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ㅡ고립돼서 안전한 섬...車 탄 채로 즐기는 ‘절재된 해방감’
▲전남 신안군 증도의 ‘소금밭 낙조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태평염생식물원의 모습. 함초와 칠면초, 나문재를 비롯해 80여 종의 갯벌 식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염생식물원을 끼고 국내 최대규모 염전인 태평염전이 있다. 증도는 무안 해제반도에서 연륙교와 연도교로 건너 지도, 사옥도, 송도를 딛고 차로 갈 수 있다
# 올여름, 왜 ‘신안(新安)’인가
코로나19가 주춤했을 때에도 섬 여행은 쉽지 않았다. 섬사람들의 경계심 때문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나라마다 서둘러 국경을 닫은 걸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 하지만 섬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적은 없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작은 섬들 입장에서는 여행자의 방문이 이득이 될 게 없는 데도 말이다. 돌이켜 보면 꽃밭을 통째로 밀어버리고 여행자들을 밀어낸 곳들은, 외려 그동안 관광객 덕을 많이 본 곳들이었다.
섬에 가는 것이 주저되고 걱정됐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섬에서 내가 감염될까 하는 우려. 다른 하나는 내가 섬사람을 감염시키기라도 하면 어쩔까 하는 걱정. 섬 여행을 주저하게 한 결정적인 이유는 ‘만에 하나 고립된 청정한 섬에다가 감염병을 전파하게 된다면…’하는 생각이었다.
섬 주민들이 외지인의 방문을 불편해하는 모습이 적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감염병이 창궐하는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정하고 안전한 공간이었던 섬을, 그동안 맘 편히 찾아갈 수 없었던 이유다.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면서, 일부 지역 섬 주민의 백신 접종률이 전국 평균을 크게 뛰어넘었다.
그중에서도 전남 신안의 섬이 돋보인다. 신안 지역의 백신 접종률은 50%가 훌쩍 넘는다. 전국 평균 접종률이 아직 30% 남짓이니 속도가 빠른 셈이다. 교통불편 등의 이유로 접종이 지지부진한 다른 지자체 섬의 접종률에 견주면 두 배에 달한다. 이 정도의 접종률일 때부터 이스라엘에서는 ‘집단면역이 머지않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원본출처 / naver 지식백과
# 고립돼 안전한 곳, 신안의 섬
▲ 도초도에 새로 조성된 ‘환상의 정원’.
농수로를 따라 길 양옆으로 70∼100년생 팽나무 700여 그루를 심어 조성한 3㎞ 남짓한 숲길이다.
기이하게 가지를 뒤틀며 자라는 팽나무가 앞으로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지난 7일을 기준으로 신안군 전체의 코로나19 예방백신 접종률은 47.1%. 신안에서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은 곳은 팔금도가 속한 팔금면으로 55.4%다. 뒤이어 암태면(53.5%)과 비금면·장산면(각각 50.9%) 순이다.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진 증도가 있는 증도면의 백신 접종률은 50.6%이고, 도초면은 47.8%다. 지난 3월에연륙교가 놓인 임자도의 접종률은 45.0%다.
섬을 끼고 있는 여수나 완도 등과 비교하면 신안 섬의 백신 접종률은 거의 두 배 수준이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구역이 모두 섬인 신안과는 달리, 내륙과 섬을 두루 거느린 여수나 완도는 인구도 많고 코로나 감염 우려도 큰 내륙 지역주민 접종부터 서둘러서 그렇다.
여러모로 불리한 섬 지역이면서도 신안의 섬들이 높은 접종률을 보이고 있는 건 신안군 땅이 모두 다 섬인이유도 있지만, 총력을 다해 접종 속도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안군은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압해도 신한군민체육관에 예방접종센터를 설치하고 섬 주민들을 배로 불러 접종하고 있다. 접종자의 왕복 뱃삯은 군이 지원하고, 이동과정에서의 식사비용과 숙박비 등은 면 단위의 민간 후원회에서 부담하고 있다.
신안으로 가기로 했다면, 어느 섬을 택하든 상관없겠다. 섬마다 백신 접종률 차이가 나긴 하지만, 그래 봐야 5%포인트 남짓이다. 고려할 것은 장소보다는 ‘여행하는 방식’이다.
여기서는 신안을 여행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 번째는 코로나 1, 2, 3차 대유행 당시 대안이 됐던‘드라이브 여행’이다. 드라이브 여행은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는 여행 방식이다. 신안의 섬들에 속속 다리가 놓이면서 차를 타고서 바다를 건너 섬을 조기 엮듯 두름으로 여행할 수 있다. 신안에는 곳곳에 연륙교가 놓여있어 섬 열 개쯤은 반나절 정도 만에 휙 돌아볼 수 있다.
# ‘섬다운 섬’으로 배 타고 가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섬 다운 섬’을 여행하는 것이다. 안전하게 고립된 공간을 여행하는 방법이다. 배를 타고 건너가는 섬 여행에 신안이 제격인 이유는, 신안의 여객선이 야간운항을 하기 때문이다.
휴가 때 섬을 찾는다면 차량을 싣고 가는 게 보통인데, 피서철에 섬에 차를 가지고 들고 나는 것이 쉽지 않다. 철부선에 태울 수 있는 차량 대수가 정해져 있어 자칫 배를 타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들어가지 못하는 거야 목적지를 바꾸면 되지만, 섬 안에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나오지 못하는 경우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전국의 모든 섬은 일몰 이후에 여객선 운항을 하지 않는다. 신안의 섬만 빼고. 신안에서는 늦게는 밤 10시까지도 배가 다닌다. 그동안 일몰 이후에 여객선 운항을 허락하지 않았던 건 ‘안전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여객선은 ‘눈으로 보고’ 운전하는 게, 아니라 레이더, GPS 등의 전자장비와 서치라이트 등으로 뱃길을 찾는다.어둡다고 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얘기다. 신안군이 야간 여객선 운항을 시작한 건 박우량 신안군수의 뚝심 덕이다. 박 군수는 지난 2006년 보궐선거에서 군수로 당선되자마자 여객선 야간운항을 밀어붙였다.
해운항만청의 거듭된 불가 조치에 박 군수는 대통령 앞에서 “야간 시간대 여객선 운항 불가로 오후 4시만 되면 통행금지가 시행되는 셈인데 이거야말로 주민의 기본권 침해”라는 논리를 앞세워 설득했다.우여곡절 끝에 2008년 1월 압해농협의 차도선이 최초의 야간운항을 시작했다.
이후 신안 여객선의 야간운항이차례로 이어졌다. 지난 2019년에는 암태도의 남강항과 비금도 가산항을 오가는 여객선의 야간운항이 시작됐고, 2020년 6월에는안좌도 복호항과 장산·하의·신의도를 오가는 야간운항 편이 떴다.
▲암태도와 비금도 사이에는 여객선이 하루 15번 왕복 운항한다. 이 중 3번 왕복이 야간 운항편이다.
암태도에서 오후 10시에, 도초도에서 오후 10시 50분에 막배가 출항한다.
# 섬과 섬을 드라이브하다
▲ 비금도 선착장에 세워진 동상. 신안에 처음 천일염전을 만든 김삼만이다.
신안에서 연륙교로 이어져 차로 건너갈 수 있는 섬은 ‘두 무더기’가 있다. 한 무더기는 전남 무안 앞바다에, 다른 한 무더기는 목포 앞바다에 떠 있다.
무안 앞바다에 떠 있는 섬들 얘기부터. 무안 앞바다의 섬은 해제반도에서 드라이브하면서 둘러볼 수 있다.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를 넘어 길은 증도까지 이어진다. 그게 바다인 줄도 모르고 연도교를 건너며 지도, 송도, 사옥도를 거쳐 증도로 건너가게 된다.
이즈음 송도의 어판장에는 제철을 맞은 병어가 흔전만전이다. 병어 철이 끝나고 나면 민어가 뒤를 잇는다.증도에 닿으면 길은 바다로 사라지는데, 거기서 배를 타고 자은도로 건너갈 수 있다. 15분 남짓의 가까운 거리라지만, 눈을 의심할 정도로 뱃삯이 저렴하다. 승선료는 1000원이고, 승용차를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는 운임이 2000원이다.
여객선 운임이 이렇게 저렴한 건 연간 3억 원에 달하는 신안군의 지원 덕이다. 왜 증도∼자은도 구간의 뱃삯을지원하고 있는 것일까. 신안군에 물었더니 “뱃길 구간은 행정상 국도여서 누구나 불편 없이 다닐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상황이라 행정이 마땅히 지원하고 있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은도로 건너가면 연도교를 건너 또 다른 섬으로 건너갈 수 있다. 암태·팔금·안좌는 자은도와 다리로 이어져 있다. 이렇게 네 개의 섬이 목포 앞바다에 떠 있는 또 한 무더기의 섬이다.
암태도에서는 다시 천사대교를 타고 압해도를 건너 목포까지 차로 달릴 수 있다. 이렇게 증도∼자은도 구간에서 배를 한 번만 타면, 두 무더기의 섬들을 다 둘러보며 드라이브할 수 있다.
이렇게 드라이브로 부속 섬까지 다 들러서 가면 딛고 가는 섬이 스무 개도 넘는다. 한 번의 드라이브 여행으로 스무 개가 넘는 섬을 다 보고 오는 여정이 되는 것이다. 다 비슷해 보이지만, 섬에서 섬으로 건너가면서 섬마다의 특징과 매력을 찾는 재미가 제법이다.
# 임자도에서 조희룡의 매화 앞에 서다
신안 섬 여행에서 꼭 들렀으면 하는 곳이 임자도다. 임자도를 대표하는 건 자그마치 12㎞ 길이의 백사장을자랑하는 해수욕장. 어찌나 넓은지 해수욕장의 이름부터 ‘큰 대(大)’에 ‘넓을 광(廣)’을 써서 ‘대광(大廣)’이다.
연륙교인 임자대교가 놓인 뒤에도 섬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눈에 띄는 건 연륙교 개통일에 맞춰 해수욕장 앞에 새로 개관한 ‘조희룡 미술관’이다.
조희룡은 조선을 통틀어 매화를 가장 잘 그렸다던 조선 후기의 서화가. 세도정치가 판을 치던 무렵에 임자도로 유배돼 1851년부터 1853년까지 3년을 살았다. 유배 당시 그의 나이 이미 예순셋이었다.
불과 세 살 차이었지만, 추사 김정희를 스승으로 모셨던 조희룡은 ‘사도세자 형의 위패를 어디에다 모셔야 하나’를 놓고 벌였던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힘겨루기에 휘말린 스승과 한 두름에 묶여 유배형을 받았다.
조희룡 미술관에서는 지금 개관전 ‘임자도에 핀 홍매화’전(展)이 열리고 있다. 매화 꽃잎 날리는 영상의 미디어아트도 볼만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눈길을 끄는 건 상설전시실의 진본 그림이다. 조희룡 그림은 서른 점 남짓이 전해지는데, 그 절반쯤을 신안군이 사들여 열다섯 점을 여기에서 전시하고 있다.
문자향(文字香·문자의 향기)과 서권기(書券記·책의 기운)만으로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게 조희룡의생각이었다. 그림은 가슴이 아니라 손끝에 있다고 그는 믿었다. 그림 자체의 즐거움에 대한 탐닉이었다.
미술관에 미디어아트로 재현해놓은 ‘매화서옥도’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그림의 특징이 대번에 느껴진다. 거칠고 마른 붓질로 그린 매화가 아니라 무성한 가지에 탐스럽게 피어난 매화다. 경쾌한 느낌의 그림 앞에서 코로나 팬데믹의 우울감을 잠시나마 떨쳐버릴 수 있다. .
▲고운 백사장과 기름진 갯벌, 광활한 염전 등을 두루 갖추고 있는 신안 증도의 전경.
붉은 지붕 건물이 엘도라도 리조트다.
# 도초도의 수국, 그리고 팽나무
배를 타고 건너가는 섬 중에서는 도초도를 추천한다. 일찌감치 1996년 비금도와 다리로 연결돼 한 몸같이 된 섬인데, 비금도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소외됐던 섬이다.
이웃한 비금도는 눈길을 끌 만한 다양한 자원이 섬 곳곳에 있다. 대충만 추려봐도 이렇다. 국가등록 문화재인 대동 염전, 빼어난 조망의 선왕산, 하트 모양 해변으로 이름난 하누넘해수욕장과 긴 백사장의 명사십리해수욕장, 이세돌 바둑기념관….
그에 비하면 도초도는 내세울 만한 게 거의 없다. 비금도에 견줄만한 것이라면 항아리 모양의 해변이 있는 시목해수욕장 정도가 고작이었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했던 도초도에 이제 막 조성한 새로운 명소가 있다.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곳들이다.
도초면 지남리에는 수국공원이 있다. 본래 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를 매입해 수국을 테마로 공원을 조성한 곳이다. 공원에는 15종 3만 그루의 수국을 심어놓았는데 민간 수목원이 가꾼 수국 꽃밭의 규모나 화려함에는 못 미치지만 수수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오히려 정이 가는 곳이다.
그나마 알음알음 알려져 수국이 피는 이즈음에는 수국공원을 목적지 삼아 도초도를 방문하는 이들도 있다.수국공원보다 더 기대해도 좋을 곳이 지난달 18일 준공식을 가진 ‘환상의 정원’이다.
환상의 정원은 도초도 화도선착장에서 수국공원으로 이어지는 농수로 변에 조성한 팽나무 가로수 길이다. 정원이라기보다는 농수로를 따라서 이어지는 가로수 길이다. 폭 3m쯤 되는 흙길 양쪽으로 70년부터 100년 수령의 팽나무 716그루를 심어놓았다.
이런 길이 4㎞ 넘게 이어진다. 팽나무 아래에는 수국과 석죽패랭이, 수레국화를 심었다.가로수 길에 심은 팽나무는 전국 각지를 돌며 키가 10m 안팎인 팽나무를 수소문해 전남 고흥과 충남 홍성, 경남 창원 등에서 기증받은 나무들. 나무를 배로 옮기는 데만 석 달이 걸렸단다.
팽나무는 둥치가 굵어지고 거목이 되면서 기이하게 가지를 뒤틀며 독특한 미감을 뽐낸다. 제주에 팽나무가 많긴 하지만, 여기처럼 가운데 길을 놓고 길게 줄지어 심어놓은 곳은 없다.
지금도 양쪽으로 도열한 팽나무의 힘찬 기운이 예사롭지 않지만, 몇 년 뒤 둥치와 가지가 더 굵어지고 난 뒤의 경관은 또 어떨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기대를 품고 자라는 도초도의 팽나무 숲길처럼 신안은, 지금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모레가 더 기대되는 곳이다.
■ 섬과 차별
섬은 어떤 이들에게는 차별과 폄훼의 대상이다. 섬에서 일어난 범죄를 다룬 기사에서 습관적으로 ‘외딴 섬’과 ‘섬마을’이란 특수성을 강조하는 언론이 우선 문제다. 섬이란 지역적 특수성을 앞세운 흥미 위주의 접근이다.
이런 기사에는 댓글도 비하 일색이다. 섬의 행정구역이 전라도인 경우, 댓글에는 섬 차별에 지역감정까지 겹쳐진다. 편견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참고로 전남 신안은 행정안전부의 지역 안전지수 조사에서 5년 연속 ‘범죄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으로 선정됐다.
출처 / 문화일보 / 박경일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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