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Istanbul)
위스퀴다르에서“1453” 을 보고 비잔틴 제국 최후를 회상하다!
이스탄불 에 도착해 예니카프 (Yenikap) 역 근처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에미노뉴(Eminonu) 에서 바푸르 라고 불리는 페리를 타고는 보스포루스 해협 을 건너....위스퀴다르 (Uskudar) 에 도착해 크즈 쿨레시 (Kiz Kulesi) 를 지나 해변을 따라 걷습니다.
위스퀴다르 의 베일레르베이 궁전 은 1865년 술탄 압둘 아지즈가 지은 화려한 궁전으로여름 별궁이자 영빈관 인데 영국 에드워드 8세 왕자와 심프슨 부인이 묵었으며오스만 바로크 양식의 실내장식과 침실, 하렘과 바닷가 쿄슈쿠 정자 가 멋지다고 합니다.
또 슐레이만 대제 가 딸인 미흐라마흐 를 위해 시난을 시켜 지은 사원인 미흐라마흐자미 와 1508년 시난에 의해 세워진 또다른 모스크인 쉠시파사 자미 가볼만하다고 하지만 시간이 모자라니 위스퀴다르를 떠나 하렘 을 보기로 합니다.
그러고는 해변을 따라 조금더 걸어 내려가노라니 낚씨 하는 사람들을 지나 오른쪽해변 언덕에 카페 가 줄지어 서 있는데 언더의 돌 위에다가 좋은 방석을늘어놓고 비스듬히 누워 터키 홍차 짜이 를 마시는 관광객들이 많이 눈에 뜁니다?
그러고는 도로변에 분리수거함 인지 쓰레기통 인지 참 특이하게 만든게 눈에 뛰고.... “1453”이라는 붉은 숫자가 장식품 처럼 꿋꿋하게 서 있으니 바로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메메트 2세 가 1453년에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시킨 걸 의미하나 봅니다?
당나라에 패한 돌궐인 들이 중앙아시아로 이동해 투르크인 이 되는데 셀주크투르크 는 이란을 거쳐 만지게르트 전투에서 비잔틴제국을 격파 했으니 그 속하에서 오스만 투르크 가일어나서 다시 비잔틴 제국을 침범하니 유럽으로 건너와 그리스와 에디르네 를 점령 합니다.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메트 2세 는 1453년 에 드디어 오랜 숙원인 콘스탄티노플공략 작전을 시작했으니 콘스탄티노플을 수비하는 불과 7천명의비잔틴 제국 군대 에 대해 무려 10만명의 병력 을 동원해 콘스탄티노플을 포위 합니다.
투르크군 은 기병대와 보병대에 포병 · 공병 · 해병 ·군악 등 각 분야별로 전문화 부대 를보유했는데 투르크인들은 화포의 의미 를 유럽인보다 빨리 파악했으니 헝가리인우르반이 제작한 거대한 대포 로 그 육중한 콘스탄티노플의 삼중 성벽을 파괴한 것입니다.
투르크인들은 성벽 가운데 가장 취약한 곳 을 골라 6주 동안 쉬지 않고 집중적인 포격 을가했는데 대포는 발사후 식혀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7회 이상 발사하지 못하므로수비군들은 밤낮 없이 방책과 토루를 쌓아올리며 온 노력을 기울이나 역부족 이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의 메메트 2세 는 보스포러스 해협 동쪽 아시아에 아나돌루 히사르요새를 지은뒤 유럽쪽에도 루멜리 히사르 요새 를 건축해 헝가리등유럽의 지원군을 차단한 후에 마침내 오랜 숙원인 콘스탄티노플로 진격 합니다.
1453년 5월 17만 대군 을 동원해 2천년 역사를 가진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을 침략 하니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인구는 4만 으로 줄어든지라 비잔틴은 정규군 5천에 제노바인주스티아니의 유럽인 용병 2천 을 합치고 시민을 징집해도 채 1만이 안되는 군세 였습니다.
하지만 삼각형 모양의 콘스탄티노플 은 도시 자체가 천연요새 라, 동쪽은 바다 위 절벽에험한 성벽 이고 북쪽은 금각만 바다속에 철쇄 를 드리워 함대의 접근을 원천봉쇄 하였으며 육지쪽인 서쪽에는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구축한 3겹 방어망 이 쳐졌습니다.
비잔틴은 우선 넓은 해자 를 파고 그 뒤에 장벽 을 쌓았으며 장벽 뒤에는 외성벽 을두르고 원형탑 을 세우웠으며 또 해자 를 깊이 판다음에 내성벽 을 쌓고사각탑 을 세웠으니 40미터마다 10~ 20미터 높이의 방어탑이 무려 400개 에 달했습니다.
게다가 콘스탄티노플 성벽의 두께가 두터워 가히 난공불락의 금성철벽 이었으니 거세게몰려오는 이교도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군의 공격을 방어하며, 유럽 기독교 세계 를지켜온 비잔틴이 큰 위기에 처해 다급하게 유럽 각국에 지원군 파견을 요청 을 합니다.
하지만 이 긴급요청을 받은 유럽 각국은 콘스탄티노플의 성벽 을 믿고 자국 사정에 바빠이를 외면하고 단지 제노바와 베네치아가 면피용 군선 몇척 을 보내주는 것으로물거품이 되고 콘스탄티노플은 고립무원 지경에 빠지지만... 쉽게 함락되지는 않습니다.
술탄 메메드 2세 는 참으로 기발한 발상 을 하게 되는 것이니..... 톱하네 산 에다 길을닦고는 나무 레일 을 깐 다음에 보스포러스 해협의 터키 함선 70여척 을 동원합니다.
수백마리 소 와 엄청난 수의 병사들 을 동원해 그 함선들이 산을 넘어 금각만으로 진입했던 것이니!!! 갈라타 탑에 몸을 숨긴 제노바인 들은무역 거점 을 잃지 않기위해 부득이 중립을 선언 했지만 그 심정이야 오죽했을까요?
또 5세기에 축성한 서쪽 테오도시우스 3중 성벽 에 대해서는 헝가리 장인우르반 이 만든 이제까지 듣도 보도못한 어마어마한.....8미터 짜리 거포를 제작해 600kg 짜리 돌포탄 을 성벽으로 날려보냅니다.
금각만 골든혼 에서는 터키 함선으로 부터 공격 이 시작되고 성벽은 부숴지기 시작하는데제노바인 용병 대장 주스티아니 가 중상을 당해 후송 되는 긴급 사태 가 발생합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대장이 전장을 이탈 하니 제노바 용병 들이 도망을 치기 시작하는데다가 어찌된 사실인지 외성의 성문 하나가 열리는 돌발 사태 마저 발생합니다.
이에 5월 29일 메메드 2세가 총공격 을 명령하니 터키 비정규군 5만명 이가세해서는 방위망을 뒤흔들어 놓자..... 그 뒤를 이어정규군 5만명 도 모자라 예니체리군 1만 5천 도 함께 돌진해 들어 오는지라!!!
동로마 비잔틴 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팔라이올로구스 는 도망이나항복을 거부 하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며 적진으로 뛰어들어 전사 하는데....
내 심장에 창을 꽂을 기독교도가 한명도 없단 말인가?" 탄식하며 주황색 망토와 제위를 뜻하는문장을 뗀 채 말에 올라 칼을 빼어들고 적진으로 돌격 하니 두 기사가 뒤를 띠랐다 던가요?
그러자 비잔틴 정규군 5천 중 살아남은 자들은 황제를 뒤따라 적진으로 돌격해 전사 했으니과연 2천년을 이어 내려온 로마 제국의 최후 가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고종 황제가 말에 올라 일본군을 향해 돌격 하다가 적 기관포에 온 몸이 산산히 찓겨져 전사하자 조선군이 함성을 지르며 적진으로 돌격하는 모습을 봅니다. 아니지? 고종은 말을 탈줄 몰랐제?내시에 등에 엎혀 뒷골목으로 도망 러시아 공사관 으로 피신....
이후 오스만 투르크 는 코소보에서 세르비아등 연합군을 격파 하고 불가리아와 헝가리를 지나서...... 유럽의 심장부인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육박해 성을 포위 합니다.
옛 일에 대한 회상 에서 깨어나 1853년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 하기 위해 오스만투르크와 영국, 프랑스군이 격돌한 크리미아 전쟁 에서 나이팅게일이활약했다는 야전 병원인 셀라미예 병엉 을 보기위해...... 하렘 으로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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