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피라미드로 시작한 고대 이집트 여행
▲스핑크스
▲스핑크스
▲스핑크스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와 그 뒤로 보이는 카프레의 피라미드
먼저 고대 이집트의 대표 유적인 피라미드를 비롯해 나일강 주변에 남아 있는 신전과 왕의 무덤을 둘러볼 심산이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40여 분, 도시 밖으로 나서니 피라미드가 나타난다.
기자(Giza) 고원의 사막에 있어 흔히 ‘기자 피라미드’라 부른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거대하게 서 있으리라 생각했던 피라미드는 주거단지를 지나치니 곧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좀 실망스러웠다. ‘그새 여기까지 개발이 된 건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피라미드는 꽤나 멀리 있었다. 단지 크기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도시 뒤에 있는 것처럼 보인 것뿐. 3개의 피라미드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대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상상을 뛰어넘는 피라미드의 크기와 규모에.
▲스핑크스
'교살자' 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이며 원래 이집트 어로는 '살아 있는 형상'이라는 의미로 불려졌다. 전체가 하나의 석회암으로 조각된 것으로서 주변을 골짜기 같이 깎아서 만들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피라미트처럼 단을 쌓아서 올라가며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돌덩이를 깎아서 만들었다. 오랜 세월동안 스핑크스는 머리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변의 모래에 파묻혀 있었는데,
기원전 1400년경 투트모세 4세가 왕자시절 사냥 후 지쳐서 스핑크스 머리 밑에서 잠이 들었다가 스핑크스가 '숨막히는 모래에서 나를 꺼내주면 왕이 되도록 해 주겠다'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뒤 모래를 치워 스핑크스의 모습을 드러내게 했고, 왕이 된 투트모세 4세는 스핑크스의 두 발 사이에 이 꿈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머리는 턱 끝부분에서부터 이마꼭대기까지 크기가 19피트(5.8 미터)이고 얼굴폭이 20피트이다. 그리고 원주가 91피트(27.7미터)이다. 스핑크스의 발은 전방으로 56피트(17미터) 뻗어있고, 몸통은 길이가 172피트(52.4미터)(총 몸길이는 242피트)이고 높이는 머리꼭 대기까지 66피트(20미터)이다.
▲스핑크스, 카프레왕 피라미드
▲스핑크스 장제전
피라미드는 초기왕조시대의 마스타바에서 발전된 것으로, 제18왕조 초에 왕묘가 암굴묘의 형식을 취할 때까지 계속된다. 최성기는 제3∼5왕조로 '피라미드시대'라 부른다.
최고의 피라미드는 사카라에 있는 제3왕조 제2대 조세르왕의 '계단식피라미드'로 재상 임호테프가 설계한 것이다.처음에는 한 변이 63m인 직사각형 석조 마스타바로, 중앙에 깊이 28m의 수혈을 파고그 밑에 매장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확장공사가 시작되어, 결국 마스타바를 6단 포개 놓은 모양의 밑변 109×126m, 높이 62m의 계단 피라미드가 완성되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는 헬리오폴리스를 중심으로 예로부터 존재했던 태양신 숭배가 피안의 신앙과 결부된 결과로, 계단은 죽은 국왕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태양신과의 결부는 후의 정통 피라미드의 출현으로 한층 긴밀해졌다. 피라미드 그 자체는 왕의 미라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그러나 음식물과 가지각색의 물품을 진열하여 제사를 지내는 장소도 필요했다.
그래서 피라미드 북측에 장제전(葬祭殿)이 건조되고, 다시 동쪽에 세드제의 의식을 행하는 신전· 소신전· 중정이, 남쪽에는 제단이 있는 대중정이 축조되고 그것들을 높이 10m, 동서 277m, 남북 545m의 사가거형의 주벽으로 둘러 장대한 묘소를 형성하였다. 이것들을 '피라미드 복합체'라고 부른다
▲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고 왕국의 전성기인 기원전 2700년 경에 만들어 졌다. 이집트 전체에서 94개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로서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쿠프왕의 피라미드의 경우 2,352,000개에서 268만 여개 정도의 각 2.5t 내지 10t 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었다.
석회암은 모깔담과 기자 남동쪽 15km 지점의 엘뚜르 등에서 캐내어 이용하였다. 화강암의 경우는 카이로 남쪽 850km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통하여 운반 해 왔다. 돌을 쌓은 단층의 수는 원래 210계단 이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것은 203계단이다. 하루 10만여명이1년에 3,4 개월씩 20여년(총 2천여일) 동안, 연인원 2~3억명이 동원된 대규모 공사로서 용도는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밑변의 길이 230.3m, 겉표면에 있었던 돌의 17만여개는 아랍과 터키 점령하에서 건축자재로 재활용 되느라 벗겨 졌다. 칼리프 알마문이 뚫은 구멍을 통해 내부로 들어 갈 수 있으며 원래의 입구는 이보다 위쪽 10m 지점에 있다.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50년간 통치한 쿠프왕은 모든 신전을 폐쇄하고 제사를 금지시키고 자기만을 숭배토록 했다.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위하여 돌을 옮길 둑길을 만드는데 만도 10년이 소모되었는데 전체길이가1km, 폭이 18m, 가장 높은 곳의 높이가 14.4m였다.이 길에 여러가지 동물의 모습을 새겨 장식하였고, 다듬은 돌로 축조하였다. 돌길이는 90cm 이하가 없었다.피라미드에는 상형 문자로 이일에 동원된 일꾼들이 먹어치운 무, 양파, 마늘의 양이 기록되어 있다.
그 액수는 은 1,600 달란트에 해당된다. 이것이 맞는 기록이라면 공사용 철제품과 노무자들의 주,부식 옷가지등을 지급하는데 따른 비용은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상상이 안간다. 돌을 잘라 나르고 지하 수로를 파는 데만도 적잖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지하의 쿠프왕의 현실은 나일강의 물을 운하로 끌어드린 물로 마치 섬처럼 만들어 졌다.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의 기초를 쌓은 대는 이디오피아 산의 다양한 색깔의 돌을 사용하였다. 그는 쿠프왕의 동생으로 56년간 통치하였다. 쿠푸, 카프레 왕은 106년간을 통치하였다. 카프레 왕의 아들인 멘카우레 왕은 신전을 다시 열고, 노역에서 해방시켜 생업에 종사토록 하였으며, 종교적인 관습을 실행하도록 허용하였다.
▲피라미드 주변의 낙타 호객꾼. ‘원달러’로 시작하지만, 낙타에 태우고 터번을 두르면서
값이 20~30달러까지 솟아오른다. 흥정의 고수가 되거나 안 타는 것이 상책
연달아 만날 유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알아야만 했다. 고대 이집트의 신들과 스스로 신의 아들이라 칭했던 파라오들, 신화와 고대왕국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가이드가 설명을 잘 해주어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집트를 여행하며 만나게 되는 유적 대부분은 BC 3,00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고대 이집트 역사의 시작을 보통 BC 3,000년 전으로 보는데, BC 30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전까지 30개의 왕조가 번성했다.
이중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건 3왕조 때, 대규모 피라미드가 건설된 시기도 바로 3~4왕조 때다. 특히 4왕조의 파라오인 쿠푸(Khufu)왕과 카프라(Khafra), 멘카우라(Menkaura)왕 시대에 지어진 피라미드는 대부분 기자 고원의 사막에 모여 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피라미드 70여 개 중 역사적으로 기자 피라미드를 가장 빼어난 것으로 손꼽는다.
▲기자 피라미드 바깥의 상인.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먼지 쌓인 기념품을 판다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으로 잘 알려져 있다.왕이 하늘로 오를 수 있는 계단 역할을 했다는 가설이 있는 반면 왕의 무덤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가장 큰 쿠푸 피라미드의 현재 높이는 137m다. 원래는 147m였는데 위의 7단이 무너져내려 현재의 높이가 되었단다.
가까이서 마주한 피라미드는 커다란 직사각형의 돌을 쌓아 올린 형태로,돌의 크기가 50cm에서 2m가 넘는 것까지 일정하지 않다.이런 돌을 무려 230만개 사용해 210단이나 쌓아 올렸으며, 완성하기까지는 20년이 넘게 걸렸다.
매끈할 줄 알았던 피라미드의 표면은 무척 거칠었다. 과거에는 돌을 쌓아 올린 후 외장석을 붙여매끈하고 번쩍이게 만들었지만 욕심 많은 이들이 값비싼 화강암을 다 떼어 가 버렸단다.현재는 떼어 내기 힘든 꼭대기 부분에만 조금 남아 있을 뿐, 외장석은 거의 다 벗겨진 상태다.과거 매끈하고 거대한 자태로 빛났던 피라미드를 상상해 봤다.마치 사막 속 보석처럼 눈부신 자태를 뽐냈을 테다.
▲쿠푸 피라미드에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사진 속 문은 이슬람 시대에 알 마문왕이
도굴을 위해 폭파해 뚫은 입구. 현재 이곳을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피라미드를 둘러본 뒤, 쿠푸의 피라미드와 동쪽 마스타바(직사각형 형태의 초기 1, 2왕조 시대의 분묘)사이에서 발견된 헤테페레스(쿠푸의 어머니) 1세의 무덤으로 향했다.이곳을 내려가는 길은 뒤로 돌아 내려가는 것이 안전할 만큼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한 발씩 조심히 발걸음을 옮겨 헤테페레스 1세의 무덤에 도착했다.텅 빈 공간이었다. 가이드가 열심히 여왕의 시신이 어떻게 놓여 있었는지 설명을 덧붙였지만,석관도, 보석도, 유물도 없이 휑한 공간은 그저 작고 초라해 보일 뿐이었다.
▲세 개의 피라미드를 모두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세 개의 피라미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한 번 더 이집트의 우주를 내려다본 후, 일행은 스핑크스가 있는 곳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피라미드를 지키는 역할, 그러니까 지금의 보디가드쯤인 스핑크스는 높이만 20m에 달하는 거구다. 가까이는 들어갈 수 없다.
그저 내 얼굴만 하게 잡히는 스핑크스를 배경 삼아 사진 몇 장 찍을 수 있을 뿐.현재 유일하게 남은 스핑크스는 코가 잘리고 수염이 사라져 있다.오랜 세월 든든하게 피라미드를 지켜 오던 이집트의 보디가드마저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스핑크스를 마주하고 있는 광장에는 하얀 철제의자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야간에 펼쳐지는 빛의 쇼를 보기 위한 자리다.
1798년 이집트 원정을 나섰던 나폴레옹은 피라미드를 보고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며 평생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220년이 지난 지금, 무수한 여행객들이 피라미드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여전하다.4,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불가사의한 존재니 말이다.
▲어마어마한 석축과 기념품 잡 상인의 모습이 묘한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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