 면적과 비슷한 크기.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의 길이가 165㎞에 달한다.
호수를 처음 만난 것은 한밤중이었다. 푸노 인근의 공항에서 내려 1시간 30분쯤 어둠 속의 비포장 길을 달려 도착한 숙소 앞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섰을 때 하늘은 온통 빛나는 별들로 가득했다. 별빛이 어찌나 선명하던지 마치 거대한 돔형의 스크린에 영사기로 비춰낸 것 같았다.
저 멀리 산맥의 구름 뒤로 마른 번개가 번쩍였다. 고산증 탓도 있긴 했지만, 그날 밤, 늦도록 숙소의 테라스에서 낯설고도 황홀한 풍경이 펼쳐지는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한낮의 티티카카 호수는 맑은 물 위로 하늘을 가득 담고 있었다. 호수의 푸른 물은 하늘빛과 흰 뭉게구름을 그대로 비춰내며 저 끝에서 푸른색을 서로 섞고 있었다. 태양신의 아들 망코 카팍과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마마 오크요가 잉카제국을 건설했다는 신화가 호수에 깃들어 있는 건 바로 이런 아름다움 때문이었으리라.
티티카카 호수에서는 전통방식의 삶을 고집하며 수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주민들이 사는 타킬레섬과 갈대로 인공섬을 만들어 그 위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우로스섬이 있다. 두 곳 모두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가는 길 = 한국과 페루 사이에 운영되고 있는 직항편은 없다. 아메리칸항공,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 미주항공사를 이용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비행 시간만 20시간 안팎. 여기다가 연결편으로 갈아타는 대기시간까지 감안해야 한다.
페루의 수도 리마까지의 할인 항공 요금은 최저 150만 원 선부터 있다. 페루 내의 이동은 국내선인 란항공이 가장 많이 이용되며 수도인 리마를 비롯해 쿠스코, 훌리아카, 아레키파 등 페루 내 주요 7개 도시로의 연결편이 운영되고 있다. 육로로 이동할 경우 대중교통 연결편은 그닥 좋지 않으므로 현지에서의 이동은 여행사의 투어 등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여행정보 = 스페인어와 원주민 언어인 케추아어를 쓴다. 관광지에서는 간단한 영어로도 큰 불편함이 없이 소통할 수 있다. 화폐단위는 누에보 솔. 1솔은 우리 돈으로 440원 정도. 국내에서 페루 화폐로 환전이 불가능하니 미국 달러로 환전한 뒤 페루에서 다시 현지 화폐로 바꿔야 한다.
관광지에서는 현지 화폐와 함께 달러를 받는 곳도 많으니 물건을 사거나 택시를 탈 때 요구하는 가격이 현지 화폐 가격인지 달러 가격인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치안은 그닥 안전한 편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관광지에는 관광경찰들이 많이 배치돼 있어 안심해도 된다. 페루는 지역마다 해발고도가 달라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니 여러 곳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계절에 관계없이 여름옷부터 겨울옷까지 다 챙겨 가야 한다.
'■라틴 아메리카****국가들 > ⊙페루*********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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